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와 관련하여 특히 인도에서 발견 된 '0(零)'이라는 숫자가 그 주장을 뒷받침을 해 주고 있습니다. 인류가 만일 '0(零)'을 찾아내지 못했다면 1에서 9까지의 숫자만으로 큰 수, 큰 돈, 많은 사람 등을 나타낼 때 아주 복잡한 방법을 써야만 했을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우리가 쉽게 쓰고 있는 덧셈, 뺄셈, 곱셈, 나눗셈이나 제곱근 등은 쓰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생활을 결정짓는 컴퓨터는 당연히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수학과 천문학이 발달했던 고대 그리스인들은 아무 것도 없는 상태인 '무(無)'와 '0(零)'이 같다고 여겨 '0(零)'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더욱이 '수'라는 개념이 처음 등장할 무렵 사람들은 '0(零)'의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사과를 두 개 가지고 있다"고 말할 기회는 있지만, 만약 사과가 없다면 "나는 사과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말하면 되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그 당시 사회 분위기는 진공을 인정하는 부류가 있었지만 진공과 '0(零)'을 인정하면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무신론으로 내몰렸습니다.
따라서 아리스토텔레스를 필두로 한 진공을 인정하지 않는 주장이 그리스의 사상을 지배했으며, 이러한 사상은 로마 제국까지 이어져 서양에서는 약 천년 동안 진공과 '0(零)'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고대 그리스에서 거부당한 '0(零)'은 7세기경 인도에서 꽃을 피우게 됩니다. 당시 인도인들은 우주가 무(無)에서 생겨났고, 그 크기가 무한하다는 사상을 숭배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서기 628년, 인도의 수학자인 '브라마굽타'는 세 가지 가정을 설명하였는데, 첫째 '0(零)'은 동일한 2개의 수를 뺄셈하면 얻게 되는 실제적인 숫자(2-2=0)라고 칭합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아무것도 남지 않은 무(無)의 상태를 일컫는 것이며, '0(零)'이 실존하는 숫자라고 주장을 한 것입니다. 둘째, 원래 1부터 9까지 각자의 수를 나타내는 숫자가 있었는데, 여기에 '0(零)'의 발견으로 비로소 비어있는 자릿수를 표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를 통해서 각 숫자가 어디에 놓이는지 그 자리에 따라서 값을 나타내는데, 2104년의 '0(零)'이 2014로 옮겨가면 값이 크게 달라지는 것을 말합니다. 여기서 '0(零)'은 상을 나타내는 수단으로 쓰입니다. 셋째는 어떤 숫자에도 '0(零)'을 곱하면 그 값이 '0(零)'(7×0=0)이 됩니다. 이것은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0(零)'의 작용에 대한 설명입니다. 비어있음에도 모든 것과 작용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숫자 ‘0(零)’의 발견은 세계 수학사를 뛰어넘어 인류의 생활에 있어서도 굉장히 빛나는 업적이었으며, 이는 현재도 우리 생활의 깊숙한 곳까지 자리 잡고 있습니다.
사실 '0(零)'은 불교에서 모든 가르침을 엮어 주는 기본 틀인 공(空)의 다른 표현입니다. 그처럼 공은 공간적으로 텅 비었다거나 숫자적으로 없다는 뜻이 아니라 고정된 가치가 없어서 늘 변한다는 뜻을 말하는 것입니다. 불교에서 주로 다루는 공사상의 위대성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출처 : 김해일보(http://www.gimhae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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