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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소동파

강나루터 2015. 11. 10. 06:51

 소동파

소동파
병)Su Dongpo (웨)Ssu Tungp'o.
1036. 12. 19~1101. 7. 28.
중국 북송시대의 시인․산문작가․예술가․정치가.

소동파 /소동파
본명은 소식(蘇軾), 자는 자첨(子瞻). 동파는 그의 호로 동파거사(東坡居士)에서 따온 별칭이다. 아버지 소순(蘇洵), 동생 소철(蘇轍)과 함께 '3소'(三蘇)라고 일컬어지며, 이들은 모두 당송8대가(唐宋八大家)에 속한다(→ 소순, 소철).

소동파는 북송 인종(仁宗) 때 메이산[眉山:지금의 쓰촨 성(四川省)에 있음]에서 태어났다. 8세 때부터 메이산의 도인(道人)이라 불리던 장역간(張易簡)의 문하에서 공부를 시작했는데, 그 영향을 받아 도가(道家), 특히 장자(莊子)의 제물철학(齊物哲學)을 접하게 되었다. 1056년 그의 아버지 소순은 두 형제를 데리고 상경하여 이들의 시를 구양수(歐陽修)에게 보여주고 격찬을 받았다. 이들 형제는 그해 가을 진사(進士)가 되었고 이듬해 예부(禮部)에서 주관하는 시험에 나란히 급제했지만 모친상을 당하여 고향으로 돌아갔다. 1060년 복상(服喪)을 마치고 수도인 카이펑[開封]으로 돌아온 소동파는 관리임용 특별시험인 제과(制科)에 동생과 함께 급제했다. 이어 봉상부(鳳翔府:지금의 산시 성[陝西省]에 있음)의 첨서판관(簽書判官)이 되어 수도에 남게 된 동생과 헤어져 임지로 떠났다. 봉상부는 서주(西周) 이래의 여러 문화유적이 남아 있는 곳이다. 그는 공자묘의 석고(石鼓:고대문자를 새긴 10개의 북 모양의 돌)와 카이위안 사[開元寺] 동탑(東塔)에 남아 있는 당대 왕유(王維)․오도현(吳道玄)의 불화(佛畵) 등을 접한 감회를 〈봉상팔관 鳳翔八觀〉에서 읊었다. 봉상부에서의 임기가 끝나 상경한 1065년에 부인 왕씨(王氏)와 사별하고 그녀의 생전 모습을 〈망처왕씨묘지명 亡妻王氏墓地銘〉에 담았다.

이듬해 아버지 소순마저 죽자 아버지의 관을 가지고 고향으로 돌아가 상을 치렀다. 탈상(脫喪)하고 상경한 1068년은 신종(神宗)이 즉위한 해로, 참지정사(參知政事:부재상) 왕안석(王安石)을 중심으로 한 개혁파가 중앙정부의 물자조달을 합리화하기 위한 균륜법(均輪法), 농촌에 저리자금을 융통하여 빈농을 보호하려는 청묘법(靑苗法) 등 이른바 신법(新法)을 시행하던 시기였다. 신법에 대해서 비판적이었던 소동파는 감관고원(監官告院)이라는 지극히 사무적인 업무를 담당하다가 지방 근무를 청하여 저장 성[浙江省] 항저우[杭州]에서 근무했고, 이어 밀주(密州:지금의 산둥 성[山東省]에 있음)․쉬저우[徐州]․후저우[湖州] 등지의 지방관을 역임했다. 또한 그는 신법으로 인해 고생하는 농민들의 생활상을 시로써 묘사하고는 했다. 후저우 지사(知事)로 있던 1079년 조정의 정치를 비방하는 내용의 시를 썼다는 죄목으로 어사대(御史臺)에 체포되어 수도로 호송되었다. 이때 어사들의 심문과 소동파의 변명을 담은 기록이 〈오대시안 烏臺詩案〉에 남겨져 지금까지 전해오고 있다. 다행히 사형을 면한 그는 100일간의 옥살이를 마치고 황주(黃州:지금의 후베이 성[湖北省] 황강 현[黃岡縣]) 단련부사(團練副使)로 좌천되었다. 정치에는 일체 관여하지 않고 황주에 거주할 의무가 지워진 일종의 유형(流刑)이었다. 황주에서의 생활은 매우 비참했다. 부인은 양잠을 했고, 그는 본래 병영이었던 땅을 빌려 농사를 지었다. 이 땅을 동파(동쪽 언덕)라 이름짓고 스스로를 동파거사라고 칭했는데, 그의 호는 여기서 유래한다. 그 유명한 〈적벽부 赤壁賦〉가 지어진 것도 이곳에서였다.

