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德華滿發*
약속
이 세상에 숨을 쉬고 사는 수많은 동물 중 인간만이, 약속하고 산다고 합니다. 사람 다음으로 지능을 가졌다는 개나 원숭이도 미리 약속하고 동류(同流) 만나러 가지 않습니다. 사람만 약속하고 살아가지요.
이렇게 인간이 사는 데 매우 중요한 두 가지 요소가 있습니다. ‘먹는 것(食)’과 ‘믿는 것(信)’입니다. ‘먹는 것’과 ‘믿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할까요? 대부분은 식(食)이라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공자는 ‘신(信)’을 앞세웠습니다. 믿음이 깨어지면 그 사회의 근간이 흔들립니다.
그런데 제가 그만 약속을 두 번 어겼습니다. <덕화만발>을 개설하고, 무려 15년 간을 주 5회, 줄기차게 써오던 덕화만발을 작년에 주 3회로 줄였습니다. 이것이 첫 번째 약속 위반입니다. 제가 노쇠해감에 따라 기력이 급격히 떨어졌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1년도 정도 지났는데 또 두 번째 약속을 어겼습니다. 이제는 너무 힘이 들어 주 2회, 화요일과 금요일 겨우 두 번 보내드리고 있습니다. 어쩌면 이것도 기진맥진(氣盡脈盡)하여, 세 번째 약속을 어길지도 모릅니다. 저도 두렵습니다. 더는 제 생애에 약속을 어기고 싶지는 않은데 말이지요.
여기서 우리는 약속을 지키고 세상을 떠난 한 여 가수의 이야기를 돌아보면서 믿음의 중요성을 살펴보면 좋겠습니다. ‘이애리수’라는 가수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1928년 단성사에서 ‘황성옛터’를 처음 불렀습니다.
여러 곡을 힛트시키며 인기를 한 몸에 받은 미모의 가수였지요. 한참 인기 절정에 있을 때, 그녀는 갑자기 자취를 감추고 어디론 가 사라져버렸습니다. 그녀가 자취를 감추자 사망 설까지 돌았습니다.
그러다가 그녀에 대한 기억은 세상에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 사연 뒤에 숨어있는 내 막은 ‘약속’이라는 두 글자에 있었습니다. 이애리수는 배00 씨라는 연세 대학생과 사랑에 빠져서 결혼을 약속하고, 시부모 앞에 섰습니다.
그런데 시댁에서는 가수라는 이유로 결혼을 완강하게 반대하였습니다. 그녀는 자살 소동까지 벌였지만, 시댁의 고집을 꺾을 수는 없었지요. 마침내 그녀는 시아버지와 굳은 약속을 하고 나서야 결혼을 허락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일체 가수라는 사실을 숨기고 향후 가수 활동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이었지요.
결혼 생활 2년 후에, 그녀의 시아버지가 열반(涅槃)하셨습니다. 그때 남편이 “아버지가 돌아가셨으니 이제 가수 활동을 해도 되지 않겠느냐?”고 제안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애리수는 거절했습니다.
돌아가셨지만 ‘약속은 약속’이라고, 평생 평범한 주부로 살다가 98 세가 되어서, 그녀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졌고, 그 이듬해 99세로 타계하였습니다.
그녀의 자녀들도 어머니가 가수였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합니다. 우직하리 만큼, 시아버지와의 약속을 지킨 그녀의 약속을 오늘날의, 특히 정치인들이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도산 안창호 선생이 독립 운동을 할 때의 일입니다. 그는 친척 집 어린이에게 내일 모레 과자를 사주겠다고 약속하였습니다.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과자 봉지를 사 들고, 어린이를 찾아가는데 일 경(日警)이 미행했습니다.
그는 일 경이 미행하는 것을 알고도 어린이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친척 집에 갔다가 잡혀, 감옥살이 하게, 되었고, 결국 옥 사(獄死)를 하고 말았지요. 참으로 우직한 행동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런 정직한 정신으로 독립 운동을 하였기 때문에, 이 순간에도 ‘우리 민족의 가슴’ 속에 살아있는 것입니다.
사람은 살아있을 때 어떤 감투를 썼느냐 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어떤 정신으로 살았느냐 가 더 중요하고, 그에 따른 평가가 내려지는 것이지요.
인간만이, 약속하고 삽니다. 그 약속이 지켜지지 않을 때, 서로의 불신이 깊어지고 사회는 병이 깊어집니다. 한국 사람의 80%가 타인을 못 믿는다는 앙케트 조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OECD 국가 중 최고의 수치라고 하네요.
‘내가 어려울 때 의지할 곳이 있는가?’의 물음에, OECD 국가 중, 한국 사람이 최하위로 조사되었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많은 책임은 국가의 지도자 층과 정치인들에게 있습니다.
높은 사람이, 식 언(食言)하면, 모방 심리 현상에 의해서, 서민들도 따라서 거짓말을 하면서 죄 의식을 느끼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의 정치하는 인간들, 거짓말을 밥 먹듯 하는 인간들, 이제라도 정신 차려, 한 말에 책임을 지고 약속을 지키면 얼마나 좋을까요.
제가 우리 덕화만발에서 16년 동안 줄기차게 부르짖은 것은, 한 마디로 우리 덕화만발 가족과 사회에 맑고 밝고 훈훈한 아름다운 세상에서 인생을 행복하게 살아가자고 외친 것입니다.
그 약속 이행이 행복한 생애를 꾸려 가는 방법이라고, 세계 만 방에 줄기차게 소리친 것이지요!
단기 4356년, 불기 2567년, 서기 2023년, 원기 108년 3월 10일
덕 산 김덕권(길호)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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