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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 도덕경 여러가지 번역

강나루터 2020. 4. 7. 0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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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 도덕경 { 노자 도덕경 - 제 1 장 }
aceer 추천 1 조회 426 06.03.29 16:5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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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자 도덕경 - 제 1 장 }

 

 

 

 

 

 

*** 第 1 章(제 1 장) *** 

 

 

道可道 非常道

도가도 비상도

 

名可名 非常名

명가명 비상명

 

無名 天地之始

무명 천지지시

 

有名 萬物之母

유명 만물지모

 

 

故 常無欲 以觀其妙

고 상무욕 이관기묘

 

常有欲 以觀其徼

상유욕 이관기요

 

 

 

此兩者

차양자

 

同出而異名

동출이이명

 

同謂之玄

동위지현

 

玄之又玄

현지우현

 

衆妙之門

중묘지문

 

 

 

 

 

 

 

*** 풀 이 ***

 

 

 

 

(1)

 

"도"(道)라 할 수 있는 도(道)는, 항상된 도(道)가 아니고,

 

이름 부를 수 있는 이름은, 항상된 이름이 아니다...

 

"무"(無) 는, 천지(天地)의 시작을 이름이고,

 

"유"(有) 는, 만물의 어미를 말한다...

 

그러므로, 항상 무욕(無欲)으로, 그 신묘함을 바라보고,

 

항상 유욕(有欲)으로, 그 돌아감을 본다...

 

이 둘은, 같이 나왔으되, 이름이 다르다...

 

같이 "현"(玄) 이라고 부르니,

 

현묘하고, 또 현묘하여,

 

뭇 신묘함의 문(門)이 된다...

 

 

 

(2)

 

"도"(道)를, "도"(道)라고 말하면, 그것은, "늘 그러한 "도"(道)가 아니다...

 

이름을, 이름 지우면, 그것은, 늘 그러한 이름이 아니다...

 

이름이 없는 것을, 천지(天地)의 처음이라 하고,

 

이름이 있는 것을, 만물(萬物)의 어미라 한다...

 

그러므로, 늘 욕심이 없으면, 그 묘함을 보고,

 

늘 욕심이 있으면, 그 가장자리만 본다...

 

그런데, 이 둘은, 같은 것이다...

 

사람의 "앎" 으로 나와, 이름만 달리 했을 뿐이다...

 

그 같은 것을 일컬어, 가물타고 한다...

 

가물고, 또 가물토다!

 

모든 묘함이, 이 문에서 나오지 않는가!

 

 

 

(3)

 

"도"(道)(는 그 이름을)를, "도"(道)라고 해도 좋겠지만, (그 이름이) 꼭 "도"(道)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

 

(어떤)이름으로, (어떤 것의)이름을, 삼을 수는 있지만,

 

꼭(항상) 그 이름이라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이름을 붙이기 전에는, 천지(天地)의 시작이니 따질 수 없고,

 

(우리가) 이름을 붙이면, 만물(萬物)의 모태로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니,

 

이름을 붙이기 전(도의 이전)에는, (천지지시의) 묘함을 보아야 하지만,(묘함은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름을 붙인 후(도의이후)에야, 그것의 "요"(徼)(실상계의 모습)를 파악할 수 있느니라...

 

이 두 가지는 똑같은 것인데,

 

다르게 보이는 것은, 그 이름뿐이니,

 

(도 이전의 세계와 도 이후의 세계가) 검기는 마찬가지여서,

 

이것도 검고, 저것도 검은 것이니,(도와 도 이전의 무엇은, 같은 것이니라.)

 

"도"(道)는, 모든 묘함이, 나오는 문이니라...(지금부터 그것을 말하려 하느니라.)

 

 

 

 

 

 

 

(4)

 

"도"(道)를 가리켜, "이것" 이라 말하는 것은, 영원하며 진정한 도가 아니요,

                                       

 

사물의 존재나, 가치에 대하여, "이것이다" 라고, 이름을 짓는 것은,

                                       

 

진정한 그 존재의 이름이 아니다...

 

                                       

"무"(無) 라는 것은, 천지(天地)의 시작이며,

 

 

"유"(有) 라는 것은, 만물(萬物)의 어머니이다...

                                       

 

그러므로, 항상, "무"(無)로써, 그 "묘"(妙)를 보도록 노력하여 한다...

