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이야기

새내마을’은 선비촌의 원조

강나루터 2020. 5. 3. 06:15



500년 역사를 간직한 ‘새내마을’은 선비촌의 원조
우리마을 탐방[36]단산면 사천1리
[498호] 2014년 11월 27일 (목) 15:58:59이원식 기자 lwss0410@hanmail.net
  
▲ 새내마을 전경
  
▲ 성황당

의연히 선비의 길을 걸어간 달성서씨 사람들
분파(分派)·이거(移居) 없이 500년 세거한 전통마을

단산면 사천1리(새내) 가는 길
서천교에서 회헌로를 따라 순흥 방향으로 향한다. 귀내-장수고개-피끝을 지나 조개섬 앞 회전교차로에서 단산방향으로 우회전하여 사천교를 건너면 5백 마지기가 넘는 새내들이 펼쳐진다. 들판 사이로 난 도로를 따라 가다가 낮은 언덕을 오르면 단산면 표지판이 나오는데 여기서부터 단산면 사천1리 ‘새내’이다.

소백의 정기가 동남쪽으로 뻗어오다가 이곳에 이르러 장원봉(壯元峰)을 우뚝 세웠고, 고치령에서 흘러온 구천(龜川)과 국망봉에서 흘러온 죽계천(竹溪川)이 마을 앞에서 만나니 내(川)는 평사요 산은 낙안이라, 예로부터 이곳을 평사낙안(平沙落雁) 형상을 한 길지라고 했다.

가을걷이가 모두 끝나갈 무렵인 지난 16일 사천1리 노인회관에서 조승덕(67) 이장, 서중일(77) 달성서씨 문중 총무, 정제홍(77) 노인회장, 원옥교(57) 부녀회장 등 마을 사람들로부터 500년 역사만큼이나 긴 이야기를 들었다.

  
▲ 달성서씨 종택

새내마을의 유래
조선 태종 13년(1413) 지방행정구역 개편 때 사천(沙川)과 구고(九皐, 구두들)는 순흥부 동원면에 속했다.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개편 때는 영주군 단산면 사천리가 되었다가 1995년 영주시 단산면 사천리로 개칭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서중일 총무는 “어릴 적 구천(현 사천)에는 넓은 모래사장이 있었고 버드나무가 제방 구실을 하고 있었다”며 “마을 이름이 새내가 된 것은 사천을 우리말로 하면 사내가 되고 사내가 오랜 세월 지나오면서 ‘새내’가 됐다”고 했다.

  
▲ 돈암정

입향조 돈암 서한정
새내마을 입향조는 달성서씨 돈암(遯菴) 서한정(徐翰廷, 1407-1490)이다. 세조의 왕위 찬탈 행위를 부정하고 단종을 위해 절의를 지킨 돈암은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기꺼이 죽음의 길을 택했다. 돈암은 달성 화원 출신이며 성균관 진사 신분으로 유학 중인 선비였다.

그가 47세 되던 해 계유정난(1453)을 당하자 단종과 명운을 함께하는 것이 ‘선비의 길’이라고 믿었고 그 길을 의연히 걸었다. 그는 벼슬길로 나아가려는 꿈을 접고 고향을 떠나 당시 ‘반역의 고을’로 낙인찍힌 소백산 산중 오지인 순흥땅 이곳 새내에 터를 잡았다.

당시에는 아무도 이러한 돈암의 속내를 알지 못했고, 자신도 세상에 그 뜻을 드러내 이름을 얻고자 하지도 않았다.

  
▲ 구고서원과 상절사

구고서원과 상절사
마을 안 쪽 가장 높은 곳에 구고서원과 상절사(사당)가 있다. 구고서원은 1780년(정조 4)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서한정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서원을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구고서원은 선현의 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오던 중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70년(고종 7)에 훼철됐다. 1974년 현 위치에 상절사(象節祠)와 서원을 복설하였다. 당초 이웃 마을인 구구리 도인봉 아래에 건립되었으나 훼철 이후 퇴락해지자 종택이 있는 새내로 남은 건물만을 옮겨 세웠다.

  
▲ 음양천

돈암의 절개를 닮은 음양천(陰陽泉)
돈암의 후손들은 자신들이 충신의 후예라는 점에 대해 대단한 자긍심을 가지고 있다. 그 중심에는 돈암의 절개만큼이나 차고 맑은 석간(石澗) 샘이 있다. 바로 음양천이다. 희한하게도 음양천의 물은 맑은 부분과 뿌연 부분이 반씩 나뉘어 있고 서로 뒤섞이지 않기 때문에 ‘음양’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조선 후기 문과에 급제한 서한정의 후예 서재무(徐在懋, 1841년 문과 급제)는 ‘음양천중수기문’에서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기이하구나, 이 샘물이여! / 맑은 것과 뿌연 것이 반으로 나뉘었네 / 맑은 것은 거울 같고 / 뿌연 것은 하늘의 구름 같네 / 휘저어도 서로 섞이지 않고 / 담으면 고운 무늬가 생겨나네 / 한여름엔 얼음처럼 서늘하고 / 엄동에는 온기가 스며있네 / 오래도록 이 물 맛 전혀 변하지 않으니 / 샘의 근원이 깊고도 멀어서겠지」