1085년 신종이 죽고 철종(哲宗)이 즉위하자 신종의 어머니이며 철종의 할머니인 선인태황후(宣仁太皇后)가 섭정을 시작했다. 그녀는 뤄양[洛陽]에 운둔해 있던 사마광(司馬光)을 불러들여 왕안석 일파가 만든 신법들을 폐지했다. 이때 소동파도 다시 발탁되어 예부랑중(禮部郞中)을 시작으로 중서사인(中書舍人)․한림학사지제고(翰林學士知制誥) 등의 요직에 올랐다. 그러나 사마광의 신법 폐지가 모역법(募役法)의 폐지에 이르는 등 과격해지자, 소동파는 중서사인이 되어 수도로 올라온 동생과 함께 그에 대한 반론을 제기하기도 했다. 사마광이 죽고난 후 당쟁이 시작되었고, 선인황태후마저 사망하자 철종의 친정(親政)이 시작되었다. 철종은 신법들을 다시 부활시켰으며, 소동파는 다시 좌천되어 혜주사마(惠州司馬)로 임명되었다. 그에 대한 탄압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그를 질시하는 정치인들로 인해 하이난 섬[海南島]으로 유배되어 그곳에 주로 거주하던 리족[黎族]과 함께 비참한 생활을 했다. 철종의 죽음으로 휘종(徽宗)이 즉위하면서 제거옥국관(提擧玉局觀)이라는 명예직에 봉해져 상경하던 도중, 큰 병을 얻어 창저우[常州]에서 66세의 생을 마감했다.

소동파는 구양수․매요신(梅堯臣) 등에 의해서 기틀이 마련된 송시(宋詩)를 더욱 발전시켰다. 구양수․매요신 이전의 시가 대개 비애(悲哀)를 주제로 해왔던 데 비해서 이 두 사람은 평안하고 고요한 심정을 주로 읊었고, 소동파는 이에서 벗어나 훨씬 적극적․자각적인 관점을 취했다. 즉 인생체험에 대한 시각의 전환을 생활의 지혜로 삼아 인간 불행의 내면에서 자신만이 인식할 수 있는 행복을 추구했던 것이다. 그가 이처럼 비애의 지양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장자의 제물철학, 불교의 묘리(妙理) 등의 사상적 배경 때문이었으며 〈적벽부〉에는 이같은 그의 사상이 잘 표현되어 있다. 그의 시는 자유분방한 심정과 재능의 표현을 통해 경쾌한 리듬 속에 절묘한 비유와 유머를 담고 있다. 제재에 있어서도 특별히 구애받지 않아 이전까지 다른 사람들이 취하지 않았던 것, 간과되어왔던 것들도 시로 썼다. 그의 시는 모든 사람에 대한 폭넓은 애정을 기저에 깔고 있으며, 인간의 욕망을 긍정했고 인간의 선의(善意)를 신봉했다. 그는 사(詞)에서도 기존의 완약(婉約) 대신에 호방한 사풍을 창시했다. '적벽회고'(赤壁懷古)라는 부제가 붙은 〈염노교 念奴嬌〉․〈수룡음 水龍吟〉 등은 영물시(詠物詩)의 극치라 일컬어진다. 한편 산문에서는 당송8대가 중 소씨 부자, 즉 3소가 포함되었다. 동파의 산문은 송대의 다른 작가들의 작품에 비해 이색적이다. 그의 작품이 지닌 가장 큰 특징은 그 무엇에도 구속받지 않는 자유분방함이다. 동파는 작가의 마음이 자연스럽게 묻어나와야만 훌륭한 문장이 된다는 청년기의 생각을 평생토록 일관했다. 〈조주한문공묘비 潮州韓文公廟碑〉 등의 비문, 〈유후론 留侯論〉․〈범증론 范增論〉 등의 사론(史論)을 비롯해 많은 산문을 남겨 지금까지도 널리 읽혀지고 있다.

