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예 세상

退筆如山未足珍(퇴필여산미족진)

강나루터 2022. 4. 12. 07:02

서예 세상

강나루 2017. 5. 5. 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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退筆如山未足珍(퇴필여산미족진)

몽당 붓이 산처럼 쌓여도 그리 대단할 거 없고

 

讀書萬卷始通神(독서만권시통신)

책 일만권을 읽어야 비로소 신명이 통하는 걸세.

 

君家自有元和脚(군가자유원화각)

그대 집안엔 대대로 전해오는 필법이 있으니

 

莫厭家계更問人(막염가계갱문인)

그 필법을 버리고 다시 남에게 묻지 마시게.

 

이 시는 희녕 7년(1074) 1월에 지은 것이라고 합니다. 유근(柳瑾)의 집에서 술잔치가 베풀어졌는데, 이 자리에서 유근의 두 손자(소동파 사촌여동생의 아들) 굉(門+肱-月)과

벽(闢)이 소동파에게 시를 글씨로 써주기를 청하였습니다.

소동파도 서예에 뛰어난 분이었기 때문에 유굉 형제가 글씨를 받고자 한 것입니다.

이 때에 소동파가 조카들에게 두 수의 시를 지어 글씨로 써 주었는데, 위의 시는 그중 첫 번째 것입니다.

 

* 외생(外甥) : 누나 또는 여동생의 아들.

* 유씨이외생(柳氏二外甥) : 유굉과 유벽을 말함.

* 퇴필(退筆) : 독필(禿筆)과 같은 뜻. 몽당 붓. 지영(智永)이라는

스님이 영흔사(永欣寺)에서 글씨공부를 할 때에 글씨를 쓰고 닳은 몽당 붓이 열 항아리나 되었고, 항아리마다 수천 개씩의 몽당 붓이 들어 있었는데, 나중에 이것들을 땅에 묻고

퇴필총(退筆총, 몽당 붓 무덤)이라고 하였다는 고사가 있음.

 

* 여산(如山) : 산과 같이 많음. 산처럼 언덕을 이룸.

* 미족진(未足珍) : 진기할 게 없음. 보배로울 게 못됨.

* 통신(通神) : 신명에 통함. 신령에 통함. 도통한 경지에 들어감.

* 글씨 연습을 아무리 많이 해도 그다지 대단한 게 아니고, 독서를 해서 일만 권쯤은 읽어야 도통한 경지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임. 조카들에게 서예에 지나치게 관심 갖지 말고

책읽기에 치중하라고 충고를 한 것으로 보임.

 

* 군가(君家) : 그대의 집안.

* 자유(自有) : 절로 있음. 본디 있음.

* 원화각(元和脚) : 유굉 형제의 조상 가운데 유공권(柳公權 778-865)이라는 분이 있는데 당나라 원화년간(806-820)에 진사시에 급제하여 서예로 이름을 떨쳤음.

각은 날각(捺脚)의 의미로 필법을 말함. 후대에 원화각은 유공권의 필법을 가리키는 말로 쓰임.

 

* 염가계(厭家계) : 계는 닭 계 자임. 계(谿-谷+錐-金).

 

가계는 집안에 있는 닭. 염가계 애야치(厭家계 愛野雉)라는

말이 있는데, 집안에서 기르는 닭을 싫어하고 들에 야생하는 꿩을 좋아한다는 말로서, 자기가 소유한 것을 가벼이 여기고 타인의 물건을 선망한다는 의미로 쓰임.

때로는 자신의 본처를 버리고 밖에서 만난 사람을 좋아한다는 뜻으로도 쓰임.

 

* 갱문인(更問人) : 다시 남에게 물음.

* 그대 집안에 훌륭한 필법이 집안 전통으로 전해져 오는데 그것을 익히면 그만이지, 굳이 다른 사람, 즉 나에게 필법을 배울 생각을 가질 필요가 없음을 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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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안다는 것이 싸라기만 하다”고 말한다면 반론이 나올까? 인간이 안다는 범위를 헤아려 보면 모르는 범위에 비교할 것이 못 된다.

소동파(蘇東坡)가 글씨를 논할 때 퇴필여산미족진(退筆如山未足珍), 독서만권시통신(讀書萬卷始通神)”이라 하였다. 즉, 퇴필이 산을 이루어도 족히 보배가 아니요, 천만 권의 책을 읽어야 비로소 정신이 통령하네.라는 뜻으로 서학의 어려움과 성가(成家)의 지표를 교시한 명언으로 만인이 애송하는 시구다.

  동파의 시구를 전제로 선현들의 고련(苦練)을 살펴보자 사서(史書)에 의하면 안유정(顔惟貞)은 너무 가빈(家貧)하여 지필(紙筆)을 살 돈이 없어 형과 더불어 황토를 담벼락에 칠하고 목석(木石)으로 글씨를 연습하였고, 구양수(歐陽修) 역시 가빈하여 추적(萩荻)으로 땅바닥에 글씨를 연습하였고, 회소(懷素) 또한 가빈하여 파초(芭蕉)를 심어 길러서 파초 잎에 글씨를 익혔고, 우리나라 김생(金生) 또한 나뭇가지를 꺾어서 땅바닥에 글씨를 익혔다고 한다.

  그리고 서림기사(書林紀事)에 의하면 승(僧) 지영(智永)이 영흔사각(永欣寺閣)에 장기간 거주하면서 이왕(왕희지, 왕헌지)의 임서(臨書)에 전념, 마침내 대성하였는데, 큰 대바구니에 담은 퇴필(退筆)이 다섯 바구니에 이르러 이를 땅에 묻었다고 한다. 세인들은 이 무덤을 퇴필총(退筆塚)이라 이름 지었다. '퇴필총'이야말로 지영예술의 산실이라고 할 만하지 않은가?

  창신(創新)을 바탕으로 한 독자적인 예술의 성취가 너무나 힘이 든다는 역사적인 교훈들이다.

출처 : 추사세상
글쓴이 : 추사사랑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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