 

 

"묘"(妙) 라는 것은, 심원하고, 형이상학적인, 근원적인 이치이다...

 

                                       

"유"(有) 로써는, 그 "요"(徼)를 보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요"(徼) 라는 것은, "도"(道)가, 형이하학적으로 나타내고 있는,

 

현상 그대로의 모습이다...

                                       

 

이 둘은, 같은 곳에서 나와, 이름을 달리 할 뿐이니,

 

                                       

같이 이름하여, "현"(玄)이라 부르고,

                                       

 

현묘함중에, 또한 현묘하니,

                                       

 

우주의 모든 오묘함과 조화가, 여기에서 나온다...

 

 

 

 

 

 

 

 

(5)

 

"도"(道)란, 어떤 "사물의 이름" 이 아니라, "법칙"(法則)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노자의 도"(道)는, 윤리적인 강상(綱常)의 도(道)가 아님은, 물론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것은, 최대한의 법칙성, 즉, "우주" 와 "자연" 의 "근본적인 운동법칙" 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일반적 의미의 "도"(道)라는 것은, 노자가 의미하는, 참된 의미의 법칙, 즉, "불변의 법칙" 을 의미하는 것이 못됨은, 물론입니다...

 

 

 

노자의 도(道)는, "인간의 개념적 사고의 대상" 으로, 존재할 수 없는 것이지요...

 

우리의 "사유" 를, 뛰어넘는 것이지요...

 

 

"명"(名)의 경우도, "도"(道)의 경우와 마찬가지 입니다...

 

우리의 언어로, 붙인 이름이, 참된 이름일 수 없다는 것이지요...

 

"이름" 이란, 원래, "약속"(約束) 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 "이름" 이, 그 "실체" 를, 옳게, 드러내지는 못합니다...

 

"개미" 에게 물어보면, "개미" 라는 이름은, 자기 이름이 아니지요...

 

더구나, "개미" 라는 이름은, "개미" 라고 지칭되는, 그 곤충(?)의 참된 모습을, 드러내지 못합니다...

 

"비상명"(非常名)일 수 밖에 없습니다...

 

 

사람들이 붙인, 표식(標識)일 따름이지요...

 

사람들끼리의 약속, 즉, "기호"(記號)인 셈이지요...

 

 

 

한마디로, "언어(言語)의 한계" 를, 선언하고 있습니다...

 

"다석 유영모" 의 풀이도, 이와 같습니다...

 

 

 

"도"(道) 를, "도"(道) 라고, 이름 붙인 것은, "박은 참"(사진 = 寫眞)이라는 것이지요...

 

"참 도"(진도 = 眞道)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제1장 에서, 읽어야 하는 것은, 이와 같습니다...

 

"도"(道)의 세계는, "언어를 초월" 하는, 세계임은 물론이며, "인간의 사유를 초월" 하는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따라서, 제1장 에서, 노자는, "개념적 사유"(思惟), 즉, 이름을 붙이는 것은, "부분" 에 대한, 인식이며, 가시적(可視的)으로, 드러나는 현상에 대한, 인식일 뿐임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무"(無)와 "유"(有)는, "동체"(同體)이며, "통일체"(統一體) 라는 것을, 선언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노자 제1장은, "무"(無)와 "유"(有)가, "하나의 통일체" 를 이루고 있다는, "관계론(關係論)의 선언" 입니다...

 

 

"무"(無)와 "유"(有) 는, 그것에 접근하는, "접근로"(接近路)에 따라서, 구분될 수 있는, "개념상의 차이" 일 뿐입니다...

따라서, "노자의 무"(無) 는, "영"(0, 제로) 이 아닙니다...

 

이 점을, 유의해야 합니다...

 

 

 

 

 

"인식의 대상" 이 아니라, "인식의 대상을 초월" 하고 있다는, 의미에서의 "무"(無) 입니다...

 

 

"인간의 인식" 에 있어서, "무"(無) 라는 것이지요...

 

 

 

"도"(道) 는, 천지만물의 "존재형식" 인, 일체의 "생성"(生成)과 "변화"(變化), 그 자체를 의미하며, 그런 의미에서, "근원적 법칙성" 입니다...

 

 

 

"인간의 인식" 이, 그것을, 담아 낼 수는 없지요...

 

도리어, 인간의 인식이, 그것의 일부분을, 구성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러한 "도"(道)가, 작용(作用)하여, 만물이 생성(生成)되고, 변화하고, 발전합니다...

