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가 사람을 낳는 데는 청탁(淸濁)·후박(厚薄)·순리(淳漓)의 차이와 빈부(貧富)·귀천(貴賤)·수요(壽夭)의 다름이 있다. 그래서 분수[分]라는 이름이 생겨나게 되었다. 분수란 한량(限量)을 일컬음이니, 땅을 나누어 주는 데에 비유하자면, 서쪽으로 한 걸음만 나가면 진(秦)이요 동쪽으로 한 걸음만 들어가면 제(齊)니 한 걸음의 땅이라도 넘을 생각을 한다면 이는 넘치는 짓이요 분수가 아니다. 여러 관작으로 비유를 하자면, 한 자리만 나아가면 공(公)이요 한 자리만 올라가면 왕이니 하나의 지위에서 혹시라도 넘을 생각을 한다면 이것은 참람이요 분수가 아니다. 사람의 마음에 누가 부자가 되고 싶지 않고 귀해지고 싶지 않고 장수하고 싶지 않으리오마는 사람마다 그렇게 안 되는 것은 분수가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사람의 마음에 누가 가난을 싫어하지 않으며 천한 것을 싫어하지 않으며 요절하는 것을 싫어하지 않으리오마는 사람마다 면할 수 없는 것은 분수가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공자가 말하기를, “부와 귀는 사람들이 다 원하는 바이지만 정당한 도리로 얻은 것이 아니면 누리지 않고, 가난과 천함은 사람들이 다 싫어하는 바이지만 정당한 방법으로 얻은 것이 아니라도 버리지 않는다.” 하였고, 맹자는, “요수(夭壽)에 의혹됨이 없이 몸을 닦고 천명(天命)을 기다리는 것이 명을 세우는 것이다.” 하였으니, 이것이 안분(安分)의 말이다. 《주역》의 겸산(兼山 간괘(艮卦))의 대상(大象)에, “군자가 이를 보고 생각을 그 지위에서 벗어나지 않게 한다.” 하였고, 《중용》에는, “군자는 현재 처해 있는 지위에 따라 행한다.” 하였으니, 지위란 분수가 있는 곳이다. 그 분수를 편히 여기지 않고 일을 하려 한다면 이는 하늘을 거역함이요 도리를 거스름이니 반드시 이루지 못할 일인 것이다. 그러므로 군자는 순하여 길하고 소인은 어긋나서 흉한 것이다.
무릇 천금(千金)의 재물이 뜻밖에 이르면 탐욕 많은 사나이도 두려워하고 야광(夜光)의 구슬이 까닭 없이 이르면 필부(匹夫)가 칼을 잡는데, 이는 분수가 아니기 때문이다. 간혹 교묘하게 지혜를 쓰는 자가 도리에 어긋나는 짓을 하여 성공하는 수가 있는데, 이것은 이른바 “곧지 않으면서 살아 있는 것은 요행히 화를 모면한 것일 뿐이다.”는 것으로 군자는 하지 않는 것이다. 제(齊) 나라와 양(梁) 나라의 임금이 지위가 높지 않은 것이 아니요 재물이 부족한 것이 아닌데도 땅을 차지하려고 싸워서 시체가 들판에 가득하도록 사람을 죽이고 성을 차지하려고 싸워서 시체가 성에 가득하도록 사람을 죽였다가 끝내는 나라가 망하고 자신도 죽음을 당한 것은 그 분수를 편히 여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물며 필부(匹夫)의 미천함과 백수(白手)의 집으로서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오직 이익만을 추구한다면 어찌 모욕을 당하고 재앙을 덮어쓰는 일이 없겠는가. 가득찬 구덩이에 물을 더 부으면 넘치는 것은 구덩이가 물의 분수이기 때문이요, 한껏 당겨진 활을 더 당기면 부러지는 것은 당기는 한도가 활의 분수이기 때문이다. 분수란 사람에게 본래부터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이어서 조금이라도 사의(私意)가 개입되면 천재(天菑)와 인해(人害)가 아울러 이르는 것이다. 소자(邵子,邵雍)가 말하기를, “분수를 편히 여기면 몸에 욕됨이 없다.” 하였는데, 이는 참으로 깊은 뜻이 있는 말이다.
아, 왕공(王公) 귀인의 분수는 내가 감히 말하지 못하겠지만 나 같은 사람의 분수는 일찍부터 알고 있었다. 대바구니의 밥과 바가지의 물을 마시며(簞食瓢飮) 도를 즐긴 것은 안자(顔子)의 분수요, 굶주림을 참고 글을 읽은 것은 채씨(蔡氏.朱子)의 문인 채원정(蔡元定)의 분수다. 도(道)와 서(書)는 진실로 선비가 가지고 있는 바이거니와, 이를 즐기고 읽는 것은 바로 그 분수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기(驥)와 같이 되기를 바라는 말은 또한 기와 같은 말이요, 안자(顔子)와 같이 되기를 바라는 사람은 또한 안자와 같은 사람이다.” 하였으니, 진실로 능히 하기만 한다면 지금 사람도 옛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헛된 이름으로 서울에서 녹을 먹다보니 항상 분수에 벗어나는 것에 대한 근심이 있어서 이를 써서 자신을 깨우쳤었다. 종제(從弟) 호(祜)가 돌아갈 때에 이를 보여주노니, 또한 “사랑하지만 달리 도울 길이 없다.”는 뜻인 것이다. (끝)
'경전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우리 금강도덕은 위가 없는 큰 도라 (0) | 2016.05.24 |
---|---|
[스크랩] 도(道)를 닦는다 함은? (0) | 2016.05.21 |
[스크랩] 채근담 (萬曆本) 前集완역해설 ( 200 ~ ) (0) | 2016.05.04 |
[스크랩] 秋史 친필 반야바라밀다심경 (0) | 2016.05.04 |
[스크랩] 嘉言 第五 (0) | 2016.04.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