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전 이야기

왕 수인의 양명학

강나루터 2023. 4. 3. 04:11

본명은 '왕수인', 호는 '양명', 스스로 붙인 '양명자'

  보통 중국에서는 위대한 스승이 죽고 난 뒤에 그를 기리기 위해서 스승의 성(性)에 '자(子)'를 붙여서 존경의 뜻을 나타내곤 합니다. '공자', '맹자', '주자'와 같이 말이지요. 하지만, 살아 생전에 스스로 위대한 스승이라고 칭한 자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왕수인 입니다. 양명동에 살아서 호를 '양명'으로 붙였고, 스스로의 학문에 강한 자부심을 가졌기에 '양명자'라고 했답니다. 사실 그만한 자부심을 가져도 될만큼 유학에 있어서 뛰어난 업적을 남깁니다. 왕수인은 명나라 사람이었는데, 당시 유행한 주희(주자)의 성리학이 지나치게 이론 중심으로 흘러가자 이에 반대하여 실천적이고 순수한 유학으로 돌이키고자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노력이 마지막으로 중국 철학을 유지한 힘이기도 했습니다.

성리학을 공부한 의심많은 소년

   왕수인은 다른 또래들과 마찬가지로 어렸을 적에 주희의 학문인 '성리학'을 공부했습니다. 주희는 유학을 중심으로 도가의 학문, 불교 화엄종까지 끌어들여, 공자와 맹자가 주장했던 유학과는 전혀 새로운 차원의 유학을 완성하게 됩니다. 그리고 주희의 학문이 크게 유행하고, 과거시험의 중요한 내용이 되면서 모든 공부는 주희의 성리학에서 시작해서 성리학으로 끝나게 됩니다. 다음에 이야기할 내용이지만, 간단하게 성리학에 대해서 이야기 하자면, 모든 사물에는 보편적인 이치가 들어 있기 때문에 그것에 따라서 올바르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왕수인 역시도 열심히 성리학을 공부했으나, 의심 많은 소년이었기에 배운 것에서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친구와 함께 대나무의 이치를 구해보려고 7일간 노력하였으나 결국엔 실패하고 앓아 눕고 말았다고 합니다. 어쨋거나 이러한 경험이 나중에 그가 학문을 완성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용장에서의 큰 깨달음

  20대 후반에 과거에 합격하고 나서 벼슬을 지내던 왕수인은 환관에게 미움을 사서 '용장'이라는 곳으로 귀양을 가게 됩니다. 귀양생활 중에도 꾸준히 공부를 했고, 그 결과 자신의 학문을 완성하게 되는데, 이 학문을 '양명학'이라고 합니다. 이 학문의 핵심은 '이미 내 안에 모든 것이 갖추어져 있으니 따로 밖에서 구할 것이 없다.'는 말 한마디로 정리가 됩니다. 이러한 내용은 맹자가 '사람에게는 날 때부터 타고난 마음이 있다.'는 주장과 다르지 않지만, 당시 주자학이 지배적인 시대에서는 매우 신선한 주장이었습니다.(물론 왕수인에 앞서 '육구연'이라는 분이 먼저 '심학'이라는 분야를 개척하였습니다. 왕수인은 육구연의 이론을 보다 발전시켜 집대성한 심학의 최고 정점이지요.) 당연히 주자학을 공부한 사람들의 공격 대상이 되었고, 수차례의 논쟁을 치르기도 했답니다. 그러나 결국에는 승리하여 명나라와 청나라를 아우르는 학문이 되었지요.

맹자의 양지양능에서 큰 감명을 받음

  왕수인은 맹자의 학문 방법에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반대로, 주희는 순자의 학문에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왕수인은 직관적이고, 통합적이며, 간명하지만, 주희는 분석적이고, 세밀하며, 복잡합니다. 특히 왕수인은 맹자의 '사단'에 큰 영향을 받습니다. 사람이라면 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측은', '수오', '사양', '시비'의 마음이 있는데, 이것은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알기 때문에 '양지'라고 하고, 누가 시키지 않아도 할 수 있기 때문에 '양능'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도덕적인 마음은 이성보다는 감성에 가깝고, 이론보다는 실천에 가까운 특징이 있습니다. 그래서 알기만 하는 것보다는 실천하는 측면이 강하고, 책만 보고 공부하기 보다는 마음을 수양하는 공부를 더 중시하지요. 그러한 이유로 성리학보다는 양명학이 유학의 본질에 더 가까이 다가서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따로 마음 밖에서 구할 것이 없다.

