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의 고향

[스크랩] 도인 구처기(丘處機)가 사람을 구하다

강나루터 2018. 2. 7. 08:27

 

구처기(丘處機)가 사람을 구하다

 

 

구처기(丘處機)는 금나라 시대의 유명한 도사이다. 역사상 그에 관한 많은 전설이 남아 있는데 여러분에게 민간에서 전해지고 있는 구처기가 사람을 구한 이야기를 해보겠다.

 

 

구처기는 도가의 고인 왕중양(전진교 창시인)으로부터 도를 배웠는데 사부의 도법을 전해받은 후 섬서 용문동에서 고생스럽게 몇 년간 수련하여 신통을 얻었다.

 

각설하고 이곳 산아래에 큰 부자가 살았는데 이름은 왕존부라고 했으며 사람들은 그를 금두왕이라 불렀다. 집 마당이 산과 물로 둘러 쌓여 있었으며 문밖에 한갈래 냇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의 집 문밖에 길이가 한 장(3-4미터)이 넘고 높이가 수척이 되는 큰 돌이 있었는데 머리는 크고 꼬리는 작아 마치 사자처럼 생겼다. 때문에 사람들은 "석사자"라고 불렀다.

 

 

왕존부는 비록 재산이 많았지만 마음은 오히려 매우 각박해 줄곧 가난한 사람을 속이고 괴롭혀 땅을 빼앗았다. 그의 집에 노비들 역시 주인의 위세를 빌어 나쁜 짓을 많이 하였다.

 

하지만 선악에는 결국 보응이 있기 마련이라 왕존부 일가는 수하의 사악한 하인들과 함께 머지않은 미래에 홍수를 만나 잠기는 재난을 당하게 되어 있었다.

 

 

왕존부의 집에서 멀지않은 어느 산비탈이 있는데 그곳에 왕존부의 선조가 건립한 관음 사당이 있었다. 그 당시에 주지를 청해왔고 토지를 보시하여 출가인들을 받들었다.

 

그러나 왕존부가 일을 관리할 때에 그는 토지를 회수하고 주지를 쫓아냈으며 다만 불당과 보살상을 아직 무너뜨리지 않았을 뿐이었다. 이 관음 사당은 비록 남았지만 머지않아 황량한 절이 될 예정이었다.

 

 

이때 구처기는 신통력으로 왕존부 일가에 큰 난이 올 것을 알았다. 그러나 그는 생각했다: 왕존부는 비록 주지를 내쫓고 토지를 회수했지만 절이나 신상 神像 을 훼손하지 않았으니 그가 아직 착한 마음이 좀 남아있다고 할 수 있다. 만일 왕존부가 잘못을 고쳐 바로 돌아온다면 이 기회에 그의 전 가족을 구할 수 있겠다.

 

 

그리하여 구처기는 용문동에서 내려와 관음사당으로 들어가 지내며 매일 작은 항아리를 들고 왕존부의 집에 가서 동냥을 했다. 탁발을 며칠간 했는데 아무도 그를 본 척하지 않았다.

 

그저 춘화라는 한 어린 계집종이 그가 몇 번이나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을 보고 견딜 수 없어 몰래 떡을 몇 개 숨겼다가 구처기의 소매에 넣어주며 말했다. "얼른 가세요, 이곳은 좋은 곳이 아니예요."

 

 

또 이틀이 지나 구처기가 탁발을 하러 왔을 때 마침 왕존부가 문앞에 서 있었다. 구처기는 본래 그를 점화하러 온 것이었는데 오는 그가 문 앞에 서 있는 것을 보고 다가가서 말했다:

 

 

"이름을 탐내고 이익을 위하며 되돌아 보지 않다가

하루 아침에 무상하면 만사가 다 그치는 것이요.

