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예 세상

추사고택 주련

강나루터 2022. 1. 20. 18:22
강나루 2021. 10. 14. 00:17
수정|삭제|공개

 원문가사첩심허 . 노견이서유안영

구곡수통다조외 . 경정산견석난서

차호명월성삼우 . 호공매화주일산

천하일등인충효 . 세간양건사경독

화법유장강만리 . 서에여고송일지

호고유시수단갈 . 연경루일파음시

춘풍대아능용물 . 추수문장불염진

직성유궐하 . 수구만천동

만수기화천포약 . 일장수죽반상서

송풍취해대 . 산월조탄금

추수재심사오척 . 녹음상간양삼가

대팽두부과강채 . 고회부처아녀손

정좌처다반향초 . 묘용시수유화개

오묘중죽오묘예서 . 반일정좌반일독서

화가수오백년 . 서이과삼천권

천벽신자팽옥명 . 경황가첩사은구

범물개유가치 . 어인하소불용

벽옥반중농수정 . 황금합이성홍설

하정상이주석고 . 진비한예진은구

유애도사겸고기 . 차장문자입보리

청이래금첩 . 천지석벽도







{{풍수지리로 풀어보는 추사고택}}




추사의 무덤이 좌측에서 먼저 눈에 들어오고 중앙에 고택이 있다.


첫 느낌에 음택과 양택이 나란히 땅을 차지 하고 있다는게..초심자의 눈에는 궁금증으로 들어오고..... 
   
추사고택의 솟을대문이 올려다 보는 위치에서 나그네를 맞는다..
 
원래는 서울 장동(현재 통의동)에 위치하였으나, 현재의 예산군 신암리로 장동에 있던 집을 뜯어다가
53칸의 집으로 재건축했다 하고.....80.5평에 안채,사랑채, 문간채가 있단다.
 

 안채는 6간 대청과 안방, 건너방이 있는 ㅁ자의 형태이다.
이러한 형태는 중부,영남지방에 분포되어 있는 상류주택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날이 차가워진 다음에야 소나무 잣나무가 늦게 시듦을 안다'는 논어의 한 구절을 뜻하는 세한도는
59세 때인 1844년 제주도 유배 당시 지위와 권력을 잃어버린 스승을 찾아온 역관 이상적의 인품을
소나무와 잣나무에 비유하여 그려준 것이다. 국보제180호.
 




자 이제 이 땅의 음양의 비밀...
그 속내에 대한 갈증을 좀 풀어 보아야 할텐데
 
내 실력으로는 이 궁금증을 헤아리기 어려우니..
조용헌교수가 쓴 한국의 명가명택의 설명을 빌어서 풀어 보자.
 
   추사고택이 자리잡고 있는 예산군 신암면 용궁리 주변의 산세 역시
‘솜이불을 덮어놓은 것 같은’ 충청도 산세의 전형을 보여주는 곳이다.
추사고택은 솜이불같이 포근한 기운을 풍기는 야트막한 둔덕들이 둘러싸고 있다.
주변 사방 어디를 보아도 아주 부드러운 속살 같은 이불뿐이요,
쇠붙이 같은 날카로운 느낌을 주는 산이 전혀 없다. 
 
집터 앞의 안산(案山)은 마치 누에가 가로로 길게 누워 있는 듯한 야산일 뿐만 아니라,
청룡자락과 백호자락을 둘러보아도 높은 산이 없다. 그런가 하면 집 뒤의 내룡(來龍)을 보아도 해발
100m도 안되는 야산이라서 위압감이 전혀 느껴지질 않는다. 한마디로 추사고택 주변 산세의
특징은 살기(殺氣)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살기란 무엇인가?
 
바위나 암벽이 드러나 있는 험한 산에서 방사되는 기(氣)를 일러 살기라고 한다.
이를 쉽게 풀어보기로 하자. 지구 자체가 실은 하나의 거대한 자석(磁石)이며, 여기서 방사되는 자력 성분을
띤 일종의 에너지를 지자기(地磁氣)라고 한다.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틀림없이 존재하며 지구 환경에
영향을 끼치는 이 에너지를 풍수가에서는 지기(地氣)라고 부른다. 




















