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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세자가 싫어서 거지가 된 양녕대군

강나루터 2015. 11. 22. 19:56

세자가 싫어서 거지가 된 양녕대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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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갑 위주로 쓰고

바르게 인식하고 그것을 향해 간 사람도

갑의 반대편에 서게 되면

여지없이 짓밟아 버리는 것이 역사다.

 

양녕대군이

세자에서 쫓겨난 것은 방탕한자여서

폐 세자가 되었다고 하고

세상은 그리 알고 있다.

 

본인이

왕이 되기 싫어서 그리 된 것이라고는

역사책 그 어느 곳에도 보기 드물다

 

그러나

간혹 조그만 하게

그 아니다는 구절을 볼수 있었다.

 

조선초기에

여러 사건들을 깊이 있게 보면

양녕은

싫어서 그런 욕 먹을 행위를

하였다는 것을 알수있다.

 

조선 건국시 이성계의 장자는

흔히들

술을 너무 많이 마시고

죽었다는 소리만 있는데

그 또한

아버지가 고려의 신민이고

그래서는

안된다는 신념이 있는자 이였다

 

그래서

더러운 세상 속에 빠지지 않을려고

타락한 것이 아닐까 한다.

얼마 전에

양녕대군 책을 읽고

내가본 그리고 느낀 것을

아래와 같이 써본다.

 

 

 

태종은

그의 맏아들 제를

10세 때(1404태종4) 세자로 책봉하였다.

 

그러나

세자는

할아버지 태조는

고려의 신하로서 위화도 회군을 하여

고려 충신들을 죽이고

조선을 세우면서 왕씨들을 수장시킨 것과

 

아버지 태종 역시

왕의 자리가 탐이 나서

어린 이복동생 그리고 최영 정몽주 등

충신들을 죽이고 나중에는

민왕후 중전마저 폐위를 할려고 하였으나

충신 정승의

극구 반대로 하지 못하고

 

개국공신 정국공신인

중전의 형제와 아버지를 죽여

민씨 가문을 멸문으로 만들고

중전의 몸종

그리고 이숙번이 소개한

기생 가희아를

후궁으로 들이고 하는 것 등을 보면서

 

그러면서도

백성들에게 성인군자인체

모범적인 제왕행세를 하는 것 등으로

아버지를 존경하지 않았고

자신도

왕이 되는 것이 싫었다.

 

어찌하면

이 세자라는 감옥에서 벗어나고

왕이 되지 않을려고 궁리 끝에

세자궁에서

건달들을 불러 주연을 벌리고

늙은 재상 곽 중추부사의

어리라는 여자를 데려와서

돌려보내지 않고

동궁에 두고 사냥을 다니고

일부러 방탕한 생활하였다.

 

드디어

18세에 태종에게 폐 세자를 당하고

광주로 추방되어

지금의 남한산성 안에

작은 집에서 지나게 된다.

 

광주 유수의 감시 속에 살아가는

자기가 싫어서

어느 날

자기아내 김씨 부부인과

어리에게도 아무 말 없이 집을 나선다.

 

괴나리 봇짐 하나 메고 삿갓을 쓰고

죽장 망혜로

산성에서 장터로 향했다.

 

무념 무상으로

산수를 보면서 길을 걸었다

해가 저물면 들판에서 자고

해가 뜨면 길을 걷고

산길을 가로질러 강을 건너며

정처 없이 자연인이 되었다.

 

 

 

제왕의 아들로 태어나서

온갖

호강스러운 생활을 하였다고 하지만

욕심 많은 아버지 곁에서

모두가 아첨만하고

이거는 하면 안 되고

저것도 해서도 안되고

감옥 같은 궁중을 떠나니

이렇게 좋은 세상이 있구나 하며

며칠을 걸었다.

 

궁궐이라는

감옥 속에서는 느끼지 못 했던 세상,

하늘을 쳐다보니

양떼 같던 구름이 금세 사라지고 나니

강물 같아 지기도 하고

 

저 멀리 초가집에서는

굴뚝에 연기가 피어 오르고 있었다

그렇게

진종일을 걸었더니 저녁때가 되었고

발이 아프고 배도 고프다.

 

길을 재촉하여 동네에 들어가서

어느 집에 들어가서 과객 노릇을 하였더니

작은 소반에

보리밥과 고추장해서 밥을 주었다

너무나 맛있게 먹었다.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서

골육상쟁도 하는 궁중보다

너무나 훈훈한 정을 느끼며

감사 인사를하고 집을 나서니

주인은

거지에게 날이 저물었는데

밤길 다니지 말고

내집 헛간이 좀 누추하나

쉬어가구려 하였다.

