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독재

개똥 밭에 굴러도

강나루터 2022. 12. 21. 20:25

 밭에 굴러도

 

 

이만큼 오래 살다 보니까 가끔 인생 상담을 위해 저를 찾아오는 분이 있습니다. 그중에서 가장 심각한 분이 아무래도 자살 충동을 심하게 느끼시는 분일 것입니다. 그런데 그만 제 능력이나 법력이 부족해 충분한 도움이 되지 못한 것 같아 늘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대개 자살을 생각하는 분들은 항상 끝까지 죽음 앞에서 망설입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죽을까, 말까?’ ‘죽을 때 아플까, 아픔을 못 느낄까?’ ‘죽으면 정말로 모든 게 끝일까?’ 아니면 ‘하늘나라가 있거나 다시 태어나는 건 아닐까?’ 라고 생각하지요.

 

여기서 중요한 점은 혹시 모를 가능성에 대해 누구나 망설이고 고민한다는 것입니다. 자살 문제로 상담하게 되면, 현재의 괴로움과 그 이유를 살피는 것 외에도 죽음 이후 어떤 세계가 펼쳐질 수 있을지, 어떤 죽음을 맞는 것이, 존엄한 것인지 얘기하게 됩니다.

 

자살하려는 사람은 시야가 좁아진 상태입니다. 자신의 소멸만이 문제 해결 방법이라고 굳게 믿고 있기 때문이지요. 자살 충동을 느끼는 분은 거의 우울증 증세가 심각합니다. 그런 분들은 우울하고 죽고 싶은 순간이 찾아온다면, 일단 가능한 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잠시 쉬어야 합니다.

 

생각을 쉬고, 일도 쉬고, 감정도 쉬고, 그냥 쉬는 것에만 집중하는 것이 좋습니다. 너무 지친 상태에서는 현명한 판단을 할 수 없기 때문이지요. 모든 일을 뒤로 미루고 심지어 죽는 것에, 대한 생각도 뒤로 미루어야 합니다.

 

그리고 최대한 쉬면서 자살 충동이 있는 것을 주변에 이야기하고, 적극적으로 도움을 요청하거나 덕망 있는 분을 찾아 상담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렇게 상황을 말하는 것 만으로도 공격적 감정이 배설되고 자살 충동이 줄어들 것이며, 대화 상대가 자신을 돕도록 요청할 수 있습니다.

 

자살 충동은 계속 강하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믿을 만한 분을 찾아 함께 생활하는 것도 좋지요. 자살 충동이 솟구칠 때마다 그런 분들이 지켜봐 주는 것만 해도 자살 충동을 억제하는 효과가 크게 나타납니다. ‘삐에르 신부(Abbé Pierre : 1912~2007) 라는 분이 계셨습니다.

 

프랑스 사람들이 존경하는 인물 중에서 일곱 번이나 1위를 차지한 분이지요. ‘피에르 신부’는 가톨릭 사제 신분으로 레지스탕스와 국회의원이 되고, 빈민 구호 공동체인 ’엠마우스 공동체‘를 설립해 평생 빈민 운동에 힘쓴 분입니다.

 

그 신부님의 책 『단순한 기쁨』에 나오는 그분의 경험담이 있습니다. 한 청년이 자살 직전에 신부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자살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가정적인 문제, 경제의 파탄, 사회적인 지위 등등, 모든 상황이 지금 죽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지요. 신부님은 이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 깊은 동정과 함께 이렇게 말했습니다.

 

“충분히 자살할 이유가 있네요. 일이 그렇게 되었으면 살 수가 없겠네요. 자살하세요. 그런데 죽기 전에 나를 좀 도와주시고 나서 죽으면 안 되겠습니까? “네, 뭐 어차피 죽을 목숨인데, 죽기 전에 신부님이 필요하시다면, 제가 얼마 동안 신부님을 돕도록 하지요.”

 

그리고 신부님이 하는 일들인 집 없는 사람,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서 집을 짓고, 먹을 것을 주며, 아픈 사람들을 돌보고, 청소하는 일 등, 여러 가지 일들을 신부님 옆에서 도와 드렸습니다. 얼마 후에 그 청년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신부 님께서 저에게 돈을 주셨든지, 제가 살 수 있는 집을 그냥 주셨다면, 저는 다시 자살을 생각했을 겁니다. 돈은 며칠만 지나면 다 썼을 것이고, 집이 있더라도 어차피 이 세상에서 쓸모없는 인간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니까요. 그런데 신부님은 저에게 아무것도 주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저에게 도움을 요청하셨습니다. 제가 신부님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니, 제가 누군 가를 도와줄 수 있다니, 신부님과 같이 일하고 섬기면서 제가 살아야 할 이유를 찾았고, 이제 저는 어떻게 하는 것이, 행복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럼 자살 충동을 느끼는 분과 어떻게 상담하면 좋을까요?

 

첫째, 공감 표현을 하는 것입니다.

상대방 처지에서 이해하려고 생각하고, 상대방의 표현에 관해 관심을 가지며, 그와 관련된 질문들로 이야기를 이어나갑니다.

 

둘째, 논쟁을 피하는 것입니다.

자살 시도 자는 삶의 의지가 약해 공격적이나 적대적인 표현이 많습니다. 이럴 때 갈등 상황에 반대 의견을 제시한다면, 갈등과 힘겨루기가 될 수 있습니다.

 

셋째, 저항과 함께하는 것입니다.

자살 충동 자는 현재 상황에 대해서 자신을 거부하고, 부정합니다. 이런 상황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말하는 것보다, 지지와 경청, 공감을 표하는 것입니다.

 

넷째, 불생불멸과 인과응보의 진리를 들려주는 것입니다.

윤회전생(輪回轉生) 얘기와 상황에 맞는 예화를 들려주는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생명은 귀중한 것입니다. 개똥 밭에 굴러도 이생이 낫다고 했습니다. 인생에 희망을 잃은 분에게 희망을 안겨 주는 것 이상, 큰 공덕은 없을 것입니다. 우리 저마다 능력대로 자살 충동을 느끼는 분들의 상담 사가 되면 얼마나 좋을까요!

 

단기 4355년, 불기 2566년, 서기 2022년, 원기 107년 12월 21일

덕 산 김덕권(길호)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