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소총 –289화
객에게 허물이 있다 (一客有過) . 한 사람이 멀리 여행하여 어느 산골에 이르렀다. 그런데 날이 저물어 하룻밤 쉬어갈 곳을 찾으니, 워낙 산골이라 여관이나 주막이 없어 난처했다.
이에 어느 작은 마을을 찾아가니 그 입구에 외딴 집 하나가 있어, 사립문 앞에서 주인을 부르자 노파가 나오는 것이었다. . 이 사람은 먼 길을 가는 길손이라 말하고, 하룻밤 재워줄 수 없겠느냐고 물었다. . 그러자 노파는, "마침 잘 되었네요. 우리 집에서 자고 가셔도 됩니다.
오늘밤 건넛 마을에 큰 굿을 하는 집이 있어 도와달라고 했으나, 집이 비어서 가질 못하고 있었습니다. . 내 그 집에 가서 좀 도와주고 오겠으니, 편히 쉬도록 하십시오." 라고 말하고는 급히 집을 나서는 것이었다. . 이 사람은 잘 다녀오라고 말하고 아랫방으로 들어가 밖을 내다보고 있으니, 이 집 마루 밑에 있던 큰 삽살개가 나와 안방으로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그래서 이상하게 생각하고 안방을 유심히 살폈다. 그러자 이 삽살개가 방안에서 이런 저런 물건들을 끌어내 차곡차곡 쌓아 놓더니, . 그 위로 올라가 시렁 위에 얹혀 있는 그릇 속의 떡을 훔쳐 먹는 것이었다. . 그리고는 내려와, 쌓아 놓았던 물건들을 모두 끌어다 제 자리에 갖다 두고 다시 마루 밑으로 들어갔다.
이에 길손은 크게 놀라고 괴이하게 생각하면서 무서워하고 있는데, 밤이 깊어지니 노파가 돌아와 방으로 들어갔다. . 그런데 배가 고프다면서 시렁 위를 더듬던 노파가 이상하다는 표정을 짓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 사람이 왜 그러냐고 묻자, 노파는 머뭇거리다가 이야기를 했다. . "어제 동네 사람이 준 떡을 바로 여기 시렁 위에 올려 두었는데, 지금 보니 그릇이 비어 있습니다. 점잖은 손님께서 그것을 뒤져 먹었을 리는 없고 하여,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는 중이랍니다."
그러자 이 사람은 아까 본 상황을 말하지 않으면 자신이 의심을 받을 것 같아, 삽살개가 하던 짓을 그대로 얘기해 주었다.
이에 노파는 그럴 수 있을 것이라면서, "사물도 오래 되면 반드시 영이(靈異)해지는 법이지요. 이 개는 이미 수십 년째 살고 있으니, 필시 그런 요사한 짓을 했을 것으로 믿어집니다. . 너무 오래 살았으니 내일 당장 포정을 불러 처치해야 할 것 같습니다." 라고 말했다.
이 때 삽살개가 이 사람을 응시하는데, 그 눈매가 번쩍이면서 빛나는 것이 매우 사나워보였다. . 그리하여 이 사람은 겁이나서 방안에 자신의 옷을 두둑하게 쌓아 이불을 덮어 놓고, 뒷문으로 빠져 나와 툇마루에 숨어서는 방안을 주시하고 있었다. . 그러자 얼마 후 삽살개가 방안으로 뛰어 들어가, 이불 속의 옷을 마구 흔들어 뜯으며 행패를 부리는 것이었다.
이렇게 방안에서 한참 동안 패악을 부리던 개가 나와 마루 밑으로 들어간 뒤에, 이 사람은 무서워 잠을 자지 못하고 안방 문을 두드려 노파를 깨웠다. . 그리고 조금 전에 있었던 일을 말하고 함께 마루 밑을 들여다보니, 개는 이미 기진하여 죽어 있었다. 이 사람은 두려운 생각이 들어 일찍 그곳을 떠났는데, 이후로 사람들에게 이 얘기를 들려주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한다. . "짐승도 자기 허물을 말하는 사람에게는 이토록 패악을 부리거늘, 하물며 사람에게 있어서 그 과오를 폭로할 때는 얼마나 미워하겠는가?
조심해야 할 일이로다."
출처: http://kydong77.tistory.com/ 15071?category=651358 [김영동교수의 고전&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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