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감상

[스크랩] 산청 단속사지 정당매(政堂梅)

강나루터 2015. 10. 27. 12:54

산청 단속사지 정당매(政堂梅)

 

 

▣답사일자 : 2015년 7월 4일(토)

소 재 지 : 경남 산청군 단성면 운리 333번지

 

단속사지 삼층석탑의 북서쪽에 정당매가 있다.

고려시대 단속사에 들어와 공부하던 통정공(通亭公) 강회백(姜淮伯 : 1357-1402)선생과 통계공(通溪公) 회중(淮仲 : 1360-1421) 형제가 유년 시절 단속사에서 공부할 때심은 매화나무다.

강회백이 정당문학(政堂文學) 겸 대사헌 벼슬을 하게 되자, 후세사람들이 벼슬의 명칭을 붙여 정당매(政堂梅)라고 부르게 되었는데, 산청군 단성면 남사리 예담촌의 670년이나 되는 원정공 하즙의 원정매, 산청군 시천면 사리 산천재 뜰에 남명 조식선생이 직접 심은 수령 450년이 된 남명 조식의 남명매와 더불어 산청의 3()라 한다.

 

산청군의 3(三梅)

元正公(원정공) 河楫(하즙)元正梅(원정매),

通亭公(통정공) 姜淮伯(강회백)政堂梅(정당매),

南冥(남명) 曺植(조식)南冥梅(남명매)

 

하지만 본래의 정당매(政堂梅)640년 가량 살다가 고사하고 얼마 전까지 100년전에 심어 경상남도 보호수 제260호로 지정된 정당매가 있었으나 이마져 죽어 나무 그루터기에는 후계목이 심겨져 있다.

노후에 강회백은 단속사를 찾아 매화나무를 보고 시를 한 수 읊었다고 전해진다.

 

偶然還訪古山來(우연환방고산래)

滿院淸香一樹梅(만원청향일수매)

物性也能知舊主(물성야능지구주)

慇懃更向雪中開(은근갱향설중개)

 

우연히 옛 산을 돌아와 찾아보니

한 그루 매화향기 사원에 가득하네.

나무도 옛 주인을 능히 알아보고

은근히 눈 속에서 나를 향해 반기네.

 

정당매(政堂梅) 옆에는 정당매각(政堂梅閣)이라고 하는 비각(碑閣)이 있고, 석비의 비문에는 정당문학통정강선생수식정당매비(政堂文學通亭姜先生手植政堂梅碑)’라고 새겨져 있어 정당문학 통정 강회백선생이 직접 매화를 심었음을 알게 해 준다

 

 

강회백(姜淮伯, 13571402)

고려말과 조선초의 문신. 본관은 진주. 자는 백보(伯父), 호는 통정(通亭). 문하찬성사(門下贊成事) ()의 아들이다. 1376(우왕 2) 문과에 급제, 성균좨주가 되었으며, 밀직사의 제학·부사·첨서사사(簽書司事)를 역임하였다. 1385년에는 밀직부사로서 사신이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으며, 1388년 창왕이 즉위하자 밀직사로 부사 이방우(李芳雨)와 함께 명나라에 다녀왔다. 뒤에 창왕을 폐할 때 지밀직(知密直) 윤사덕(尹師德)과 함께 부고(府庫)를 봉한 공이 있어, 1389년 공양왕이 즉위하자 추충협보공신(推忠協輔功臣)의 호를 받았다. 이 해에 조준(趙浚) 등과 함께 세자사부에 임명되었으나 나이 어린 것을 이유로 사퇴하였다. 이어 판밀직사사(判密直司事)에 이조판서를 겸임하였다. 이 때 상소하여 불교의 폐해를 논하고 한양천도를 중지하게 하였으며, 이어 교주·강릉도도관찰출척사(交州江陵道都觀察黜陟使)로 나갔다. 돌아와 정당문학 겸 사헌부대사헌(政堂文學兼司憲府大司憲)이 되었다. 이때 정몽주(鄭夢周)의 사주를 받은 간관 김진양(金震陽) 등이 조준·정도전(鄭道傳) 등을 탄핵할 때 이에 동조, 대관을 거느리고 상소하였다. 1392년 정몽주가 살해당하자 처음에는 동생인 회계(淮季)가 공양왕의 사위였기 때문에 탄핵을 면하였으나, 곧 진양(晉陽)에 유배되었다. 조선이 건국된 뒤 1398(태조 7) 동북면도순문사(東北面都巡問使)가 되었다. 저서로는 통정집이 있다.

 

[참고]

강시(姜蓍) : 본관은 진주(晋州). 시호는 공목(恭穆). 아버지는 정당문학(政堂文學) 강군보(姜君寶)이고, 어머니는 전객시령(典客寺令) 여진(呂珍)의 딸이다. 아들 오형제가 있으니 회백(淮伯), 회중(淮仲), 회순(淮順), 회숙(淮叔), 회계(淮季)이다. 강회계(姜淮季)는 공양왕의 부마가 되었다.

 

강회백(姜淮伯) : 본관은 진주(晋州). 자는 백부(伯父), 호는 통정(通亭). 할아버지는 중대광(重大匡) 강군보(姜君寶)이며, 문하찬성사(門下贊成事) 강시(姜蓍)의 아들이다. 강종덕(姜宗德), 강우덕(姜友德), 강석덕(姜碩德), 강순덕(姜順德)을 아들로 두었다.