 

그것이, "유"(有) 입니다...

 

 

 

"형이상학적"(形而上學的) "본체"(本體)는, "무"(無) 이지만,

 

"형이하학적"(形而下學的) "작용"(作用)은, "유"(有) 라는 것이지요...

 

 

 

"도무수유"(道無水有) 가, 바로, 그것의 좋은 예 입니다...

 

"도"(道) 는 없고, 물은, 있다는 것인데,

 

그것은,

 

"무형"(無形) 인, "도체"(道體 = 도의 본체) 가,

 

"유형"(有形) 인, "도용"(道用 = 도의 쓰임) 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노자 철학" 을, "물의 철학" 이라고 하는 까닭은, 보이는 것 중에서, "도"(道) 에, 가장 가까운 것이, "물" 이기 때문에, 물의 비유(比喩)로써, "도"(道)를 설명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지요...

 

 

결론적으로, "무"(無)의 세계든, "유"(有)의 세계든, 그것은, 같은 것이며, "현묘"(玄妙)한 세계입니다...

 

 

 

 

 

"유"(有) 의 세계가, "가시적"(可視的) 이기 때문에, 현묘(玄妙)하지 않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것은, "무"(無)의 작용이며, "현상 형태" 이며, "통일체" 이기 때문에,

 

"현묘"(玄妙)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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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 도덕경 {노자 도덕경 - 제 2 장}
aceer 추천 1 조회 133 06.03.29 16:5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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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 도덕경 - 제 2 장}

 

 

 

 

 

 

*** 第 2 章(제 2 장) ***

 

天下皆知美之爲美

천하개지미지위미

 

斯惡已

사오이

 

皆知善之爲善

개지선지위선

 

斯不善已
사불선이

 

 

故 有無相生

고 유무상생

 

難易相成

난이상성

 

長短相較

장단상교

 

高下相傾

고하상경

 

音聲相和

음성상화

 

前後相隨
전후상수

 

 

是以聖人

시이성인

 

處無爲之事

처무위지사

 

行不言之敎

행불언지교

 

萬物作焉而不辭
만물작언이불사

 

 

生而不有

생이불유

 

爲而不恃

위이불시

 

功成而弗居

공성이불거

 

夫唯弗居

부유불거

 

是以不去
시이불거

 

 

 

 

 

 

 

*** 풀 이 ***

 

 

 

 

(1)

 

 

하늘아래 사람들이 모두, 아름다운 것이, 아름답다고만 알고 있다...

 

그런데, 그것은, 추한 것일 수도 있다...

  

하늘아래 사람들이 모두, "선"(善)한 것이, "선"(善)하다고만 알고 있다...

  

그런데, 그것은, "선"(善)하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그러므로, "있음" 과 "없음" 은, 서로 생하고,

  

"어려움" 과 "쉬움" 은, 서로 이루며,

  

"김" 과 "짧음" 은, 서고 겨루며,

  

"높음" 과 "낮음" 은, 서로 기울며,

  

"노래" 와 "소리" 는, 서로 어울리며,

  

"앞" 과 "뒤" 는, 서로 따른다...

  

그러하므로, "성인"(聖人)은, "함이 없음의 일" 에 처하고,

  

"말이 없음의 가르침" 을 행한다...

  

"만물"(萬物)은, 스스로 자라나는데,

  

"성인"(聖人)은, 내가 그를 자라게 한다고, 간섭함이 없고,

  

잘 생성시키면서도, 그 생성의 열매를 소유함이 없고,

  

잘 되어가도록 하면서도, 그것에 기대지 않는다...

  

"공"(功)이 이루어져도, 그 "공"(功) 속에, 살지 않는다...

  

대저 오로지, 그 속에 살지 아니하니, 영원히 살리로다!

