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자 도덕경 - 제 1 장 }
*** 第 1 章(제 1 장) ***
道可道 非常道 도가도 비상도
名可名 非常名 명가명 비상명
無名 天地之始 무명 천지지시
有名 萬物之母 유명 만물지모
故 常無欲 以觀其妙 고 상무욕 이관기묘
常有欲 以觀其徼 상유욕 이관기요
此兩者 차양자
同出而異名 동출이이명
同謂之玄 동위지현
玄之又玄 현지우현
衆妙之門 중묘지문
*** 풀 이 ***
(1)
"도"(道)라 할 수 있는 도(道)는, 항상된 도(道)가 아니고,
이름 부를 수 있는 이름은, 항상된 이름이 아니다...
"무"(無) 는, 천지(天地)의 시작을 이름이고,
"유"(有) 는, 만물의 어미를 말한다...
그러므로, 항상 무욕(無欲)으로, 그 신묘함을 바라보고,
항상 유욕(有欲)으로, 그 돌아감을 본다...
이 둘은, 같이 나왔으되, 이름이 다르다...
같이 "현"(玄) 이라고 부르니,
현묘하고, 또 현묘하여,
뭇 신묘함의 문(門)이 된다...
(2)
"도"(道)를, "도"(道)라고 말하면, 그것은, "늘 그러한 "도"(道)가 아니다...
이름을, 이름 지우면, 그것은, 늘 그러한 이름이 아니다...
이름이 없는 것을, 천지(天地)의 처음이라 하고,
이름이 있는 것을, 만물(萬物)의 어미라 한다...
그러므로, 늘 욕심이 없으면, 그 묘함을 보고,
늘 욕심이 있으면, 그 가장자리만 본다...
그런데, 이 둘은, 같은 것이다...
사람의 "앎" 으로 나와, 이름만 달리 했을 뿐이다...
그 같은 것을 일컬어, 가물타고 한다...
가물고, 또 가물토다!
모든 묘함이, 이 문에서 나오지 않는가!
(3)
"도"(道)(는 그 이름을)를, "도"(道)라고 해도 좋겠지만, (그 이름이) 꼭 "도"(道)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
(어떤)이름으로, (어떤 것의)이름을, 삼을 수는 있지만,
꼭(항상) 그 이름이라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이름을 붙이기 전에는, 천지(天地)의 시작이니 따질 수 없고,
(우리가) 이름을 붙이면, 만물(萬物)의 모태로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니,
이름을 붙이기 전(도의 이전)에는, (천지지시의) 묘함을 보아야 하지만,(묘함은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름을 붙인 후(도의이후)에야, 그것의 "요"(徼)(실상계의 모습)를 파악할 수 있느니라...
이 두 가지는 똑같은 것인데,
다르게 보이는 것은, 그 이름뿐이니,
(도 이전의 세계와 도 이후의 세계가) 검기는 마찬가지여서,
이것도 검고, 저것도 검은 것이니,(도와 도 이전의 무엇은, 같은 것이니라.)
"도"(道)는, 모든 묘함이, 나오는 문이니라...(지금부터 그것을 말하려 하느니라.)
(4)
"도"(道)를 가리켜, "이것" 이라 말하는 것은, 영원하며 진정한 도가 아니요,
사물의 존재나, 가치에 대하여, "이것이다" 라고, 이름을 짓는 것은,
진정한 그 존재의 이름이 아니다...
"무"(無) 라는 것은, 천지(天地)의 시작이며,
"유"(有) 라는 것은, 만물(萬物)의 어머니이다...
그러므로, 항상, "무"(無)로써, 그 "묘"(妙)를 보도록 노력하여 한다...
"묘"(妙) 라는 것은, 심원하고, 형이상학적인, 근원적인 이치이다...
"유"(有) 로써는, 그 "요"(徼)를 보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요"(徼) 라는 것은, "도"(道)가, 형이하학적으로 나타내고 있는,
현상 그대로의 모습이다...
이 둘은, 같은 곳에서 나와, 이름을 달리 할 뿐이니,
같이 이름하여, "현"(玄)이라 부르고,
현묘함중에, 또한 현묘하니,
우주의 모든 오묘함과 조화가, 여기에서 나온다...
