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래원장 책 소개원효사상 잡지사와의 관정 스님 대담 내용, <반야심경 번역 이야기>를 중심으로
조성래추천 0조회 84721.08.25 07:47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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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다음카페 <위빠사나금정선원>입니다. 이 글을 주변 분들께 많이 전해주시기 바랍니다. 관정 합장 <반야심경 번역 이야기> 책 출판 대담(2021. 8. 25일) (대담자) 원효사상 사장. (관정 스님 프로필 및 저서 소개) 관정(조성래) 사문, 통도사 금수암에서 정진중 1959년 경남 함안 태생 부산대학교 영어영문학과 졸업 1985년 전국 대학생 학술연구발표대회(문교부후원, 동아대학교주관)에 <금강경 국역본에 나타난 문의미(文意味) 변이와 그 원인분석>이란 논문을 발표하여, 우수논문상을 수상했다. 그 논문에서 8종의 <금강경> 한역본(漢譯本)과 산스크리트어본을 연구하여 잘못 국역(國譯)된 것들을 모두 바로잡았다. 선(禪)수행 40년(20안거) 해운대고등학교 영어교사 10년 위빠사나금정선원 운영 유튜브 <관정스님 반야심경 강의> 저서 <마하시 사야도의 위빠사나 명상법> 번역 (2009년, 무량수) <대승기신론 속의 사마타와 위빠사나> 번역 해설 (2010년, 무량수) 통도사 <반야암 법요집>에 예불문, 천수경, 화엄경약찬게 등을 번역해 넣음 (2012년) <걷기명상> (2013년, 알아차림) <반야심경>, <아함경>, <염처경>, <대념처경>, <천태소지관>, <유교경(遺敎經)>, <중론> 등 다수 불교의 경론 번역(미출간) (스님) 안녕하십니까? 통도사 금수암 사문 관정입니다. 2. (대담자) 오늘 관정 스님과의 대담은 스님께서 금년 초겨울쯤에 출판할 <반야심경 번역 이야기>를 중심으로 진행하겠습니다. 관정 스님께서는 제목까지 포함해서 총 270자의 한문 반야심경을 붙들고 들어앉아서 15년 동안 연구하여, 1300페이지에 달하는 반야심경 번역 해설서 원고를 써 놓았습니다. 제가 그 원고를 읽어보니, 반야심경의 8종의 한역본과 산스크리트어본 등을 철저히 연구하여, 누구나 반야심경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번역해 놓았습니다. (문) 스님께서는 어떤 동기로 이 책을 쓰게 됐습니까? (답) 불교의 수많은 경전 중에 반야심경이 가장 중요한 경인데, 번역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서 그것을 제대로 번역해서 그 뜻을 알고 독송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고 작심한 것이 이 책을 쓰게 된 동기입니다. 또 지금까지 잘못 해석돼 온 반야심경 뜻을 바로잡기 위해 이 책을 썼습니다. 알고 보면 반야심경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뜻입니다. 이 <반야심경 번역 이야기>는 반야심경을 제대로 번역하여, 그 뜻을 쉽게 알 수 있도록 해 놓았고, 또 왜 이런 뜻으로 번역돼야 하는지 이 이유를 설명해 놓았습니다. 진지한 불자라면 반야심경 뜻이 무엇인지 알려고 해봤을 것입니다. 반야심경 해설서를 읽어보거나 강의를 들어봤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직도 그 뜻이 명쾌하게 와 닿지 않는 부분들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반야심경의 앞 뒤 문장의 의미가 연결이 잘 안 되고, 반야심경이 전체적으로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지 않습니까? 