 

 

 

 

 

(2)

 

 

세상(사람들)이, 아름다움을, 아름다워할 줄은, 다 알지만,   
  

이(아름다움)는, 더러움 뿐일 수도 있다...                                         
  

착함을, 착하다 할 줄은, 다 알지만,                                     
  

이(착함)는, 착하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므로, "있음", "없음" 이, 번갈며,                                          
  

"어렵고", "쉬움" 이, 되 돌고,                                                     
  

"길고", "짧음" 이, 서로 견주며,                                                
  

"높은 곳" 과 "아래" 가, 서로 기운다...                                               
  

"울림" 과 "소리" 가, 마주 어울리고,                                         
  

"앞" 과 "뒤" 가, 서로 따른다...                                                  
  

이리하여서, "거룩한 사람" 은,                                             
  

함이 없이 살아,                                                             
  

말하지 않고, 가르쳐 간다...                                             
  

온갖 것이 일어나도, 말리지 않고,                                    
  

낳았으나 가지지 않고,                                                   
  

하고서도, 기대지(의지하지) 않고,                                   
  

일 이룬 데에서, 자리하지 않으니,                                           
  

그저, 자리하지 않기로,                                                
  

이로써, (공이) 사라지지 않는다...                                  

 

 

 

 

 

(3)

 

천하가, 다 알고 있는 아름다움을, 아름다이 여기면,

 

이것이, "악"(惡) 이며,

 

천하가, 다 알고 있는 "선"(善) 을, "선"(善) 하게 여김은,

 

이것이, "착하지 않음" 이라...

 

고로, "유"(有), "무"(無) 가, "상생"(相生) 하고,

 

"난"(難), "이"(易) 가, "상성"(相成) 하며,

 

"장"(長), "단"(短) 이, "상교"(相較) 하고,

 

"고"(高), "하"(下) 가, "상경"(相傾) 하고,

 

"음"(音), "성"(聲) 이, "상화"(相和) 하고,

 

"전"(前), "후"(後) 가, "상수"(相隨) 하니,

 

이로써, "성인"(聖人)은, "무위지사"(無爲之事) 에 처하며,

 

"말없는 가르침" 을 행하고,

 

"만물"(萬物) 을 지음에, 사양하지 않으며,

 

"생"(生) 하여도, 거기에 있지 않고,

 

베풀고도, 보답을 바라지 않고,

 

"공"(功) 을 이루어도, 그 곳에 머물지 않으니,

 

대개 오직, 그 자리에 머물지 않음으로, 그를 버리지 못하니라...


 

 

 

 

 

(4)

 

 

요컨대, 제 2 장은, "상대주의"(相對主義)의 선언이며, 이 장의 기본 코드는, "무위"(無爲) 입니다...

"상대주의" 이기 때문에, 당연히, 그 "무위"(無爲)가, 핵심이 됩니다...

 

따라서, "위"(爲) 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 하는 것이, 관건입니다...

 

 

 

 

노자 도덕경, 제 2 장에 대해서도, 다른 번역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만, 그러한 다른 번역들과의 차이들에 관해서, 차차 설명하면서, 소개하기로 하겠습니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미"(美) 를, "아름답다" 고 알고 있지만, 그것은, 사실 "추한 것" 이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선"(善) 을, "선"(善) 하다고 알고 있지만, 그것은, "선"(善) 하지 않은 것이다."

 

 

 

이 구절의 번역은, "주" 에 달아 놓았듯이, "위"(爲) 를, "위"(僞) 로, 읽을 수도 있습니다...

 

"거짓으로 꾸며진 아름다움(僞美)은, 나쁜 것" 이라는, 뜻으로 새길 수도 있습니다...

 

또, "위선"(爲善) 을, "위선"(僞善) 으로, 새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장의 해석에 앞서, 다시 한 번, "노자의 기본적 사상" 을,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무위(無爲)의 사상" 과 "상대주의(相對主義)사상" 입니다...

 

 

"무위"(無爲)란, "거짓없음"(無僞) 을, 의미한다기 보다는, "작위(作爲)를 거부"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자연"(自然) 을, 거스르지 않는 것입니다...

 

"자연스러운 흐름" 에, 개입하거나, "자연적인 질서" 를, 깨뜨리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상대주의" 는, "가치판단의 상대성" 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개입" 과 "판단" 이, 차이를 만들어낸다는 것입니다...

 

 

 

 

 

"작위"(作爲) 가, 그러한 차이를, 만들어낸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제1장, 유(有)와 무(無)의 "통일적 인식" 에서, 이미, 표명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미"(美) 와 "선"(善) 의 개념도, 상대적인 것으로, 규정합니다...

 

"미"(美) 와 "선"(善)에 이어서, "유, 무"(有, 無), "난, 이"(難, 易), "장, 단"(長, 短), "고, 하"(高, 下) 등에 이르기 까지, 노자는, "대립적인 것", "고정 불변한 것" 을, 거부합니다...

