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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의령 백산 안희제 생가(白山 安熙濟 生家)

강나루터 2014. 12. 5. 07:04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193호, 경남 의령군 부림면 입산로2길 37의 백산 안희제 선생 생가는 안채와 사랑채, 부속사로 구성되어 일반적인 농가형으로 민가나 사대부(士大夫)의 주택과는 달리 단순한 배치를 보인다.

 

사랑채는 안채정면에 안채와 같이 동향으로 배치되어 있는데 대지가 좁지 않은데도 특이하게 안채와 바짝 붙어 있다. 정면 4칸의 전후 퇴간으로 구성된 3량구조의 초가집이다. 사랑채 역시 안채와 같이 남측면에 마루를 두었다.

 

안채는 정면 6칸으로 전후 퇴간이 발달한 팔작집이다. 안채는 훤칠하게 높아 앞 뒤 퇴간이 발달하여 길어진 측면의 길이와 조화를 맞추고 있다. 실내의 구성은 좌로부터 마루, 방, 대청 2칸, 방, 부엌이 배치되어 안채가 동향하여 있으므로 특이하게 남측면이 남향으로서 마루가 1칸으로 구성되어서 사랑의 역할을 하고 있다. 평면도 전후 퇴간이 발달하여 겹집 형식으로 발전하여 다양한 기능을 갖는 방이 필요함에도 별동(別棟)을 만들지 않고 한 건물내에서 처리하는 조선시대 말기의 주택의 특징이 잘 나타나 있다.

 백산(白山) 안희제(安熙濟) 선생은 구한말에서 광복전후 시대에 우리나라의 광복을 위해 공헌한 위대한 민족지도자이다. 선생은 고종 22년(1885) 부림면 입산리 속칭 설뫼마을에서 안씨가문 발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신학문에 뜻을 두고 보성전문(普成專門), 양정의숙(養正義塾)을 수료하여 구포에 구명학교, 의령에 의신학교를 창설하였으며, 기미육영회를 설비하는 등 민족교육에 헌신하였다. 또 선생은 1909년 서상일, 신성모와 함께 대동청년당을 조직해 1911년 시베리아, 만주 등 독립군 기지를 3년간 순회하며 조국의 광복을 위해 헌신하였고, 25년 중외일보(中外日報)를 인수하고 중앙일보(中央日報)로 개제하여 민족언론 육성에 선구자적 역할을 하였다. 일제의 탄압이 심해지자 33년 만주로 망명, 동경성에 발해학교를 설립하여 본격적인 독립운동을 하였으나 조국광복을 이태 앞둔 1943년 8월 3일 향년 59세로 일기를 마쳤다.

 

출처 : 바람 통신
글쓴이 : 문화 탐험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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