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전 이야기

[스크랩] Re:금강경강의 해설

강나루터 2018. 3. 19. 08:31

序. <금강경(金剛經)> 어떤 경전인가?

 

『금강경(金剛經)』은 많은 불교의 경전 가운데에서도 『반야심경』과 함께 가장 널리 읽혀지고 있는 경전이다.

 

부처님께서 열반하시고 가섭(迦葉)과 아난(阿難) 등 부처님의 제자들이 모여 그동안 부처님께서 말씀하여 주신 수많은 법문들을 결집(結集)하게 된다.

처음 결집할 때는 글로 남기지 못하고 부처님 법문을 옆에서 가장 많이 들은 아난 존자를 비롯하여 한 사람이 먼저 말하고 다른 대중들이 부처님 가르침이 틀림없다고 결정한 게송(偈頌)들을 모든 대중들이 함께 합송(合誦)하여 외움으로써 결집을 이루었으나, 후대에 오면서 글로 남기어 온전한 결집이 이루어지게 된다.

 

그렇게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을 그대로 외고 합송한 것들이 후대에 경전으로 편집이 되었으니 이것이 『아함경』이다.

『아함경』이 부처님의 육성에 가장 가까운 경전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부처님 열반 이후 약 500여 년이 지나면서 『아함경』의 가르침을 기초로 하여 다른 수많은 대승경전들이 나오게 된다.

이러한 대승경전들 가운데에서 가장 초기에 성립된 경전이 600권이나 되는 『반야경』이다. 이 『반야경』을 토대로 하여 『법화경』, 『화엄경』 등 다른 여러 대승의 경전들이 성립된 것이다.

 

『금강경』은 600권의 『대반야경』 중 577부에 들어있는 「능단금강분」을 말하며 그 구체적 명칭은 『금강반야바라밀경』 혹은 『능단금강반야바라밀경』이다.

이 『금강경』은 600권이나 되는 『반야경』 가운데에서도 경의 중심이 되는 사상인 반야사상, 공사상에 대한 핵심적 가르침을 짧고 간략하게 담고 있기 때문에 그 방대한 분량인 『반야경』을 공부하기 어려운 사람들에게 널리 두루 읽혀지는 경전인 것이다.

 

이 『금강경』도 중국에서 여러 사람들에 의해 번역되었지만 현재 우리들이 독송하며 공부하고 있는 『금강경』은 요진의 구마라집이 번역한 번역본이다.

구마라집의 번역본이 중국에서도 한국에서도 가장 널리 읽혀지고 있다.

 

앞으로 전개될 『금강경』 강의에서도 물론 구마라집의 번역본을 기본으로 하여 설하게 될 것이지만, 구마라집의 번역본은 산스크리트 원전과 비교해 볼 때 다소 미흡하거나 내용이 빠져 있는 부분도 더러 있기 때문에 경전의 내용에서 꼭 필요한 부분이라면 산스크리트 원문 및 현장스님의 번역본을 비교하면서 경전을 강의 해 가고자 한다.

 

그러다 보니 해석면에서 기존의 구마라집 본 해석과는 조금씩 다른 부분들도 눈에 뜨일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 부분은 산스크리트 원문과 현장스님의 번역을 비교해 가면서 그 이유를 밝히면서 강의를 풀어가도록 하겠다.

 

산스크리트 원문은 그동안 이기영 박사님을 비롯하여 두어 분께서 구마라집본과 함께 비교하기 쉽게 해석을 해 놓았으며, 특히 송광사, 칠불암 등 전국의 제방 선원에서 정진하시다가 10여 년 인도에서 유학하여 산스크리트와 빠알리, 아르다마가디를 배우고 돌아오셔서 빠알리 삼장의 번역작업에 몰두하고 계신 각묵스님께서 ‘01년 9월 『금강경』 산스크리트 원전 분석 및 주해를 구마라집본 및 현장본과 함께 비교 분석하여 설명해 놓은 『금강경 역해』라는 책을 내어 놓으셨기에 그 원문을 비교 분석하여 공부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음을 밝혀 둔다.

 

『금강경』은 전체 32분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처음부터 그렇게 나뉘어진 것은 아니고 인도의 무착이나, 세친, 중국 양나라의 소명태자 등이 세분하여 이해하기 쉽도록 따로이 분을 나누어 놓은 것이다.

그 가운데 지금의 32분 분류는 양나라의 소명태자의 분류법을 따르고 있는 것이다.

 

 예로부터 중국의 육조 혜능 스님, 우리나라의 함허스님을 비롯한 수많은 선지식, 스님들께서 『금강경』에 주석을 달고 쉽게 해석을 한 책들은 너무나도 많다.

그만큼 『금강경』은 불교를 공부하는 모든 수행자들에게 저 언덕에 이르는 뗏목과도 같은 소중한 경전이다.

 

 


금강반야바라밀경, 경전 제목의 의미

금강(金剛)이란 다이아몬드를 말한다.

금강, 즉 다이아몬드는 금강불괴(金剛不壞)라고 하여 세상에서 가장 단단하여 결코 깨어지지 않으며 그렇기에 그 어떤 변화 속에서도 파괴되지 않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또한 희고 투명하여 청정하고 반짝이는 광명으로써 빛을 내뿜는다는 특성을 아울러 가지고 있다. 이와 같은 금강의 특성을 비유로 하여 경전의 제목으로 삼은 것이다.

