歸園田居, 其六(귀원전거, 기육): 자연으로 돌아와서의 삶, 6
種苗在東皐(종묘재동고): 동 쪽 못가에 씨앗을 심었더니
苗生滿阡陌(묘생만천맥): 싹이 자라 이랑에 가득하다.
雖有荷鋤倦(수유하서권): 호미 매고 김매기 진저리나기도 하지만
濁酒聊自適(탁주료자적): 탁주 힘 빌어 스스로 즐긴다네.
日暮巾柴車(일모건시거): 날이 저물어 나뭇짐 수레를 덮으니
路暗光已夕(노암광이석): 길은 어둑하여 이미 저녁이 되었구나.
歸人望煙火(귀인망연화): 불빛 따라 집으로 돌아오니
稚子候簷隙(치자후첨극): 어린 아들 처마 밑에서 기다리네.
問君亦何爲(문군역하위): 그대 묻노니, 무엇을 바라는가~?.
百年會有役(백년회유역): 세월이 가면 무엇인가 이루어지겠지...
但願桑麻成(단원상마성): 바램은 뽕과 삼이 잘 자라나서
蠶月得紡績(잠월득방적): 누에치는 달에 길쌈을 할 수 있었으면...
素心正如此(소심정여차): 원래 마음 이와 같이 소박하니
開徑望三益(개경망삼익): 길 열어놓고 좋은 벗 기다린다네.
- 주(註) -
본 시(詩)의 마지막 구절 "개경망삼익(開徑望三益)"을
글자대로 해석하면
전혀 맞지않는 말이 되므로,
부연설명(敷衍說明)이 필요할 것 같아 이해를 돕고자
설명을 덧붙이고자 한다.
"개경(開徑)"이란 말은...
전한(前漢)BC 206~AD 9년에 왕망(王莽)이란 절도사가
반란을 일으켜 정권을 잡은 뒤
황위(皇位)를 찬탈하여 스스로 황제(皇帝)라 칭하며
신(新)나라: AD 9~25년)을 세우자,
장후(葬詡)란 사람은 병을 핑게로 벼슬을 사직하고
고향으로 내려가 은거하였다.
그는 대나무숲을 지나 집으로 통하는 3개의 오솔길(三徑)을
평소에는 막아두었다가 절친한 친구인,
구중(求仲)과 양중(羊仲)이 찾아 올 때만
사립문을 열고 맞이했다는 고사(故事)에서 유래한 말이다.
왕망(王莽)에 대해서는 본 블로그
중국여행 태행산(太行山) 중,
왕망령(王莽岭)에서 잠시 언급했던 인물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본 시(詩)의 "개경(開徑)"은
"장사삼경(蔣舍三徑)에서 따온말"이며,
여기서 "삼경(三徑)"은
"은거(隱居), 혹은 은둔해 사는 사람"이란 뜻을 품은 고사(故事)이므로,
"개경(開徑)"은
"은둔처(隱遁處)를 열다"란 말이 된다.
따라서 "장사삼경(葬舍三徑): 장후(葬詡)네 은둔처(隱遁處),
혹은 도잠삼경(陶潛三徑): 도잠(陶潛)네,
즉 도연명(陶淵明)이네 은둔처(隱遁處)"란 말로
후세에 곧잘 쓰이던 말이기도 하다.
그리고 "삼익(三益)"이란 말은...
세가지 이익이 되는 것,
즉 좋은 친구의 세 가지 기준으로
논어(論語) 계씨편(季氏篇)에 나오는 말이다.
익자삼우(益者三友)라 하여
삼우(三友)는 "우직(友直), 우량(友諒), 우다문(友多問)"으로
이를 익의(益矣)라 했으니,
사귀어 도움이 되는 좋은 벗으로
정직하고 이해심이 깊어 믿을 수 있으며
견문(見聞)이 넓은 사람을 뜻한다.
이 두 가지 고사(故事)를 섞어 인용하여
도연명(陶淵明)은 귀원전거(歸園田居) 마지막 구절(句節)을
멋지게 마무리 했다.
지금 소개한 6편이
귀원전거(歸園田居) 마지막 편이다.
이제는 완전한 농부(農夫)로 살아가는 일상이 시(詩)에 녹아 있다.
김매기를 해본 분이라면
밭고랑에 쪼그리고 앉아 오리걸음으로 기어가며
잡초(雜草)를 뽑는 작업이 얼마나 힘들고 고단한지 잘 안다.
한낮의 뜨거운 태양 아래서 훅훅 올라오는 복사열(輻射熱)은
온 몸을 금새 땀으로 적시며 지치게 만든다.
뽑아도 뽑아도 끝이 없고
뒤돌아서면 금새 다시 돋는 끈질긴 잡초와의 싸움은
사실 추수때가 돼서야 끝이 난다.
시인(詩人)도 오죽 힘들었으면
진저리가 난다고까지 표현했겠는가~.
이젠 농촌에서 밭고랑에 앉아 김매는 모습은 옛날일이 되어버렸다.
풀이 자라지 못하도록
비닐로 밭고랑을 완전히 덮기도 하거니와
잡초를 죽이는 제초제(除草劑)가 그 일을 대신한지 오래다.
농사중 가장 힘든 일이 김매기인데,
김매는 일이 사라졌어도 시골 생활의 고달품은 여전하다.
애쓰고 수고한 농사(農事)가 잘 되길 바라는 간절함은
시인(詩人)의 마음이나 요즘의 농부(農夫)들 마음이나 매한가지이다.
그는 반복되는 고단한 생활임에도 대문 앞 좁은길을 치워놓고
좋은 벗을 기다리는 소박한 여유로움과,
자연(自然)에 순응(順應)하며 살아가는
너그러운 농사꾼의 모습을 지닌 참으로 정겨운 사람이었다.
도연명(陶淵明)...
그 자체가 자연(自然)의 일부(一部)로 느껴지는 이유가,
바로 이와같은 순수하고 겸손한 모습 때문은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해보는
참 좋은 시인(詩人)이며 농부(農夫)였던 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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