소동파는 서예에도 뛰어났다. 그의 글씨는 동진(東晋)의 왕희지(王羲之)․왕헌지(王獻之) 부자의 정통적인 서법과 당대 안진경(顔眞卿) 일파의 혁신적 서법을 겸비하고 있는데, 그 자신은 글씨 자체보다도 살아 있는 정신과 기백의 표현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겼다. 그는 〈제발 題跋〉이라는 평론에서 해서(楷書)가 모든 서체의 기본이며 서예는 사람 됨됨이의 표현이라는 생각을 일관되게 주장했다. 그의 글씨로는 유배지 황주에서 쓴 〈한식시권 寒食詩卷〉, 예부상서 시절에 쓴 〈이태백선시권 李太白選詩卷〉 등이 원본으로 남아 있다. 항저우에서 쓴 〈진규각비 宸奎閣碑〉와 같이 탁본이 남아 있는 경우도 있으나, 모두 신품(神品)이라 일컬어진다. 그의 필적을 모은 〈서루첩 西樓帖〉도 전해진다. 한편 그의 죽화(竹畵)는 문동(文同)에게서 배운 것이라고 스스로 밝혔다. 동파는 그림을 그리는 데 기교를 쓰지 않았으며, 친구들은 그러한 그의 그림에 한 점의 세속성도 보이지 않는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왕유의 그림에 대해 "시 속에 그림 있고 그림 속에 시 있네"라는 말을 남겼는데, 이는 이후 중국 화론사에 면면이 이어지고 있다. 이같은 예술 사상과 기교에 대한 무관심은 문인화(文人畵)를 크게 부흥시키는 힘이 되었다. 다른 문인들과는 달리 동파의 시문집은 생전에 이미 간행되어 재판의 물증으로 제출될 정도였다. 〈동파집 東坡集〉 40권과 〈동파후집 東坡後集〉 20권은 남송 데의 판본이 여러 종류 남아 있다. 이 두 책에 〈주의 奏議〉․〈내제집 內制集〉․〈외제집 外制集〉․〈응소집 應詔集〉․〈속집 續集〉을 합친 〈동파칠집 東坡七集〉은 100권이 넘으며, 〈동파전집 東坡全集〉이라 불리기도 한다.

 

 

 

 

              萬居定惠院之東 雜花滿山 有海棠一株 土人不知貴也
              만거정혜원지동 잡화만산 유해당일주 토인부지귀야

        (定惠院 동쪽에 더부살이하는데 雜花 산에 가득하였고 海棠花    한그루가

         있으나 토착민들은 귀한 줄을 몰랐다)
                                                             蘇東坡   소동파 1036~1101

 
江城地장菜草木   강성지장채초목   강 마을 훈습한 땅에 초목이 무성한데
只有名花苦幽獨   지유명화고유독   아름다운 꽃 하나 외롭고 쓸쓸하게 피었네
언然一笑竹籬間   언연일소죽리간   대울타리 사이로 한번 웃자 예쁘고
桃李漫山總추俗   도이만산총추속   산에 흐드러진 도리화가 도무지 속되구나

也知造物有深意   야지조물유심의   이제사 알겠네, 조물주께서 깊은 뜻 있어
故遣佳人在空谷   고견가인재공곡   가인을 빈 골짜기로 보내셨음을
自然富貴出天姿   자연부귀출천자   저절로 부귀한 모습은 하늘이 낸 것
不待金盤薦華室   부대금반천화실   금소반에 담아 좋은 집에 올릴 필요 없도다

朱脣得酒暈生검   주순득주운생검   붉은 입술로 술을 마셔 볼에 훈기 돌고
翠袖卷紗紅映肉   취수권사홍영육   푸른 소매 비단에 붉은 살이 어린다
林深霧暗曉光遲   림심무암효광지   안개 낀 숲은 어두워 새벽 햇빛 더디고
日暖風輕春睡足   일난풍경춘수족   미풍 불고 볕이 따스해 봄 잠이 달구나

雨中有淚亦悽愴   우중유루역처창   비에 젖어 눈물 머금은 모습도 애섧고
月下無人更淸淑   월하무인갱청숙   달 아래 외로운 자태가 더욱 정숙하구나
先生食飽無一事   선생식포무일사   동파 선생은 배부르고 한가하여
散步逍遙自문腹   산보소요자문복   산보하며 한가하게 배 문지르며 돌아다녔다

