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효 마애 미륵존 여래불
항목 ID한자영어의미역분야유형지역시대집필자
GC04203259 |
元曉磨崖彌勒尊如來佛 |
Rock-carved Statue of Maitreya Buddha in Wonhyobong |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물/불상 |
부산광역시 금정구 청룡동 |
근대/일제 강점기 |
조원영 |
부산광역시 금정구 청룡동 금정산 만성암에 있는 일제 강점기의 마애불상.
원효 마애 미륵존 여래불(元曉磨崖彌勒尊如來佛)은 부산광역시의 조선 후기 불상 조각 양식을 따르고 있는 마애불상이며, 1924년 11월 석우(石牛)가 제작하였다. 근대에 이르러 조각된 불상이지만 원효 대사(元曉大師)와 금정산과의 인연을 담은 전설이 접목되어 있다. 전설은 다음과 같다.
원효 대사가 금정산에서 수행 정진하면서 『미륵 상생경 종요(彌勒上生經宗要)』를 집필하며 중생들에게 미타 신앙과 미륵 의식을 고취시킬 용화 세계를 실현할 명당자리를 수제자에게 찾으라고 하였다. 수제자는 이 말을 듣고 금정산을 헤매면서 명당자리를 찾으려고 노력하였으나 어딘지 알 수 없어 포기하려고 하였다. 그러던 차에 원효봉(元曉峰) 능선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던 중 빛이 번쩍하여 눈을 크게 떠서 살펴보니 큰 바위가 구름 위에 떠 있었다. 수제자는 그곳으로 허겁지겁 뛰어가서 명당자리를 찾았다고 한다. 수제자는 원효 대사의 뜻을 받들어 이곳에다 단번에 미륵존 여래불을 오목새김인 음각으로 조성하고, 자하문 왼쪽 바위에 여래불을 모시는 내력을 기록하였다고 한다.
범어사(梵魚寺)에서 순환 도로로 내려오면 상마 마을 입구 표석을 만난다. 여기서 길을 따라 들어가 범어사 사자암(梵魚寺獅子庵)을 지나서 만성암 앞에서 오른쪽 오솔길로 15분 정도 올라가면 오른쪽 큰 바위 남쪽 면에 원효 마애 미륵존 여래불이 있다.
두광(頭光)과 신광(身光)이 합쳐져 광배(光背)의 끝 부분이 둥글다. 전체 모양이 배와 같은 주형(舟形) 거신광(擧身光)의 광배를 표현하였는데 광배의 내부에는 아무런 장식이 없다. 목에 삼도(三道)는 없고, 눈은 가늘게 반쯤 뜬 모습이며, 상호(相好)는 자비롭고 편안한 느낌을 준다.
대의(大衣)는 양쪽 어깨에서 양 팔에 걸치는 통견(通肩)의 형식이며 가슴과 배를 드러내고 있다. 수인(手印)은 오른손바닥을 밑으로 하고 왼손은 배꼽에서 손바닥을 위로 달걀 하나의 간격을 두고 맞대고 있다. 원형 대좌 위에 상대는 앙련(仰蓮) 무늬가 있고 다리는 결가부좌(結跏趺坐)한 위쪽의 다리를 넓적다리 밑으로 넣고 오른쪽의 한 발만을 다리 위에 얹은 반가부좌(半跏趺坐) 자세를 하고 있다.
방형의 얼굴과 방형의 신체를 표현한 조선 후기 불상 조각 양식을 따르고 있다. 세부 기법은 비교적 간결하게 표현하였다.
신라 시대 원효 대사가 지방을 두루 돌아다니면서 불교의 가르침을 전파한 것에 착안하여, 금정산의 명당자리에 불상을 만들어 원효 대사가 가르친 불교의 진리를 불교도들에게 알리려는 목적에서 제작되었다. 불상의 상호가 원만하고 자세도 안정된 모습이며 근대의 유물로서 종교적 의미에서 가치가 있는 작품이다
원효 마애 미륵존 여래불(元曉磨崖彌勒尊如來佛)은 부산광역시의 조선 후기 불상 조각 양식을 따르고 있는 마애불상이며, 1924년 11월 석우(石牛)가 제작하였다. 근대에 이르러 조각된 불상이지만 원효 대사(元曉大師)와 금정산과의 인연을 담은 전설이 접목되어 있다. 전설은 다음과 같다.
원효 대사가 금정산에서 수행 정진하면서 『미륵 상생경 종요(彌勒上生經宗要)』를 집필하며 중생들에게 미타 신앙과 미륵 의식을 고취시킬 용화 세계를 실현할 명당자리를 수제자에게 찾으라고 하였다. 수제자는 이 말을 듣고 금정산을 헤매면서 명당자리를 찾으려고 노력하였으나 어딘지 알 수 없어 포기하려고 하였다. 그러던 차에 원효봉(元曉峰) 능선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던 중 빛이 번쩍하여 눈을 크게 떠서 살펴보니 큰 바위가 구름 위에 떠 있었다. 수제자는 그곳으로 허겁지겁 뛰어가서 명당자리를 찾았다고 한다. 수제자는 원효 대사의 뜻을 받들어 이곳에다 단번에 미륵존 여래불을 오목새김인 음각으로 조성하고, 자하문 왼쪽 바위에 여래불을 모시는 내력을 기록하였다고 한다.
범어사(梵魚寺)에서 순환 도로로 내려오면 상마 마을 입구 표석을 만난다. 여기서 길을 따라 들어가 범어사 사자암(梵魚寺獅子庵)을 지나서 만성암 앞에서 오른쪽 오솔길로 15분 정도 올라가면 오른쪽 큰 바위 남쪽 면에 원효 마애 미륵존 여래불이 있다.
두광(頭光)과 신광(身光)이 합쳐져 광배(光背)의 끝 부분이 둥글다. 전체 모양이 배와 같은 주형(舟形) 거신광(擧身光)의 광배를 표현하였는데 광배의 내부에는 아무런 장식이 없다. 목에 삼도(三道)는 없고, 눈은 가늘게 반쯤 뜬 모습이며, 상호(相好)는 자비롭고 편안한 느낌을 준다.
대의(大衣)는 양쪽 어깨에서 양 팔에 걸치는 통견(通肩)의 형식이며 가슴과 배를 드러내고 있다. 수인(手印)은 오른손바닥을 밑으로 하고 왼손은 배꼽에서 손바닥을 위로 달걀 하나의 간격을 두고 맞대고 있다. 원형 대좌 위에 상대는 앙련(仰蓮) 무늬가 있고 다리는 결가부좌(結跏趺坐)한 위쪽의 다리를 넓적다리 밑으로 넣고 오른쪽의 한 발만을 다리 위에 얹은 반가부좌(半跏趺坐) 자세를 하고 있다.
방형의 얼굴과 방형의 신체를 표현한 조선 후기 불상 조각 양식을 따르고 있다. 세부 기법은 비교적 간결하게 표현하였다.
신라 시대 원효 대사가 지방을 두루 돌아다니면서 불교의 가르침을 전파한 것에 착안하여, 금정산의 명당자리에 불상을 만들어 원효 대사가 가르친 불교의 진리를 불교도들에게 알리려는 목적에서 제작되었다. 불상의 상호가 원만하고 자세도 안정된 모습이며 근대의 유물로서 종교적 의미에서 가치가 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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