(5)
"도"(道)란, 어떤 "사물의 이름" 이 아니라, "법칙"(法則)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노자의 도"(道)는, 윤리적인 강상(綱常)의 도(道)가 아님은, 물론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것은, 최대한의 법칙성, 즉, "우주" 와 "자연" 의 "근본적인 운동법칙" 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일반적 의미의 "도"(道)라는 것은, 노자가 의미하는, 참된 의미의 법칙, 즉, "불변의 법칙" 을 의미하는 것이 못됨은, 물론입니다...
노자의 도(道)는, "인간의 개념적 사고의 대상" 으로, 존재할 수 없는 것이지요...
우리의 "사유" 를, 뛰어넘는 것이지요...
"명"(名)의 경우도, "도"(道)의 경우와 마찬가지 입니다...
우리의 언어로, 붙인 이름이, 참된 이름일 수 없다는 것이지요...
"이름" 이란, 원래, "약속"(約束) 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 "이름" 이, 그 "실체" 를, 옳게, 드러내지는 못합니다...
"개미" 에게 물어보면, "개미" 라는 이름은, 자기 이름이 아니지요...
더구나, "개미" 라는 이름은, "개미" 라고 지칭되는, 그 곤충(?)의 참된 모습을, 드러내지 못합니다...
"비상명"(非常名)일 수 밖에 없습니다...
사람들이 붙인, 표식(標識)일 따름이지요...
사람들끼리의 약속, 즉, "기호"(記號)인 셈이지요...
한마디로, "언어(言語)의 한계" 를, 선언하고 있습니다...
"다석 유영모" 의 풀이도, 이와 같습니다...
"도"(道) 를, "도"(道) 라고, 이름 붙인 것은, "박은 참"(사진 = 寫眞)이라는 것이지요...
"참 도"(진도 = 眞道)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제1장 에서, 읽어야 하는 것은, 이와 같습니다...
"도"(道)의 세계는, "언어를 초월" 하는, 세계임은 물론이며, "인간의 사유를 초월" 하는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노자 제1장은, "무"(無)와 "유"(有)가, "하나의 통일체" 를 이루고 있다는, "관계론(關係論)의 선언" 입니다...
"무"(無)와 "유"(有) 는, 그것에 접근하는, "접근로"(接近路)에 따라서, 구분될 수 있는, "개념상의 차이" 일 뿐입니다... 따라서, "노자의 무"(無) 는, "영"(0, 제로) 이 아닙니다...
이 점을, 유의해야 합니다...
"인식의 대상" 이 아니라, "인식의 대상을 초월" 하고 있다는, 의미에서의 "무"(無) 입니다...
"인간의 인식" 에 있어서, "무"(無) 라는 것이지요...
"도"(道) 는, 천지만물의 "존재형식" 인, 일체의 "생성"(生成)과 "변화"(變化), 그 자체를 의미하며, 그런 의미에서, "근원적 법칙성" 입니다...
"인간의 인식" 이, 그것을, 담아 낼 수는 없지요...
도리어, 인간의 인식이, 그것의 일부분을, 구성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러한 "도"(道)가, 작용(作用)하여, 만물이 생성(生成)되고, 변화하고, 발전합니다...
그것이, "유"(有) 입니다...
"형이상학적"(形而上學的) "본체"(本體)는, "무"(無) 이지만,
"형이하학적"(形而下學的) "작용"(作用)은, "유"(有) 라는 것이지요...
"도무수유"(道無水有) 가, 바로, 그것의 좋은 예 입니다...
"도"(道) 는 없고, 물은, 있다는 것인데,
그것은,
"무형"(無形) 인, "도체"(道體 = 도의 본체) 가,
"유형"(有形) 인, "도용"(道用 = 도의 쓰임) 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노자 철학" 을, "물의 철학" 이라고 하는 까닭은, 보이는 것 중에서, "도"(道) 에, 가장 가까운 것이, "물" 이기 때문에, 물의 비유(比喩)로써, "도"(道)를 설명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지요...
결론적으로, "무"(無)의 세계든, "유"(有)의 세계든, 그것은, 같은 것이며, "현묘"(玄妙)한 세계입니다...
"유"(有) 의 세계가, "가시적"(可視的) 이기 때문에, 현묘(玄妙)하지 않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것은, "무"(無)의 작용이며, "현상 형태" 이며, "통일체" 이기 때문에,
"현묘"(玄妙)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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