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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가족님 글방정몽주의 선죽교
단군가족추천 1조회 10512.12.07 11:19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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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죽교 다리 옆에 서있는 비문, 한석봉의 글씨라 한다. 참으로 사람은 가도 역사적 사실과 작품은 남는것. 만수산 드렁츩이 얽혀지듯 이리 살면 어떠고 저리 살면 어떠냐고? 아니다, 어떻게 사느냐는 가장 중요한 우리 인생의 화두이거늘. 선죽교바닥을 확대한 것 경북 영천 출신인 정 몽주는 아무래도 경상도식 우직한 의리의 표본인것 같다. 다리 가운데 정말 붉은 핏자국이 선명하였다. 차라리 좀 덜 선명했더라면 반신반의 했겠으나 너무 확실하니 오히려 믿음이 덜.. 도대체 육백년이 더 지나도록 어찌 사람의 피가 이렇게 남아있을수 있겠는가. 사진으론 희미하나 실지로 보면 제법 뚜렷하게붉다. 정몽주 후손들이 좀 어찌 조작을....? 믿거나 말거나. 마지막으로 정몽주가 살던 집자리에 고려말에 처음 세우고 조선시대 고쳐지었다는 숭양서원(崧陽書院)으로 갔다. 서경덕과 잠곡 김육을 비롯한 유학자들을 추모하여 제사지내던 곳이라한다. 숭양서원을 나오니 바로 이어 샤핑쎈터격인 길다란 건물이 있어 모두 들어가 사고 팔고 하느라 시끄럽다. 한번 쓰윽 지나가며 보니 개성인삼, 들쭉 술, 말린 나물들 등이 널려 있는데 하필 근엄 정숙해야할 서원앞에 시끄러운 샤핑이라니 개성 상인들의 상술은 공산치하라도 삭을줄 모르는듯 하다. 저들이 많이 판들 수당이 더 떨어지는건 아닐텐데 개성 아가씨들은 하나라도 더 팔기위해 아주 열심히 온갖 제스츄어를 써가며 노력하는것이 참으로 유형무형으로 개성상인들의 피는 유전되는것같아 놀라웁다. (사진 24) 숭양서원 외국에 나가면 박봉인 한국 가이드를 위해 일부러 비싼 물품을 하나 사주곤 하는데 여기선 북측 가이드에게 커미션이 돌아가는건 아닌것 같아 본시 샤핑을 좋아하지 않는 나는 멀찌감치 떨어져 벤치에 앉아 기다린다. 개성 인삼이 특별히 몸에 좋은 이유는 개성일대의 화강암에院서 약한 방사선이 나오기 때문이라는데 방사선이라는게 너무 강해도 사람에게 좋치않은것이라고. 그것을 사람들은 '터가 쎄다'라고 표현하는데 서울 평창동이 그런 경우 아닌가 싶다. 인삼은 산신령이 보호하는 영물이라한다. 그 영기란 바로 화강암에서 방출되는 적당한 방사선을 말함이었나? 또 인삼의 조건은 좋은 물과 공기 바람이라, 그래서 개성 미인도 유명하단다. 이 고장이 낳은 천하 명기 황진이가 증거이니. 인삼을 한번 심으면 6년후 캐고난뒤 한 20년은 못심고 다른 작물을 심어야 한단다. 남한에서 제일 유명한 인삼은 금산산인데 개성에 비하면 10분의 1 약효라나. 개성 인삼은 세계에서 가장 특별하다고 자부심들이 대단하다. "인삼은 사람몸에 참 좋은데 단지 너무 많이 먹으면 남자들은 막 돌아다니게 되어 안좋아요"라던 가이드 말에 어쩐지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남쪽 사람이 그런말을 했으면 속으로 상을 찡그렸겠지만 딱딱하기만 한줄 알았던 북측 사람들이 그런말을 하니 그들도 인간적인 음담을 할줄 아는구나 싶어서. 평소 내지론이 아무리 경치좋은 곳이라도 사람들이 득시글거리면 별로라는건데 13대 버스에 38명 씩이면 모두 494명, 근 5백명이 한장소에서 관광을 하니 좀 무리다싶다. 