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의 고향

[스크랩] 낙원의 비밀

강나루터 2014. 2. 12. 20:08

낙원의 비밀


 어떤 나라의 도성에 큰 부자가 살았는데 평소 주변 사람들에게,

“나는 이 세상의 모든 쾌락과 행복을 맛보았다.”

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하루는 낯선 사람이 찾아와 그림 한 장을 보여주었다.

아름다운 낙원이 그려져 있었는데 꿈에서도 구경 못한 절경이었다.

몇 날 며칠 동안 그곳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생각 끝에 부자는 그 낙원을 직접 만들기로 결심했다.


  방방곡곡을 돌아다닌 끝에 경치이든 풍수이든 마음에 드는 곳을 용케 얻게 되었다. 

  부자는 날로 커져가는 자신의 사업을 제쳐놓고 낙원을 건설하는 일에 온힘을 쏟아부었다.

  마침내 그림과 비슷한 모습의 낙원이 세상에 공개되었다.

 "와- 정말 좋은 곳이네요. 당신은 우리 모두의 꿈을 이루시는군요."

 "야아- 정말 멋있다. 이거 돈 많이 들었겠는데요.”

 그렇지만 사람들이 칭찬하면 할수록 그의 눈엔 어딘가 끊임없이 부족해 보였다.

 그는 계속해서 막대한 금전과 노력을 쏟아 부었고 그에 따라 더욱 많은 사람들이 그곳에서 행복해하였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부자 자신은 그다지 행복한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가 마침내 왕에게 <가장 고결한 마음을 지닌 자> <가장 본받을만한 자>라는 명예를 받았을 때 우환이 덮쳤다. 그 많던 재산은 거덜나기 시작했고, 부인은 바람이 났으며, 친구나 부하들은 그를 배신하고 욕심을 채우기 바빴다.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그는 그곳의 모든 것을 정리하고 도성으로 돌아갔다.


 그가 마지막 떠나던 날.

낙원에 있던 어떤 이가 홀로 그곳이 폐쇄된다는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그 부자에게 난생 처음 낙원의 그림을 보여준 사람이기도 하였다.

 그가 깊은 명상에 잠겨 있다가 나와 보니 주변은 온통 하얀 눈 세계였다.

사람의 발자국은커녕 먹을 것을 찾다 지친 까치의 시신 한 구뿐.

하지만 사정을 모르는 그는 그저 눈 때문에 아무도 오지 않는구나, 하고 여겼다.

저녁 나절  늙은 인부 한 사람이 술 한 병을 들고 이곳저곳을 기웃거릴 뿐.


 고향에 돌아가지 못했던 그 인부마저 흙으로 돌아가고 나라에서 가장 유명했던 그곳은 세인의 뇌리에서 완전히 잊어지고 말았다.

 도성의 부자는 모진 노력으로 과거의 재산을 회복했지만 삶은 적막하고 불행했다. 황혼녘 정원을 산책하다보니  문득 그곳이 생각났다.

“그곳도 나처럼 외롭고 황량해졌을 것이다. 낙원을 만든다던 나는 불행의 수렁에 빠졌으니 기이하고 답답한 일이로다.”

 지팡이를 짚고  찾아가보니 입구가 어딘지조차 보이지 않았다.

기억을 더듬어 잡목 숲을 헤쳐가는데 저만치에서 몇 줄기 밝은 빛이 보였다.

그 빛을 따라가보니 예전의 낙원터가 나타났다.


이럴 수가!

부자는 자신의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폐허가 되어 있어야 마땅했던 그곳은 자기가 만들었던  낙원보다도, 그림에서 보았던 그 낙원보다도 말할 수 없이 아름다웠다.

“도대체 누가 이것을 해낼 수 있단 말인가?

 하늘이 낸 거부이거나 지혜가 월등 깊은 이일 것이다.”

 부자는 그 안을 돌아다녀 보았지만 아무도 찾을 수 없었다.


 문득 저편 나무 아래에 어떤 이가 홀로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다름 아닌 눈 때문에 그곳에서 나오지 못한 사람이었다.

 “놀라운 일이오. 당신이 혼자 있는 사이 여기는 아무도 가보지 못한 아름다운 곳으로 변하다니? 그 비결이 무엇이오?”


 그가 말했다.

 “당신은 막대한 부와 열정이 있었지만 홀로있음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홀로있음을 모르고서는 아무도 천국을 만들 수 없습니다. 당신이 맛본 모든 쾌락이나 행복도, 만들고자 했던 낙원도 기실은 당신의 홀로있음으로부터 도망가기 위한 것이었으니까요. 생겨난 모든 것은 없어지기 마련입니다. 한때는 흥했다가 언젠가는 저무는 것입니다. 홀로있음을 즐기며 그로부터 배우고, 그 안의 비밀을 맛볼 수 있다면 그것이 곧 낙원입니다. 그 낙원은 만들어진 것이 아니며 멸하는 것도 아니며 바로 지금 여기, 언제나 주어져 있습니다.”

 말을 마친 그는 어딘가로 떠나버렸다.

 그러자 주변의 모든 꽃들, 나무들, 바람들, 정령들과 향기들, 달빛과 별빛들마저 그를 따라 가버렸다

출처 : 逍遙遊(소요유)
글쓴이 : 山木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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