금은보옥이 있어도 가지고 가지 못하며

헛되게 남겨 두 눈에 긴 눈물만 흘리네"

 

 

그러나 어찌 알았으랴, 왕존부는 갑자기 대노했다: "너 이 땡중아, 어서 헛소리를 걷어치우시오. 난 평생 불법을 믿는 사람이 아니니 빨리 여기서 비키지 않으면 흠씬 얻어맞을 줄 아시오!"

 

 

구처기가 말했다. "빈도는 일부러 당신 댁에 탁발을 하러왔으니 이 참에 좀 베푸시는게 어떻습니까."

 

 

왕존부가 문밖을 보니 말똥을 줍는 광주리에 말똥이 들어있고 옆에는 말똥을 퍼는 삽이 있었다. 그는 광주리로 다가가서 말똥을 한 삽 퍼서 구처기 면전으로 다가가서 말했다.

 

 

"당신이 나더러 베풀라고 하니 이 물건을 당신에게 주면 어떨꼬?"

 

구처기는 그의 본성이 어떤지 보려고 탁발하는 작은 항아리를 앞으로 내밀었다. 뜻밖에 왕존부는 정말로 말똥 한 삽을 그 속에 쏟아 부었다. 구처기는 이 모양을 보고 말했다. "이 말똥을 내가 어디에 쓰겠소?"

 

왕존부가 말했다. "이 말똥은 모두 우리 집 하인이 주워온 것이니 오늘 내가 괜히 보시한 것으로 치시오."

 

구처기는 말을 듣고 입으로 좋구나, 좋아! 했으며 왕존부는 여러 하인들과 함께 껄껄 웃었다. 온가족은 이 이야기를 듣는 사람마다 모두 웃었으나 춘화만이 마음이 유쾌하지 못했다.

 

 

어느 날 춘화는 다른 하인들이 모두 산으로 일하러 간 것을 보고 몰래 몇 개의 찐빵을 소매에 숨기고는 그 절에 가서 도인에게 주려고 했다. 마침 그때 구처기가 우연히 대문밖에 서 있다가 만났고 춘화는 그 빵을 그의 품에 밀어넣었다.

 

구처기는 말했다. "오늘은 탁발하러 온게 아니오. 중요한 말이 있는데 반드시 기억해야 하오. 만일 문 앞에 석사자의 눈이 빨갛게 되면 얼른 산위로 올라가 관음사당으로 피하시오. 그래야만 걱정이 없을 것이오." 구처기는 말을 마치자 표연히 떠났고 용문동으로 돌아와 계속 고되게 수련했다.

 

 

춘화는 이 말을 마음에 기억하고 매일 아침 저녁 두 번 나와 석사자를 보았다. 이와같이 하기를 수개월이 지나자 어느 목동이 이것을 알고 춘화에게 물었다.

 

"넌 매일 나와서 석사자를 쳐다보는데 무엇 때문이냐?" 춘화가 대답했다. "지난 번에 탁발하러 온 도장이 내게 말해주는데 석사자 눈이 빨갛게 되면 얼른 관음사당으로 가서 피해야 큰 난을 면할 수 있다고 하셨어."

 

 

목동은 듣고서 우습다고 생각했다. 하루는 그가 춘화를 놀려주려고 몰래 붉은 흙덩이를 가져다 오후에 소를 끌고 돌아오는 길에 석사자에 기어 올라가 붉은 흙으로 석사자의 두 눈을 빨갛게 칠했다. 다 칠하고 나서 내려와 얼른 피하고는 한쪽에서 그녀가 어떻게 하는지 보았다.

 

 

석양 무렵이 되었다. 춘화는 집안에 있는데 마음이 갑자기 울렁거려 앉아있기가 불안했다. 마음 속으로 석사자의 눈이 붉어지지 않았는가 하였다. 그녀는 급히 나와 보니 과연 석사자의 두 눈이 붉게 되어 있었다. 그녀는 크게 놀라 황망히 관음사당으로 뛰어갔다.

