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지사지(易地思之)의 유래와 이야기
易 : 바꿀 역
地 : 땅 지
思 : 생각할 사
之 : 갈 지
처지(處地)를 바꾸어서 그것을 생각하라로,
다른 사람의 입장(立場)에서 헤아려보라는 말입니다.
역지사지(易地思之)유래
이 말은 [맹자(孟子) 제8편]
이루 하(離婁 下) 29章에 나오는 아래 문장;
08-29-05 "禹稷顔子 易地則皆然 聖賢之心 無所偏倚 隨感而應
各盡其道 故 使禹稷 居顔子之地 則亦能樂顔子之樂 使顔子 居禹稷之任
亦能憂禹稷之憂也"
易地則皆然에서 유래한 것으로 사료됩니다.
즉 뜻을 옮기면;
역지즉개연(易地則皆然)는 '처지(處地)를 바꾼다 해도
하는 것이 서로 같다' 입니다.
어원은 분명하지 않지만 일반적으로 맹자의 ‘이루 하(離婁 下)’에
나오는 역지즉개연(易地則皆然)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재미있는 것은 역지사지와 역지즉개연의 뜻풀이다.
역지즉개연은 ‘처지를 바꾸어본다고 해도 모두 그럴 것이다'라는
긍정적인 의미인데 비해
역지사지는 '처지를 바꾸어 생각하라'는 다소 부정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그래서 두 성어(成語)는 서로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다르고 다른 것 같으면서도 비슷하다.
공자의 제자인 안회(顔回)는,
누추한 골목 안에 살면서 한 그릇의 밥,
한 표주박의 물만으로도 만족하며 자신이 선택한 길을 즐겁게 걸었다.
또 상고시대의 성인으로 추앙받는 하우(夏禹)는 세상 사람들 중에
물에 빠진 이가 있으면 자기가 치수(治水)를 잘못하여 그렇다며
스스로를 탓했고, 후직(后稷)은 천하에 굶주리는 사람이 있으면
자신이 일을 잘못하여 그들을 배고프게 했다면서 자책했다.
맹자는 이 세 사람이 같은 도(道)를 지향하고 있음으로
서로의 위치를 바꾼다고 해도 달라질 것이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것이 역지즉개연의 경지다. 그러나 그들은 성인이었고 깨우친 사람들이다.
따라서 걸핏하면 실수를 저질러 남의 가슴을 아프게 하는 장삼이사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역지사지는 그런 장삼이사들에게 던지는
경고요 가르침이 아닐까.
역지사지(易地思之)에 대한이야기
1)
가끔 별것도 아닌 일을 가지고 서로의 주장이 옳다며
아내와 티격태격 다툴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아내가 강조하는 말은,
“함부로 판단하지 마세요.
언젠가 당신도 내 자리에 서보면 지금의 내 마음을 알게 될 거에요.”
나 딴에는 장난삼아 던진 말이 아내에게 상처를 입힌 모양이다.
말은 생각이고 생각은 말이다.
그리고 어느 것이 먼저냐에 따라서 그 뜻은 확연히 달라진다.
말하고 나서 생각하는 사람은 단순하고, 생각하고 나서 말하는 사람은
신중하다. 역지사지의 뜻을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은 말보다는
생각을 앞세운다, 말은 그 사람 교양의 척도가 되고 내면을 들여다보는
내시경이 된다. 그래서 현인들은 말을 아꼈다.
2)
숙종 때,
칠원 현감을 지낸 주의식은, 말하기의 어려움에 대해 이렇게 피력했다.
“말하면 잡류라 하고 말 안하면 어리다 하네.” 그렇다면
도대체 어쩌란 말인가.
역지사지란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이해를 전제로 한다.
상대의 표면만을 볼 게 아니라 그 사람의 내면까지도 들여다보아야 한다.
똑 같을 수는 없지만 비슷한 경험이라도 해보아야 제대로 된
평가를 내릴 수 있다는 그런 뜻일 게다.
3)
옛날에 어느 늙은 부부가
딸 하나를 애지중지 길러서 부잣집으로 시집을 보냈다.
