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종 종정 성파 스님
뼈에 사무치는 추위 이겨내야 매화꽃 향기가 코를 찌릅니다
오랫동안 연구하고 참선한 끝에야 지혜도 생겨나는 법
신심 돈독히 해 거짓·고통 시달리지 않는 자세 갖춰야
전통문화예술 보존·발전은 국가·민족 자존심이자 의무
우선, 종정으로써 제가 할 일은 1700년의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한국문화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는 일입니다. 종무에 관한 일반 행정은 유능하고 젊은 스님들에게 맡기면 잘 합니다. 임기 동안 전통문화를 잘 보존하고 발전시키는데 진력할 계획입니다.
부처님은 모든 법이 정법이라 하셨습니다. 법이란 것은 정해진 바 없이 마음먹은 그 자체가 법인 겁니다. 예를 들자면 아름다운 풍경을 그리는 화가는 그의 입장에서 경치를 바라보고 직접 느낀 대로 붓을 움직입니다. 우리가 보기에 좋은 경치가 아닐지라도 화가가 감명을 받았다면 남이 보기에도 훌륭한 그림이 탄생합니다.
보는 관점에 따라 서로 다르다는 겁니다. 모든 감정과 실체가 그 물건에 있는 것이 아닌, 각자의 마음에 달려있음을 잘 아셔야 합니다. 아름다운 물건도 있고, 아름답지 못한 물건도 있습니다. 또 좋은 물건도 있고, 아무도 좋아하지 않는 물건도 있지요. 우리 마음은 더합니다. 매 순간 변화하는 우리 마음은 마치 거울과 같아 아름다운 것도 비추고, 추한 것도 비춥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마음을 잘 닦아야 한다는 것을 ‘연꽃’으로 흔히 비유합니다. 연꽃은 진흙에서 자랍니다. 그 진흙 속에 뿌리를 깊게 내리고 더러움을 빨아들이며 자랍니다. 다 자라나서는 물 위에 고즈넉이 떠있습니다. 신기하게 물도 안 묻지요. 이처럼 진실하게 살아가며 거짓과 고통이 난무한 세상에 시달리지 않는 마음을 갖는 것이 우리들이 평생 가져야 할 마음가짐입니다.
부처님은 이런 마음을 가져야함을 일찍이 알아차리고 법을 설하셨습니다. 중생들은 각자 근기가 달라 법을 설해도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고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당장 시장에 나가더라도 발음과 말투에 따라 서로의 기분이 변화합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각자 근기에 따라 팔만사천 가지의 법을 내렸습니다. 그저 한 마디, 한 음절의 화두로 중생들에게 공부하라고 하면 되는데 굳이 팔만사천 법문을 낱낱이 하시며 진리를 이해시켜 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잘 실행을 안 하니까 나중에 가서 부처님은 “나는 각자의 병에 맞는 약을 처방하는 의사와 같다”며 법을 듣고 실천하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제가 전하고 싶은 말도 이와 같습니다. 눈이 아픈 사람이 눈을 부여잡고 배 아픈 사람이 배를 꼭 부여잡습니다. 그런데 저 멀리서 다리 아픈 사람이 와서 “왜 너네는 다리를 부여잡고 있지 않느냐”고 하면 되겠습니까? 여기 모인 대중은 이러지 않으실 거라 믿습니다.
또 몸이 아파 의사를 찾아갔는데, 눈이 아픈데 복통약을 주고 배가 아픈데 안약을 주면 무슨 생각이 들겠습니까? 국민을 대표해 이 자리에 와 계신 국회의원들도 민생을 잘 살펴 지혜로운 정책을 펼쳐주길 바랍니다.
불자로서 신심을 돈독히 가지고 신행을 여실히 하면 자연스레 훌륭한 사람이 됩니다. 부처님 가르침을 따르며, 부처님처럼 되고자 수행정진해 귀감이 되는 인물이 역사적으로 많습니다. 그중에서도 삭발하고 입산하면 스님이고, 마을에서 존경받으면 거사라고 불렀습니다. 대표적으로 인도의 유마거사, 중국의 방거사가 있지요. 그렇다면 현대의 거사는 누구겠습니까.
누가 대표적이라고 이름을 선뜻 꺼내지 못하지요? 그렇다면 오늘 이 자리는 주호영 의원이 정각회장이 된 이후 첫 법회이기에 주 회장이 거사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유마 거사와 방 거사는 자비와 선행으로 당시 지역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주호영 의원도 많은 사람들이 따르기에 정각회장도 하고 소속 당 원내대표까지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평소 해오던 보살행을 정각회장으로서 더욱 더 펼쳐 불자들에게 귀감이 되어주길 바랍니다. 부처님 가르침을 잘 믿는 것이 전부가 아닌, 현대사회에 잘 적용하고 실천하는 모습을 기대합니다.
오늘 법회에 앞서 잠시 차담을 가졌습니다. 농담 겸 진담 삼아 이번 조계종정을 잘못 뽑았다고 했지요. 훌륭한 도인을 대표로 세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성인이 따로 있는 게 아니고, 범부가 따로 있는 게 아닙니다. 이 손을 보세요. 저는 손바닥을 보이고 있지만 제게는 손등이 보입니다. 손등과 손바닥 모두 제 손입니다. 범부와 성인의 관계도 이렇습니다. 손바닥을 뒤집느냐, 못 뒤집느냐는 모두 여러분에게 달려있음을 잘 아셔야 합니다.