 

강석덕(姜碩德) : 본관은 진주. 자는 자명(子明), 호는 완역재(玩易齋). 정당문학 강회백(姜淮伯)의 아들이며 강희안(姜希顔)과 강희맹(姜希孟)의 아버지이다.

 

강시(姜蓍)가 산청군 남사마을의 원정공(元正公) 하즙(河楫)의 딸과 결혼하여 남사마을 맞은편 골짜기에 살며 아들 다섯을 낳았는데 모두가 다 잘 되었으므로 그가 살던 골짜기를 오룡골(五龍谷)이라고 하였다 한다.

증숭정대부 의정부 좌찬성 겸 지경연춘추관 성균관 판의금부사 오위도총부 도총관 세자이사 예문관대제학 세자사 불사(贈崇政大夫議政府左贊成兼知經筵春秋館成均館判義禁府事五衛都摠府都摠管世子貳師藝文館大提學世子師不仕)

  

▲단속사지 동.서 삼층석탑 뒤쪽 마을안에 정당매가 있다.

 

▲창고시설 뒤쪽으로 녹색 가득한 정당매가 테두리를 치고 있다.

 

▲좌측엔 비각, 우측에 정당매와 안내석

 증손되는 강용휴(姜用休)가 정당매를 가꾸고 후손들이 그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비각을 짓고 비를 세워 오늘에 전하여 오고 있다.

▲'정당매각(政堂梅閣)'

 

 

 

▲좌측 '통정강선생수식정당매비'와 우측 '정당문학통정강선생수식매비'

 

 

 ▲통정강선생수식정당매비

 

 

 

▲정당문학통정강선생수식매비

하용제(河龍濟)가 썼다고 되어 있는데 약헌(約軒) 하용제(河龍濟,1854~1919)는 산청(단성면) 남사마을 출신인 약헌은 무과 급제 후 벼슬을 하기도 했으나 면우 곽종석의 가르침을 받으며 유학에 천착한 인물로, 1919년 유림의 독립운동인 파리장서운동에 동참했다가 투옥된 뒤 고문의 여독으로 사망했다.

가까운 곳의 덕천서원에도 그의 글씨가 향기로 남아 있다 .

 

 

▲정당매, 뒤쪽에 후계목들이 자라고 있다.

 

 

 

단속사 견매(斷俗寺見梅) / 강회백(姜淮伯)

 

一氣循還往復來(일기순환왕부래)

天心可見臘前梅(천심가견랍전매)

自將鼎鼐調羹實(자장정내조갱실)

謾向山中落又開(만향산중락우개)

 

한 기운이 돌고 돌아갔다 다시 오나니

천심은 섣달 전의 매화에서 볼 수가 있고

스스로 큰 솥에 국 맛을 조화하는 열매로서

부질없이 산중에서 떨어졌다 열렸다 하네.

 

-동문선권지이십이(東文選卷之二十二) / 칠언절구(七言絶句  

 

 

 

 

 

 

 

 

 

남명(南冥) 조식(曺植)선생 시비(詩碑)

 

단속사지 들어가는 입구의 길 오른쪽에 남명 조식선생의 시비(詩碑)가 있다.

조선 전기의 성리학자이고 영남학파의 거두인 남명(南冥) 조식(曺植, 1501~1572)선생은, 합천군 삼가면 토동 출신으로 영남의 대표적인 유학자로서 명종과 선조로부터 중앙과 지방의 여러 관직을 제안 받았으나 한 번도 벼슬에 나가지 않고 평생 제자를 기르는 데 힘썼다고 한다.

 

비석에 적혀있는 시는 남명 선생이 단속사에 머물 때, 단속사를 방문한 사명대사에게 지어준 시()라고 한다. 증 산인유정(贈 山人惟政) - 단속사에 들린 사명당(유정대사)에게 준다.

 

화락조연석(花落槽淵石) 꽃은 조연의 돌에 떨어지고

춘심고사대(春深古寺臺) 옛 단속사 축대엔 봄이 깊었구나

별시동기취(別時動記取) 이별하던 때 잘 기억해 두게나

청자정당매(靑子政堂梅) 정당매 푸른 열매 맺었을 때

 

조연(槽淵)-단속사 앞에 있었던 작은 연못

 

 

 

 

 

또 다른 남선생의 시 한수가 있다.

 

솔아래 천년 옛절이 창연한데 松下千年寺
사람이 한마리 학을 따라 찾아드니 人隨獨鶴尋
중은 굶어서 부엌이 싸늘하고 僧飢朝冷
금당은 낡아 구름에 파묻혔네 殿古野雲深
등불은, 봉우리의 달이 밝혀주고 燈點峰頭月
방아는 물밑의 망치돌이 대신했네 聲水底砧
부처 앞 향로에는 불도 꺼져 佛殿香火死
오직 재처럼 식은 마음을 보네 惟見己灰心

 

 

[출처 : 검색조합인용, 사진 - 청현]

 

 

 

출처 : 청현서재(淸顯書齋)
글쓴이 : 청현(淸顯)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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