 

 

세상만물은, "변화", "발전" 하고, "상호 침투" 하는 것입니다...

 

 

"존재론적 체계" 가 아니라, "관계론적인 체계" 입니다...

따라서, "위"(爲) 를, 여기서는 물론이며, "노자" 텍스트 에서는, 대부분, "인위"(人爲), "작위"(作爲) 의 의미로, 읽어야 합니다...

 

 

 

 

"인간의 개입"(介入) 이란, 의미로 읽어야 합니다...

 

 

 

그리고, "노자" 사상의 기조는, 대체로, "유가"(儒家)에 대한, "비판적 관점" 에, 서 있습니다...

 

"인의예지"(仁義禮智)란, "인위"(人爲)적인 것이며, 그 "인위적인 것" 이, 세상을 어지럽히는 것이지요...

 

 

 

"예악"(禮樂), "명분"(名分), "문물"(文物) 등에 대한, "반성" 과 "반문화적 관점" 이, "노자" 의 일관된 입장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제 2 장을 읽을 때에도, 먼저, 노자의 이러한 기본적 관점에서, 읽어야 함은 물론입니다...

 

 

 

 

 

"위"(爲) 를, "거짓", "허식"(虛飾)등의 의미로 읽는 것은, 노자의 철학을, 도리어, "유가"(儒家)의 윤리적 차원으로, 끌어 내리는 것이며, 좁은 틀 속에, 가두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자연"(自然) 이야말로, "최고"(最高), "최선"(最善), "최미"(最美)의 모델, 이라는 것이, "노자의 인식" 입니다...

 

천하 사람들이 알고 있는, "미"(美)와 "선"(善) 이라는 것은, 사실은, "인위(人爲)적인 것" 이라는 것이지요...

 

 

 

"자연스러움" 을 외면한, 인위(人爲)적인, 미(美) 나, 선(善) 은, 그것이, 진정한, 미(美) 나, 선(善) 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도리어, 그것은, "나쁜 것", "좋지 않은 것" 이라고, 선언하는 것입니다...

"인위적인" 미(美)와 "인위적인" 선(善) 에, 길들여진, 우리의 "기존 관념" 을, 반성하자는 것이, 이 장의 핵심입니다...

 

엄밀히 이야기하자면, 제 2 장 은, "유가(儒家)적 인식론" 과 "유가(儒家)적 실천론" 대한 반성입니다...

 

 

 

 

"인위적인 개념" 과 "가치" 로 길들여진 의식을 반성하고, 마찬가지로, 실천방식에 있어서도, 그러한, "인위적 작풍" 을, 제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거짓" 이란 글자는, 여러분도, 잘 알고 있듯이, "위"(僞) 입니다...

 

"위"(僞) 는, "인"(人) + "위"(爲) 입니다...

 

 

 

 

"거짓"(僞) 의 근본적인 의미는, "인위"(人爲) 입니다...

 

"인간의 개입" 입니다...

 

크게 보면, "인간의 개입", 그 자체가, "거짓" 입니다...

 

"자연"(自然) 을, 속이는 것이지요...

 

 

 

 

 

 

"개미" 라는, 이름을 붙이고, "곤충" 으로, 분류를 하는 것이지요...

 

그 "인식" 에 있어서, "자연" 을, 왜곡하여, "거짓 인식" 을, 갖게 하는 것입니다...

 

산을 깎고, 물을 막아, 도시를 건설하는 것이지요...

그 실천에 있어서, "자연의 운동법칙" 을, 그르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인위"(人爲) 와 "작위"(作爲) 가, 바로, "거짓"(僞) 인 것입니다...

 

 

 

 

그 다음 구절도, 마찬가지입니다...

유무상생(有無相生), 난이상성(難易相成), 장단상교(長短相較), 고하상경(高下相傾), 음성상화(音聲相和), 전후상수(前後相隨).....

 

이 구절에서는, "유, 무"(有, 無) "난, 이"(難, 易) 등의 구분 자체를, 부정하고 있습니다...

 

"있음과 없음", "어려움과 수월함", "김과 짧음", "노래와 소리", "앞과 뒤", 등의 "개념" 은, 인위적이고, 작위적인 구분이며, 불필요한, "차이(差異) 의 생산" 이라는 것이지요...

 

 

 

"차이의 생산" 이, 곧, "자연의 분열" 이며, "자연의 훼손" 이며, 그것이, 곧, "인위"(人爲)라는 것이지요...