기존 반야심경 해설서를 봐도 그 원문이 제대로 번역돼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잘못 번역돼 있거나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는 말로 번역돼 있는 문장을 통해 반야심경 뜻을 대강 짐작하고 넘어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반야심경은 번역만 제대로 해 놓으면, 결코 난해한 경이 아니고, 많은 해설을 필요로 하는 경도 아닙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반야심경 해설서들은 번역을 잘못 해 놓고, 그 번역을 합리화하기 위해 이상한 말을 많이 해 놓았습니다. 그것들은 다 공리공론의 해설이기 때문에 지혜를 밝혀가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반야심경 해설들은 이상한 말을 많이 해 놓고, 그것이 반야심경의 뜻인 양 머리에 집어넣어주고 있는 것들이지요. 불교를 많이 공부한 사람일수록 부처님 가르침으로부터 더욱 멀어져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야심경 해설서 등에서 잘못된 이상한 말을 많이 익혔기 때문입니다. 일반 불자님들은 반야심경의 잘못된 번역과 해설을 가려내고, 그것을 바로 잡는 것이 거의 불가능합니다. 이 <반야심경 번역 이야기>는 반야심경의 번역과 해설에 관한 모든 문제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산스크리트어 반야심경에서 한문으로 잘못 번역된 것들과 영어로 잘못 번역된 것들을 다루고 있고, 그 한문 반야심경을 우리말로 번역, 해설해 놓은 것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 번역문의 옥석을 가려내고 있고, 반야심경의 정확한 뜻을 찾아내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문) 관정 스님의 원고를 보면, 반야심경의 한문 번역본이 여러 가지가 있다고 하시는데, 그 점에 대해 설명해주시기 바랍니다. (답) 산스크리트어 반야심경을 한문으로 번역한 것을 한역본(漢譯本) 반야심경이라고 합니다. 한역본 반야심경은 총 8종이 있습니다. 구마라집이 408년에 최초로 반야심경을 한역했고, 현장법사가 649년에 현재 우리가 외우고 있는 한문 반야심경을 번역했습니다. 980년대까지 약 600여 년간 총 8종의 한문 반야심경이 번역돼 나왔습니다. (문) 반야심경은 지금까지 해설서가 수백 종이 나와 있지만, 반야심경은 여전히 어렵다고들 말합니다. 스님께서는 반야심경이 어려운 이유가 뭐라고 봅니까? (답) 반야심경이 어려운 이유는 번역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번역만 제대로 해 놓으면, 반야심경은 결코 난해한 경이 아니고, 많은 해설을 필요로 하는 경도 아닙니다. 현재 우리가 독송하고 있는 반야심경으로는 반야심경 뜻을 절대로 알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번역문에는 반야바라밀다, 오온, 색, 수, 상, 행, 식, 공(空), 제법(諸法), 안계(眼界), 의식계(意識界) 등 뜻을 분명하게 알 수 없는 말이 많이 들어있고, 반야심경을 한문으로 번역하면서 다른 뜻으로 번역해 놓은 부분들도 있고, 반야심경의 메시지가 전달되지 못 하도록 만들기 위해 경의 핵심내용을 다 빼버리고 번역해 놓았기 때문입니다. (문) 어느 역경가가 반야심경의 핵심내용을 빼버리고 번역해 놓았습니까? (답) 총 8명의 반야심경 한역가들 중 구마라집과 현장과 의정, 이 세 명의 역경가가 반야심경의 핵심내용을 빼버리고 번역해 놓았습니다. (문) 그럼 빼버린 부분은 어떤 내용입니까? (답) 그것은 깊은 지혜를 완성하는 수행방법을 말해주는 내용입니다. 산스크리트어본과 5종의 대본 한역본에는 “도일체고액”과 “사리자 색불이공” 사이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들어있습니다. 