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광명각품 문수사리 보살의 게송
만약 어떤 이가 정각正覺은 해탈하여 모든 번뇌를 떠나고 온갖 세간에 집착하지 않는 것으로 본다면 그는 깨달음의 안목을 얻은 것이 아니니라 |
*** 깨달음을 얻었다고 착각하지 말라
게송에서 말하는 '정각'은 분명 '바른 깨달음'을 지칭하는데, 금강경, 반야심경 등 반야부의 경전에서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無上正等正覺)'라고 합니다. 한글로는 '깨달음'이라는 단어 밖에 적절한 번역이 없어 보이는데, 제가 좋아하는 박성배 교수(이 분은 현재 뉴욕 주립대 교수로 계신데, 성철 스님을 뵙고는 그만 출가를 하여 문하에서 정진하다 환속하여 학자로 후에 성철 스님과의 돈·점 논쟁에 핵심이 되었던 분입니다)는 깨달음과 '깨침'을 구별해 쓰자는 견해를 제시하기도 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상당히 일리있는 말씀이라 생각합니다.
어쨌거나 정각, 즉 깨달음을 표현하고자 하는 말들을 나열해 보면 '구경각,' '해탈,' '돈오,' '견성,' '열반'에 '오도,' '해오,' '적멸,' '수행불행'에 이르기까지 아주 다양합니다. 이 말들이 다 게송에서 말하는 정각을 의미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더욱 '정각'이란 단어에 이르면 그 경지가 어떻다고 단정지어 말씀드릴 수는 더욱 없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정각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설령 제가 조사祖師나 선사禪師의 언행을 흉내 내거나 발췌하여 그 뜻을 전하려 든다면 저는 정각에 대한 '사기꾼'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제 티끌만도 못한 소견으로 마치 온천의 뜨거운 물에 조심스럽게 발끝부터 디밀듯이, '어떠어떠한 것은 정각 즉 깨달음의 경지가 아니다'라는 소박한 견해를 낼 수는 있습니다. 깨달음에는 분명한 선례가 있기 때문입니다. 다름아닌 우리 같은 범부로서의 고타마 싯타르타의 수행 과정과, 그가 성불한 후의 언행과, '깨달음'에 대한 분명한 교과서인 경전이라는 가장 명확한 증거물에 근거하면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고타마 싯다르타에게 '범부'란 표현을 쓰는 것은 어색하지 않습니다. 그가 총명하였고 왕자였다고 범부가 아닌 것은 아닙니다. 지구에서 달까지의 거리에 지구에서 가장 높은 에베레스트 산의 높이를 감안하지는 않습니다. 깨달음의 위치에서는 인간적 총명과 지혜는 에베레스트 산과 같을 뿐입니다.)
위 게송에서도 정각의 '상태'를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러이러한 것을 정각이라 '착각하지 말라'라고 주의를 주고 있는 것입니다. 더 구체적으로는 깨달음이란 번뇌를 떠나 세간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라는 착각을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지요. '번뇌 즉 보리(쉽게 풀면, 망상과 집착된 생각이 곧 깨달음이다)'라는 선사들의 증언의 말을 감안하더라도, 그럼 세간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 도道가 아니라면, 집착해도 된다는 말인지 헷갈릴 수 밖에 없습니다.
저는 20대 후반에 큰 숙제가 있었습니다. 집착이라는 수행의 중요한 용어가 점점 어렵게 느껴지기 시작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종교적 신념이란 감성적인 것인가 아니면 이성적인가,' 혹은 '수행이 이루어진다는 것은 인간의 감성적 요소들이 배제되는 단계의 하나인가?' 하는 나름대로 심각한 의문들을 품었습니다.
겉으로 보면 분명히 수행을 하려면 성숙한 '남자'가 아니라 목석이 되어 가야 했습니다. 더욱이 애욕과 집착이라는, 수행의 측면에서 보면 거의 최악의 단어들과 결부시켜 생각하면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였습니다. 저의 이런 숙제는 10여 년이 넘은 30대 후반에야 풀렸습니다. 불법의 거의 모든 가르침이 그러하듯이 이 문제도 스스로 알아 내야 풀렸다고 할 수 있는 것이지, 그렇겠구나 하고 이해한다고 공부가 된 것은 아닙니다.
