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이야기

주세붕 이야기

강나루터 2017. 2. 16. 13:34




신재 주세붕의 행적ㆍ학문ㆍ사상을 주제로 열려

함안지역의 인물과 학문 학술대회가 학생, 관계공무원과 지역주민 등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지난 5일 오전 10시 함안문화원 대공연장에서 개최되었다.

함안군과 함안문화원이 주최한 이날 학술대회는 함안지역의 인물과 학문(Ⅲ)에 관하여 세 번째의 학술대회로 세계최초 인삼재배법으로 백성의 고역을 면하게 한 목민관으로, 미국의 하버드대학보다 93년 빠른 우리나라 최초의 사립대학인 소수서원의 창시자인 신재 주세붕선생의 행적과 학문, 사상을 전문가를 통하여 집중적이고 종합적으로 연구 토론하여 선생의 위대한 업적을 재정립하고자 마련됐다.

오전에는 창원대학교 이찬규 총장의 ‘주세붕 연구의 현대적 의의’라는 주제로 한 기조강연을 시작으로 장성진 창원대 국문학과 교수의 ‘신재 주세붕의 문학과 사상’, 고승태 동양대 생명화학공학과 교수의 ‘목민관으로서의 신재 주세붕과 인삼재배’에 대한 발표가 있었으며, 오후에는 이정화 동양대 교수의 ‘신재 주세붕의 교육철학과 시 정신’, 박석홍 소수박물관장의 ‘신재 주세붕과 소수서원’에 관한 발표회가 있었다.

이어 변종현 경남대 교수의 사회로 김복옥 동국대 교수와 김훈기 영동대 교수, 정재춘 풍기인삼농협 전무가 토론자로 참석한 가운데 이날 학술대회에 관한 종합토론회를 했다.

하성식 함안군수는 환영사를 통해 “함안의 인물을 조명하는 뜻 깊은 학술대회 개최를 군민과 더불어 자축하고 신재 주세붕선생의 위업을 널리 알리는 귀한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면서 “앞으로도 훌륭하신 선조들의 업적을 밝히는 학술행사가 이어져 함안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함안을 알리는 기회가 마련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선생의 휘(諱)는 세붕(世鵬)이요 자(字)는 경유(景游)이며 호(號)는 신재(愼齋)로 본관은 상주(尙州)이며 시호(諡號)는 문민(文敏)이다. 1495년 경남 합천군에서 탄생하였으며 7세 때 부친을 따라 칠원현 무릉(현 칠서면 무릉리)으로 옮겨왔으며 1554년 60세를 일기로 서울에서 세상을 떠났다. 1522년(중종 17년)에 별시 을과에 합격한 후 조정에 벼슬하며 예문관 검열, 홍문관 정자 등의 요직에 임명되었다가 김안로의 배척을 받고 강원도도사에 좌천되었다. 1541년에 풍기군수가 되어 많은 업적을 남기게 되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서원 창건과 인삼재배이다.

1543년 백운동서원을 건립하여 중국의 서원과 같이 사묘적 기능과 교육적 기능을 지닌 우리나라 서원의 시초를 이루었고 그 후 1550년에 풍기군수였던 이황의 청원으로 소수서원으로 사액을 받고 공인된 교육기관이 된 뒤 풍기사림의 중심기구로 자리 잡게 된다.

또한 당시 풍기는 삼(蔘)의 산지였기에 채삼 공출로 농민들이 고통 받자 이를 안타깝게 여긴 가운데 인삼재배를 성공시켜 현재 우리나라가 인삼 종주국으로서 명성을 얻게 된 계기가 되었다.

현재 지방유형문화재 142호로 지정된 주세붕선생 영정과 143호 무산사, 173호 무릉잡고책판 및 수구집귀봉집책판, 교지 등 선생의 유품을 보관한 무산사 유물전시관이 칠서면 무릉리에 있어 선생의 업적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다.

경남 김태훈 기자 h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