  양명학에서는 세상 모든 일이 양지양능한 자신의 마음의 문제이기 때문에, 마음 하나만 잘 먹으면 얼마든지 도덕적으로 아름다운 사람이 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마음 안에서 올바른 생각과 행동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까요? 먼저, 마음의 순수성을 잘 간직해야 합니다. 기본적으로 맹자의 성선설에 바탕해 있기 때문에, 사람의 본래 마음은 착하다고 가정합니다. 그러면 그 마음을 잘 보존하고, 깨끗한 기운을 잘 길러야 합니다. 다음으로는 마음을 바로잡는 것입니다. 순수한 마음이 그대로 잘 드러나 행동으로 옮겨지면 더 바랄 것이 없지만, 더럽혀진 마음이 있다면 바로잡고, 또 바로잡아서 극복해 내는 일이 반드시 필요합니다.(이것이 왕수인의 격물입니다) 이 두 단계만 해낸다면 따로 마음 밖에서 구할 것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도덕 공부의 전부라는 것이지요.

  간단한 예를 들어 봅시다. 철수는 바쁜 엄마를 돕기 위해서 기쁜 마음으로 심부름을 갑니다. 5,000원 받아서 4,000원짜리 고등어를 사러 슈퍼마켓에 가고 있군요. 그런데, 슈퍼마켓에는 철수가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이 한가득 있습니다. 철수는 자기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킵니다. 하지만, 아이스크림을 하나 사 먹으면 고등어는 살 수 없게 되고, 그러면 어머니를 실망시키고, 어쩌면 혼이 나겠지요. 이렇게 갈등이 되는 상황에서 철수는 오랜 고민 끝에 결단을 내립니다. 고등어를 사고 나서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으로 뛰어 가기로 말이지요.

  그렇다면 이제 어디에서 양명학이 적용되는지 알아봅시다. 철수가 바쁜 엄마를 돕기 위해서 기쁜 마음으로 심부름을 가는 것은 순수한 마음이 바른 행동으로 드러난 것입니다. 하지만, 철수가 심부름 할 돈으로 아이스크림을 사먹으려는 마음은 욕심으로 더럽혀지게 됩니다. 그러나, 철수가 욕심을 극복하고 심부름을 완수하려는 마음을 먹는 순간 순수한 마음을 되찾는 공부를 이루게 된 것입니다. 간단하지요? 이것이 바로 도덕적인 사람이 되는데는 마음 밖에 있는 어떠한 규칙이나 강제도 필요 없다는 증거가 됩니다.

대학을 다시 읽다.

  '대학'이라는 책은 공자의 제자인 증자가 '예기'라는 책에서 일부분을 따로 편집하여 엮은 책입니다. 내용은 작지만 유학의 근본 원리를 대부분 담고 있으므로 유학을 공부하는 사람은 이 책으로 먼저 공부를 해야 다음 공부를 쉽게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불행히도 이 책이 진시황의 분서갱유로 거의 사라지게 됩니다. 분서갱유에서 다행히 살아남은 유학자들이 그들의 기억을 되살려 책을 복원합니다. 그것이 수백년 내려오면서 주희에 이르게 되었고, 주희가 정성들여 해석하고 수정하여 여러 사람들에게 하나의 교과서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문제가 생겼습니다. 대학의 고본이 발견된 것이지요. 고본에서는 주희가 말한 것과는 조금 다른 부분이 있었고, 순서가 뒤바뀐 부분도 있었습니다. 왕수인은 대학 고본에 관심을 집중하여 자신의 이론에 맞게 다시 대학을 해석하게 됩니다.

