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 조지수 趙之壽(중서공)님
중서공 휘 지수(漢陽趙氏 始祖 中書公 諱之壽)
고려시대 첨의중서僉議中書역임 한양조씨 시조.
우리나라 조씨성의 관향이 35본이나 된다. 특히 한양은 더욱 성문(盛門)이다. 공은 즉 거룩하신 시조이시다.
공의 휘는 지수요. 관(貫)은 고려조순대부 첨의중서사(高麗朝順大夫 僉議中書事)에 이르렀으며, 묘는 함경도 영흥면 은곡동에 모셨다고 족보에 전해지고 있으나 실전(失傳)하였으니 명호(鳴呼)라, 통탄하도다! 왕년에 자손들이 위선(僞先)하는 정성으로 누차 찾았으나 찾지 못하고 주민에게 물으면 조씨선산이 이 산중에 있었다고 하나 어느 곳인지 몰라 뜻을 이루지 못하여 후손들이 백세(百世)의 한을 풀지 못하였다.
이에 예손 준식(양경공파)등이 도모하기를 조상의 묘소를 잃으면 설단(設壇)하고 향사(享祀해서 그 은혜심을 베풀 수 있다 하고, 고종 광무5년에 설단입비(設壇立碑)하여 그 정성을 표하여 왔다.
그러나, 남북이 분단되어 구릉(丘陵)을 첨망(瞻望)하고 단하에 분향하는 것마저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남 제손들이 울읍한지 어언 50여년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대종회에서 분단이후 두번째 족보를 발간하려 함에 첨종(僉宗)이 협의하여 이곳 이남에도 따로이 설단하여 향화하는 것이 도리라 하고, 2004년 4월 17일 후손 광주전남종친회장 일형(양절공파)등이 충남 홍성군 홍북면 대인리 매산 제각골에 설단입비하여 제향을 받들게 되었다.
시조 중서공께서 독자를 두시니 총관공 휘이며, 후손이 30여만명으로 명문 거족으로 성장하였다.
관향 | 한양 |
시조 | 조지수 |
주요 중시조 | 조돈 |
주요 집성촌 | |
주요 인물 | 조광조, 조지훈, 조병옥 |
인구(2000년) | 30만 7746명 |
한양 조씨(漢陽趙氏)는 한국의 씨본 중 하나이다. 고려 때 첨의중서사(僉議中書事)를 지낸 조지수(趙之壽)를 시조로 한다.
시조의 외아들인 조휘(趙暉)는 1258년 원나라가 고려에 침략하여 괴뢰정권으로 수립한 쌍성총관부(雙城摠管府)의 초대 총관을 지냈다. 이로부터 99년간 한양 조씨 일가는 쌍성총관부 총관직을 세습하며, 원나라의 앞잡이 노릇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조휘의 손자인 조돈(趙暾)이 공민왕 때인 1356년 동북면 병마사 유인우(柳仁雨)에게 내응하여, 조카 조소생(趙小生)이 총관으로 있던 쌍성총관부를 무너뜨리고 고려가 옛 땅을 되찾는 데에 공을 세웠다.
이로써 원나라에 협조하였던 조상들의 과거사를 청산하고 고려에 귀의한 조돈은 이후 고려의 최고 벼슬인 삼중대광에 올랐으며, 조선 태조 이성계의 부마 조인벽(趙仁璧)을 비롯한 그의 아들들은 조선 개국 공신으로 활약하였다. 마지막 쌍성총관 조소생의 후손이 전해지지 않으므로 쌍성 수복 이후에 이어진 한양 조씨의 혈통은 모두 조돈의 후손들이다.
한양 조씨는 조선 시대에 들어서부터 인재를 많이 배출하였는데, 그 중에서 16세기의 개혁 정치가 조광조(趙光祖) 등이 특히 유명하다.
현대 인물 중에서는 시인이자 교육자인 조병화(趙炳華), 조지훈(趙芝薰), 독립운동가 조병옥(趙炳玉)과 그의 아들들인 국회의원 조윤형(趙尹衡), 조순형(趙舜衡), 새천년민주당 대표최고위원과 주일대사를 지낸 조세형(趙世衡), 헌법재판관을 지낸 조승형(趙昇衡), 국방부장관을 지낸 조성태(趙成台), 국문학자 조동일(趙東一), 프로야구 선수 조성민(趙成珉), 배우 조형기(趙炯基) 등이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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