이 때 사리불 존자가 부처님의 불가사의한 힘에 의해 합장 공경하고, 관자재보살에게 물었다. “만약 선남자가 깊은 지혜를 완성하는 수행을 하려고 하면, 어떤 방법으로 수행해야 합니까?” 이렇게 묻자, 관자재보살이 말했다. “사리불 존자여, 만약 선남자 선여인이 깊은 지혜를 완성하는 수행을 하려고 하면, 존재의 다섯 요소를 관찰하여, 그것들은 다 실체가 없는 것들임을 꿰뚫어봐야 합니다.” 또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뒤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들어있습니다. “이와 같이 사리불 존자여, 모든 대보살이 깊은 지혜를 완성하는 수행을 할 때는 이와 같은 방법으로 수행해야 합니다.” 이 때 세존께서는 삼매에서 깨어나 관자재보살을 칭찬해 말씀하셨다. “정말 훌륭하고, 훌륭하도다. 선남자여! 이와 같고, 이와 같도다. 방금 그대가 말한 것처럼 깊은 지혜를 완성하는 수행을 할 때는 이와 같은 방법으로 해야 한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수행할 때 모든 여래가 다 따라서 기뻐할 것이다.” 이것은 사리불 존자가 깊은 지혜를 완성하는 수행방법을 묻고, 그 물음에 관자재보살이 답해주는 내용이고, 또 부처님께서 관자재보살의 답변을 칭찬하고, 증명해주는 내용입니다. 구마라집과 현장 법사 등이 반야심경을 한문으로 번역하면서 깊은 지혜를 완성하는 수행방법을 말해주는 이 내용들을 다 빼버렸습니다. (문) 현장 법사 등은 왜 이런 내용을 다 빼버렸을까요? (답) 그들은 깊은 지혜를 완성하는 수행방법을 좋아하지 않았고, 석가부처님 불교가 아닌 중국불교를 확립하기 위해 반야심경 내용 중에서 중국불교와 맞지 않는 내용은 다 빼버린 것이지요. 인도불교, 특히 석가부처님 불교로는 중국이 불교의 종주국이 될 수 없었기 때문에 중국불교를 만들어내어, 중국불교의 종주국이 되기 위해 반야심경을 한문으로 번역하면서 석가부처님의 깊은 지혜를 완성하는 수행방법을 말해주는 내용을 빼버린 것이라고 봅니다. 만약 이 내용을 반야심경에 그대로 두었다면, 이 내용은 중국불교를 확립하는 데 걸림돌이 되었을 것입니다. (문) 석가부처님 불교와 다른 “중국불교”라는 것이 실제로 있습니까? (답) 있지요. 그것이 바로 화엄학불교이고, 중국 선불교이며, 석가부처님 수행방법과 다른 방법으로 수행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주문을 외우는 수행이나 염불수행, 대승경전을 독송하거나 베껴 쓰는 수행, 조사선, 화두선 등의 방법으로 선(禪)수행을 하는 것입니다. 화엄학은 중국 종사(宗師)들이 그들의 전통사상인 유교와 노자·장자 사상과 대승불교 경전을 버무려서 만들어낸 중국 특유의 불교입니다. 석가부처님 불교는 선정과 관찰[觀]을 닦아서 반야지혜를 완성하는 선(禪)수행불교이고, 중국불교는 화엄학을 위주로 하는 학문불교이거나 조사선, 화두선, 묵조선 등의 방법으로 견성성불을 추구하는 선(禪)불교입니다. 중국은 교학과 선(禪)학, 이 두 분야에 있어서 인도의 것이 아닌 중국 것을 갖기를 원했고, 갖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중국불교입니다. (문) 반야심경의 한문 번역본들 중에 구마라집 번역본과 현장의 번역본이 일부 단어와 문장들을 빼버리고 번역해 놓았다고 하셨는데, 빼버린 것들이 왜 중요한 것들인지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답)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는 달리 반야심경은 깊은 지혜를 완성하는 수행방법을 말해주기 위한 경입니다. 그런데 현재 우리가 독송하고 있는 반야심경에는 깊은 지혜를 완성하는 수행방법을 말해주는 내용이 없습니다. 