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전 이야기

내 안에 경전 있다

강나루터 2019. 12. 2. 06:17


나우의 휴휴암좌선문 1 / 내 안에 온전한 경전이 있다
[1802호] 2016년 06월 03일 (금) 라도현 교도 wonnews0601@hanmail.net
  
▲ 라도현 교도/과천교당
 
我有一卷經 不因紙墨成 展開無一字 常放大光明
"나에게 한 권의 경전이 있으니 종이와 먹으로 된 것이 아니다 펼쳐보면 한 글자도 없으나 항상 큰 광명을 나툰다."

원불교100주년기념대회를 마친 뒤 벌써 한 달이 훌쩍 지나갔다. 원불교 100년의 역사를 지내고 우리는 이제 교단 2세기에 들어섰다. 소태산 대종사의 가르침에 비춰 지금까지 우리의 수행을 깊이 점검해보고, 앞으로 더 한층 마음을 챙겨서 새롭게 출발을 할 시기다.

앞으로 이 칼럼을 통해서 독자들과 만날 내용은, 우리 교전에 수록된 〈불조요경〉 가운데 하나인 휴휴암좌선문이다. 그런데 이 내용은 모든 불법수행인이 나아가고 또 이르러야 할 수행의 세계이기 때문에, 먼저 수행에 관해서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한다.

과연 수행이란 무엇인가? 불교에서 말하는 수행이라는 것은 불법을 닦고 행한다는 의미다. 그리고 여기서 불법이란 진리를 가리키는 것이며, 또한 진리는 근원적인 진리, 즉 우리에게는 법신불 일원상의 진리를 뜻하는 것이므로, 결국 수행이란 일원상의 진리를 깨치고, 닦고, 그대로 행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법신불 일원상이란 곧 우리에게 있어서는 각자의 본래 성품이기 때문에, 불법수행을 더 쉽게 말하자면. 우리의 성품을 온전히 유지하고, 바르게 사용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글 첫머리에 제시한 법문은 우리나라 조선시대에 서산대사로 잘 알려진 청허스님의 법문이다. 이 법문이 우리 교전에서는 정전 수행편 '의두요목' 제20조에 나온다. 마음 공부인이라면 이미 알고 있지만, 바로 우리 각자의 성품을 표현하고 있다.

하지만 이 게송의 내용이 '나의 성품'을 가리킨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해서 그냥 넘어갈 수는 없다. 바로 이 성품을 내가 확연히 깨쳐 얻어야만 이 의두가 풀리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고는 그저 지적인 이해만으로 위 의두를 해석하게 된다.

앞으로 이 칼럼을 통해서 강설해 나갈 '휴휴암좌선문'도, 사실상 위 게송의 내용과 큰 차이가 없다. 그래서 독자들이 이미 알고 있는 법문을 먼저 인용했다. 경의 가치는 수행하는 이에게 있다.

어떤 법사가 물었다. "반야경을 지니고 읽으면 가장 공덕이 많다는 말을 스님께선 믿으십니까" 대주 혜해 선사가 답했다. "믿지 않네." "그럼 영험전(靈驗傳) 10여 권도 모두 믿지 않으시겠군요." 선사가 말했다. "산 사람이 효성을 다하면 저절로 감응이 있는 것이지, 백골이 감응을 주는 것은 아니다. 경은 문자이니, 종이와 먹의 성품이 공하거늘 어디에 영험이 있겠는가? 영험이라는 것은 경을 지니는 사람의 마음 쓰기에 달려있다. 그래서 신통과 감응이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시험 삼아 경 한 권을 책상 위에 올려놓아 보라. 아무도 받아 지니지 않는데 스스로 영험이 있을 수 있겠는가?"

강설에 앞서서 먼저 전하고자 하는 바는, 불자가 수행을 하는 것이나, 필자가 불조요경을 강설하는 것이나, 그 목적은 우리 마음 안에 있는 법신불 일원상, 즉 성품을 깨치고 활용하자는 것이지, 단지 불법을 말과 글로 배우고 이해하여 지식을 쌓자는 것이 아니다.

때문에 앞으로 게재될 휴휴암좌선문의 모든 설명이 그 자체로써 어떤 큰 의미가 있는 게 아니라, 각자의 마음속에서 성품을 깨쳐 얻을 때에만 진짜 가치가 있음을 전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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