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감상

鷄鳴狗吠|

강나루터 2019. 10. 11. 08:17



鷄鳴狗吠| ※알쏭달쏭방

masshiro | 조회 9 |추천 0 | 2007.05.25. 11:02


사마천을 읽으며
많은 식객(食客)을 거느린 것으로 유명한 이가 맹상군(孟嘗君)이다. 그는 제(齊)나라의 왕족인데, 그야말로 청탁을 불문하고 빈객을 초치하여, 식객이 3,000에 이른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였다. 그리고 이들은 자연스레 맹상군을 위한 정치세력으로 활동하기 시작한다. 
● 계명구폐 덕에 살아난 맹상군 
그러던 어느 날, 진(秦)나라 소왕이 맹상군을 초청해 재상으로 임명하려 했다. 그런데 생각이 바뀐 임금은 맹상군을 옥에 가두고 아예 그를 죽여 후환을 없애려 하였다. 
맹상군은 소왕의 애첩에게 자신이 석방되도록 힘써주기를 부탁했다. 그러자 애첩이 말했다. "나는 그대가 가지고 있다는 호백구(狐白裘, 여우의 겨드랑이 밑의 가죽을 모아 만든 옷)를 요구하였다. 
그런데 그 옷은 진나라에 들어올 때 이미 왕에게 인사치레로 바쳐버려 없었다." 맹상군은 해결책을 같이 온 식객들에게 물었지만 아무도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때 늘 무시당하면서 가장 말석에 있던, 구폐(狗吠, 개 짖는 소리)에 능한 사람이 자신이 궁중 창고에 들어가 옷을 훔쳐 올 수 있다 하며 문제를 해결하였다. 옷을 바치고 풀려난 맹상군은 서둘러 국경에 도착했다. 그런데 동이 트기 전에는 관문을 열지 않는 것이 관례. 뒤에는 추격군이 오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마침 식객 중에 계명(鷄鳴, 닭 울음소리)을 잘 하는 이가 있어 그가 닭 울음소리를 흉내 내니, 그 소리에 끌려 닭들이 일제히 울었다. 이에 맹상군은 진나라를 탈출할 수 있었다. 
처음에 계명(鷄鳴)과 구폐(狗吠)의 두 사람을 식객으로 맞이했을 때, 다른 식객들은 못마땅해 하여 그들을 냉대하였다. 그러나 진나라의 위험에서 두 사람이 그를 구했으므로, 그 후로 모든 식객들이 맹상군의 안목에 감탄하고 복종하였다. <사기(史記)>에 나오는 이야기다. 
송(宋)나라의 왕안석(王安石))은 이 재미있는 이야기의 뒤에 감추어진 사실을 직시하였다. 즉 맹상군의 식객 수천 명 가운데 진정으로 훌륭한 인물이 없었던 실상을 지적하며, 맹상군을 계명구폐의 우두머리라 비판하였다. 
참으로 인물을 알아보고 받았다면 이런 화를 당할 리도 없고, 제나라의 임금이 되는 것도 문제가 아니었다고 판단하였다. 이 글이 유명한 <독맹상군전>이다. 
처음으로 이 글을 읽을 때는 그 날카로운 시각에 감복하였고, 요즘 말로 하면 논술고사 모범답안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다시 이 글을 보니 생각이 달라진 바가 있다. 
왕안석의 말에 일리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딱히 사마천의 본래의도에 부합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이야기는 무시당하는 사람들에 대한 시선이고, 속말로 '잘난 놈'들에 대한 조롱이 담겨있다. 
● <사기>에 담긴 사마천의 마음 
계명구폐, 그들은 높은 분들한테 무시당할 뿐만 아니라, 같은 부류한테도 무시당했다. 그러나 절체절명의 순간 일명경인(一鳴警人)의 능력을 발휘한 것은 바로 그들이었다. 
사형과 궁형(宮刑)의 선택을 강요 받았고. 결국 누구도 돈을 빌려주길 꺼려해 거세(去勢)를 선택했던 사마천. 그는 아마 이 이야기에서 형언할 수 없는 심사를 말했으리라.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을 세상에 시달려서라도 좋고, 철이 들어서라고 말해도 할 말은 없지만.  
박 성진 서울여대 중문과 교수
**호백구 : 여우 겨드랑이의 흰 털가죽을 여러 장 모아 이어서 만든 갖옷(毛衣). 귀족·고관 대작(高官大爵)만이 입을 수 있었던 데서 귀족의 상징물이 되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