그리고는 오랜만에,
그러니까 딸이 그 집안 살림을 주관하게 된 뒤에야 아버지가 딸을 보러 갔다.
영감을 딸의 집에 보낸 마누라는, 모처럼 찾아간 저의 아버지를
부자로 사는 딸이 잘 대접해 보내겠거니 하는 은근한 기대를 걸고 있었다.
그러나 며칠 만에 딸의 집에서 돌아온 영감의 표정은 시무룩했다.
흐뭇한 기색으로 돌아올 줄 알았던 영감의 표정을 보고 마누라는
조심스럽게 우슨 언짢은 일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영감은 이에 대한 대답이 없었다.
다시 기색을 살피면서
부자 딸네 집에 가서 대접은 잘 받고 왔느냐고 농담 비슷하게 물었다.
그런데 이 말을 들은 영감은 퉁명스럽게
"먹을 것이 있어야 잘 먹지."
하고 소리를 버럭 지르더라는 것이다.
노파는 딸이 쾌심했다.
모처럼 딸이 보고 싶어서 찾아간 친정 아버지를 그렇게 푸대접하다니,
그것도 부자로 잘사는 딸이 그럴 수가 있느냐고 분개했다.
언제고 딸을 만나면 호되게 꾸짖어야 겠다고 별렀다.
그러다가 만날 때까지 기다릴 것이 아니라
당장 가서 혼을 내주리라고 생각한 노파는
다음날 일찌감치 딸의 집을 향해 걸음을 재촉했다.
딸이 반색을 하면서 맞이했으나 노파는 얼굴을 펴지 않았다.
그러면서 다짜고짜로,
부자로 산다는 딸년이
친아버지를 그렇게 푸대접할 수가 있느냐고 다그쳤다.
난데없이 어머니에게 날벼락을 맞은 딸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실은 모처럼 오신 친정아버지를 위해 온갖 정성을 다 기울였던 것이다.
갈비를 굽고, 닭을 잡아 볶고,
어쨌든 아버지를 위해 돈을 아끼지 않고 좋은 음식을 장만해 대접했다.
그랬건만 아버지는 끼니 때마다 못마땅한 표정을 짓더니
집에 가서 어머니에게 무어라고 하셨기에 이 야단인가 싶어 억울했다.
딸에게서 그 동안의 사정을 들은 어머니는
딸에게 품었던 노여움은 봄바람에 눈 녹듯이 사라지고
이제 슬그머니 영감에게 대해 밉살스러운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어쩌면 그렇게 융숭한 대접을 받고도
저녁 굶은 시어미 상을 짓고 돌아와서는 그렇게 화를 낼 수가 있느냐고,
집에 가서 따져 보리라고 마음 먹었다.
집으로 돌아온 노파는 영감헤게 딸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다 하면서
어쩌면 그럴 수가 있느냐고 대들었다.
그런데 영감의 대답은 딴판이었다.
"밥상에 나 먹을 것이 어디 있었어.
두부가 있나, 묵이 있나. 닭도 많이 기르더구먼 달걀 하나를 쪄 놓았나.
그까짓 갈비구이며 닭볶음이 내게 무슨 소용이란 말여."
영감의 이런 퉁명스런 대답을 듣고 나서야,
마누라는 영감의 이가 부실해서 집에서도
국물이나 떠 먹으면서 지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고는 스스로 부끄러워서 말문이 막혔다는 이야기다.
남의 염병이 내 고뿔만 못하다다는 속담도 있듯이,
내 건강은 내가 관리할 일이지, 이런 경우에는 마누라도 남이다.
이가 오복의 하나라는 속설을 절실하게 실감하는 나로서는
남의 이야기같이 들리지 않았다.
딸이 오랜만에 찾아온 아버지를
잘 대접해서 기쁘게 해 드리겠다는 정성은 지극했으나,
그것은 자기만의 생각이었지
아버지의 건강은 전혀 고려한 바 없는 처사였다.