다시 게송의 가르침을 이와 연관시켜 풀어보면, '번뇌 중 최고인 애욕에도 집착하지 않는 마음을 내어도 깨달음의 안목을 이룩한 것은 아니다'가 되는데, 뜻 풀이를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점점 어렵게 유도하는 것 같이 되어 버렸습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 책을 읽다 보면 머지 않아 이 정도는 충분히 납득하실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마침 삼국유사에 안성맞춤의 얘기가 있습니다. 읽어 보시고 차분히 게송과 관련지어 생각해 보시면 소득이 있을 것입니다. 정리를 했는데도 좀 긴 듯하지만 재미가 있습니다.
옛 신라 땅 백월산의 선천촌에 두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 하나는 '노힐부득'이라 했고, 또 하나는 '달달박박'이라 하였다. 이 둘은 절친한 사이로 20세에 출가하여 부득은 회진암에 살았는데, 이곳을 양사(지금 회진동에 옛 절터가 있다)라고도 했다. 박박은 유리광사(지금 이산梨山 위에 절터가 있다)에 살았다. 이들은 모두 처자를 데리고 와서 살면서 산업을 경영하고 서로 왕래하였다. 그러나 정신을 수양하고 편안히 마을을 길러 속세를 떠날 마음을 잠시도 버리지 않았다. 그들은 몸과 세상의 무상함을 느껴 서로 말했다.
"기름진 밭과 풍년 든 해는 참으로 좋은 것이지만 먹을 것과 입을 것이 마음대로 생기고 자연히 배부르고 따뜻함을 얻는 것만 못하다. 또 부녀와 집이 참으로 좋으나, 연지화장에서 여러 부처가 앵무새나 공작새와 함께 놀면서 서로 즐기는 것만 못하다. 더구나 불도佛道를 배우면 응당 부처가 되고, 참된 것을 닦으면 반드시 참된 것을 얻는 데 있어서랴. 지금 우리들은 이미 머리를 깎고 중이 되었으니 마땅히 몸에 얽매어 있는 것을 벗어 버리고 무상의 도를 이루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어찌 이 풍진 속에 파묻혀 세속 무리들과 같이 지내서야 되겠는가."
이들은 드디어 인간 세상을 떠나 장차 깊은 골짜기에 숨으려 했다. 어느날 밤 꿈에 부처님의 양 미간 사이에서 나온 빛이 서쪽에서 오더니 금빛 팔이 내려와 두 사람의 이마를 쓰다듬어 주었다. 꿈에서 깨어 그 얘기를 하니 두 사람의 말이 똑같으므로 이들은 모두 한참 동안 감탄하다가 드디어 백월산 무등곡(지금의 남수동)으로 들어갔다. 이들은 각기 북쪽과 동쪽의 암자에 살면서 부득은 미륵불을 성심껏 구했고, 박박은 미타불을 갈구하며 염송했다.
3년이 못되어 경룡景龍 3년 기유(709) 4월 8일은 성덕왕 즉위 8년이다. 해는 저물어가는데 나이 스무 살 가깝고 얼굴이 매우 아름다운 여인이 난초 향기와 사향 냄새를 풍기면서 갑자기 박박의 암자에 왔다. 그녀는 자고 가기를 청하면서 글을 지어 바쳤다.
갈 길 더딘데 해는 떨어져 모든 산이 어둡고, 길은 막히고 성은 멀어 인가도 아득하네. 오늘은 이 암자에서 자려 하오니, 자비스러운 스님은 노하지 마오.
