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맹룡비는 북위해서의 표준양식 중의 하나입니다. 표준적이긴 하나 단조롭지 않고, 나름의 규칙을 가지고 있지만 속되지 않기 때문에 역대 명가들로 부터 명비로 인식되어 왔습니다. 비양에 비해 비음은 단정함과 정교함이 약간 못미치나 호탕하고 자연스러움이 있습니다. 장맹룡비 비양의 탁본을 함 보시죠.
장맹룡비 비양의 탁본을 보신 느낌은 어떻습니까? 위쪽 부분은 왼쪽으로 금이 있고, 중앙 아래쪽은 박락이 심하죠. 우선 장맹룡비에 대해 간략히 살펴보죠. 이 비는 북위(北魏) 정광(正光) 3년(522)에 건립되었고 비석돌은 현재 태산이 있는 산동성 태안에서 조금 더 떨어진 곡부의 공묘비림에 있습니다. 제가 그 곳에 갔을 때 직접 눈으로 보았는데 박락이 심하엿지만 육안으로 문자를 식별할 수 잇었습니다. 지금 전하는 탁본은 명대의 탁본인데 북경의 고궁박물원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비면은 1행에 42자씩, 26행으로 되어 있고, 비음엔 이 비를 세울 때 관계있었던 사람들의 관직과 성명들이 주욱 나열되어 있습니다. 특징적인 것은 비액(빗돌에서 무슨 무슨 비라고 쓴 제목에 해당하는 글)인데 일반적으로 전서나 예서로 씌어진 다른 비와는 달리 이 비에서는 본문의 글씨와 같은 해서체로 씌어져 있습니다. 그것은 이 비를 쓴 사람이 글씨에 상당히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짐작하게 하는 대목입니다. 그리고 이 비는 지은사람과 쓴사람이 누군지 알 수 없습니다. 이러한 장맹룡비의 실제 모습은 어떻게 생겼을까요. 곡부에 있는 원석의 현재모습을 함 보시죠. 맨 앞의 빗돌이 장맹룡비입니다.
 |
저는 개인적으로 서예사를 공부할 때 직접 작품을 보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하며, 그것이 여의치 못하면, 지금처럼 사진이라도 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실물자료는 많이 가지고 있지만, 사이버상으로 보여줄 수 있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안타까움을 금할 길 없습니다. 각설하고, 이제부터 북위시대 글씨의 대표적인 스타로 자리매김되는 이 비의 아름다움은 어디에 있는지 살펴보죠. 북위시대의 글씨는 용문의 우궐조상기(459)로부터 정도소의 정문공비(511)를 거쳐 정광년간의 장맹룡비, 고정비(523)에 이르기까지 약 30여 년으로 보면 됩니다. 그런데 초기의 조상기는 결구나 용필에서 치졸한 양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지만 장맹룡비에 이르러서는 결구상 글자의 짜임새가 갖추어지고 용필에서도 변화가 많아집니다. 용필의 변화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세로획과 가로획이 한층 더 굳세어지고 전절부분(글씨에서 꺾여지는 부분)이 준열(峻烈)해 지며, 파법(波法)이 긴밀해지는가 하면, 삼수변에서 변화가 많아집니다. 이러한 아름다움이 고스란히 보이는 본문글씨들을 직접 보시죠.
본문글씨들을 직접 보시니 어떻습니까? 그럼 결구상 특징을 구체적으로 살펴볼까요. 장맹룡비 점획의 결구상 특징은 비액 12자의 글씨에서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급하신 분은 밑의 도판을 먼저 보시기 바랍니다. 이 12자는 본문글씨의 정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魏'자는 禾,女변의 가로획을 대담하고 길게 처리하여 오른쪽의 귀신귀(鬼)의 치침에 대응하게 하였습니다. 이 글자의 결구에서는 왼쪽과 오른쪽의 크기가 비슷하죠. 당나라 해서는 오른쪽이 크고 왼쪽이 작아지는데, 이 비에서는 예서와 같이 왼쪽변의 크기를 오른쪽과 비슷하게 처리하고 있습니다.
'魯'자를 보죠. 이 글자의 첫획은 왼쪽으로 길고 힘있게 삐쳐 내렸죠. 그 밑에 있는 일(日)자는 아주 작게 하여서 불안해 보이죠. '郡'자는 왼쪽의 군(君)자 보다 오른쪽의 우부방(邑)을 훨씬 높이 올려 놓았죠. 여기서 임금군변의 별획은 이른바 난초 그리듯이 처리하여 날렵하게 보이고, 우부방의 세로 현침획은 날카롭게 처리하여 보는이로 하여금 경탄을 자아내게 합니다.
'太'자에서는 왼쪽, 오른쪽으로 주욱 펴놓은 두 획의 세가 신장감을 느끼게 하고, '守'자에서는 갓머리를 작게하고 하부의 마디촌(寸) 을 크게 하였는데, 마디촌의 가로획을 보면 기필과 수필부분에 강력한 역감이 응축되어 있지 않습니까? '張' 자의 윗부분은 바짝 죄고 아래부분은 여유를 준 구성, '君' 자의 위쪽을 작게한 구성, '淸'자에서는 왼쪽 삼수변의 처리수법, 오른쪽 靑에서 가로획 3개는 거의 같은 길이로 크게하고 하부의 月은 작게 만든점, '之'자는 2,3획을 비슷한 길이로 길게하고 4획의 파임획을 짧게 처리한 점, '碑'자는 오른쪽의 방(卑)을 약간 낮게 처리한 점 등이 장맹룡비 결구의 묘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비액의 열 두 글자 전체를 두고 보면, 글자들이 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설명드린 비액 12자의 결구와 장법을 자세히 관찰해 보시죠..
어떻습니까? 이제 휠링이 옵니까? 왔다구요? 음 그렇다면 장맹룡비를 공부할 때 필요한 점 몇 가지를 말씀드리고 이 답변을 마무리 짓겟습니다. 이 비를 쓸 때는 기필의 각도를 당나라 해서보다 훨씬 예리하고 날카로운 방필로 해야 합니다. 왼쪽으로 삐쳐내는 별획은 끝부분을 무게감있게 처리해야하고, 파책은 측필로 멈추거나 길게 처리해야 합니다. 갈고리의 각도는 거칠고 크게 하여 강력한 역감을 느끼게 해야하고, 전절부분은 예각의 날카로움을 강조해야 합니다. 점은 안진경의 글씨처럼 둥그스럼하게 하는 것이 아니고 날카로우며 삼각형에 가까운 형태가 되도록 해야 합니다.
총결하면, 장맹룡비는 위에서 설명드린 것처럼 한 글자의 상부를 작게 하거나 하부를 작게하기도 하고, 점획 사이의 공간을 일정하게 처리하지 않고 극단적으로 넓히거나 좁혀서 비균제, 비균형의 묘미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즉 이 비의 결구는 당나라의 구성궁예천명처럼 규칙적인 룰을 따르지 않음으로써 불균형 속에서 균형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현대인의 미감에 크게 어필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정도로 장맹룡비에 대한 설명이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아 배가 고프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