  
문과 무를 놓고 볼 때 ‘이불을 덮어놓은 것과 같은’ 산세가 바로 문을 상징하는 것이라면,
바위나 암벽으로 위압감을 주는 산세는 무를 상징한다. 그래서 지나치리만큼 숭문주의에 빠진 조선조
양반 사회에서는 양택과 음택을 막론하고 터 주변에 바위산이 보이는 곳은 흠이 있는 것으로 여겼다.
 
이런 맥락에서 추사고택은 바위산의 무기(武氣)가 보이지 않고 야트막한 둔덕의 문기(文氣)만 가득한
무릉도원(武陵桃源)이다. 애초 무릉도원의 말뜻이 무를 차단하는 큰 언덕이요, 칼이 없는 그 곳에 복사꽃
만발한 복숭아 동산을 가리킨다. 전쟁과 격절된 채 평화가 흘러넘치는 유토피아인 것이다.
 
바로 이런 곳에서 문과 서를 애호한 나머지 문자향, 서권기가 나오지 않았나 싶다.
 
추사고택이 무릉도원이라면 혹시 복숭아밭이 있나 찾아보았으나, 늦가을의 빨간 사과들이 탐스럽게 매달린
사과밭이 여기저기 많다. 이 지역이 사과가 잘 되는가 보다. 꿩 대신 닭이라고 무릉사과밭도 괜찮은 것 같다. 
 
그런데 지자기는 흙으로 된 토산(土山)에 비해 바위로 된, 또는 바위나 암벽이 노출된 산에서 강하게 발산된다.
과식하면 몸에 해롭듯이 에너지가 필요 이상으로 강하면 인체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즉 바위에서는 평범한 사람이 소화 흡수할 수 있는 양을 넘어서는 지기가 방사되고 있기 때문에
해를 미친다고 보고 이런 부작용을 살기라 하는 것이다. 물론 집터를 잡을 때 이러한 산세를 피하는 것이 일반이다.
 
그러나 지기가 강한 바위가 있다고 해서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다.
칼을 휘두르며 적진을 돌파해야 하는 무장(武將)들은 오히려 강한 곳을 좋아한다.
살기가 있는 곳에서 담력과 기백이 솟아나오기 때문이다.
 
신라시대 화랑도들이 전국의 명산(名山)을 돌아다니면서 심신을 연마하였다고 한다.
이때의 명산이란 대개 바위산을 가리킨다. 김유신 장군이 칼로 바위를 베었다는 고사가 전해지는 경주 근처
단석사(斷石寺)만 하더라도 짱짱한 화강암으로 뭉친 터다. 


 
 장군들과 마찬가지로 불교의 고승들도 강한 지기가 뿜어나오는 곳을 선호한다. 검선일치(劍禪一致)의 이치
에서다. 선승(禪僧)이 되려면 검객의 기질을 가지고 있어야 하고, 실제로 선승과 검객은 통하는 면이 있다.
 
그 실례로 사찰에 가면 가끔 ‘심검당(尋劍堂)’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글자 그대로 ‘검(칼)을 찾는 방’이라는 뜻이다.
 
왜 산 속의 절간에서 칼을 찾아야만 하는가? 칼이 있어야 단도직입(單刀直入), 일도양단(一刀兩斷)으로
번뇌를 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때의 칼은 쇠로 만든 칼이 아니라 지혜의 칼을 의미한다. 
  
유명한 고승이 머물렀던 우리나라 불교사찰의 터를 보면 더욱 분명해진다.
대부분 바위산에 둘러싸여 있거나 바위 위에 자리잡고 있다. 가야산의 해인사, 속리산 법주사,
월출산 도갑사, 북한산 망월사, 관악산 연주암, 삼각산 도선사, 대둔산 태고사 등이 모두 그렇다. 그것도
한결같이 아주 험한 바위산들이다.
 
