말에는 묘한 힘이 있다
말에는 묘한 힘이 있는 것 같습니다. 성공을 부르는 말이 있고 실패를 부르는 말이 있지요. 자신이 원하는 삶을 이루기 위해서는 자신의 말을 믿을 수 있어야 합니다. 아메리카 인디언의 전해 내려오는 말 중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네가 어떤 말을 만 번 이상 되풀이하면,
그 일이 어떤 일이든 반드시 그 일은 이루어진다.』
이렇듯 말에는 신비로운 힘이 있는 것이지요. 오늘 부터라도 우리가 말의 힘을 믿으면 어떤 것이든 이뤄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망각하면 안 될 세 문장의 라틴어가 있습니다.
① 메멘토 모리 (memento mori)/ ② 카르페 디엠 (carpe diem)/
③ 아모르 파티 (Amor fati)
예나 지금이나 사람이 사는 곳엔 때리고 때려도 솟아오르는 두더지처럼 뿌리가 뽑히지 않는 것이 교만(驕慢)이지요. 고대 로마에서 승리를 쟁취한 장군이 개선 행진을 할 때, 장군 뒤에서 계속 외쳐 대는 라틴어가 있습니다.
첫째, ‘메멘토 모리(memento mori)’입니다.
라틴어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는 ‘죽음을 기억하라.’라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 말의 유래는 2000년 전 로마 공화정의 개선식(凱旋式)에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개선식은 전쟁에서 승리한 장군에게 주어지는 최고의 영예였습니다. 백마 네 마리가 끄는 전차를 타고 개선 행진을 벌이는 것이지요.
영웅이 탄 마차가 연도를 메운 로마시민의 환호 속을 헤치고 행진하는 장면은 장쾌 했습니다. 그러나 화려한 금빛 마차에는 열광 속에 가린 ‘숨은 그림’이 하나가 있습니다. 개선장군이 손을 들어 시민들에게 화답하는 동안, 장군 뒤에 탑승한 사람이 큰소리로 계속 외쳐 대는 장면입니다.
대중의 환호 소리가 커지면 커진 만큼, 그의 목청도 따라 커지는 외침이 있었습니다. “메멘토 모리! 메멘토 모리!.” “오늘은 개선장군이지만 너도 언젠가는 죽는다. 겸손(謙遜)하게 행동하라.” 이렇게 승리에 도취 된 장군을 향해 준엄한 하늘의 소리를 들려주는 것입니다.
‘메멘토 모리’에는 세 가지 철학적 가치를 담았습니다. 「죽음을 기억하라! 운명을 사랑하라! 현재에 충실하라!」라는 것이지요. 생전에 ‘스티브 잡스’도 스탠퍼드대 졸업식 축하 연설에서 이를 강조했습니다. 췌장암 투병으로 힘든 시기를 보내던 잡스가 연단에 올라 이렇게 외쳤습니다.
“죽음은 삶이 만든 최고의 발명품이다. 죽음이 없었으면 나는 실패한 인생을 살았을 것이다.”
둘째, ‘카르페 디엠(carpe diem)'입니다.
본래 이 말은 오만하지 말고, ’현재를 가치 있게 살라‘ 라는 뜻입니다. 오늘을 즐기며 살라는 것이지요. 우리에게도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과 같은 맥락의 말이 있습니다. ‘열흘 붉은 꽃이 없듯이, 한 번 흥한 것은 반드시 쇠한다.‘는 뜻입니다.
셋째, ‘아모르 파티’(Amor fati)입니다.
트로트 가수 김연자가 불러 유명한 ‘아모르 파티’도 일맥상통합니다. 사랑을 뜻하는 ‘아모르’와 운명을 뜻한 ‘파티’를 합성한 라틴어로 ‘운명을 사랑하라.’라는 뜻을 지녔지요.
어떻습니까? 이 세 가지 처세훈은 미국 남서부에 거주한 ‘나바호족’에게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네가 세상에 울면서 태어날 때 세상은 기뻐했으니, 네가 죽을 때는 세상은 울어도 너는 기뻐할 수 있도록, 그러한 삶을 살아라.”는 뜻입니다.
이렇게 마음을 휘어잡는 짧은 문장 <메멘토 모리>,<카르페 디엠>,<아모르 파티>, <화무십일홍>까지 모든 문장은 한결같이 겸손한 삶을 이르고 있습니다. 생명이 코에 달려 있습니다. 날숨 한 번 뱉었다가 들이키지 못하면 죽습니다.
그래서 이 세 가지 문장을 잊지 말고, 교만하면 안 됩니다. 매 순간 삶을 성찰하며 살라는 준엄한 명령입니다. ‘죽음을 기억하고, 운명을 사랑하며, 오늘에 충실해야 합니다.
이처럼 말에는 묘한 힘이 있습니다. 이왕 하는 말 우리 이런 말을 하면 어떨까요?
『나는 빛입니다. 나는 사랑입니다. 나는 모든 일에 긍정적이고, 적극적이며, 정열적으로 뜁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화합하고 단결합니다.』
새로운 주문(呪文)입니다. 조석으로 이렇게 말하면 몸이 구름처럼 퍼져 나갑니다. 내가 빛나는 존재라는 느낌이 가슴속으로 파고듭니다. 눈물이 왈칵 쏟아집니다. 부족했다고 느낀 감정들이 한 조각 씩 옅어 집니다. 가슴에 뭉친 기운이 퍼지니 하늘을 날아갈 것 같습니다.
화담(花潭) 서경덕(徐敬德 : 1489~1546)의 시조에 이런 시가 있습니다.
『말하기 좋다 하고 남의 말 막을 것이
남의 말 내 하면 남도 내 말 하는 것이
말로써 말 많으니 말 말까 하노라.』
어떻습니까? 오늘을 마지막처럼 사는 것입니다. 우리 어떤 말을 하고 살면 좋을까요!
단기 4355년, 불기 2566년, 서기 2022년, 원기 107년 9월 23일
덕 산 김 덕 권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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