‘신심이 돈독하면 봄이 만국을 통해 온다’는 말이 있습니다. 남과 북이 철조망으로 막혀있어도 봄바람은 어디에나 불어옵니다. 신심은 봄과 같아 어떠한 장애라도 돌파할 수 있습니다. 오늘 저 멀리 통도사에서 여의도까지 찾아오신 분들이 있습니다. 이들처럼 신심이 돈독한 불자들은 제주도든, 경상도든, 충청도든, 서울 어디든 절을 찾아다니지요. 우리가 가져야 할 마음가짐도 이와 같습니다.
각자 다른 환경에서 성장하며 다양한 성격을 가지지만, 한 사람 한 사람마다 불성이라는 기틀을 갖고 있습니다. 하늘에 떠있는 달은 몇 개입니까? 하나의 달이지만 흐르는 강이 천개 만개라면 달도 천가지 만가지로 비춰집니다. 이 비춰진 달은 왜곡된 모습이지 진짜 달이 아닙니다.
본성을 보겠다는 단단한 신심으로 천강에 달이 비치듯, 봄이 만국을 통해 오듯 살아야 합니다. 이 사실을 알아차리셨습니까, 못 알아차리셨습니까?
제대로 확실히 알고 확실히 믿으면 모든 문제가 다 해결이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최근 코로나19, 산불, 전쟁 등 사건사고로 우리 도처에는 냉랭함이 가득합니다. 봄꽃은 겨울이 지나서야 핍니다. 뼈에 사무치는 추위를 이겨내야만 매화꽃 향기가 코를 찌르지요. 지금 같이 어려울 때, 우리는 개인의 고통을 남 탓으로 돌리려 합니다. 특히 이런 비난은 정치권으로 많이 향하지요.
국회의원들만 잘 먹는다 할 필요 없습니다. 우리 스스로 열심히 살아간다면 추위를 견뎌내고 코를 찌르는 향기를 느낄 때가 분명히 옵니다. 여기 모인 여러분들이 신심을 가지면 우리나라는 안 될 것이 없습니다.
저는 우리나라 문화예술에 심취해 있습니다. 한국의 문화예술은 전 세계에서 첫째로 손꼽혀도 손색이 없습니다. 예로 인류 문화 발전의 촉진제인 출판인쇄술만 봐도 그렇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 인쇄물로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있습니다. 서양이 13세기 들어서야 종이를 사용할 때 우리나라는 신라 4~5세기 때 이미 종이 인쇄를 시작한 겁니다.
그러나 이런 우수한 전통문화예술들이 조선시대 들어 불교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너무나 오랫동안 빛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우리나라 전통문화예술을 보존하고 발전시키는 데 종정의 소임을 다하려고 합니다.
오늘날 세계적으로 한류가 열풍입니다. 이 모든 것은 한국 전통문화예술이 그만큼 뛰어났기 때문입니다. 꽃은 뿌리와 줄기, 잎이 있어 활짝 피워집니다. 아무것도 없는데 갑자기 꽃이 피워지겠습니까? 전통문화예술이 뿌리로서 민족의 정신에 굳게 자리하고 있는 덕분입니다. 뿌리를 잘 알아야 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10월7일에 통도사에서 훈민정음연구회 창립 학술대회를 열려고 합니다. 세종대왕이 친히 한글을 창제했다고 하지만, 어떤 사람들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당시 시대적 상황을 연구해 숨겨진 공로자를 밝혀내고자 합니다. 그렇다고 세종대왕이 친히 한글을 창제하지 않았다는 것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을 민족의 영웅으로 추대합니다. 하지만 이순신 장군 혼자 임진왜란을 이겨낸 것이 아닙니다. 물론 이순신 장군이 진두지휘하며 훌륭한 리더십을 보여줬지만, 수군으로 노력하고 희생한 휘하 장수·병사들이 충실히 따른 덕분입니다. 이와 더불어 국가와 민족을 지키려는 일념으로 전국에서 일어난 의병, 억압 속에서도 뜻을 모은 승군들의 숭고한 정신을 잊어선 안 될 것입니다. 사명대사가 불교를 일으키려고 전쟁에 나섰겠습니까?
불교는 한국문화에서 지대한 역할을 합니다. 만약 배제한다면 문화재가 별로 없지요. 그러나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전통문화예술을 지키고 숭상해 발전시키는 일은 불교를 위하는 일이 아닌 국가와 민족의 자존심이 걸린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입니다. 저를 포함한 불교계가 앞장서고 있지만, 정치권에서도 많은 관심을 가져주시길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 들려드리고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옛날에 여우하고 거북이, 토끼가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아침 일찍 출발하다 보니 너무 배가 고픈 겁니다. 그러다 떡을 이고 지나가는 할머니를 만나 떡을 한 덩이 얻어먹게 되었습니다. 한 덩이다 보니, 나이 순서대로 먹기로 합의했습니다. 먼저 거북이가 “나는 삼천갑자 동방삭이보다 나이 많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여우는 “나는 천지가 개벽할 때 태어났다”고 받아쳤습니다. 토끼는 뭐라고 했겠습니까? 이 둘보다 나이 많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오늘은 여러분에게 줄 상품이 없어서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토끼는 “나는 그걸 봤다”고 답했습니다.
이것이 재치이자 지혜입니다. 순발력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지혜는 쉽게 나오지 않습니다. 운동선수들이 기본기를 단단히 다져 운동할 때 일반인보다 덜 다치듯이, 지혜도 오랫동안 연구하고 참선한 끝에 생겨납니다.
지혜롭게 살아갑시다.
정리=고민규 기자 mingg@beopbo.com
이 법문은 9월21일 국회의사당에서 봉행된 정각회 개원법회에서 조계종 종정 성파 스님이 법문한 내용을 요약 게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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