반야심경에 깊은 지혜를 완성하는 수행방법을 말해주는 내용이 없으면, 그것은 안코 없는 찐빵과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반야지혜가 어떤 것인지 잘 모르고, 깊은 지혜를 완성하는 수행방법을 모르기 때문에 평생 열심히 수행해도 지혜를 완성한 사람이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선(禪)수행을 하는 방법은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석가부처님 방법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수행하면, 다른 결과가 나오기 때문입니다. 도교의 단전호흡 방법이나 옴진리교의 방법 또는 힌두교의 방법 등 석가부처님 방법과 다른 방법으로 수행하면, 부처님께서 증득한 최상의 완전한 깨달음을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깨달음도 여러 질이 있습니다. 잘못 깨달으면 라즈니쉬나 옴진리교의 교주와 같이 헛소리나 해대는 사기꾼이 됩니다. (문) 원래 <반야심경>에 등장하는 인물은 두 명이 아니라고 하셨는데, 그 점에 대해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답) 현재 우리가 독송하고 있는 반야심경에는 관자재보살과 사리자, 이 두 명의 인물만이 나옵니다. 하지만 5종의 대본 반야심경의 한역본에는 부처님도 나옵니다. 부처님도 나오고, 반야심경의 풀 스토리가 들어있는 것을 ‘대본 반야심경’이라고 합니다. 대본 반야심경에서 부처님도 빼고, 반야심경의 핵심 메시지도 빼버리고, 경의 앞 뒤 맥락을 다 잘라내어, 반야심경의 메시지가 전달되지 못 하도록 만들어 놓은 것을 ‘소본 반야심경’이라고 합니다. (문) 스님께서는 왜 ‘소본’ <반야심경>보다 ‘대본’ <반야심경>을 독송해야 한다고 말합니까? (답) 모든 경은 그 경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게 마련입니다. 반야심경의 메시지가 들어 있지 않고, 뜻이 통하지 않는 소본 반야심경을 독송하는 것보다 반야심경의 메시지가 들어있고, 경의 전후맥락이 통하는 대본 반야심경을 독송하는 것이 낫다고 봅니다. 여태까지는 이러한 사실을 잘 몰라서 소본 반야심경을 독송해왔지만 앞으로는 좀 달라져야 한다고 봅니다. (문) 수많은 불교경전들이 제각기 전달하는 메시지가 다른데, 스님께서는 <반야심경>의 메시지는 뭐라고 봅니까? (답) 앞에서도 말했듯이 반야심경은 깊은 지혜를 완성하는 수행방법을 말해주기 위한 경입니다. 사리불 존자가 관자재보살에게 “깊은 지혜를 완성하는 수행을 하려고 하면, 어떤 방법으로 수행해야 합니까?”라고 물었고, 관자재보살이 그 질문에 대해 “깊은 지혜를 완성하는 수행을 하려고 하면, 오온, 즉 자신의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들을 관찰하여 그것들은 다 실체가 없는 것들임을 꿰뚫어봐야 한다”고 답해주는 내용이 반야심경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입니다. (문) 스님께서는 왜 팔만대장경 중에서 반야심경이 가장 중요한 경전으로 여겨지게 되었다고 봅니까? (답) 반야심경은 반야지혜를 완성하여, 최상의 완전한 깨달음을 성취할 수 있는 수행방법을 말해주는 경이기 때문입니다. 석가부처님의 불교는 반야지혜를 완성하여, 괴로움의 윤회에서 벗어나기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반야지혜의 완성이 불교수행의 궁극 목적입니다. 그러나 반야지혜를 완성할 수 있는 수행방법을 모르면, 아무리 열심히 수행해도 반야지혜를 완성할 수 없습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이 세상에는 종교도 많고, 수행자도 많고, 도를 깨달았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석가부처님의 방법으로 수행하지 않으면, 그것은 불교수행이 아니고, 반야지혜를 완성할 수가 없고, 최상의 완전한 깨달음을 성취할 수 없습니다. 