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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조신전(調信傳)

강나루터 2015. 4. 2. 22:31

 <調信>


昔新羅爲京師時, 有世逵寺之莊舍, 在溟州捺李郡, 本寺遺僧調信爲知莊, 信到莊上, 悅太守金昕公之女, 惑之深, 屢就洛山大悲前, 潛祈得幸, 方數年間, 其女已有配矣.

 

 

옛날 서라벌이 서울이었을 때 세규사의 장원(莊園)이 명주 날리군에 있었는데, 본사에서 중 조신을 보내서 장원을 맡아 관리하게 했다. 조신이 장원에 와서 태수 김흔공의 딸을 좋아해서 아주 반하게 되었다. 여러 번 낙산사 관음보살 앞에 가서 남 몰래 그 여인과 살게 해달라고 빌었다. 이로부터 몇 해 동안에 그 여인에게는 이미 배필이 생겼다.

 

 

 

又往堂前, 怨大悲之不遂己. 哀泣至日暮, 情思倦憊, 俄成假寢. 忽夢金氏娘, 欲豫入門, 粲然啓齒而謂曰 “兒早識上人於半面, 心乎愛矣, 未嘗暫忘, 迫於父母之命, 强從人矣, 今願爲同穴之友, 故來爾.” 信乃顚喜, 同歸鄕里.

 

 

그는 또 불당 앞에 가서, 관음보살이 자기의 소원을 들어 주지 않는다고 원망하며 날이 저물도록 슬피 울다가 생각하는 마음에 지쳐서 잠깐 잠이 들었다. 꿈속에 갑자기 김씨 낭자가 기쁜 낯빛을 하고 문으로 들어와 활짝 웃으면서 말한다. “저는 일찍부터 스님을 잠깐 뵙고 알게 되어 마음속으로 사랑해서 잠시도 잊지 못했으나 부모의 명령에 못 이겨 억지로 딴 사람에게로 시집갔다가 이제 부부가 되기를 원해서 왔습니다.” 이에 조신은 매우 기뻐하여 그녀와 함께 고향으로 돌아갔다.

 

 

 

 計活四十餘星霜, 有兒息五, 家徒四壁, 藜藿不給, 遂乃落魄扶携, 糊其口於四方. 如是十年, 周流草野, 縣鶉百結, 亦不掩體, 適過溟州蟹縣嶺, 大兒十五歲者, 忽餒死, 痛哭收瘞於道, 從率餘四口, 到羽曲縣, 結茅於路傍而舍.

 

 

 

그녀와 40여 년 간 같이 살면서 자녀 다섯을 두었다. 집은 다만 네 벽뿐이고, 좋지 못한 음식마저도 계속할 수가 없어서 마침내 꼴이 말이 아니어서 식구들을 이끌고 사방으로 다니면서 얻어먹고 지냈다. 이렇게 10년 동아 초야로 두루 다니니 옷은 여러 조각으로 찢어져 몸도 가릴 수가 없었다. 마침 명주 해현령을 지나는데 15세 되는 큰아이가 갑자기 굶어죽자 통곡하면서 길가에 묻었다. 남은 네 식구를 데리고 그들 내외는 우곡현에 이르러 길가에 모옥을 짓고 살았다.

 

 

 

 

夫婦老且病, 飢不能興, 十歲女兒巡乞, 乃爲里獒所噬, 號痛臥於前, 父母爲之歔欷泣下數行.

 

 

이제 내외는 늙고 병들었다. 게다가 굶주려서 일어나지도 못하니, 10세 된 계집아이가 밥을 빌어다 먹는데, 다니다가 마을 개에게 물렸다. 아프다고 고통을 호소하면서 앞에 와서 누웠으니 부모도 목이 메어 눈물을 흘렸다.

 

 

 

婦乃皺澁拭涕, 倉卒而語曰 “予之始遇君也, 色美年芳, 衣袴鮮, 一味之甘, 得與子分之, 數尺之煖, 得與子共之, 出處五十年, 情鐘莫逆, 恩愛綢繆, 可謂厚緣, 自比年來, 衰病日益深, 飢寒日益迫, 傍舍壺獎, 人不容乞, 千門之恥, 重似丘山, 兒寒兒飢, 未遑計補, 何暇有愛怡夫婦之心哉. 紅顔巧笑, 草上之露, 約束芝蘭, 柳絮飄風, 君有我而爲累, 我爲君而足憂, 細思昔日之歡, 適爲憂患所階, 君乎予乎, 奚至此極. 與其衆鳥之同餒, 焉如隻만鸞之有鏡, 寒棄炎附, 情所不堪, 然而行止非人, 離合有數, 請從此辭.”