한 석대씩해서 백명 남짓이라도 하면 좋을텐데 현대아산에서 너무 무리하는것아닌가. 그래도 한번 신청하면 6,7개월은 기다려야할만큼 남한 사람들 열성은 정말 대단하다. 나도 그 중에 하나이지만. 말은 삼팔선이라고 해도 이 서쪽은 38선보다 상당히 남쪽으로 내려와 있고 동쪽은 북쪽으로 올라가 직선이 아닌 S자로 그어져 있다. 속초 고성 양구 양양 인제 등은 위도 38선보다 훨씬 위에 있고 서쪽으로 이곳 경기도 개성은 38선보다 아래에 위치해 있다. 강원도 동해안을 따라 여행하다 보면 38경계비라는 푯말을 지나치고 난 뒤도 한참이나 북쪽으로 길이 이어지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나는 가끔 우리나라가 이왕 38선으로 나뉘어질 운명이었다면 지금처럼 그어진것이 그래도 천만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남쪽에는 안그래도 광활한 호남 김해 경기평야가 있으니 이 개성평야 하나 쯤 양보하여 북의 부족한 쌀을 보충하게 하는것이 좋고 북쪽엔 이미 천하명산 금강산이 있으니 그 한 줄기인 설악산을 남쪽동포에게도 오르게 해 주는것이 서로가 좋을 것이다. 우리는 빵(개성평야)을 조금 나누어 주고 꽃(설악산)을 한 송이 얻었으므로 서로를 위해 얼마나 다행스러운가. 다만 이렇게 될것을 미리 알았다면 6.25사변 중 십일동안이나 가장 치열한 고지 쟁탈전으로 서로가 수많은 사상자와 포로를 낸 철원의 백마고지 공방전을 안벌리고 순순히 우리에게 넘겨 주었으면 좋았을것을.. 철의 삼각지대의 한 축으로 불려지던 중부전선의 백마고지는 어느 쪽이 이겼든 우리에게 영원히 아픔의 상처로 기억될 것이다. 다시 북측 출입국사무소에서 수속을 마치고 버스에 앉아 남쪽으로 출발하길 기다리고 있는데 아무리해도 버스가 떠날 생각을 안한다. 30분이 지나서 운전수왈, 1호차의 한남자가 카메라 조사에서 걸렸다고. 관광 중 꼭 허용된 곳에서만 사진을 찍으라고 그렇게 미리 신신당부를 하였건만 한사람이 찍지말라는곳까지 합쳐 너무나 많은 사진을 찍었단다. 나중에 걸리면 기왕 찍은것까지 다 지우게 되고 벌금까지 내야한다고 거듭 주의를 주었건만. 벌금 $500 (50만원)내는게 문제아니라 지금 북측에선 그사람을 안보내주겠다하여 옥신각신중이라고. 한십분 지나니까 합의가 되었는지 서서히 버스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사람 기다리게 한 죄로 동료들에게 얼굴도 못들것이고 사진찍은거 다 사라지고 돈도 없애고 아직 북한땅인데 납북되는거아닌가 얼마나 떨었을 것인가. 그는 거의 간첩죄 혐의를 받고 있었을테니. 모두 '하지말라는건 안해야지!' '참 어리석은 사람이네!'하며 한마디씩 불평을 하는데 나는 왠지 불쌍한 생각이 들었다. 그는 평생 악몽을 꾸겠지. 이 사소한, 어쩌면 별 문제도 안되는것이 부풀리어 큰 문제가 되는 이 분단의 비극이여. 어떤이는 '고려의 묵은 하늘은 선죽교에서 피의 제단을 차렸으나 조선의 묵은 하늘은 남북의 허리에서 통일의 원시반본을 위한 피의 제단을 차렸으니..'라 말한다. 이제 그 통일이 이루어져 백두산에 직항으로 갈수 있게될때까지 나는 기다릴것이다. 우리민족의 靈山을 중국땅(그조차 바로 얼마전까지 우리땅이었지만)으로 돌아가지 않고 바로 갈수 있을날을 기다리며. 그때는 기쁜 마음으로 '백두산 기행문'을 쓸수 있을 것이다. 戊子년 丁巳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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