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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국보 275호의 기마인물형토기에 숨은 비화

강나루터 2014. 9. 29. 15:12

 

국보 275호의  기마인물형토기에 숨은 비화(秘話)

 

 

국보 275호 기마인물형토기(角盃 긱배-뿔잔) /국립경주박물관 이양선 기념관

 

 

국립경주박물관에는 국은(菊隱) 이양선(李養璇)선생이 평생동안 수집한 유물을 국립경주박물관에 기증하여 그 유물을 전시하고 있는 국은 이양선 기념 전시실이 있다.

 

전시된 수많은 유물 중에서 특히 돋보이는 것이 국보로 지정되어 있는 기마인물형토기이다 

말을 타고 있는 사람의 모습을 한 높이 23.2㎝, 폭 14.7㎝, 밑 지름 9.2㎝의 인물형 토기로 경상남도 김해시 대동면 덕산리에서 출토되었다고 하나 이는 정확하지 않으며 삼국시대 가야지역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생각되는 뿔잔 형태의 토기이다

 

나팔모양의 받침 위에 직사각형의 편평한 판을 설치하고, 그 위에 말을 탄 무사를 올려 놓은 형태인데, 받침이 가야의 굽다리 접시(고배)와 동일한 형태를 이루고 있어 가야시대의 유물로 추정할 수 있다,

 

 

받침대

 

가야토기와 신라토기의 형태 비교 /대구박물관

 

 

받침대에는 약간의 돌대가 있는 2단의 띠가 둘러싸고 있고, 띠의 아래위에 수직으로 투공(透孔-구멍)이 배치되어 있으며, 투공 사이에는 거치문(鋸齒文)이 장식되어 있다.

 

말갈기는 직선으로 다듬어져 있고 네모진 받침의 네 모서리에 말의 네발이 놓여 있다.

말은 마갑(馬甲-갑옷)을 착장하고 있는데 마갑은 장방형의 판으로 엮은 형식으로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말 탄 무사의 모습

 

마갑

 

 

말 위에 올라타고 있는 인물은,  앞으로 뻗어나온 챙이 있고 정수리가 뾰족한 모자를 쓰고 있는데 이런 모양은 다른 곳에서는 출토된 예가 없어 그것이 투구인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갑옷으로 무장을 하고 있으니 투구로 보아도 좋을 것 같다.

오른손에는 길다란 둥근 막대기를 쥐고 있는데 앞쪽이 잘리고 없으나 창의 형태가 아닐까 한다. 왼손에는 큼직한 방패로 앞을 가리고 있는데, 방패의 앞면 가운데는 평행으로 선이 그어져 있고 그 주위에는 사선이 나란히 새겨져 있다.

 

인물의 등 뒤에는 부러진 막대기가 붙어 있는데 그 용도는 짐작하기 어렵고, 안물의 뒤에는 각배(角杯-뿔잔)가 쌍으로 높다랗게 세워져 있는데, 2단의 테를 두르고 사이에 비스듬한 격자(格子)무늬를 새겨놓았다.

 

 

각배의 사격자(斜格子) 문양

 

찰갑(札甲)과 마구(馬具)를 완전하게 갖춘 말과 갑옷을 입은 인물이 당시의 모습을 완벽하게 보여주고 있어   이 토기에 있는 인물의 복식(옷)이나 자세, 그리고 말이 착장하고 있는 마구(馬具)를 통하여 다른 고분에서 출토되는 각종 마구들의 용도를 밝힐 수가 있어서 가야시대의 말갖춤(마구)과 무기의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그러나 이 귀중한 기마인물형토기(뿔잔)가 하마터면 가짜라는 오명을 쓰고 영영 우리의 시야속에서 묻혀 버릴뻔 하였지만 문화재를 알아보는 한 화랑(畵郞)주인에 의하여 세상 밖으로 나와 그 가치를 인정받게 된 숨은 이야기가 있다.

 


1970년 대 초, 대구의 고미술품 매장에 삼국시대에 제작됐다는 기마 인물형 토기 한 점이 나왔다.  ‘도기 기마 인물형 뿔잔’이라 이름 붙여진 이 토기는 무장을 한 무사가 말을 타고 있는 모습을 표현한 형태의 토기였다.

이 토기는 대구에서 목욕탕 겸 여관을 하던 시람이 고미술품 중간 상인에게 내어놓은 매물로, 희망하는 가격은 1,650만 원이었다.

이 토기는 그 형태로 보아 4세기 후반에서 5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었지만, 제작 연대에 비해 보존 상태가 너무 깨끗하고 색상이 회백색이 아닌 황갈색을 띠고 있어 많은 전문가들이 가품(假品), 즉 가짜라고 판단을 하여 매매(買賣)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다.

