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독재

나만의 천국

강나루터 2022. 11. 1. 20:29

나만의 천국

 

 

사람에게는 다 자기 나름의 천국이 있습니다. 저는 책이 잔뜩 쌓이고, 컴퓨터 한 대만 있는 우리 집, 제 방이 천국이지요. 그런데 화려한 옷들이 줄줄이 걸린 옷장이 천국인 사람. 포도주 브랜드 병이 가득한 방을 천국으로 아는 사람. 그리고 금고에 돈이 가득 들어 있는 방이 천국인 사람 등등, 저마다의 천국은 다 다릅니다.

 

이렇게 천국의 의미는 걱정거리가 없고, 그곳에 가면 마음이 착해 지고 편안해지는 그런 곳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요? 며칠 전, 방송인 박수홍(51)이 검찰청에서 형과 대질신문을 받다가 부친으로부터 폭행을 당해 병원으로 후송됐다는 보도를 접했습니다.

 

박수홍은 자신의 친형이자 소속사 대표였던 박모 씨와 긴 법적 다툼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또한 형사 고소와 별도로 지난해 6월에는 86억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이후 검찰 조사 과정에서 추가 횡령 정황이 발견됐다며 손해배상 요구액을 116억 원으로 늘렸습니다.

 

이쯤 되면 가족이 아니라 모두 지옥의 악마일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금은보화가 쌓인 곳이 결코 천국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금은보화는 행복도 주지만, 없는 분들보다 더 많은 걱정을 하고, 불안한 부분이 많아져 행복보다는 불행을 가져올 공산이 큽니다.

 

또한 원하지 않는 일을 하는 장소도 천국일 수가 없습니다. 내 마음에 불만이 차기 때문입니다. 또 성공만을 위해 달려가는 장소 역시 천국이 아닙니다. 천국은 향긋한 아기 냄새가 나는 곳,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곳. 좋아하는 일이 있는 곳, 행복한 취미가 있는 곳, 소박한 행복이 있는 바로 그곳이 극락이고 천국일 것입니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고, 하나를 잃으면 하나를 얻는 게 우리네 삶인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비관주의자는 잃은 것에 관심을 두고, 낙관주의자는 얻은 것에 관심을 둡니다. 작은 차이이지만 한쪽은 불행해지고, 다른 쪽은 행복입니다.

 

그럼 천국과 극락은 어떤 곳일까요?

옛날 어느 승려가 스승에게 물었습니다. “스승님, 천당과 지옥이 과연 있습니까?” 그러자 선사는 “지옥에 들어가면, 그 앞에 긴 밥상이 있고 그 위에 산해진미가 쌓여 있다. 하지만 이 사람들 어깨에 팔 길이만 한 젓가락이 달려있어 그것이 휘어지질 않아 밥을 못 먹고 있다, 이곳이 지옥이다.”

 

“그럼 천당은 무엇입니까?” “여기에도 역시 긴 밥상 위에 산해진미가 쌓여 있고, 이들의 어깨에도 휘어지지 않는 팔 길이만 한 젓가락이 달려 있지만, 이들은 긴 젓가락을 가지고 서로 음식을 먹여 주고 있지.”

 

이렇게 지옥에 있는 사람들은 자기 입에다 음식을 넣으려고만 하니 먹을 수가 없지만, 천당에선 서로 먹여 주고 있어 먹을 수가 있다는 것이지요. 이게 바로 천당과 지옥의 차이입니다. 결국, 천당과 지옥이 따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우리의 마음가짐과 처신에 따라 지금 서 있는 이곳이 천국이 될 수도 있고, 지옥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을 믿고 복종하게 되면 천당에 갈 수 있다 하고, 불가(佛家)에서는 중생의 마음에 집착을 버리고, 보살(菩薩)처럼 살면 극락에 간다고 하지요. 그리고 기독교에서의 천국은 도덕적 복종을 통해 영원한 삶을 추구하는 삶이지만, 불가에서의 극락은 이기적 욕망에서 벗어나 스스로 보살이 되어 가는 이타적인 삶의 세계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불가는 극락 가기 위해 불교를 믿는 게 아니라, 스스로 깨달아 일인칭의 ‘나’가 사라지고 부처님처럼 이인칭이 되고 삼인칭이 되어 가는 자각과 수행의 종교이지요. 그러기에 불가에서의 극락은 고통 세계에서의 해탈(解脫)입니다. 마치 바람이 타고 있는 불길을 끄듯, 미혹과 집착에서 오는 욕망과 번뇌의 불길을 꺼서 모든 번뇌가 소멸한 열반(涅槃)의 경지, 그리하여 괴로움과 속박에서 벗어나 더없이 즐겁고 청정한 열반을 일컫는 것이지요.

 

결국, 천당과 지옥이 따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우리의 마음가짐과 처신에 따라 지금 서 있는 이곳이 천국이 될 수도 있고, 지옥이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을 믿고 복종하게 되면 천당에 갈 수 있다 합니다.

 

하지만 불가에서는 중생의 마음인 집착을 버리고 보살처럼 살면 극락에 간다고 하지요. 그러니까 기독교에서의 천국은 도덕적 복종을 통해 영원한 삶을 추구하는 삶이지만, 불가에서의 극락은 이기적 욕망에서 벗어나 스스로 보살이 되어 가는 이타적인 삶의 세계를 말합니다.

 

그러기에 불가에서는 극락 가기 위해 불법(佛法)을 믿는 게 아니라, 스스로 깨달아 일인칭의 ‘나’가 사라지고, 부처님처럼 이인칭이 되고 삼인칭이 되어 가는 자각과 수행의 종교인 것입니다.

 

그래서 불교에서의 극락은 고통 세계에서의 해탈(解脫)입니다. 마치 바람이 타고 있는 불길을 끄듯, 미혹(迷惑)과 집착에서 오는 욕망과 번뇌의 불길을 꺼서 모든 번뇌가 소멸한 열반의 경지, 그리하여 괴로움과 속박에서 벗어나 더없이 즐겁고 청정한 열반을 얻는 것이지요.

 

어떻습니까? 지금 괴로움과 집착에서 벗어나 해탈의 경지에서 극락 생활을 하고 있는 가요? 아니면 아직 욕망과 번뇌의 불길 속에서 몸을 태우고 계시는 가요!

 

단기 4355년, 불기 2566년, 서기 2022년, 원기 107년 10월 26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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