 

 

부인이 눈물을 씻더니 갑자기 말한다. “내가 처음 그대를 만났을 대는 얼굴도 아름답고 나이도 젊었으며 입은 옷도 깨끗했었습니다. 한가지 맛있는 음식도 그대와 나누어 먹었고, 옷 한가지도 그대와 나누어 입어, 집을 나온 지 50년 동안에 정이 맺어져 친밀해졌고 사랑도 굳어졌으니 두터운 인연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근년에 와서는 쇠약하여 병이 날로 더해지고 굶주림과 추위도 날로 더해오는데 남의 집 곁방살이에 하찮은 음식조차도 빌어서 얻을 수가 없게 되어, 수많은 문전에 걸식하는 부끄러움이 산과도 같이 무겁습니다. 아이들이 추워하고 배고파해도 미처 돌봐주지 못하는데 어느 겨를에 부부간의 애정을 즐길 수가 있겠습니까. 붉은 얼굴과 예쁜 웃음도 풀 위의 이슬이요, 지초와 난초같은 약속도 바람에 나부끼는 버들가지입니다. 이제 그대는 내가 있어 더 누가 되도 나는 그대 때문에 더 근심이 됩니다. 가만히 옛날 기쁘던 일을 생각해 보니, 그것이 바로 근심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대와 내가 어찌해서 이런 지경에 이르렀습니까. 뭇새가 다함께 굶어죽는 것보다는 차라리 짝 잃은 난새가 거울을 향하여 짝을 부르는 것만 못할 것입니다. 추우면 버리고 더우면 친하는 것은 인정에 차마 할 수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나아가고 그치는 것은 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헤어지고 만나는 것도 운수가 있는 것입니다. 원컨대 이 말을 따라 헤어지기로 합시다.”

 

 

 

信聞之大喜, 各分兒將行, 女曰 “我向桑梓, 君其南矣.”

 

 

조신이 이 말을 듣고 크게 기뻐하여 각자 아이 둘 씩 데리고 장차 떠나려 하는데 여인이 말한다. “나는 고향으로 갈 테니 그대는 남쪽으로 가십시오.”

 

 

 

方分手進途而形開. 殘燈翳吐, 夜色將闌. 及旦鬚髮盡白, 惘惘然殊無人世意, 已厭勞生, 如飫百年辛苦, 貧染之心, 酒然氷釋. 於是慚對聖容, 懺滌無已. 歸撥蟹峴所埋兒, 乃石彌勒也. 灌洗奉安于隣寺, 還京師, 免莊任, 傾私財, 創淨土寺, 懃修白業. 後莫知所終.

 

 

이리하여 서로 작별하고 길을 떠나려 하다가 꿈에서 깨었다. 타다 남은 등잔불은 깜박거리고 밤도 이제 새려고 한다. 아침이 되었다. 수염과 머리털은 모두 희어졌고 망연히 세상일에 뜻이 없다. 괴롭게 살아가는 것도 이미 싫어졌고 마치 한평생이 고생을 다 겪고 난 것과 같아 재물을 탐하는 마음도 얼음 녹듯이 깨끗이 없어졌다. 이에 관음보살상을 대하기가 부끄러워지고 잘못을 뉘우치는 마음을 참을 길이 없다. 그는 돌아와서 꿈에 해현에 묻은 아이를 파 보니 그것은 석미륵이었다. 물로 씻어서 근처에 있는 절에 모시고 서울로 돌아가 장원을 맡은 책임을 내놓고 사재를 내서 정토를 세워 부지런히 착한 일을 했다 그 후에 어디서 세상을 마쳤는지 알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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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調信傳>에 나타난 소설적 의의

 


1. 內容 : 調信傳은 <三國遺事> 에 전하는데, 신라말 9세기 후반의 작품으로 작자는 승려일 것으로 추정된다. 이야기의 인물의 주인공은 태수의 딸 김여인과 승려 조신이다. 조신은 낙산사의 관음보살에게 부부의 인연이 맺어질 수 있도록 기도한다. 그러나 태수의 딸은 이미 부모가 배필 해준 인연이 있어 다른 남자에게 시집을 갔으나, 조신을 만나 사랑을 하고 이리하여 둘은 결혼하여 자식 5명을 낳아 고향으로 돌아가지만, 너무나 곤궁한 처지라 문전 걸식을 하며 겨우 생계를 유지한다. 그러다가 15세 된 남자아이는 굶어 죽고, 딸아이는 음식을 구걸하다가 개에게 물린다. 가난과 질병으로 갖은 고초를 겪고 허탈상태에 빠진 50대의 부부는 생계를 유지하지 못해 자식들을 나누어 이별을 하는 찰라 꿈에서 깨어난다. 꿈속에서 겪었던 고난은 너무나 무상하여 세상에 뜻을 두고 싶지 아니하여 주인공이 불도에 전념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2. 影響 : 이 작품은 唐의 傳奇 小說인 <枕中記> 와<南柯太守傳>의 이야기와 비슷한 인생무상을 담고 있다.