박박은 말했다. "절은 깨끗해야 하는 것이니 그대가 가까이 올 곳이 아니오. 어서 다른 데로 가고 여기에서 지체하지 마시오."하고는 문을 닫고 들어갔다. 여인은 부득의 암자로 가서 전과 같이 청하니 부득이 말했다. "그대는 이 밤중에 어디서 왔는가." 낭자가 대답했다. "맑기가 태허太虛와 같은데 어찌 오고 가는 것이 있겠습니까. 다만 어진 선배의 바라는 뜻이 깊고 덕행이 높고 굳다는 말을 듣고 장차 도와서 보리를 이루고자 해서일 뿐입니다." 그리고는 게偈 하나를 주었다.
해 저문 깊은 산길에, 가도 가도 인가는 보이지 않네. 대나무와 소나무 그늘은 그윽하기만 하고, 시내와 골짜기에 물소리 더욱 새로워라. 길 잃어 잘 곳 찾는 게 아니요, 존사尊師를 인도하려 함일세, 원컨대 내 청 들어만 주시고, 길손이 누구인지 묻지 마오.
부득은 이 말을 듣고 몹시 놀라면서 말했다. "이곳은 여자와 함께 있을 곳이 아니나, 중생을 따르는 것도 역시 보살행의 하나일 것이오. 더구나 깊은 산골짜기에 날이 어두웠으니 어찌 소홀히 대접할 수 있겠소." 이에 그를 맞아 정중히 암자 안에 머물게 했다. 밤이 되자 부득은 마음을 맑게 하고 지조를 닦아 희미한 등불이 비치는 벽 밑에서 고요히 염불했다. 밤이 새려 할 때 여인은 부득을 불러 말했다. "내가 불행히 마침 산고가 있으니, 원컨대 스님께서는 짚 자리를 준비해 주십시오." 부득이 불쌍히 여겨 거절하지 못하고 은은히 촛불을 비치니 낭자는 이미 해산을 끝내고 또 다시 목욕하기를 청했다. 부득은 부끄러움과 두려움이 마음속에 얽혔으나,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그보다 더해서 마지못하여 또 목욕통을 준비해서 낭자를 통 안에 앉히고 물을 데워 목욕을 시켰다. 그러자 이미 통 속 물에서 향기가 진하게 풍기면서 금빛 액체로 변한다. 부득이 크게 놀라자 낭자가 말했다. "우리 스승께서도 이 물에 목욕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부득이 마지못하여 그 말을 좇았더니 갑자기 정신이 상쾌해졌다. 살결은 금빛으로 바뀌고, 옆을 보니 졸지에 연줄기가 하나 생겼다. 여인은 부득에게 앉기를 권하고 말했다. "나는 관음보살인데 여기 와서 대사를 도와 대보리大菩提를 이루도록 한 것이오." 여인은 말을 마치더니 이내 보이지 않았다.
한편 박박이 생각하기를, "부득이 오늘 밤에 반드시 계戒를 더럽혔을 것이니 비웃어 주리라"하고 가서 보니 부득은 연화대에 앉아 미륵존상이 되어 광명을 내뿜는데, 몸은 금빛으로 변해 있었다. 박박은 자기도 모르게 머리를 조아려 절하고 말한다. "어떻게 해서 이렇게 되었습니까." 부득이 그 까닭을 자세히 말해 주니 박박은 탄식했다. "나는 마음 속에 가린 것이 있어서, 다행히 부처님을 만났으나 도리어 대우하지 못했으니, 큰 덕이 있고 지극히 어진 그대가 나보다 먼저 이루었소. 부디 옛날의 교분을 잊지 마시고 일을 함께 하시기 바랍니다." 부득이 말한다."통 속에 금액이 남았으니 목욕함이 좋겠습니다." 박박이 목욕을 하여 부득과 같이 무량수無量壽를 이루니 두 부처가 서로 엄연히 대해 있었다. 산 아래 마을 사람들이 이 말을 듣고 다투어 와서 우러러보고 감탄하기를, "참으로 드문 일이로다."했다. 두 부처는 그들에게 불법의 요지를 설명하고 나서, 온몸으로 구름을 타고 구름에 온몸을 싣고 가버렸다.
본 내용은 성법 스님 저서 '이판사판 화엄경'의 글을 보내드리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