반야심경은 “삼세제불(三世諸佛)” 운운 하며, 관자재보살뿐만 아니라 과거, 현재, 미래세의 모든 부처님들도 다 이 지혜를 완성하는 수행방법에 의해 최상의 완전한 깨달음을 성취한다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 반야지혜를 완성하는 수행법은 오직 석가부처님 불교에만 있는 방법입니다. 반야지혜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이 방법으로 수행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데, 반야심경은 이 방법을 말해주는 경이기 때문에 팔만대장경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경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특히 석가부처님의 수행방법을 모르고 많은 수행자가 이곳저곳을 헤매고 다니고 있는 이 때, 반야심경은 불교수행의 나침반으로서 더욱 중요한 경입니다. (문) <반야심경>은 제목부터가 잘못 번역돼 있다는 말은 충격적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을 제대로 번역하면, 어떤 뜻입니까? (답) <반야바라밀다심경>을 제대로 번역하면 <지혜를 완성하는 수행방법의 핵심을 말해주는 경>이라는 뜻입니다.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에서 “마하”는 ‘크다’, ‘방대하다’는 뜻인데, 이것은 원래 없는 것을 구마라집이 반야심경을 한문으로 번역하면서 집어넣은 것입니다. 구마라집의 한역본 이외의 다른 7종의 한역본과 산스크리트어본의 반야심경의 제목에는 다 “마하”가 들어있지 않습니다. 해인사 팔만대장경의 현장 번역본을 보면, 거기에는 경의 제목이 <반야바라밀다심경>으로 되어 있습니다. “반야”는 ‘지혜’라는 뜻이고, “바라밀다”는 ‘건너갔다’는 뜻이 아니라 “완성”이라는 뜻입니다. “반야바라밀다”는 ‘지혜의 완성’이란 뜻입니다. 산스크리트어본을 영어로 번역한 영역본에는 “반야바라밀다”를 “the perfection of wisdom‘으로 번역해 놓았는데, 이것이 맞는 번역입니다. “심(心)”은 산스크리트어 “히르다야”를 번역한 것으로, ‘마음’이 아니라 ‘핵심’이라는 뜻입니다. 대본 <반야심경> 본문의 전체 내용을 보면, <반야심경>은 깊은 지혜를 완성하는 수행방법을 말해주는 경입니다. 그래서 <반야바라밀다심경>은 <지혜를 완성하는 수행방법의 핵심을 말해주는 경>으로 번역하면 그것이 정확한 번역입니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바라밀다”를 ‘완성’으로 번역한 경우는 없고, ‘저쪽에 도달했다’, ‘저쪽으로 건너간다’, “도피안(到彼岸)” 등의 뜻으로 해석하여, “<반야바라밀다심경>”을 ‘<지혜로 저쪽에 도달한 마음의 경>’, ‘<지혜의 힘으로 저 언덕에 이르는 마음의 경>’ 등으로 번역해 놓았습니다. 반야심경은 제목부터가 왜곡되어 있는 것이지요. (문) 관정 스님의 해석에 의하면, <반야바라밀다심경>은 ‘<깊은 지혜를 완성하는 수행방법의 핵심을 말해주는 경>’이라는 뜻인데, 현장은 왜 이러한 뜻을 분명하게 드러내지 않고, <반야바라밀다심경>으로 모호하게 번역해 놓았을까요? (답) 저는 현장과 중국 왕실의 학자들은 반야심경의 메시지가 제대로 전달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모호하게 번역해 놓았다고 봅니다. 중국 왕실에서는 인도불교, 특히 석가부처님의 불교에서 벗어나서 인도불교와 다른 중국불교를 확립하기를 원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반야심경의 메시지가 제대로 전달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고, 그렇기 때문에 구마라집과 현장과 중국 왕실의 학자들은 반야심경 구절을 모호한 뜻으로 번역하기도 했고, 또 다른 뜻으로 번역하기도 하였으며, 산스크리트어 본에는 없는 내용을 집어넣기도 했고, 있던 내용을 빼버리기도 했습니다. 