 


3. 作品의 意義 : 작가는 남녀간이 순수한 사랑이 실현될 수 없는 현실을 크게 부각시키고 사랑이나 생 자체를 환멸 하도록 하고는 끝내 불도에 귀의하는 것으로 끝을 맺고 있다. 비록 불법을 파계한 승려와 미모와 고귀한 신분을 겸비한 유부녀가 도덕적인 윤리 의식을 무시하고 결혼하지만, 곤궁한 삶으로 몰락하여 생이별을 맛보게 된다는 人生無常의 의의를 지니고 있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당시의 궁핍한 백성들의 삶을 그린 사회적인 모순도 지적하고 있다. 따라서 이 작품의 주된 내용은 불교적인 사상으로, 애욕의 충족으로부터 받은 심신의 고통과 무상함을 부각시키는 데에 있다. 따라서 이 이야기는 비록 설화지만, 충분히 소설로서의 구성요건이 갖추어져 있다.

 


 인물의 주인공은 조신과 김여인으로, 승려 조신이 김여인을 사랑하면서도 차마 사랑을 고백하지 못하는 소극적인 성격인 반면, 김여인은 조신을 보자마자 적극적으로 사랑을 고백하는 적극적인 인물로 설정되어 있다. 물론 이 두 사람의 결혼은 현실적인 시각으로 본다면 조금도 어울리지 않는다. 한 사람은 승려이며, 다른 한사람은 태수의 딸인 고귀한 신분이다. 따라서 소설의 픽션 개념의 소재를 제공하여 준다. 다시 말하자면 두 사람이 모두 어울리는 신분이라면, 결코 사람들이 흥미를 유발 할수 없을 것이다.

 

 

 

 <調信傳> 의 文學史的 意義의 재고찰

 

 


조선설화에서 일차적으로 주목되는 것은 꿈을 소재로 한 구성상의 문제이다. 즉 현실-꿈-현실로 순환되면서 꿈을 체험하기 전에 가졌던 욕구가 꿈을 체험함으로써 완전히 해소하게 된다. 이와 같은 구성은 꿈을 소재로 한 작품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후대의 작품 중에서도 <九雲夢> 등과 같이 몽자류소설로 분류되는 작품만이 조신설화와 같은 구성성질을 지녔으며, 같은 꿈을 소재로 하나 작품일지라도 九遊錄으로 분류되는 작품들은 다른 성질의 것이다.

 


 조신설화와 같은 성질의 작품이 중국에서도 당이 전기 가운데 <枕中記>, <南柯太守傳>등과 같은 작품이 있고, 그 근원설화는 인도설화에서 발원되었다 한다. 조신설화는 우리 나라에서 동계작품 가운데 몽자류의 효시인 만큼 소설사적 면에서도 중요한 의의를 지니고 있다.

 


 그리고 조신설화는 불교적인 입장에서 볼 때 淨士寺의 綠機說話로 홍법을 위한 목적의식이 분명한 설화로 볼 수 있으나, 내용이 구성면에서는 대담한 점도 없지 않다. 즉 사찰의 장임으로서 가장 근신해야 할 것임에도 불구하고 애정을 위해 불전에 그 성취를 기원했고, 뒤에 자기가 좋아하는 여인이 짝이 있음을 알고 대비전에 스글픔을 토하였다. 비록 꿈속에서 전개되는 것이라 할지라도, 그녀가 찾아왔을 때 장임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움에도 주저 없이 그녀를 決行하였고, 애정을 위해 이미 出嫁한 여인이 가정을 탈출하게 된 것도 보기 드문 대담한 구성이라 할 수 있다. 또 창작기교면에서도 조신이 꿈속에서 가장 곤궁했을 때 꿈을 깨게 되는데, 이것은 분명 독자를 의식한 것이 틀림없다.

 

 

 

출처 : 유니의 공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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