  대학은 널리 알려진 바 '명명덕, 친민(신민), 지어지선'이라는 3강령과 '격물, 치지, 성의, 정심,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라는 8조목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주희와 왕수인에게 있어서 차이가 나는 부분은 '친민(신민)'과 '격물, 치지'입니다. 먼저 '친민(신민)'을 살펴봅시다. '친민'은 대학 고본에 있던 것으로, 왕수인이 지지한 강령이지요. '백성들을 친하게 한다'는 것은 '백성을 사랑한다'는 것과 같고, '밝은 덕을 천하에 밝혀 백성을 교화하고 양생한다'는 조화로운 의미를 지닙니다. 반면, 주희의 '신민'은 '백성을 새롭게 한다'는 것으로 교화에만 치우친 의미를 지닙니다. 다음으로, '격물, 치지'를 살펴봅시다. 왕수인은 '치지, 격물'이라는 순서를 정합니다. 내 마음에 이치인 양지에 이르는 '치지'를 먼저 하고, 모든 일과 모든 물건에 대하여 이치를 얻는 것을 '격물'이라고 합니다. 그 중에서도 '격물'의 '물(物)'은 '사(事)'와 같은 뜻으로 '내 마음의 뜻이 가 있는 곳'을 말하고, '격(格)'은 바로잡는다는 것을 뜻하니. 둘을 합하여 '내 마음의 뜻이 가 있는 곳을 바로잡는다'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반면, 주희는 '격물, 치지'의 순서를 정하고, 사물의 이치를 하나하나 치밀하게 깨달아 축적하게 되면, 어느순간 온 세상의 이치가 탁 트여 보이게 되는 경지에 이르게 된다(활연관통)고 합니다. 이와 같이 두 사람은 같은 책을 놓고 전혀 다른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관점의 차이가 이렇게 다른 해석을 낳게 되는 것이지요.

지행합일의 삶

  왕수인은 어렸을 적부터 활동적이었기에 무인이 되어 천하를 호령하는 장군이 되려고 하였고, 도에 빠져서 도사를 따라 결혼식도 팽개치고 산속으로 숨어버리기도 했으며, 불교에 잠시 빠졌던 적도 있었습니다. 또한 용장에서의 고통스러운 귀양생활을 통해서 모든 것이 마음의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다른 신하들이 오랑캐의 침입을 두려워하여 숨어 있을 때 전장을 종횡무진 누볐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경험은 그의 학문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의 제자들에 의해 전해지는 '전습록'을 보면, 왕수인의 학문에 대한 개방성과, 제자들에 대한 배려, 섬세함, 실천성, 탁월한 문장력, 굳센 기개 등을 잘 살펴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왕수인은 자신의 학문이 글로 전해지는 것을 반대했습니다. 왜냐하면, 글은 영원하기에 읽고 지나쳐버리기 쉽지만,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것은 실천하지 않으면 잊어버리기 쉬워 전승될 수가 없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앎은 행동의 시작이요, 행동은 앎의 완성이다'는 지행합일의 정신이 왕수인에게서 강조되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하나 덧붙이자면, 왕수인은 '오직 명명덕만을 이야기하고 친민을 이야기하지 않는다면 곧 도가와 불가와 비슷하게 된다'라고 하였는데, 이 말은 '단지 양지를 알기만 하는 데서 그칠 것이 아니라 백성들을 친하게 하는 적극적인 행동으로 드러낼 때에만 제대로 알게 된 것'이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타고난 순수한 마음이 사람들을 서로 사랑하게 만들어야 가치가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상으로 양명에 대해서 간단히 알아보았습니다. 공자는 '도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가까운 곳에 항상 있는 진리를 괜히 어렵게 생각해서 멀리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양명자의 이론은 그러한 생각을 더 꼬집어주는 훌륭한 자극제가 되지요. 저는 주희의 성리학을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인간과 사물을 하나하나 나누고 구조화시켜 살피는데, 과연 그러한 분석이 바람직한지도 의심스럽고, 우주의 본성이 대체 무엇인지도 정확히 말하지 않으면서 거기에 따르라고 하기 때문이죠. 차라리 공자처럼 인간의 일에만 관심을 가지는 것이 더 낫지 싶습니다. 왕양명은 그런 점에서 인간의 일에 충실하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참고한 전습록은 제자들의 노트를 모은 것이라서 앞에서 말한 것이 뒤에 비슷하게 반복됩니다. 그래서 체계를 잡기도 쉽지가 않고, 의미가 조금씩 다른 듯 하면서도 비슷합니다. 제일 첫번째 '서애'편이 가장 나은데, 수제자라서 그런가 봅니다. 그밖에 이해를 돕기 위해서는 진래의 '송명 성리학'과 '양명철학'도 좋은 참고서가 됩니다.

 

 

 

<참고서적>

  - 전습록
  - 대학문
  - 대학고본서
  - 양명철학
  - 송명 성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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