 

다시 말해 이 금강이란 불교적 의미로 첫째로, 불성(佛性)을 의미하며, 둘째로, 반야(般若)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우리의 본래자리 불성은 그 어떤 세상의 변화 속에서도, 성주괴공하고 생주이멸하는 이 우주의 끊임없는 변화 속에서도 결코 깨어지거나 파괴되는 일이 없으며 온전히 투명하여 청정하고 온 우주 법계에 대 광명의 빛을 은은하게 놓고 있다.

그러한 불성의 특성을 금강에 비유를 한 것이다.

 

또한 불성을 온전히 깨달을 수 있는 지혜, 즉 반야를 금강에 비유한 것이기도 하다. 불성이란 본체를 의미하는 것이고 반야란 본체를 체득하는 지혜이므로 둘은 서로 다른 것이라 할 수는 없다. 본래 우리 안에는 반야 지혜가 숨어 있어 금강과도 같이 결코 파괴되지 않으며 청정하고 늘 우리 안에서 광명의 빛을 놓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비유를 든 것이다.

반야(般若)는 범어로 프라즈냐(Prajna)라고 하며, 팔리어로는 ‘판냐’라고 한다.

반야는 바로 팔리어 ‘판냐’의 음역어로써, 그 발음만 그대로 따온 것일 뿐 한자로는 특별한 뜻이 없다.

범어 ‘프라즈냐’를 중국말로 옮기기에 적절한 단어가 없었기 때문에, 그 의미가 퇴색됨을 우려해 따로 번역하지 않고 그대로 음역하여 ‘반야’라고 쓰고 있는 것이다.

 

도대체 무슨 의미이기에 번역이 그리 어려웠을까 궁금할 것이다. 반야를 굳이 우리가 쓰고 있는 용어로 해석해 본다면 ‘지혜’라는 말이 가장 가까운 의미가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보통 사용하는 지혜라는 의미 가지고서는 아무래도 반야를 대용하기에 많은 아쉬움이 있었던 것이다.

 

반야는 우리들 범부의 사량 분별로써 언뜻 이해하기 쉽지 않은 단어다. 지혜라고 하면 우리들이 머릿속에 벌써 선입견이 생긴다. 그러나 반야는 그런 우리들 관념 속의 지혜가 아닌 우리들의 사량 분별을 뛰어 넘는 무분별의 지혜이고, 쉽게 말해 ‘최고의 지혜’ 앞에서 말한 금강, 즉 불성을 깨쳐볼 수 있는 부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니 번역자의 입장에서 반야의 그 본 뜻이 퇴색됨을 우려하여 쉽게 ‘지혜’라고 번역하지 않은 그 속뜻이 헤아려 질 것이다.

바라밀은 범어로 ‘파라미타(Paramita)'이며, 이 또한 중국에서 적절하게 옮길 만한 번역어가 없었기에 그대로 발음만을 따 와 바라밀다, 혹은 바라밀로 번역해 놓았다. 반야심경에서는 바라밀다로 번역하였고, 여기 금강경에서는 바라밀로 번역을 해 놓았다.

 

바라밀다, 바라밀을 해석해 본다면 ‘도피안’, ‘도무극’, ‘사구경'으로, ‘바라’는 ‘저 언덕(피안)’을 ‘밀다’는 ‘건넌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즉, ‘저 언덕으로 건너간다’는 의미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언덕’에서 부처님 깨달음의 세계인, 금강 반야의 세계인 ‘저 언덕’으로 건너가는 것을 바라밀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 언덕이라는 것은 우리가 사는 이 세상, 즉 차안으로 아직 깨닫지 못하여 탐진치 삼독에 물든 이들이 살아가는 세상이다. 다른 말로 사바세계, 즉 인토로 탐진치 삼독의 번뇌를 참아내야 하고, 오온으로 비롯되는 온갖 고통을 참아내야 하는 세계다. 또 다른 말로 예토라 하여 삼독심에 물들어 오염된 땅을 말하기도 한다. 저 언덕, 피안이란 차안의 상대되는 개념으로 탐진치 삼독심에서 벗어나고 신구의 삼업이 청정하여 모든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난 청정한 세계, 즉 정토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깨달음의 세계, 부처님의 세계를 의미한다.

경이란 수트라(Sutra)로써 원 의미는 ‘실’ ‘줄’이라는 의미로 옛날에 경서들은 보통 대나무나 나무껍질 등의 판에 적어 여러개의 실로 묶어 만들었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일반적인 의미로는 이런 경을 연결하여 묶어주는 실처럼, 깨달음에 이르게 하는 소중한 깨달음의 내용들을 이어놓은 실이라는 뜻으로 해석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상과 같은 의미를 가지고 금강반야바라밀경이란 경의 의미를 해석해 보면 ‘금강과도 같은 지혜로 저 언덕에 이르는 가르침들을 설해 놓은 경’ 이라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출처 : 무진장 - 행운의 집
글쓴이 : 견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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