이렇게 바위산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어야 추사고택만이 지닌 차별성을 파악할 수 있다.
야트막한 둔덕뿐이라서 주변 사방에 살기가 보이지 않는 산세는 조선시대 양반들이 가장 선호하던 지역이었다.
양반들이 좋아하던 산세의 모범답안이 이곳이라고 해도 좋다. 
  
추사 김정희가 살던 고택은 무기(武氣) 서린 바위산이 보이지 않는 대신 솜이불처럼 포근한 야트막한
둔덕이 에워싸고 있다. 바로 이런 곳에서 문기(文氣)가 무르녹아 문자의 향기(文字香)와
서권의 기(書卷氣)를 발산하게 된다.
 
추사고택을 둘러보면서 필자가 받은 강한 인상은 묘지가 고택 바로 옆에 붙어 있다는 점이다.
먼저 증조부인 김한신과 화순옹주의 합묘가 고택 오른쪽에 있고, 더 오른쪽에는 고조부인 김흥경의 묘가 단정하고
온화한 터에 있다. 그런가 하면 고택 바로 왼쪽에는 추사 본인의 묘가 있다.




고택 좌우로 커다란 묘들이 포진하고 있는 셈이다. 어떻게 보면 좌우의 묘지 중간에 집이 있는 구조다.
채의 좌우에 이처럼 묘가 있는 것을 보고 필자는 여러 가지 감회에 젖지 않을 수 없었다.
집과 묘가 나란히 있다는 것은 산자와 죽은자가 평화스럽게 공존하고 있음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집은 산사람이 사는 집이라서 양택(陽宅)이라 하고, 묘는 죽은 사람이 사는 집이라고 해서 음택(陰宅)이라 부른다.
음양택(陰陽宅)이 동거하고 있는 형국이 추사고택의 독특한 양상이다.  


 
 음양택의 동거, 산자와 죽은자의 동거, 어둠과 밝음의 동거.
이는 한국인의 사생관(死生觀)을 반영하는 풍경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죽음이 어디 멀리 공동묘지에 있는 게 아니라 바로 집 옆에 있다. 


죽음이 무섭고 낯선 게 아니라 옆집처럼 이물없고 친숙하다. 그뿐 아니라 순환한다.
음택에서 양택으로, 양택에서 다시 음택으로 순환한다.
음택에서 다시 양택으로 순환한다는 것은 조상이 좋은 묘지에 들어가면 다시 그 집 후손으로 돌아온다는 믿음이다. 
 
그러므로 한국인의 사생관에서 볼 때 죽어서 좋은 명당에 들어간다는 것은 죽음을 극복하고 영원한 생명을 얻는 기쁨과도 같다. 
추사 고조부의 묘를 둘러보았다. 용궁리 일대에서 제일 좋은 터는 이 고조부 묘인 것 같다.
전체가 회룡고조형의 형국에서 용의 콧구멍 자리라고 하는데 그렇게 편안할 수가 없다.
입수(入首)도 야트막한 둔덕으로 내려왔고, 주위의 사격(沙格), 혈구(穴口), 안대(案帶) 모두 흠잡을 데 없다.
 
그런데 이 묘를 한층 빛내는 기념물이 하나 있다. 바로 묘 앞에 서 있는 백송(白松)이다.
보통 예산의 백송이라 불리는데, 잎은 푸르고 몸체는 약간 흰색을 띤 희귀한 소나무다. 
 
신기할 정도로 하얀 분가루를 칠을 한 듯 나무 몸통이 하얗다.
천연기념물 106호인 백송은 1809년 동지부사로 청나라에 가는 아버지를 수행했던 추사가 연경에서 돌아오며
가지고 와 고조부 김홍경의 묘 입구에 심어놓은 것으로 옆에 있는 키 큰 소나무와 조화를 이룬다.
 
수령이 약 200년이 되고 높이는 약 10m인 백송은 지상 50cm쯤에서 세 줄기로 갈라져 자랐지만 두 줄기는
부러져 없어지고 동쪽의 줄기만 남아있다. 전국에 5개 밖에 없다는 백송 천연기념물 중
영조가 하사해 서울 추사의 본집에서 자라고 있는 백송과 함께 추사 가문의 상징이 되었다.
 