  
▲ 대동고택

마을의 노래 동가(洞歌)
전국에 마을 노래가 있는 곳이 얼마나 될까? 새내 마을의 동가는 실제로 주민들에게 교육되고 생활 속에서 불러지는 살아 있는 노래다. 이 노래는 서정순(15년 전 작고) 씨가 산파역을 맡았다. 「1. 소백산 뻗어내려 우리 사천리 / 오백년 역사가진 고향이라네 / 아름다운 산천을 자랑하오며 / 행복을 찾아서 굳세게 나가세 / 2. 학가산 바라보는 우리 사천리 / 죽계수 맑은 물은 흘러서 가네 / 향기로운 향토를 더욱 빛내며 / 희망을 찾아서 씩씩하게 나가세」

  
▲ 동활재

새내의 선구자 서정순 
서정순(徐庭純, 1915-1985)은 계몽주의 사조를 알고 실천했던 혁신 유림이었다. 처가에서 한학을 배웠고 독학으로 신학문을 공부했다. 그는 지역 최초 농협운동의 창시자이며 지역 교육발전에도 큰 역할을 했다. 그는 새내 마을의 옛 영화를 부활시키기 위해서는 젊은이들을 교육하는 것이 최우선임을 인식하고 종중의 재산을 할애해 서울에 학사(學舍)를 마련하고 될성부른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그가 뿌린 씨앗은 근대사에 빛나는 인재를 양성했고 자신의 아들(서석천, 서울공대, 원자력박사)과 손자, 증손자 3대를 서울대학교 동문으로 만들었다.

새내마을 사람들이 마을 출신 서중도 영주문화원장은 “우리나라 집성촌 가운데 분파되거나 이거하지 않고 한 마을에서 500년 이상 세거해 온 전통마을이 전국에 19개 있다”면서 “그 중 한 마을이 바로 새내마을”이라고 했다.

서울대학교를 졸업하고 교육부 편수관을 역임한 서석례(81) 씨는 “우리 새내는 조선시대 때 문과급제 2명, 생원·진사 수십 명 등 많은 인재를 배출했고, 해방 후 서울대 졸업생만 40여명으로 인재 배출의 요람”이라면서 “우리집에도 4부자가 모두 서울대 동문”이라고 했다.

새내서씨 18대 종손 서용준(徐庸俊, 67) 씨는 6.25 때 아버지를 여의고 집안이 어려웠으나 문중의 도움으로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한 때 정치 입문까지 했었다. 지금은 노 종부(어머니, 여수현, 86)를 모시고 종택을 지킨다.

  
▲ 노인회관

정제훈 노인회장은 “백산서원은 충의공 죽림 서재승(徐在承) 선생을 모신 서원이며 1983년에 완공된 근대 서원으로 규모가 상당히 큰 편”이라고 했다.

이 마을에서 젊은 새댁으로 통하는 황명숙(67) 씨는 “마을에는 젊은 50대가 몇 집 있을 뿐 대부분 65세 이상 어르신들이 살고 있다”며 “우리마을 출향인은 300여명 쯤 되는데 모두 고향을 위해 아낌없는 성원과 끊임없는 지원을 보내고 있다”고 했다. 또한 권선자(66) 씨는 “30여년 전만해도 마을의 풍광이 민속촌 같았는데 지금은 허물어지는 고택을 보노라면 을씨년스럽다”며 “보수가 빨리돼 옛 모습을 찾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함께 마을을 둘러 본 서중일 총무와 서윤석(67) 씨는 “순흥 선비촌은 여러 곳의 고택을 한 곳에 모아놓은 인위적인 마을이지만 우리마을은 종택 66칸, 대동고택 66칸, 진사댁 99칸 등의 흔적이 남아있고 돈암정, 동활재 등 정자도 그대로 있어 ‘새내’는 진정한 선비촌의 원조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조승덕 이장은 서낭당을 가리키며 “새내 성황당의 주신(삼신석)은 세 분의 보살이라고도 하고, 천지인 삼신이라고도 하는데 해마다 정월 15일 자정에 제사를 지낸다. 제관은 음양천을 청소하고 그 물을 사용한다. 또 제물은 어육은 피하고 메밥에 백설기와 채소만으로 정갈히 차리고 마을 사람 53가구 96명 모두의 소지를 올린다”고 했다.

  
▲ 조승덕 이장
  
▲ 정제홍 노인회장

 

 

 

 

 

 

 

  
▲ 원옥교 부녀회장
  
▲ 여수현 노 종부

 

 

 

 

 

 

 

  
▲ 서중일 문중총무
  
▲ 서용준 종손

 

 

 

 

 

 

 

  
▲ 황명숙 씨
  
▲ 권선자 씨

 

 

 

 

 

 

 

  
▲ 서중도 영주문화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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