또 “지혜를 완성하는 수행방법”이라는 뜻이 밖으로 드러나지 않게 만들기 위해 반야심경에 6번이나 나오는 “반야바라밀다”를 한문으로 번역하지 않고, 산스크리트어를 그대로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반야심경에서 말해주는 수행방법은 석가부처님의 수행방법으로서 중국불교의 수행방법과는 다른 것입니다. 반야심경 뜻이 명료하게 드러나지 않게 번역해 놓아야 중국인들이 그 뜻을 왜곡하여, 공리공론의 썰(說)을 풀기가 쉽기 때문입니다. (공리공론의 썰(說)을 많이 풀어 놓은 것이 중국불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구마라집과 현장은 반야심경의 메시지가 전달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렇게 모호하게 번역해 놓았거나 왜곡해서 번역해 놓았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문) 우리는 반야심경에 나오는 관자재보살은 관세음보살의 다른 이름이라고 배웠습니다. 그런데 스님께서는 관자재보살과 관세음보살은 다른 보살이라고 말해 놓았는데, 이 두 보살은 어떻게 다릅니까? (답) 관자재보살은 관찰수행을 동하여 지혜의 완성을 추구하는 보살이고, 관세음보살은 자비심으로 고통 받는 중생들을 구제해주는 보살입니다. 관자재보살(觀自在菩薩)에서의 “관(觀)”은 ‘관찰’이라는 뜻이고, “자재(自在)”는 ‘자유자재(自由自在)’라는 뜻입니다. 즉 관자재보살은 관찰에 통달하여, 관찰을 자유자재로 할 수 있는 보살입니다. 관자재보살은 반야부의 경전에 나오는 보살입니다. 반면에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은 법화경에 나오는 보살로서 위에서 내려다보면서 세상(중생들)의 도움을 요청하는 소리[音음]가 있는지 천개의 눈으로 관찰하는 보살입니다. 이와 같이 이 두 보살은 성격이 완전히 다른 보살인데, 구마라집은 반야심경을 한문으로 번역하면서 “관자재보살”로 번역해야 할 것을 “관세음보살”로 번역하여, 반야심경에서 “관찰”수행을 말해주고 있는 내용을 없애버리고, 반야심경을 관세음보살의 경이나 주문의 경으로 둔갑시키려고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볼 수밖에 없는 까닭은 구마라집은 반야심경을 한역하면서 반야심경에서 깊은 지혜를 완성하는 수행방법을 묻고 답해주는 내용을 빼버리고 번역해 놓았고, 또 반야심경의 제목에 산스크리트어본과 7종의 다른 한역본에는 없는 주문 “주(呪)” 자를 넣어서 <마하반야바라밀대명주경(大明呪經)>으로 번역해 놓았기 때문입니다. 반야심경의 산스크리트어본과 5종의 다른 한역본에서는 깊은 지혜를 완성하는 수행을 하려고 하면, 자신의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들을 관찰하여, 그것들은 다 실체가 없는 것들임을 꿰뚫어봐야 한다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반야심경은 관찰수행을 말해 놓은 경이고, 관자재보살은 자기 자신을 관찰하는 데 통달하여, 자신에게 일어나는 현상들을 자유자재로 다 관찰할 수 있는 보살입니다. (문) <반야심경>의 단어들 중에서 몇 가지를 질문하겠습니다. 스님께서는 반야심경에서 “관찰”을 중요시하시는데 왜 관찰이 중요합니까? (답) 관찰은 부처님 특유의 지혜를 완성할 수 있는 유일한 수행법이고, 앞에서 말했듯이 반야심경은 깊은 지혜를 완성하는 수행을 하고자 하면, 자신의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들을 관찰하여, 그것들은 다 실체가 없는 것들임을 꿰뚫어봐야 한다고 말해주는 경이기 때문입니다. 