 

그러나

밥 주시는 것도 고마운데

그만 가겠습니다

잠은

아무데서나 가다가 자겠습니다 하였다.

 

시장기가 있었는데

밥을 먹으니 너무 고마운데

잠까지 거기에서 잔다는 것은

양녕에게는 미안하였다.

 

양녕은

촌가에서 나온 후 평생소원이던

막천석지(幕天席地 하늘을 막으로 땅은 자리로)

해볼 심산으로 산길을 따라 올라갔다.

 

삿갓을 벗고

봇짐을 솔가지에 걸고

편편한 바위 위에

두 다리를 주욱 뻣고 누웠다.

 

하늘을 보니

그믐밤 하늘에는 별이 총총 가운데로

은하가 흐르기도 하였다.

 

 

 

지난 동안

궁궐생활도 그렇게 미움으로 가득하였던

아버지 태종의 얼굴도 떠 올랐다.

 

이윽고

오매불망 자기만 바라보고

친정은 멸문되어

부모형제도 없이 혼자가 되어 지나시는

불쌍한 상 왕후 어머니가 생각났다.

 

자기를 보고 싶어 할

피골이 상접한 어머니의 얼굴이 떠올라

그의 눈가를 젖게 만든다.

 

어머니는

치마 두른 여자이지만

대범하고

그 어느 남자보다 강직하고

훌륭한 어머니 몇 아들이 있지만

오직 맏아들

나를 끔직이 여겼던 어머니이시다.

 

상감은

충녕이 보위에 올라서 세종이 되었다.

 

황희정승은 태종의 심중을 읽고

양녕에게 와서

폐세자 될 것을 알려주었고

그때

양녕은 세자로 충녕을 부탁하였다.

 

충녕은 학문을 좋아하고

예지가 비범한 아우인데

그가 보위에 올라서

형제간에 골육의 변이 없고

국태민안 하다면 다행이다

 

그러나

대신들이라는 위인들이

골육의 변을 조장할지도 모른다.

그러다가

잠이 들었다 깨어보니

동이 트는 아침이 되고 있었다.

 

발이 아프고 몸이 으시시하고

의복은 눅눅하고

구중궁궐에 호화로운 생활만하던

그의 몸이 이상하다.

 

솔가지에 걸어둔 삿갓을 쓰고

봇짐도 걸머메고 다시 길을 걸었다

 

저만치 먼곳에 외딴집이 보였다

저기 가서 요기나 하자고

걸음을 재촉하여 가보니 작은 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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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자가 싫어서 거지가 된 양녕대군 (2)

 

양녕은 절이로구나

그래

잠시나마 절에 몸을 의지해보리라

마음먹고 산문 안으로 들어갔다.

 

추녀 끝에 매달린 목어가

바람에 청아한 소리를 낸다

상좌승이 마당을 쓸고 있다.

 

양녕은

스님 절 툇마루에

좀 쉬었다가 가겠습니다.” 하였더니

상좌승이 힐끗 보더니

거지주제에 어디에서 쉬어간다 말이오

않되오.!”하였다.

 

양녕은 그제사

지나가는 과객이 잠간 툇마루에

쉬어가게 하는 것이 어떻냐.”

 

잠시

지난 동안의 행세로

거지라는 것을 깜박하고 좀 크게 대꾸하였다.

 

하던 일을 멈추고

머라꼬 어디에서 빌어먹던 말뼈다구가

이곳이 어디라고 큰소리를 치느냐

여기는 도량이다

과객을 받는 곳이 아니다

빨리 꺼져라!”

 

드디어

여러 상좌승들이 나오고

양녕과

큰소리로 입씨름이 벌어졌다.

 

양녕은

이놈들 불가의 법을 배우고

불경을 공부하는 놈들이

사람대접을 이렇게 할수 있나

하며 대들었다.

 

상좌승들은 떼거리로

이 거지놈이

여기가 어디라고 큰소리냐?” 하면서

빗자루로 양녕을 두들겨 팼다

양녕은 몇대 얻어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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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보전 정문이 열리더니

노스님 한 분이 나타나면서

왠 소란이냐?”하였다.