좀더 현명했더라면 늙은 아버지의 치아를 생각했을 것이고,
그랬더라면 치과의가 없던 시절이니 의치를 해 드릴 수는 없었다 하더라도
아버지의 경우에 맞는 음식을 대접했을 것이다.
그러면 비용을 훨씬 덜 들이고도 아버지를 기쁘게 해드렸으련만,
생각이 채 미치지 못하여 실패로 돌아가고 만 것이다.
역지사지(易地思之)라는 말이 있다.
자기만의 생각을 떠나 처지를 바꾸어 상대의 위치에서 생각해 보면
일이 훨씬 손쉽게 풀릴 수 있다는 말이다.
4)
이건 여담이지만,
일제 시대에 우리 나라 갑부였던 모씨의 이야기는
그의 현명함을 느끼게 한다.
모씨는 젊어서 새우젓 등짐장수였던 아주 가난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렇던 그가 어떻게 해서 부자가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우리 나라 굴지의 갑부가 되었다.
무식하였지만 갑부가 된 그에게는 찾아오는 사람이 차츰 많아졌다.
따라서 응접실이 필요했다.
그래서 그는 응접실을 꾸미는데 하나는 서양식 응접실로,
또 하나는 우리 전통의 사랑방으로 갖추어 놓았다.
양관(洋館)은 고급 관리들을 맞이하는 곳이요,
사랑은 일반손님을 맞이할 방이었다.
두 방을 다 으리으리하게 장식했음은 물론이다.
이렇게 해서 접객(接客)을 많이 하게 된 그는
옛날 새우젓 등짐장수 시절의 친구들이 그리워 졌다.
그래서 각 방면으로 수소문을 해서 그들을 불러 모았다.
그러나 옛 친구들이 자신을 만나면 무척 반가워할 줄 생각했던 그는
뜻밖에도 친구들이 서로 눈치들만 살피고 쭈뼛뿌뼛하면서
좋은 방으로 안내를 해도 잘 들어가려도도 하지 않고,
고급 음식을 대접해도 잘 먹으려고 하지 않으면서
기회를 보아 슬금슬금 모두 빠져 나가고는,
다시는 자신을 찾지 않는 것을 보고 무척 서글펐다.
그는 자기의 극진한 대접을 달갑지 않게 여기는 옛 친구들을 원망하다가
생각을 돌려 그들의 처지로 돌아가 역지사지(易地思之)해 보았다.
그렇다. 그들에게 그런 으리으리한 응접실이나 고급 음식들은
모두가 생소한 것들이었다.
그리고 주인도 옛날에는 친구였지만
지금은 자기들과는 격이 다른 존재이다.
한마디로 모든 것이 거북하기만 했다.
갑부는 과연 그럴 것이라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갑부는 또 하나의 응접실을 설계했다.
방 하나,
부엌 하나인 토담집 초가삼간에다가 방안에는 흙벽 그대로에
삿자리를 깔아놓고,방문 옆에다 새우젓 지게 하나를 걸어 놓았다.
그리고는 막걸리 여러 항아리와
삶은 돼지다리를 푸짐하게 준비해 놓고,투전도 몇길 마련해 두었다.
그런 뒤에 자신도 새우젓 장수 시절에 입던 옷으로
갈아 입고 친구들을 다시 맞아들였다.
그 날의 잔치는 시간가는 줄 모르고 흥겨웠다고 한다.
이 초가삼간이 그들에게는 으리으리한 사랑보다도
고급 양관 보다도 마음 편한 자리였고,
양식이다 무슨 식이다 하는 고급 요리보다도 막걸리가
그들의 구미에 맞는 음식이었다.
그리고 투전판은 그들에게는 더없는 오락이었던 것이다.
갑부는 역지사지(易地思之)할 줄 알았고,
그래서 상대방의 처지를 헤아렸던 것이다.
앞에서 이야기한 딸의 경우에도 역지사지해서 아버지의 처지를 헤아렸던들
갈비구이보다도, 닭볶음보다도 두부나 묵이
아버지 구미에 당기는 기분 좋은 음식이었음을 알았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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