반야심경은 원래 “관찰 조견오온자성개공(觀察照見五蘊自性皆空)”을 말해놓은 것인데, 현장은 여기서 “관찰”과 “자성”을 빼버리고 “조견오온개공”으로 번역하여, 반야심경이 다른 뜻으로 해석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자신의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들을 지속적으로 관찰해가야 그 현상들의 성질을 밝게 알게 되고, 결국 무아의 진리를 깨달아서 모든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문) <반야심경>에서 말하는 “깨달음”은 어떤 것입니까? (답) 반야심경에서는 깨달음을 “조견오온자성개공”이라고 표현해 놓았는데, 이것은 자신의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들[오온]은 다 실체가 없는 것들임을 꿰뚫어보는 것입니다. (문) “오온자성개공”과 “오온개공”은 그 뜻이 어떻게 다르고, 왜 오온 뒤에 “자성”이 꼭 들어 있어야 합니까? (답) “오온자성개공”은 ‘오온은 다 실체가 없는 것들’이라는 뜻이고, “오온개공”은 ‘오온은 다 없는 것들’이란 뜻입니다. 여기서 “자성(自性)”은 산스크리트어 “스바바바(svabhāva)”를 번역한 것이고, 이것은 ‘실체’라는 뜻입니다. 중국 선불교에서 말하는 자성자리가 이 자성입니다. “공(空)”은 ‘없는 것[無무]’이라는 뜻입니다. 이와 같이 오온 뒤에 자성이 들어 있는 “오온자성개공”은 ‘오온이 있기는 있는데, 실체가 없이 있다’는 뜻이고, “자성”이 없는 “오온개공”은 오온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말이 되어버립니다. 그래서 어떤 해설자는 “오온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고 잘못 번역해 놓고, 그 번역을 합리화하기 위해 이상한 말을 많이 늘어놓았습니다. 이것은 현장이 반야심경을 한문으로 번역하면서 “자성”을 빼버렸기 때문에 일어난 일입니다. 중국 및 한국의 반야심경 해설서에는 이해가 되지 않는 말을 많이 볼 수 있는데, 이러한 것들은 다 잘못된 번역과 해석에서 나온 것들입니다. (문) ‘적멸열반’은 어떤 것입니까? (답) 산스크리트어 “니르바나”를 번역하여, ‘적멸’이라 하기도 하고, ‘열반’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니르바나는 적멸상태에 들어서 몸과 마음에 그 어떤 현상도 일어나지 않는 상태를 말하기도 하고, 몸과 마음이 다 소멸되어서 해체돼버린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앞의 것을 유여열반이라고 하고, 뒤의 것을 무여열반이라고 합니다. 무여열반은 무아의 진리를 깨달은 사람이 죽은 뒤에 가능한 것입니다. (문) 영국 등에서 산스크리트어 반야심경을 영어로 번역한 것들이 있다고 알고 있는데, 그 번역들은 어떻습니까? (답) 반야심경의 영어 번역본들도 번역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서 문제가 많은 것들이라고 보면 됩니다. 독일의 문헌학자 막스 뮐러(1823-1900)가 산스크리트어 반야심경을 연구하여, 1880년대에 영어로 번역한 것이 최초의 영어 번역본입니다. 그 이후 1950년대에 에드워드 콘쯔도 산스크리트어본을 연구하여 영어로 번역해 놓았고, 미국의 도날드 로페즈 교수는 티베트어본 반야심경을 영어로 번역해 놓았는데, 이 영어 번역본들은 다 번역의 질이 좋은 편은 아닙니다. 영어번역본들은 오온의 색을 물질로 번역하는 등 불교 전반에 대한 이해와 불교용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나머지 다른 뜻으로 번역해 놓은 부분들이 제법 많아서 그 번역문을 읽고 반야심경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기가 어렵습니다. (문) 기존 <반야심경> 번역들은 이것이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다고들 말합니다. 