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 이황, <학고재명(學古齋銘)>,16세기,종이에 먹,
이 글은 송나라 주희유의 서재 이름인 '학고재'에 대해 주희가 지은 명(銘)을 퇴계 이황이
옮겨 쓴 것이다. 옛 것을 배운다는 의미를 풀이한 글로서, 본래 《퇴계진적첩》에 들어 있었다. 청명 임창순(1914~99)이 이 글을 고증한 것이 별지로 붙어 있다.
포성 주씨 사공이 그의 선친 희유공이 지은 학고재를 중수하였다.
희(熹)가 현액을 쓰고 또한 그의 뜻에 기대어 이 명(銘)을 짓는다.
옛 선비들은 자신을 위한 학문을 했는데,오늘날은 그렇지 아니하여
남을 위한 학문을 할 뿐이다.
자신을 위한 학문이란 먼저 그 몸가짐을 참되게 하는 것이다.
군신의 의로움,부자간의 어짊, 사리를 분별하여 실천하는 일,
게으르지 않고 경솔하지 않은 행동은 내 몸에 지극히 충족된 뒤에
그 혜택이 만물에까지 미치는 것이다.
남을 위한 학문이란 화려하기가 봄꽃과 같은 것이다,
글 외우고 숫자 셈하는 것에 힘쓰고, 글줄이나 엮는 것을 자랑한다.
출세하길 바라고 재물을 사모하여, 겉치장만 요란하게 꾸민다.
군자는 세속의 영화를 비루하게 여긴다.
이 두가지는 그 단초가 미세한 데서 시작된다.
면밀히 살피지 아니하면 그 끝이 잘못되고 만다.
훌륭하다! 주씨여. 선대의 뜻을 잘 이었구나!
날마다 이 집을 새롭게 하여 자라는 후예에게 이어주는구나 .
이집엔 무엇이 있는가? 그림이 있고 책이 있다.
그 후예들은 무엇을 하는가? 의관을 바로 하고 행실을 다듬는다.
밤에는 생각하고 낮에는 행동하며, 묻고 배워서 전범을 따른다.
오늘을 버리고 옛 것을 배울 따름이다.
어려운 일을 먼저 하고 얻는 것은 뒤로 하며,
서두르지도 아니하고 게으르지도 아니한다.
내가 이 명을 지어 그 시작을 깨우친다 .
(이태호)
참고문헌-"선비의 예술과 선비취미 유희삼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