결론적으로 추사고택은 조선조의 양반이 가장 선호하던 부드러운 산세에 자리잡은 저택이자,
문자향과 서권기가 은은하게 풍기는 무릉도원의 이상향이다. 아울러 그 무릉도원에 배치되어 있는
음양택 동거 구조를 관망하면서 과연 생은 무엇이고 사는 무엇인가를 생각해 본다....
(원광대학교/조용헌 교수의 글을 빌려 옴)
















































































































  











































 

  

우리들은 추사선생님에 대하여 "추사체"라는 글씨를 잘 쓰는 사람으로만 알고 있지만

좀 더 깊이 알아보시면 "모든 방면에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전문인이었음을  느끼고 더욱 경외시 하는 마음이 든다.

일찍이 홍한주는 "지수염필"에서 이렇게 말 하였다. 

"추사지재 감상최승 필차지 시문우차지 (秋史之才 鑑賞最勝 筆次之 詩文又次之 ) 

"추사의 재능은 감상이 가장 뛰어났고  글씨가 그 다음이며, 시문이 또 그 다음이다 " 

"완당은 서화뿐만 아니라 지(紙), 필(筆), 묵(墨), 연(硯)등 문방구는 물론이고

모든 고미술품 감정에도 일가를 이루었다.

 

북한산 진흥왕 순수비, 황초령비,"진흥2고"편찬,  "예당금석과안록" 편찬등 

수많은 금석학까지도  당대 제일인이었고  그만큼  우리의 옛 것을 사랑한 분이셨다.

 

그리고, 백파선사와 불경에 관하여 서로 한치 양보를 안했던 사실은 너무나 유명하다.

(서로가 그만큼 깊은 경륜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고,후에 서로 존경하였으며

그것은 고창 선운사에 가면 "백파선사비문"을 완당선생이 쓰셨다는 것으로 대변된다.)

항상 독서(讀書)를 제일로 치셨던 선생님이 더욱 존경스럽다.


"화법유장강만리(畵法有長江万里)""

서세여고송일지(書勢如孤松一枝)"
"그림 그리는 법은 긴 강이 만리에 뻗친 듯 하고 글씨의 뻗침은 외로운 소나무의 한 가지와 같네"

호고유시수단갈(好古有時搜斷碣)" 옛 것이 좋아서 때로 깨어진 비석을 찾고"
연경루일피음시 (硏經婁日罷吟詩) " 경전 연구로 며칠은 시를 못 읊는구나 "

夏鼎商이周石鼓"하나라의 솥과, 상나라의 이기, 주나라의 석고문이요"
秦碑漢隸晉銀鉤"진나라의 비문과 한나라의 예서, 진나라의 아름답게 쓴 초서라"


춘풍대아능용물(春風大雅能容物)"봄 바람처럼 고운 마음은 만물의 모든 것을 용납하고"
추수문장불염진(秋水文章不染塵)"가을 물 같이 맑은 문장은 티끌에 물들지 않는구나"


정좌처다반향초(靜坐處茶半香初)"고요히 앉아 있는 것은 한창 익어 향기가 나오기 시작하는 것과 같고"
묘용시수류화개(妙用時水流花開)"오묘하게 행동할 때는 물이 흐르고 꽃이 피는 것과 같네"

 

위의 귀절을 "법정스님"을 이렇게 해석하였습니다. 더 운치가 있다고 봅니다.
" 고요히 앉아 차를 드니 반쯤 마셔도 향은 처음 그대로""일어서 움직이니 물이 흐르고 꽃이 피더라"

 

" 天 下 一 等 人 忠孝 " " 천하에 제일가는 사람은 나라에 충성하고 부모에게 효도하는 사람이요"
" 世 間 兩 件 事 耕 讀 " " 세상에서 두가지 큰 일이 있다면 밭 갈고 독서하는 일이다 "

" 書 已 過 三 千 卷 "책은 이미 삼천권이 넘었고
" 畵 可 壽 五 百 年 "그림은 오백년 쯤 묵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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