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발과 하얀 손은 한 살 터울의 형제였지만 생김새나 성정머리, 하는 짓이 모두 딴판이었다. 하얀 손은 여자들도 부러워할만한 조각상 같은 외모와 아름다운 손을 지니고 있었다. 피부에 난 솜털과 솜털 사이의 물기가 마르는 소리까지도 듣는다고 할 만큼 예민한 성격으로 조용한 것을 즐기며 주변은 늘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우락부락한 검은 발은 무모하고 엉뚱한 데다 걸핏하면 사람을 두들겨 패기까지 하였다. 아무리 잘 정리된 곳이라도 두세 번의 간단한 동작으로 난장판으로 만드는 희한한 능력도 지니고 있었다. 게다가 그의 발 냄새는 매우 지독스러워서 그를 낳아준 어머니조차 고개를 저을 정도였다. 아무리 닦고 문질러도, 어떤 특효약도 소용이 없었다. 흡사 간장 독에 삼 년을 담가 놨다가 막 꺼낸 듯한 그 거무죽죽하고 툽상맞은 발에서는 발고린내가 가시는 날이 없었다.
그러다보니 두 사람은 서로에게 하루하루가 고통이었다. 검은 발은 하얀 손의 조용함과 단정함이 숨이 막혔고, 검은 발의 무신경함과 난폭함 때문에 하얀 손은 늘 머리로 피가 곤두서는 것 같았다. 더군다나 검은 발의 발 냄새는 지옥 그 자체였다. 그들은 툭하면 서로 할퀴고 으르렁거리며 상처를 주고 받았고, 한결같이 진절머리를 내고 있었다. 도저히 참을 수 없게 된 그들은 각자 집과 고향땅을 떠나고 말았다.
세상을 향한 불만이 가득 찼던 검은 발은 온갖 궂은 일을 하며 천리 만리 타향 하늘 밑을 떠돌아 다녔다. 그러던 중 혁세 천하의 시절이 당도하자 군대에 가담하여 자신처럼 가난한 많은 이들과 노예들을 해방시키고 높은 지위에 올랐다. 하지만 어느날 알 수 없는 이유로 돌연 모든 공직에서 물러난 뒤 거리의 악사가 되어 정처 없이 떠돌았다.
한편 정든 고향산천을 떠난 하얀 손의 고뇌는 점차 깊어졌다. 근본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는 많은 스승들과 숨은 현자들을 찾고 또 찾아다녔다. 그러다가 깊은 산 속에 있는 수행자의 무리에 들어갔는데, 평소의 유약한 모습과는 달리 용맹정진의 일인자로 명성이 자자했다.
불요불굴의 수행 끝에 그는 대각을 이루었고, 많은 이들이 그에게서 배움을 청하는 스승의 위치에 올랐다. 그는 언제부턴지 한 쪽 발을 절고 있었는데 설법을 하는 중에 한 제자가 이유를 물어보았다. “스승님은 맹수에게 물리거나 절벽에서 떨어진 일도 없는데 어인 일로 한 쪽 발을 늘 절고 계신가요?”
하얀 손은 과거의 일을 이야기하며, “어떻게 검은 발과 내가 형제가 될 수 있었는지 아무도 믿지 않았다. 나조차도 불가사이하게 생각되었다. 내가 발을 저는 것은 함께 자라면서 그를 너무나 싫어하고 그로부터 어떻게 하든 도망가려 했기 때문에 받게 된 나의 업보다. 그러나 발이 없이 내가 어떻게 일어설 수 있었겠는가?” “기억하라. 이 세상의 어떤 것도, 어떤 사람도 자기와 정반대의 것을 이 우주 안에 지니게 된다. 그것은 피할 수가 없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저주가 아니다. 실제로 나의 경우에는 나와는 정반대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 바로 곁에 있다는 것은 엄청난 축복이었다. 그가 아니었다면 오늘의 나는 결코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당신과 정반대되는 것들을 이해하고 사랑하며 그것을 당신 안에서 녹여내고 통합해야 한다.”
듣고 있던 사람들이 감복하고 있는데 무리의 뒤편에서 누군가 연주하는 음악 소리가 들려왔다. 음색이 매우 기이하면서도 구천에 사무칠 듯 아름다운 것이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소리였다. 사람들이 고개를 돌려보니 한 외팔이 악사가 낡은 악기를 연주하며 어딘가로 사라지고 있었다.
금강승의 한 행자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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