 

갑자기 모두 머리를 숙이며

웬 걸인이 밥을 달라 하길레

이곳은 도를 닦는 곳이지

과객을 대접하는 곳이 아니다고 하였더니

욕설하고 도로 야단을 치고 하였습니다.”

 

듣고 있던 양녕은

거짓말 하지 말아

내가 언제 밥 달라고 했나

툇마루에 좀 앉자고 하였지.” 하며 소리를 쳤다.

 

비록 삿깟을 쓰고

괴나리봇짐에다가 의복이 남루하지만

어딘지 귀티가 나고

노승이 볼 때는

그냥걸인으로 볼수가 없었다.

 

노스님은

누구와 닮았는 그 사람이

언뜩 떠오르지 않고

우선 안으로 드세요.” 하면서

상좌들에게

저리 물러가거라

찾아오신 손님에게 이거 무슨 실례냐하였다.

빈도의 처소로 가십시다.” 하며

앞장을 서고

양녕은 뒤따라 들어 갔다.

 

서로가

이런저런 사과의 말을 주고받고

노스님은

동자승에게 세수 물을 올리고

저녁 준비를 하라고 하고

거지 양녕을 극진히 대우한다.

 

양녕은

나를 아는 사람이 아닐까

아니면

이렇게 하지 않을 건데

갑자기 불안하였다.

 

 

 

조심을 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보니

그 스님은

무학대사의 후배 설오라는 스님이고

그 절은 수종사이고

효령대군이 석보상절을 쓰기 위해서

설오스님에게 몇 번을 오가며

교우하는 스님이었다.

 

설오 스님은

이자가 얼마 전에 폐 세자가 되었다는

양녕대군이다고 여기고 보니

너무나 효령과 닮았다.

 

저녁상을 물리고

달빛이 밝은 밤이니

우리 시나 한수 지읍시다.” 하면서

노스님이 제의 하였다.

 

거지주제에 시는 무슨 시요.” 하며

사양을 하였는데 노스님은 먼저

古寺危峰下 雍陰細路分 樓臨兩江水帶半山雲.”

<옛절 위태로운 봉우리아래

댕댕이 넝쿨은 그늘지고 작은 길이 나뉘었네

누각은 두 강물에 임했는데

처마끝에는 산 구름이 반 너머 걸렸다.>

하며 설오는 낭낭히 읊었다.

 

그리고는 느닫없이

시를 모르는 빈도도 지었으니

선생도 한수 지어보시오.” 한다.

 

양녕은

거러지를 보고 선생이라니요.”

하면서 사양을 하였다.

그러나

양녕의 시심은 참지 못하고

당구삼년 폐풍월(堂狗三年吠風月)이라고

촌 글방에 빌어먹으러 다니면서

구경하였으니 흉내나 내겠습니다.” 하고

청 좋은 목소리로 낭낭히 읊는다.

 

山霞朝作飯 雍自夜爲燈 獨宿孤庵下 惟存塔一層.”

<아침엔 산에 도는 안개로 밥을 지어먹고

밤에는 댕댕이 넝쿨에 걸려있는 달로 등불을 삼았다

혼자 외로운 암자에 잡니다만 탑 한층이 있을 뿐일세.>

 

설오는 깜짝 놀란다.

보통의 경지가 아니십니다

과연 선생님이십니다.” 고 하면서

설오는 양녕을 다시보고 있다.

 

 

 

별 말씀을요.” 하였더니

설오는

이자가 분명 양녕이다고 여기고

갑자기

지필묵을 가져와서 써달라고 하였다.

밤도 늦었는데 잡시다고 하였으나

한사코 졸라서 써주었더니

벽에 걸어놓고 보겠다고 하면서 함께 잤다.

 

양녕은

자기의 신분이 알려질 것 같아

다음날

아침을 얻어먹고는 갈려고 하니

느닷없이

오늘 효령대군이 오시기로 되어있으니

한번 만나보시지요.” 하였다.

 

아이고

그런 대군님을

저 같은 거러지가 어찌 봅니까.” 하며

절을 나선다.

 

어디로 가십니까?”

거지주제에 목적지가 어디있소,

오라는 곳은 없어도 갈 때는 많습니다.

하하

 

하면서

설오스님이 간곡히 잡는 것을 뿌리치고

서둘러 나와서 정처없이 걸었다.

  by/우서님

 

*다음 <세종초 가짜 양녕대군 소동>으로 이어집니다.

 

 

 
       
                                                                                 

 

 

출처 : 무진장 - 행운의 집
글쓴이 : 유당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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