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스님이 머물던 곳, 송광사 불일암
1932-1910,
그는 마침내 시간과 공간을 버렸다.
다비준비위 대변인 진화 스님은 “10일 밤 법정 스님이 ‘모든 분께 감사한다. 내 것이라고 하는 것이 남아 있다면 모두 맑고 향기로운 사회를 구현하는 활동에 사용해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전했다.
법정 스님은 1932년 전남 해남군에서 태어나 전남대 상과대 3년을 수료한 뒤 22세 때인 1954년 경남 통영시 미래사에서 효봉(曉峰) 스님을 만나 출가했다. 1959년 통도사 금강계단에서 자운(
慈雲) 스님을 계사(戒師계를 주는 스님)로 비구계를 받았다.
스님은 경남 합천군 해인사, 경남 하동군 쌍계사, 송광사 등에서 수선안거(修禪安居)했다. 불교신문 편집국장과 송광사 수련원장 등 종단 소임을 몇 차례 맡았을 뿐 수행자로서 본분에 충실했다. 1994∼2003년 시민모임 ‘맑고 향기롭게’ 회주(會主모임이나 법회를 이끄는 사람)와 1997∼2003년 서울 길상사 회주를 지냈다.
이 분이 머물던 곳 중 대표적인 장소가 1975년부터 1992년까지 머물었던 송광사 불일암이다. 스님은 강원도 평창 모처로 옮기기 전까지 '무소유(1976)'등 많은 저서를 이곳에서 저서를 집필했다.
1980년대 후반 법정스님이 송광사 불일암에서 수련 할 때의 모습.삼베적삼에 마른 그의 모습에서 무소유의 정신을 엿볼 수 있어 아마도 그를 대표 할 수 있는 모습이 아닌가 싶다.
송광사에서 꼬부라져 고개를 하나 넘어(걸어서 30분소요) 불일암 가는 초입이 나옵니다.
먼저 커다란 삼나무 군락이 손을 반기는군요.
그 다음엔 굵은 대나무 군락이 길게 이어집니다.
그 다음엔 참죽나무 군락이 이어집니다. 불일암에 가까이 갈수록 나무들이 작아집니다.
마침내 불일암 입구를 알리는 조그만 대나무로 만든 문으로 들어서 봅니다.
이곳이 스님이 기거하던 불일암 전경입니다.
불일암 현판이 걸려있군요.
바로 앞이 스님이 기거하시던 거실이고 석가모니불이 모셔져있습니다. 오른쪽이 서재이고 왼쪽이 다실(보이지 않음)입니다.
서재입구에는 추사의 세한도 영인본이 걸려있습니다.
바같에서 본 불일암 내부. 스님이 쓰시던 신발이 그대로 놓여있습니다.
다실 바깥에는 청산별곡 중 일부가 각인된 현판이 붙어있습니다.
법정스님의 서재입니다.대부분 사회과학 분야 서적들 입니다.
법정스님이 차를 마시던 다실인데 1평 조금넘는 크기입니다.
차상이 이제 주인을 잃고 말았군요.
생전에 법정스님이 차마시던 모습입니다.
스님,먼 하늘나라에서도 차를 드시며 중생을 보살펴 주십시요.
(광주 무각사 청학스님 사진제공)
스님이 신던 하얀 고무신과 입선중이라는 스님이 직접 쓰신 나무 팻말,
스님이 손수 제작하신 의자가 멀리 보입니다.
의자의 모습이 정말 스님을 닮았습니다.
불일암에 다람쥐 녀석이 놀러왔네요. 사진을 찍어도 놀라지 않네요.
불일암 옆에는 조그만 객사가 있는데 이곳을 지키던 스님이 쓰시던 목탁이 걸려있고
편지함에는 맑고 향기롭게라는 글자가 보입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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