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감상

스크랩] 겸재 정선 / 독서여가(讀書餘暇)

강나루터 2022. 7. 4. 12:05
강나루 2015. 6. 11. 22:54
수정|삭제|공개

 

 

 

이 그림은 바깥 사랑채에서 독서의 여가에 잠시 더위를 식히며 한가롭게 시상(詩想)에 잠겨 화리(畵理)를 탐구하고 있는 자신을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앞문은 다 떼어 활짝 트여 있고 곁문도 열어젖혔는데 방 앞에 잇대 놓은 두쪽 송판 툇마루에 한 선비가 나 앉아 화분에 담긴 화초를 감상하고 있다.

 

옥색 중치막에 사방관(四方冠)을 쓰고 오른손에 쥘부채를 펴든 채 비스듬히 안락좌(安樂坐, 한 손은 바닥을 짚고 한 다리는 길게 뻗어 편안하게 앉은 앉음새) 형태로 기대안자아 망연히 화분에 정신을 빼앗긴 상태다. 화리(畵理)를 탐구하는 화성(畵聖)다운 면모라 하겠다.

 

수염은 많지 ㅇ낳고 이마는 단단하며 이목구비가 분명하여 청수(淸秀)한 기품이 감도는 동안(童顔)인데 체수는 작달막하다. 전형적인 조선 사대부의 모습이다.

 

삿자리가 깔린 방에는 서책(書冊)이 겹겹이 쌓인 책장이 맞은편 벽에 기대어 있어 겸재가 학문하는 선비임을 말해준다. 그 책장 문에 장식된 겸재 그림에서 이 방이 겸재의 서재임을 실감할 수 있다.

 

쥘부채의 그림 역시 겸재 그림이다. 열어젖힌 곁문을 통해 해묵은 향나무의 뒤틀린 굵은 등치가 보이는데 그 푸른 가지는 초가지붕 앞까지 뻗어 있다.

 

이 그림은 경상도 청하현감으로 재직하던 겸재가 모친의 상으로 청하현감을 사직하고 서울로 돌아와서 지내다가 영조 16년(1740) 양천현감으로 부임을 하였다. 그의 죽마고우인 사천 이병연은 겸재 없는 동해변 고을살이가 부질없어 겸재가 떠난 다음해에 바로 삼척부사 자리를 버리고 상경하였다.

 

서울로 돌아온 사천은 비록 지천이긴 하지만 조석(朝夕) 상봉을 하지 못하는 아쉬움을 떨칠 수 없어 전별의 자리에서 자신이 시 한 수 지어 보내면 겸재는 그림 한 장 그려 보내자는 시화환상간(詩畵換相看, 시와 그림을 서로 바꿔 보는 것)의 약조를 한다.

 

이 약조는 지켜져서 영조 16년(1740)11월 22일까지 십경(十景)이 그려지고 다음 해에도 계속 되어 양수리 근처 한강 상류로부터 양천에 이르는 한강 주변 서울 근교의 진경 33폭을 그려낸다. 이것이 <경교명승첩(京郊名勝帖)> 상, 하 2권인데, 현재 간송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 <독서여가>는 그 상권 맨 처음에 장첩된 그림이다. 겸재가 평소 인왕곡 인곡정사(仁谷精舍, 겸재가 살던 집)에서 생활하던 양상을 그린 자화상이라고 생각된다.

 

그를 애타게 그리워하는 사천의 요청으로 그렸을 개연성이 크다. 인물화를 되도록 피했던 겸재이지만 사천의 우정어린 강요에는 어쩔 수 없었던 모양이다.

 

출처 : 은평초등학교 동문 인문학 모임
글쓴이 : 바람난 공자 원글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