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최고의 풍류남아 白湖(백호) 林悌(임제) |
시한수에 벼슬자리에서 쫓겨난 백호 임제 |
기사입력: 2009/09/11 [16:05] 최종편집: ⓒ 문화저널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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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 전남 나주시 다시면 가운리 141-2번지
서원 입구에는 창계서원 碑(비)와 평안도 병마절도사 임진의 추모비가 있다. 임진은 귀래정 임붕의 아들이며 백호 임제의 부친이다.
이곳에 들린 이유는 다른곳에 있다. 白湖(백호) 林悌(임제, 1549-1587)선생의 묘소를 들려보기 위해서였다. 이곳 창계서원 뒷산에 있는 선생의 묘를 찾아가기 전에 서원부터 들려보기로 했다.
창계서원은 호남이 낳은 큰 학자 창계공 諱(휘) 泳(영)의 祠宇(사우)이다. 본관은 羅州(나주). 나주시 다시면 회진에서 一儒(일유)의 아들로 태어났다. 생원시에 장원급제 1671년 庭試文科(정시문과)에 급제, 독서당에 뽑혀 賜暇讀書(사가독서)하였다. 그 뒤 吏曹正郎(이조정랑). 檢祥(검상) 등을 거쳐 숙종 20년 대사간. 開城府留守(개성부유수) 등을 지냈고 이듬해 부제학이 되었으며, 그 뒤 대사헌. 전라도관찰사를 지냈다.
창계의 아우 梅溪(매계) 林淨(임정)의 영정을 모신 곳이다. 초상화는 매계공이 살아 계실 때 전문화가에 의해 제작된 작품으로 영당은 창계서원이 이곳에 중건(1767)될 때 이 곳에 함께 세워졌다. 창계 사후의 모든 일을 처리하였다.
사당의 전경을 담지 못하고 되돌아나왔다.
원래의 목적지인 백호 임제선생의 묘소를 향하여 발걸음을 옮겼다. 그 사이로 있는 돌계단을 오르면 선생의 묘로 갈 수 있다.
林悌(임제, 1549-1587) 본관 나주. 자는 子順(자순). 호는 白湖(백호), 謙齋(겸재). 1577년 謁聖文科(알성문과)에 급제했다. 명산을 찾아다니며 여생을 보냈다. 당대 명문장가로 명성을 떨쳤으며 詩風(시풍)이 호방하고 명쾌했다. 조선 최고의 풍류남아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당대의 한량이었던 白湖(백호) 林悌(임제)가 평안도사로 임명되어 가는 길에 개성을 지나다가 평소에 한 번 만나보고 싶었던 풍류 여걸 황진이가 겨우 석 달 전에 죽었다는 말을 듣고 닭 한 마리와 술 한 병을 사들고 그녀의 무덤을 찾아가 제사를 지내주고 아쉬운 심정을 詩(시) 한 수를 읊었다.
靑草(청초) 우거진 골에 자는다 누엇는다.
그러나 황진이의 무덤에서 시조를 읊고 致祭(치제)했다 하여 임지에 당도하기도 전에 파직을 당했다. 명색이 사대부 출신으로 벼슬하는 자가 천한 기생의 무덤에 찾아가 곡을 하며 제사를 지내고 시까지 읊었으니 그 알량한 양반의 체면을 형편없이 구겨버린 괘씸죄에 걸렸던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아주 쫓겨난 것이 아니고 다시 서울로 올라가 예조정랑을 지냈다.
그후 중앙요직에 다시 복직되었으나 四色黨爭(사색당쟁)의 벼슬길에 염증을 느껴 스스로 사임하고 야인으로 돌아가 짧고 굵게 살았던 황진이처럼 39세의 젊은 나이로 일생을 마쳤다 한다.
묘 앞쪽 옆에는 두 개의 비가 세워져 있는데 하나는 임제의 외손자 허목이 撰(찬)한 것이고, 하나는 최근에 세운 것으로 자신의 제사를 지내지 말라고 유언했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황진이가 조선시대의 名妓(명기)중에 명기라면, 백호는 조선시대의 한량 중에 한량이다. 아니 풍류객 중에 풍류객이라는 말이 더 적합하다. 세상을 사는 것이 바람 아닌 것이 어디 있으랴. 풍류야말로 우리 고유의 멋 아닐까
풍류를 즐긴 백호 그의 일화 중에 유명한 것이 寒雨(한우)와의 사랑이다. 寒雨(한우)는 평양의 명기. 가야금을 잘 타고 시에 능한 콧대 높은 기생이었다. 그런 한우를 백호는 다음과 같은 시를 지어 유혹하였다. 이에 대한 한우의 화답 또한 뛰어나다. '무엇 때문에 찬 이불 속에서 혼자서 주무시렵니까. 저와 같이 가슴 맞대고 따뜻하게 주무시지요' 한다. 백호는 이를 뿌리쳤다 한다. 한량끼가 너무 많아서 그랬을까.
임백호가 숨을 거두기 전, 유언으로 남긴 말은... 유독 우리나라만 그러지 못하니, 이런 못나고 욕된 나라에서 태어나 죽었다고 무엇이 아깝고 서럽겠느냐. 내 죽음에 곡을 하지 마라." 그러지 못했건 그건 임재의 뜻이 아니었을 것이지만, 높은 산 중턱에 자리한 선생의 묘에는 감히 아무나 범접할 수 없는 기상이 엿보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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