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고문의 임서로 유명한 오창석의 대표작 전서작품 서령인사기(西冷印社記)를 올립니다.
이 작품은 오창석 전서의 대표작일 뿐만 아니라 그의 만년의 활동상을 기록한 자신의 신변기록이기도 합니다.
서령인사란 오창석이 이 글에서 밝힌데로 전각을 전문으로 하는 모임이며, 부수적인 사업으로 인주-도장밥을 만드는 회사입니다.
이 글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서령인사의 인주를 지난번 대만 고궁박물원 서예기행에서 낙관에 쓰기 위하여 한 통 사 가지고 왔습니다.
西冷印社記
西冷山水淸淑.人多才藝.書畵之外. 以
서령(西冷)은 산수가 맑고 좋아서 사람들이 재예(才藝)가 많으니 서화(書畵)외에
篆刻名者.丁鈍丁至趙悲盦數十餘人.流風餘均.被于來葉.言印學者.至今西冷尤盛.同人結社.竝立石
전각(篆刻)으로 유명한 사람이 정둔정(丁鈍丁)으로부터 조비암(趙悲盦)에 이르기까지 10여 인이 있어 그 유풍(流風)이 남아 고루 내엽(來葉: 後世)에까지 끼쳤으니 인학(印學)자로 말하더라도 지금 서령(西冷)이 가장 성행(盛行)하였다. 뜻을 함께한 사람들이 단체를 만들어
勤鈍丁.悲盦諸先生像.爲景仰觀摩之所.名曰西冷印社.社地與某.嶼柏堂近.風景幽絶.集資規畫.創于甲
아울러 둔정(鈍丁)과 비암(悲盦)등 여러 선생들의 상(像)을 돌에 새겨서 우러러 사모(思慕)하고 관마(觀摩: 모범으로 하여 배움)할 곳을 만들었으니 이름 하여 서령인사(西冷印社)라고 했다. 인사(印社)가 있는 곳은 나의 서백당(嶼柏堂)에 가까워 풍경(風景)이 고요하고 뛰어나 자금을 모으고 계획하여 갑진(甲辰)년에 착공하여
辰成于癸丑.堂舍華木.位置點綴.咸得其宜.于是丁君輔之.王君維季.吳君石潛.葉君品三.脩啓立約.招
계축(癸丑)년에 완성하였다. 당사(堂舍)의 화목(花木)이 여기저기 알맞게 배치되어 모두가 좋으니 이에 정보지(丁輔之)군과 왕유계(王維季)군, 오석잠(吳石潛)군, 엽품삼(葉品三)등이 집을 짓고 약속하여
攬同志.入社者日益衆.于壬子九月開社.份份秩秩.觴詠流連.洵雅集盛事也.印之佩.見于六國.著于秦.盛于
동지(同志)를 수집하니 인사(印社)에 들어온 자가 더욱 많았다.
임자(壬子)년 9월에 인사(印社)를 열고 외관과 내용이 구비되어 질서(秩序) 정연히 술을 마시고 시를 읊어 즐겁게 노니 참으로 풍아(風雅)한 모임이요 성대한 행사였다. 인장(印章)을 차는 것은 육국(六國)시대에 보이고 진(秦)대에 나타나서 한(漢)대에 성행하였다.
漢.有官印私印之別.刓玉笵金.間以犀角象齒.逮元時始有華浮石之製.各以意奏刀.而波亦遂分.鈍丁
한(漢)대에 성행하였다. 관인(官印)과 사인(私印)의 구별이 있었고 옥(玉)에 새기고 쇳물을 틀에 넣어서 만들고 간혹 서각(犀角)이나 상아(象牙)로 만들었으니 원(元)대에 이르러 비로소 화부석(華浮石)으로 만들었다. 각자 자기 뜻에 따라 칼을 사용함으로 마침내 유파(流派)가 나뉘어 졌으니
諸人.尤爲浙派領褎.浙派聖行于世.社之立.蓋有來矣.顧社雖名西冷.不以自域.秦璽漢章.與夫吉金
둔정(鈍丁)등의 많은 사람들이 특히 절파(浙派)의 영수(領袖)가 되고 절파(浙派)가 세상에 성행(盛行)하여 사(社)를 세운 것은 생각건대 유래가 있었으리라. 사(社)를 생각하여 보건대 서령(西冷)이라 하였으나 그 지방뿐만이 아니고 진인(秦印)과 한인(漢印)은 물론이고
樂石之有文字者.兼收竝蓄.以資博覽攷證.多多益善.入其中如探龍藏.有取之無盡.用之不竭之槪. 嘗觀
정(鼎)이나 이기(彝器)며 비갈(碑碣)로서 문자가 있는 것은 모두를 수장하여 박람(博覽)과 고증(攷證)에 바탕을 삼고자 많을수록 더 좋으니 그 속에 들어가면 어부(御府)에 소장한 것을 찾는 것 같아서 취할 것이 한없이 많고 이용하기에 좋을 것이 없는 것이 없을 만큼 있는 실정(實情)이다.
古人之印.用以昭信.故曰印信.上而詔令文移.下至契約牋牘.罔不重之書
일찍이 고인의 도장을 관찰(觀察)하건대 이를 사용해서 신의(信義)을 밝게 하였으니 그리하여 인신(印信)이라고 불러 위로는 조령(詔令)이나 문서에 옮기고 아래로는 계약(契約)이나 서신(書信)에 이르기까지 중히 여기지 않는 것이 없었다.
畵之精妙者.得佳印益生色.無印輒疑爲僞.印之與書畵.固相輔而行者也.書畵旣有社.印社之設.又曷
서화(書畵)의 정묘(精妙)한 것은 인(印)을 얻어서 더욱 생색(生色)이 나고 인(印)이 없으면 그때마다 진품이 아니라고 의심하였으니 인(印)과 서화(書畵)는 본래가 서로 도와서 행하여진 것이다. 서화(書畵)에는 이미 사(社)가 있었으니 인사(印社)를 설립하는 것이 또한 어찌 적어도 가할 것인가?
可少哉予少好篆刻.自少至老.與印不一日離.稍知其原流政變.同人謬重矛.社旣成.推予爲之長.予備
나는 소시(少時)로부터 좋아하여 어려서부터 노년(老年)에 이르기까지 인(印)과 하루라도 떨어진 일이 없어, 그 원류(原流)와 정변(政變)을 다소나마 알고 있어서 동인들이 나를 잘못 중시하여 사(社)가 이미 완성되고서 나를 추대하여 그 장(長)으로 삼았으나, 나는 그 중에 한 사람으로
員.曷敢長諸君子.惟與諸君子商略山水間.得以進德修業.不僅以印人終焉.時則予之私幸耳.甲寅夏
어찌 감히 여러 군자(君子)들의 장이 될 수가 있겠는가? 오직 여러 군자들과 상의하여 산수(山水)사이에 덕(德)을 닦고 학업에 힘쓸 수가 있게 되어, 다만 인인(印人)으로서만 끝나지 않는다면 이것이 나의 바랄 뿐이다. 갑인(甲寅) 夏
甲寅夏五月二十又二日.安吉.吳昌碩記幷書.
5월 22일 안길(安吉)의 오창석(吳昌碩)이 글을 짓고 아울러 쓰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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