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의 글>
正道정도를 걷는 천근의 무게
성 기 조 (시인, 한국문인협회 명예회장)
조선조 5백 년에 최연소로 대과에 급제한 사람은 강화 사람 李建昌이건창(1852-1898)이다. 고종 때, 강화섬에서 치뤄진 별시 문과에서 급제했는데 그의 나이, 열네 살이었다. 천재요, 神童신동이요, 재주꾼이었다.
당시 조정에서는 이 일을 놓고 많은 논란이 벌어졌는데 너무 어린 나이에 급제했기 때문에 학문을 더 익혀야 한다고 결정하고, 4년 간 공부를 더 하게 하다가 18세 때에야 홍문관 벼슬을 제수하였다. 사람을 재주만으로 판단할 수 없다는 생각이요, 세상물정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천근의 무게를 가진 인재 발탁법이다.
예전에는 인물을 키우고 단련을 시켜서 나라 일을 맡겼기에 지도자나 백성이나 조급하지도 않았고 사사롭게 이해에 얽혀 경망하게 판단하지도 않았다. 사람이나 나라나 모두 格격이 있었다. 개인에게는 인격이요, 나라에는 國格국격이 있었다.
역시 조선조 때 이야기지만 李德馨이덕형(1561-1613)도 서른 한 살에 예조참판과 대제학을 겸직했다. 무척 빠른 승차요 큰 벼슬이었다. 조선 5백 년에 처음이요 마지막이었지만 대제학에 천거될 때 金貴榮김귀영은 찬성하지 않았다. 나이가 어리기 때문이었다. 그의 말은 어린 나이에 연장자보다 먼저 대제학에 이르니, 재주와 덕이 노숙해지기를 기다리는게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이 말을 들은 이덕형은 기뻐하며 감사했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젊은이들의 빠른 출세를 보면서 한번 쯤 생각해 봄직한 일이다. 일찍 높은 벼슬에 올랐어도 남긴 일은 많지 않다. 그러나 요즘은 예순 다섯만 먹으면 인생에서 퇴출이라도 시키듯 돌보지 않고 내치는 세상이 되었으니 노인들의 지혜와 덕은 아예 쓸모가 없어졌다. 젊어서 좋고 싱싱하기 때문에 보기에도 신선하다. 그러나 어딘지 모르게 불안하게 느껴지는 부분을 보완할 방법은 없다. 지긋한 나이에 후덕한 행동으로 상대를 배려하는 무게와 격이 없기 때문이다.
목숨 걸고 경쟁하고 죽자 살자 싸우기만 하는 세상에서는 좀 느리더라도 깊이 있는 생각을 한 뒤에 결정하는 지혜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도 지금 사람들은 놀랄만한 일을 벌이지 않고는 아무 일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묵묵히 자신이 맡은 일만 해나가는 사람들을 가리켜 무능하다거나 일을 하지 않는다고 의심을 하는 세상인지라 자극적인 일에만 반응하게 된다. 남들이 튀니까 자신도 튀어야 한다는 생각이 팽배한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남이 안하는 일을 해야 된다는 생각 때문에 설익고 덜 된 행동이 판치는 세상이 되었다. 망둥이가 뛰니까 꼴뚜기도 뛴다는 속담을 생각하게 한다.
대학들이 앞 다투어 영어강의 숫자를 늘리려고 안간힘을 쓰는 일은 급기야 우리의 고전문학까지 영어강의로 하게 된다니 ‘청산리 벽계수야 쉬이 감을 자랑마라’를 영어로 듣는다면 어떨지 궁금하다. 직장마다, 단체마다, 어디를 막론하고 나이 먹은 사람을 홀대하는 풍조가 만연되어 권위를 잃는 일이 한두 곳이 아니다. 권위를 잃으면 싸움이 일고, 싸우면 풍비박산이 되는 이치를 깨우치지 못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백범 김구는 그의 저서 <백범일지>에서 ‘집안이 不和불화하면 망하듯 나라 안이 갈려서 싸우면 망한다. 우리의 용모에서는 和氣화기가 빛나야 한다’고 말했다. 화기는 즐겁고 조화로운 기운이다. 얼굴에서 즐겁고 조화로운 기운이 솟구친다면 음모와 모략, 반대와 갈등이 사라질 것은 뻔하다. 백범은 이렇게 알기 쉽게 우리들을 깨우쳐 주었다.
2010년 이다. 한 해의 첫 날, 우리들은 올 해를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깊이 생각해야 한다. 밀어내고, 쫓아내고, 못살게 만드는 것들이 모두 자신이 더 잘살아보자는 욕심에서 시작되었다면 결과는 싸움뿐이고 불화로 이어져 화기를 잃게 된다.
비운에 간 민족의 지도자 백범도 통일을 위해서는 좌우를 아울러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좌파적 시각을 가진 지도자로 구분되어 결국 바른 평가를 받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슬픈 일이다. 결국 바로 판단하는 문화가 없기 때문이다. 너그럽고 유연한 문화적 감각으로 모든 것을 생각 한다면 바른 길이 있지만 편견과 아집, 나만을 위한다는 생각에서 보면 판단은 굴곡되고 어지러워지며 결국은 나라까지 망하게 된다. ‘오직 한없이 갖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라 외친 백범의 생각을 마음속에 새기고 살아가는 게 바른 길이 아닐까? 곳곳에서 싸우는 소리가 들리는 것은 무게와 격을 갖추지 못한 사람이 자리다툼에서 출발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새해에는 이런 자들이 말끔히 사라졌으면 한다. 그것만이 正道정도를 가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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