성보문화재단을 설립하고 호림박물관을 일구어 한국 문화재 수호의 살아 있는 증인으로 평가받는 호림(湖林) 윤장섭(92) 선생도 당시 이 토기를 보고  몇몇 전문가에게 감정해본 결과 가짜 같다는 의견을 듣고는 결국 매입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나중에 이 토기를 구입하지 않은 것을 매우 아쉬워하며 후회하였다고 기술(記述)한 적이 있다

 

이 후  기마인물형토기는 그 진가(眞價)를 알아본 서울의 한 화랑(畵郞) 주인이 900만 원에 사들여 전시하게 되었는데, 당시 이비인후과 전문의며 경북대 교수를 지낸 국은(菊隱) 이양선(1916~99) 선생 역시 이 유물의 가치를 알아보고 자신이 수집한 문화재 666점을 국립경주박물관에 기증하면서 이 토기 소장자에게 자신이 가장 아끼던 청화백자를 주는 조건으로 이 기마인물형토기를 국립경주박물관에 기증하도록 유도하여 이 기마인물토기는 국립경주박물관으로 오게 된 것이다

 

당시 한병삼(1935~2001) 국립경주박물관장도 이 토기를 진품(眞品)이라 확신하였고, 가짜라고 주장하는 문화재 관계자들을 설득해 작품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도록 적극 노력한 결과 문화재위원들의 세밀한 검토 끝에 진품으로 판정이 되어 국보로 275호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이 기마인물형토기가 처음 알려졌을 때는 이렇게 진위(眞僞)에 대하여 왈가왈부하였으나 일본 나라현에서 이것과 닮은 형태의 파편이 있음이 알려지면서 진위 문제는 더 이상 논의가 필요없게 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출토된 기마 인물형토기는 이외에도 몇 점이 있는데,  국보 91호로 지정된 경주 금령총(金鈴塚) 출토 기마인물형토기가 대표적이다.

 

국보 91호 기마인물형 토기/국립중앙박물관

 

이 기마인물형토기는 1924년 경주 금령총에서 출토된 토기이다.

금령총에서는 비슷한 모양의 기마인물형토기가 2점이 같이 출토되었는데 크고 화려한 토기는 주인을, 다른 하나는 주인을 모시고 다니는 하인을 표현한 것으로 보고 있다.

주인으로 보이는 상의 크기는 높이가 23.4cm, 길이 29.4cm이며 하인으로 보이는 상의 크기는 높이 21.3cm,길이 26.8cm로  신분의 차이를  크기로 나타낸것이다.

 

이 토기의 용도는 주전자와 같은 것으로 추정되는데 사람이 앉아있는 뒷쪽 잔모양의 동그란 그릇에 물이나 술을 부어넣고 앞으로 기울이면 머리 앞쪽의 길다란 막대 끝으로 나오게 되어 있는 구조이다

몇 년전 국립박물관에서 X-레이로 투시해 본 결과 속이 텅비어 액체를 담을 수 있게 만들어져 있음이 확인되었다.

 

주인상

 

주인상은 삼각모자를 쓰고 다리 위로 갑옷을 늘어뜨렸으며 장니(障泥 : 말다래-말 탄 사람의 옷에 흙이 묻지 않도록 말 안장에 늘러뜨리는 장비 )가 화려하다. 등에는 전대(錢帶)를 차고 있는데 아마 저승으로 가는 노잣돈일 것이다

하인상

 

하인상은 장식이 단순하다. 머리에 수건을 동여매었고 웃통은 벗어졎혔다. 등에 짐을 지고 오른손에는 방울을 들고 있다. 주인의 저승길을 함께 따라가며 주인을 보필하는 역할을 할 것이다.

 

이 토기는 삼국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말탄 무사모양 주전자 / 국립경주박물관

 

 

경주시 남동쪽에 위치한 덕천리 1호 돌무지덧널무덤의 부장칸(부곽 副槨)에서 출토되었다.

이 토기 역시 금령총 출토 기마인물형토기처럼 잔의 형태가 아니고 물, 또는 술을 담는 주전자의 형태이다. 말에 올라찬 사람은, 머리와 양팔이 떨어져 나갔지만 오른쪽에는 화살통, 왼쪽에는 칼을 찬 무사의 모습이다.
바지의 표현형태로 미루어 갑옷을 입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말 위에 늠름한 자세로 앉아 있는 모습이 섬세하게 표현되어 있다.
말은 갈기·눈·코·입 등이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으며 발걸이(등자鐙子)를 제외한 고삐와 안장, 말다래(障泥 장니), 말띠와 말띠드리개(杏葉 행엽) 등 각종 마구를 완벽하게 갖추고 있다

5세기경 신라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높이는 20cm이다

 

기마인물형토기는 무덤에서 출토되었으므로 당연히 무덤에 묻힌 사람의 여러 부장품 중 하나일 것이다.

그러나 단순한 부장품이 아니라 신라, 가야인들의 복식과 말갖춤, 나아가 그들의 영혼관과 당시의 장례풍속을 알게 해주는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국립대구박물관의 말장식토기

 


 

출처 : 토함산솔이파리
글쓴이 : 솔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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