 

 

이러한, "차별적 인식" 이, 특히, "어려움", "없음", "짧음", "낮음",(인간이 무시하는것) 등의 의미를, 부당하게, "폄하" 한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지요...

 

 

 

"있는 그대로의 상태", 즉, "자연의 가치" 를, "우위" 에, 두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인위적인 구분" 이, 초래할 수 있는, 혼란을 경계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읽어야, "시이성인"(是以聖人) 이하의 구절도,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성인"(聖人) 은, 마땅히, "무위"(無爲) 하고, "무언"(無言) 할 것을 요구합니다...

 

이 경우의 성인은, "지도적 위치" 에 있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정치인이라고 해도 좋습니다만, 노자는, "유가"(儒家) 를, 겨냥하고 있습니다...

 

 

"성인(聖人)은, 무위(無爲)의 방식으로 일하고, 무언(無言)으로 가르쳐야 한다...

 

만물(萬物) 은, (스스로) 자라나는 법이며, 간섭할 필요가 없다...

 

만약, 생육(生育)하더라도, "자기 것" 으로, 소유해서는 안 되며, 자기가 하였더라도, 뽐내지 않으며, "공"(功)을 세우더라도, 그 "공로"(功勞) 를, 차지하지 않아야 한다...

 

무릇, 공로를 차지하지 않음으로 해서, 그 공(功)이, 사라지지 않는다."

 

 

 

참고로, 이와 똑 같은 문장이, 제 10 장 에도, 나오고 있습니다...

 

생지축지(生之畜之), 생이부유(生而不有), 위이불시(爲而不恃), 장이부재(長而不宰), 시위현덕(是謂玄德) 이, 그것입니다...

 

 

여기서, "생지축지"(生之畜之) 는, 낳고, 기른다는 뜻이며, 그 다음의 "생이부유"(生而不有) 와 짝을 이루고 있으며, "위이불시"(爲而不恃) 는, 장이부재(長而不宰), 즉, "길러주지만 부리지 않는다" 와 짝을 이루고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러한 방식, 즉, 성인(聖人) 이, 마땅히, 본받아야 하는, 이러한 작풍이, 곧, "현덕"(玄德) 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현덕" 이라고 하면, 삼국지의 주인공, "유현덕" 을, 연상할 수 있지요?

 

"현덕"(玄德)의 이미지가, 그 주인공의 이미지와 유사합니다...

 

"조조"(曹操) 처럼, 철저히, 자기가 주도하는 방식과는, 다르지요...

 

제갈공명이나, 관우, 장비, 등등... 여러 장수들이, 저마다의 능력을, 잘 발휘할 수 있도록, 눈에 뜨이지 않게(玄), 일하는(德), 스타일이지요...

 

 

 

 

 

 

 

 결론적으로, "노자 제 2 장" 은, "인식론"(認識論) 이며, "실천론"(實踐論) 입니다...

그 "인식" 에 있어서, "분별지"(分別智) 를, "반성" 하고, "고정관념"(固定觀念) 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지요...

 

 

 

"선, 악"(善, 惡)의 구분처럼, 천박한 인식은, 없다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O, X" 식의 "이분법적"(二分法的) 사고도, 저급한 것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이러한, 기존의 저급한 인식을, "반성" 하자는 것이지요...

 

 

 

"유, 무"(有, 無), "난, 이"(難, 易), "고, 저, 장, 단"(高, 低, 長, 短) 은, 어디까지나, 그 자체로서, 존재하는 것이며, 그런 의미에서, "자연(自然)스러운 것" 입니다...

 

굳이 비교되더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것" 이지요...

 

 

 

더구나, 윤리적(倫理的) 판단의 대상이, 될 수는 없는 것이지요...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미의식(美意識) 마저도, 기존의 인위적 틀 속에, 갇혀 있다는 것이지요...

 

 

 

노자는, 이 장에서, 먼저, 잘못된 인식을 전환한 다음, 올바른 방식으로 실천하기를, 요구하는 것이지요...

 

말없이 실천하고, 자랑하지 말고, 개입하지 말고, 유유하고, 자연스럽게, 실천하여야 한다는 것이, 실천론의 요지입니다...

 

"열린 마음" 과 유장(悠長)한 걸음걸이로, 대응할 것을, 주문하고 있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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