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KBS의 '한국의 유산 견문록'은 개인재산을 털어 우리 문화재를 지켜낸 간송(澗松) 전형필(全鎣弼)선생의 업적을 소개하고 있다.
간송은 지금의 종로4가동, 예지동, 인의동에 걸쳐 있던 마을 배오개 일대의 상권을 장악하고 땅부자이기도 했던 부호의 아들로 태어나, 일본 와세다대 법학부 3학년 때 연간 수확량이 10만 석에 달하는 방대한 토지를 상속받았다고 한다.
간송은 대학 졸업 후, 휘문고 스승이었던 춘곡(春谷) 고희동(高羲東)과 독립운동가 위창(葦滄) 오세창(吳世昌)의 영향을 받아 일제의 식민 통치 아래 말살돼 가는 민족정기를 되살리기 위해선 우리 민족 문화의 결정체인 미술품을 한 곳에 모아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민족 문화재 수집에 나섰다.
간송의 재력과 위창의 탁월했던 감식안(鑑識眼)이 보태지고, 춘곡 등 많은 지식인들의 후원 속에 문화재 수집은 순조롭게 이어졌다.
어느 정도 문화재들이 모이자 그는 당시엔 한적했던 성북동에 있던 북단장(北壇莊)을 사들여 그 곳에 보화각(葆華閣)이라는 국내 최초의 사립박물관을 설립했다. 보화각은 나중에 간송미술관으로 이름을 바꿨다.
간송은 서성(書聖)으로 일컬어지던 김정희(金正喜)와 화성(畵聖) 정선(鄭敾)의 작품을 집중적으로 수집했으나 심사정(沈師正), 김홍도(金弘道), 장승업(張承業) 등의 작품과 고려 및 조선의 자기와 불상 등에도 관심을 두었고, 우리 미술사 연구에 도움이 되는 인접 자료인 중국 역대 미술품을 수집하는 것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수집한 문화재 중에서도 가장 가치가 높은 것은 국보 70호이자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인 훈민정음 해례본이다.
이 해례본을 손에 넣은 과정에 대한 일화가 남아있다.
우리 문화사 연구에 필요한 전적을 수집키 위해 1940년부터 관훈동에 있던 한남서림(翰南書林)을 인수 운영하기도 했던 간송은 어느 날 서점에 앉아 있다가 바쁜 걸음으로 지나가는 고서중개인을 발견, 그를 불러 세웠다. 어디를 그렇게 바삐 가느냐고 묻자 중개인은 '안동에 훈민정음 해례본을 팔겠다는 사람이 나타났는데 1천원을 달라고 해서 돈을 구하러 가는 중'이라고 대답했다.
당시 1천원은 서울의 큰 기와집을 살 수 있는 거금이었다. 이 말을 들은 간송은 그 자리에서 1만원1천원을 쥐어주면서 '1천원은 당신의 수고비고, 1만원은 훈민정음 해례본 값이니 전해달라'고 했다.
중개인이 '그가 요구한 돈은 1천원'이라고 하자 간송은 '훈민정음 해례본은 1만원 가치가 충분하니 전해주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 한다.
이 대목은 나의 문중(光山 金氏)과도 관계가 있다. 나중에 밝혀진 일이지만 이 해례본은 여진정벌에 공을 세운 우리 문중 어른에게 세종대왕이 내려준 하사품으로 안동시 와룡면 가야리 228에 있는 긍구당(肯構堂) 고택에 보관해오던 가보(家寶)였으나 사위로 들어 온 이용준이 라는 자가 매월당집 등과 함께 빼돌려 팔아먹은 것이라 한다.
간송의 훈민정음 해례본 사랑은 각별해서 6.25가 발발해 피난길에 나설 때 다른 문화재들은 어쩔 수 없이 두고 갔지만 훈민정음 해례본은 오동나무 상자에 넣어 품에 안고 갔다고 한다.
간송은 인재양성에도 눈을 돌려 1940년 6월 재단법인 동성학원(東成學園)을 설립, 재정난에 허덕이는 보성(普成)고등보통학교를 인수, 1945년 10월부터 1년여 보성중학교장을 맡았고, 문화재보존위원회 제1분과위원도 역임했으나 공직에 나가는 것은 꺼렸다고 한다.
1962년 1월, 세상을 떠나자 정부는 그해 8월 대한민국 문화포장, 2년 뒤엔 대한민국 문화훈장 국민장을 추서했다. 그의 자제와 동학들은 북단장에 한국민족미술연구소를 설립, 그가 남긴 연구자료를 토대로 미술사 연구를 활발하게 진행 중이며 간송미술관은 연구소에 부속돼 있다.
간송이 살았던 도봉구 시루봉로 149-18번지에 있는 '전형필 가옥'도 100년 이상 된 한옥에 전형필 선생의 묘역까지 함께 자리해 문화적 가치가 크다는 판단 아래 국가문화재로 등록됐으며, 도봉구청은 그 집을 보수 정비해 공원으로 만드는 계획을 추진중이다.
서울 성북구 성북동 97-1에 있는 간송미술관(02-762-0442)엔 영국인 존 개츠비(John Gadsby)로부터 사들였다는 고려청자 20점을 비롯 국보 제72호인 계미명 금동삼존불입상과 제73호인 금동삼존불감 등 국보 보물급 문화재가 수두룩 하다.
http://arts.search.naver.com/?where=arts_list&query=간송미술관
문화재청 해리티지 채널 7분 다큐를 보면 KBSTV의 한국의 유산 견문록보다는 더 자세한 정보를 보고 들을 수 있다.
http://www.heritagechannel.tv/Video/View.asp?serviceMenuIdx=2&videoIdx=3544
도봉구청이 보수 정비해 공원으로 조성하는 계획을 추진중인 '전형필 가옥'
개인적인 소견 하나를 덧붙이자면... 간송은 '우리 문화재 지킴이'로도 존숭돼야 하지만 그것 말고도 인간적으로도 참 멋진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어마어마한 재산을 정말 값지게 쓴 사람이기 때문이다.
요즘 재벌 2세, 3세 대다수는 부어마 마셔라하며 주색에 빠져 지내거나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골목상권까지 파고드는 부끄러운 짓을 서슴지 않고 있다는 건 세상이 다 아는 일이다.
별 생각 없이 써놓고 보니 내가 큰 실수를 한 것 같다. 그들과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간송을 욕보이는 것과 다름 아닐 것 같아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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