 

목동은 그녀가 사당으로 뛰어가는 것을 보고 뒤따라가며 달리는 한편, 희희덕 거리며 고함을 쳤다. "빨리 뛰어요, 재난이 옵니다." 당시 왕존부의 많은 식구들은 마침 밭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중이었는데 목동을 마주치자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목동이 경과를 한번 말하자 뭇사람들은 모두 웃으며 왕존부의 집으로 돌아가 밥을 먹었다. 오직 왕흥, 왕량 두 사람만 목동을 끌고 춘화를 찾으러 갔다. 춘화에게 석사자 눈이 붉은 것은 목동이 한 짓임을 알려주고 춘화에게 돌아와 밥을 먹으라고 할 참이었다.

 

세 사람이 절간에 들어서서 막 그녀에게 말을 하려는데 갑자기 맹렬하게 우레가 울리고 산이 요동을 치더니 삽시간에 광풍이 사방에서 일어나 검은 구름이 가득 덮히고 큰비가 쏟아졌다. 목동은 비가 얼마나 많이 오는지 보려고 밖으로 뛰어나갔는데 눈을 뜰 수 없었다.

 

갑자기 번개가 치며 뇌성이 귀를 때렸다. 놀란 목동이 절간안으로 뛰어들어와 신상 아래에 쪼그렸다. 이 비는 하루밤이 지나서야 멈췄는데 사람들은 모두들 이렇게 큰비는 본적이 없었다고 했다.

 

해가 밝자 비가 그쳤다. 사람들이 나가서 보고는 그 자리에서 놀라 펄쩍 뛰었다. 어젯밤의 큰비에 산 홍수가 터져 왕존부의 집이 전부 홍수에 쓸려가 버렸고 폐허만 거품속에 남아 있었다.

 

홍수가 가라앉을 때를 기다려 사람들이 폐허에 가서 보니 왕존부 집의 온 식구와 원내에 살던 하인들은 집이 넘어져 깔려죽은 것이 아니라 바로 큰물에 빠져죽은 것이었으며 한명도 살아남지 못한 것이었다. 춘화는 이를 보고 마음이 아파 눈물을 흘렸다.

 

마을의 다른 사람들도 와서 보고 탄식했다: "하늘도 눈이 있구나!" 또 춘화를 보고 함께 울며 물었다. "네 주인집의 온 가족이 다 전멸했는데 너희들 몇 명은 어떻게 요행히 살아 남았느냐?"

 

 

춘화는 도장이 부탁한 말을 그들에게 한번 설명해주었다. 뭇사람들은 분분히 의논하며 모두들 말했다. "왕존부의 악행이 가득찼다. 그 도장은 필히 신선이며 미리 와서 점지해준 것이다.

 

그가 기어코 마음을 돌이키지 않았기에 이 난을 당한 것이다. 너는 비록 종이지만 오히려 착한 마음이 있으니 너를 구출하였고 또 이 몇 명이 죽지 않게 했다. 보아하니 인생은 세상에서 늘 좋은 일을 해야 큰 난이 왔을 때 구함을 받을 수 있다."

 

 

사람들이 춘화에게 이 도장이 어떻게 생겼느냐고 물었고 알아보니 구처기를 본적이 있는 어떤 사람이 바로 구처기가 춘화를 구한 사람이라고 했다.

 

 

이에 이르자 구처기는 그곳에서 명성이 크게 떨쳤다. 용문동의 정적도 파괴되었고 이름을 흠모하여 방문하는 사람이 갈수록 많아졌다. 위로는 대신, 왕, 비에서 아래로는 평민백성에 까지 늘 끊임이 없었다.

 

또 많은 사람이 그를 스승으로 모시고 도를 배우러 찾아왔다. 춘화 등도 그의 제자가 되었다. 구처기는 춘화에게 이진다라는 이름을 지어주었고 왕흥은 왕지한, 왕량은 왕지일이라는 이름을 지었다.

 

 

 

정견문장: http://www.zhengjian.org/zj/articles/2009/7/22/60687.html

 

출처 http://weixing.tistory.com/459

출처 : 명상의 세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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