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남원출신여성시인 김삼의당의 기념사업과 남원문화발전
오는(2008.11 10:음력 10.13일)은 조선후기 여염집 여인으로서 가장 많은 한시를 남긴 김삼의당의 탄생239주년이다. 한국 역사상 조선시대까지의 여성 중 가장 많은 한시와 산문을 남긴 김삼의당(1769-1823)은 남원출신의 여성시인으로 양반과 남성 중심의 철저한 봉건제와 신분제의 사회구도 속에서도 여성의 문학적 능력을 발휘하여 훌륭한 문학작품을 남긴 인물이다. 그녀가 남긴 詩와 散文 260편은 조선후기의 여성세계를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자료로 남녀평등과 상생을 지향하는 오늘날 김삼의당의 생애와 작품은 반드시 재조명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그 동안 신사임당과 허난설헌 이상 가는 문학작품을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여염집 여인이라는 이유로 김삼의당의 정신세계와 문학적 가치가 방치되어 왔던 게 사실이다.
남원을 배경으로 한 춘향전은 춘향이라는 소설속의 인물을 통하여 청춘남녀간의 사랑과 인간평등, 남녀평등을 주장하여 봉건신분질서에 대한 저항을 표출한 인물이라면 실존인물인 김삼의당은 시(詩)와 문(文)을 통하여 부부의 평등사랑과 가족 사랑을 남원의 문학적 가치를 드높인 인물로 평가 받을 만하다.
또한 21세기는 차별 없는 사회, 폭력 없는 사회, 인권이 존중되는 민주사회를 지향하고 있으며 더 나아가 지방분권과 상생을 지향하는 사회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 반면 정신적인의식이 해이되어 부부위기 등으로 가정이 해체되는 사회병리현상 속에서 지리산 지역의 남원을 중심으로 한 춘향, 김삼의당, 현대소설가 최명희 등 여성들을 재조명하고 남원에 한국여성문학관등을 조성하여 남원을 한국 여성문학의 성지로 가꾸어야한다.
김삼의당의 생애
김삼의당은 조선조 1769년 10월13일 남원의 서봉방(현재 향교동추정)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김해김씨로 연산군 때의 학자 탁영 김일손의 후손이다. 그녀의 나이18세 때인 1786년 같은 마을에서 태어난 진주하씨로 세종조 영의정을 지낸 하연의 12대 손 담락당 하립과 결혼 하여 1801년 전북 진안으로 이주 하여 생활하다가 1823년에 세상을 뜨셨다.
김삼의당의 작품세계
김삼의당은 남편과 애환의 생활을 시문으로 전하는 시우(詩友)가 되어 금슬 좋은 부부로 단란한 가정을 이루었다. 김삼의당은 조선후기 유교논리의 엄격한 생활 규범 속에서 부도(婦道)를 철저히 지키는 여염집 주보로서 시가 생활에 충실하면서 작품생활에도 열성을 다해t다. 세상을 뜬 후 100년이 지난 1930년 광주에서 “삼의당 김부인 유고” 가 출간됨으로써 세상에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다.
김삼의당의 시문학은 소재에 있어서 부부의 화해, 자연교감, 농촌생활, 세시풍속 등으로 상당히 제한되어 있으면서도 부부간의 그리움과 애정, 그리고 아내로서 내조가 두드러졌다. 자연 교감이나 서정의 표출은 농촌생활을 통하여 얻어진 소박한 생활관이며 거기에서 우러난 해맑은 정서와 낭만 그리고 나름대로의 멋을 형상화시킨 시적 세계를 보여준다.
또한 김상의당의 작품에는 어둡고 불행한 마음은 찾아 볼 수 없다. 그녀는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온갖 장애요소들을 오히려 그 나름대로의 인생관과 철학으로 수용하여 정서적 안정과 균형을 취할 줄 알았던 여성이다. 그러면서도 정을 제압했던 보기 드문 여성시인이며 이러한 악조건을 극복하면서 문학에의 뜨거운 정열을 불태웠다는 점이 높이 평가된다.
따라서 남성과 여성이 평등하게 공존하고 공생하여 궁극적으로 모든 차별이 사라지고 누구나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사회를 원하고 있는 지금 우리는 21세기 자유롭고 행복한 시민사회로 가는 길목에 서 있다. 여성의 권리를 존중하지 않고서는 민주사회가 실현 될 수 없으며, 여성인력의 개발 없이 국가나 지역사회의 발전이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이 분명해 졌으며 서계는 지금 남녀 평등사회를 지향하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서 많은 시민, 사회, 여성단체들을 중심으로 남녀평등의 촉진, 모성의 보호, 성차별의식의 해소 및 여성의 능력 개발을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 그리하여 건강한 가정의 구현과 국가 및 지역사회 발전에 남녀가 공동으로 참여하고 책임을 분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각종 법률제정 및 제도개선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더욱 김삼의당의 생애와 작품은 남녀 평등사회를 지향하는 오늘날 반드시 재조명 되어야 할 필요성을 갖고 있다. 그러나 그동안 신사임당과 허난설헌 이상 가는 문학작품을 남겼음에도 여염집 여인이라는 이유로 김삼의당의 정신세계와 문학적가치가 방치되어 왔다는 것은 남원의 자존심 문제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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