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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육 간에 건강

강나루터 2022. 4. 20. 07:39

한국가톨릭교회의 사제들, 수도자들과 교우들은 상당히 오래 전부터 영명축일축하식과 각종 축하식이나 행사에서 “영육 간에[간의] 건강을 빕니다.” 혹은 “영육 간에 건강하게 지내십시오.”라는 인사말을 습관적으로 하기도 하고 듣기도 한다.

 

 이 인사말이 단순한 “건강하게 지내십시오.”나 “건강을 빕니다.”와 구별하여 ‘영육 간의 건강’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볼 때에 영혼과 육신 사이의 투쟁에서 영혼이 승리하는 영성적 ‘영육 간의 건강’을 기원하고 있다고 추론할 수 있다.

 

 영혼과 육신, 영과 물질을 상반되는 두 차원으로 이해하면서 영혼과 영을 선하고 영원하고 불변적이고 무형한 것으로 이해하며 육신과 물질을 악하고 비관적인 것이고 영혼의 감옥이요 욕망의 근원이라고 이해하는 여러 유형의 이원론적 그리스 철학과 종교 내지 사상이 있었다.

 

그리스도교는 인간에 관한 극단적 이원론의 그리스적 개념과 영육 통일체적 인간관을 지닌 히브리적 개념이 공존하던 시대에 등장했다. 예수님의 초기 제자들은 유다 전통을 인수했고 초대교회는 이원론의 영향을 거슬러 투쟁했으며 신약성경의 여러 구절은 몸과 물질적 우주의 선함을 긍정하고 있다.

 

현대의 철학과 신학뿐만 아니라 여러 학문은 육신 내지 몸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몸을 인간이 타자와 세계를 인식하는 통로로 이해한다. 인간은 자신의 구체성을 구체적 세계에서 공간을 점유하고 있는 몸으로 경험하며 자신의 몸을 통해 세계를 경험한다. 인간의 몸이 저 너머에 있는 우주에 대한 이해와 초월적 하느님에 대한 이해의 열쇠가 된다. 몸은 단순한 대상이 아니라 타인과 대상과 사건과 하느님을 인식하게 하는 수단이다.

 

하느님과의 일치를 목표로 하는 고행(苦行), 고신극기(苦身克己)와 편태(鞭笞) 등과 같은 수덕적(修德的) 행위의 영성적 의미와 중요성이 퇴색되어서는 안 되지만 여러 상황을 고려할 때에 육신 내지 몸의 건강을 위한 노력도 과소평가되어서는 안 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에 현대의 신앙인들에게는 육신을 과소평가하고 있다고 오해할 수 있는 “영육 간에[간의] 건강을 빕니다.” 혹은 “영육 간에 건강하게 지내십시오.”라는 인사말보다는 “영육의 건강을 빕니다.” 혹은 “영육의 건강을 기원합니다.”라는 인사말이 더 적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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