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양언기 선사 시
편양 언기 선사(鞭羊彦機, 1581~1644)
선사는 안성에서 태어나 11세에 출가하여 서산대사의 법을 이었다.
선사가 평양성에서 지낼 때, 모란봉 기슭에 움막을 치고 살면서 임진왜란으로
집과 부모를 잃은 삼백 여명의 거지 떼를 보살피는 거지 왕초가 되었으며,
때로는 걸식하고 때로는 숯장수와 물장수를 하였기 때문에 평양 인근 사람들은
그를 모르는 이가 없었다.
그러면서도 ‘이뭣고’ 화두를 놓치지 않고 되뇌고 다녔는데 사람들이 이를
‘이먹고’로 알아들어서 ‘이먹고 노장’이라고 불렸다. (출처: ‘양치는 성자’-백운스님)
평양성 백성들이 이 거지중을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아무리 박대를 해도 떠나지
않으니 평안감사에게 밖으로 쫓아내 줄 것을 청하였다.
평안감사가 쫓아낼 구실을 찾으려고 스님을 불렀다.
“그대가 글을 좀 아는가?”
“잘 알지는 못하고 조금은 압니다.”
“내가 운자(韻字)를 띄우면 시를 지어보게. 짓는다면 이 성안에 머물러 있어도 되지만,
시를 못 지으면 성 밖으로 쫓아낼 것이다.”
“그러면 말씀을 하십시오.”
평안감사가 아주 어려운 글자로 가재 오(鰲) 자를 운자로 띄웠다. 편양
선사가 즉시 시를 짓기를
마엽유감기릉조(麻葉猶甘豈凌糟)
부귀공명여퇴오(富貴功名如退鰲)
삼 잎도 오히려 달거늘, 어찌 지게미를 마다하리
부귀공명은 가재처럼 뒷걸음질 하노라
평안감사가 마지막 결구에 다시 다리미 오(鏊)자를 운자로 내놓았다.
현순백결과백세(懸鶉百結過百世)
청천세탁불용오(淸川洗濯不用鏊)
해어져 누덕누덕 기운 옷으로 백 년을 지내니
청천강에 빨아서 입을 뿐, 다리미는 쓰지 않노라
어려운 운자로 멋진 시를 짓자, 평안감사가 감탄하며,
“그대는 혹시 호가 어떻게 되시오?”
“저는 본래 이름이라 할 것이 없지만 세상 사람에게 소개할 때는
‘편양’이라거나 ‘언기’라고 하지요.”
“아하! 서산대사 아래 전법 제자로 ‘편양 언기’라는 분이 있다고
들었는데 바로 스님이시군요.”
그런 후 평안감사가 백성들에게 당부하길
“평양성에 재앙과 난이 없이 평화롭게 잘 지내는 것이 바로 이 큰스님의
도덕으로 인해 덕을 보는 것이니, 이분을 잘 모셔야 합니다.”
이에 사람들이 옷과 음식 등을 갖추어 선사를 찾아갔으나 떠나고 흔적이 없었다.
(조주록강설 196회中)
<편양 언기 頌>
운주천무동(雲走天無動) 구름 가나 하늘은 움직임 없고
주행안불이(舟行岸不移) 배 가도 언덕은 옮겨가지 않네
본시무일물(本是無一物) 본래 한 물건도 없거니, 기쁨과
하처기환비(何處起歡悲) 슬픔은 어느 곳에서 이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