스님께서 번역해 놓은 반야심경을 보니, 이해가 되지 않는 말이 없고, 각 문장의 의미가 잘 연결되어서 물 흐르듯이 잘 흘러갑니다. 이것은 스님께서 <반야심경>을 제대로 번역했다는 것을 말해준다고 봅니다. 스님께서 이렇게 명료하게 반야심경을 번역할 수 있었던 어떤 비법이 있다면, 그것을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답) 반야심경의 8종의 한역본과 산스크리트어본을 충분히 비교분석 연구하여, 성실하게 번역한 것이 비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번역자가 뜻을 확실히 알 때까지, 확신이 들 때까지 시간을 충분히 넣어서 과학적으로, 언어학적으로 연구하는 것입니다. 경전을 도학적(道學的)으로 해석하면 불성실한 해석이 나오게 됩니다. 마치 자신이 반야심경의 도리를 다 깨달은 사람인 것처럼 경전의 구절을 자유롭게 해석하면 그것은 불성실한 해석이 되지요. 백번 깨달아도 대 도인이라도 언어적으로 경전을 연구하지 않으면 번역을 할 수가 없습니다. 반야심경이나 금강경을 번역해 놓은 것을 보면, 번역가 자신이 경전의 구절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 한 채, 연구도 충분히 하지 않고, 조금 아는 것을 가지고 번역해 놓은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경전의 뜻을 잘못 번역하면 그것은 크나 큰 죄를 짓는 것이라는 의식을 가지고, 책임감 있게 번역해야 한다고 봅니다. 중국, 한국 등의 한자문화권의 전통적인 학풍은 정확성을 추구하기 보다는 자신의 썰을 풀어가는 경향들이 강하게 있다고 봅니다. 특히 중국불교에는 그러한 경향이 팽배해 있다고 봅니다. 언어학적인 연구와 주변의 관련 경전들을 많이 독파해서 배경지식을 다진 뒤에 또 정확한 뜻을 찾아내는 기술을 충분히 익힌 뒤에 경전을 번역해야 한다고 봅니다. 제가 반야심경의 “무지역무득”의 의미를 정확하게 해독하기 위하여 잠자는 시간 외에 하루 종일 이 구절만 붙들고 수백 편의 주변 경전을 6개월 이상 읽어갔던 적이 있습니다. 평생 이 구절만 정확하게 해독해내도 충분히 의미가 있는 삶이라는 프로의식을 갖고 번역해야 한다고 봅니다. 무책임한 불경번역은 죄악을 짓는 것이고, 불법을 어지럽히는 것이며, 불자들의 머릿속에 잘못된 불교를 넣어주는 것이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고 봅니다. (진행자) <반야심경>은 제목을 포함하여 270자의 한자로 되어 있지만 무 궁한 뜻(사상)을 담고 있다고 하지만, 스님께서 무려 1300페이 지에 쉽고 분명한 언어로 담아냈다는 것은 전무후무하다고 봅니다. 스님 끝으로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관정 스님) 부처님 법을 알고 불교를 해야 합니다. 경전 뜻을 알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고, 신앙하고, 수행하는 불자가 돼야 한다고 봅니다. 출판계가 매우 어려운 이 때 <원효사상>이라는 잡지를 창간했다는 사실이 대단한 뜻입니다. <원효사상> 잡지 내용이 좋으니 이 불사에 많은 불자님들이 동참하고, 구독하시어, 열심히 공부하는 불교인이 되어주시고, 원효사상 사의 뜻한바 모든 사업이 원만하게 이루어지길 빕니다. 나무관세음보살 (진행자) (끝 멘트) (재)원효불교문화재단/원효사상이 마련한 <반야심경번역이야기> 를 마치겠습니다. 본 대담은 유투브 방송을 통해 시청하실 수 있 습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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