不問人家與僧舍   불문인가여승사   민가인지 절인지 따질 것 없이
주杖敲門看脩竹   주장고문간수죽   지팡이 짚고 문 두드려 대를 구경하다가
忽逢絶艶照衰朽   홀봉절염조쇠후   문득 절색의 빛이 노쇠한 이 모습을 비추는 걸 만나
歎息無言개病目   탄식무언개병목   아무 말 못하고 탄식하며 병든 눈 비벼댔지

陋邦何處得此花   루방하처득차화   이런 누추한 곳에 어떻게 이런 꽃이 피었을까
無乃好事移西蜀   무내호사이서촉   호사가가 서촉에서 옮겨온 것이 아닐까 
寸根千里不易到   촌근천리불이도   한치 뿌리라도 해도 천리 멀리 가져오기란 쉽지 않으니 
銜子飛來定鴻鵠   함자비래정홍곡   꽃씨 물어온 것은 필시 기러기들이리 

天涯流落俱可念   천애류화구가념   하늘 끝에 유락하다니 너나 나나 서글프구나
爲飮一樽歌此曲   위음일준가차곡   술 한동이 기울이며 이 노래를 부르노라
明朝酒醒還獨來   명조주성환독래   내일 아침 술 깬뒤 다시 홀로 오리라
雪落紛紛那忍觸   설락분분나인촉   눈처럼 꽃잎 질 걸 생각하면 만지지 못하겠네 

 

 
                          縱筆  종필     붓을 놓고
                                                     蘇東坡(宋) 1036~1101

寂寂東坡一病翁   적적동파일병옹   외롭고 쓸쓸한 東坡,  병든 한 늙은이
白鬚蕭散滿霜風   백수소산만상풍   쓸쓸히 흰수염 서리가득한 바람에 날린다
小兒誤喜朱顔在   소아오희주안재   어린아이는 내 붉은 얼굴보고 기뻐하건만
一笑邪知是酒紅   일소아지시주홍   웃음지며, 술에 취해 붉은것을 어찌 알리

 

 

                       溪聲山色 계성산색    계곡소리 산빛
                                                          蘇東坡    소동파 1036~1101

溪聲便是長廣舌   계성갱시장광설   시냇물 소리가 그대로 부처님의 장광설이요
山色豈非淸淨身   산색등비청쟁신   산빛이 어찌 그대로 청정법신이 아니겠느냐
夜來八萬四千偈   야래팔만사천게   밤새 들은 팔만사천 법문의 그 소식을
他日如何擧似人   타일여하거이인   뒷날 어떻게 사람들에게 보여 줄 수 있을까


                      

                       東欄梨花   동란이화   동쪽난간에 핀 배꽃
                                               蘇東坡  소동파 1036~1101

梨花淡白柳深靑   이화담백류심청   배꽃은 희고 버들은 푸르니
柳絮飛時花滿城   류서비시화만성   버들개지 휘날릴 때 배꽃은 만발한다
추장東欄一株雪   추장동란일주설   슬프다, 동쪽에 핀 한 그루 흰 배꽃을
人生看得幾淸明   인생간득기청명   사람이 몇 번이나 그 깨끗한 꽃을 볼 것인가


 

                        江城子   강성자   ( 原題 : 悼念亡妻詞 ) 
                                                       蘇軾   소식 1036~1101

十年生死兩茫茫   십년생사양망망    삶과 죽음으로 아득히 멀어진 십년 세월
不思量  自難忘    불사량 자난망      생각지 않으려 해도 정말 잊기 어렵구나
千里孤墳             천리고분             천리 먼 외로운 무덤
無處話凄凉         무처화첩량           처량한 심정 호소할 데 없구려 

縱使相逢應不識   종사상봉응불식   서로 만난대도 알아보지 못하리니
塵滿面              진만면                나는 얼굴에 먼지 가득하고

빈如霜                빈여상                머리는 서리 처럼 세었으니까
夜來幽夢忽還鄕   야래육몽홀환향   밤들어 꿈속에서 문득 찾은 고향 집

小軒窓正梳반      소헌창정류반       작은 창가에서 그대는 마침 화장을 하고 있었지
相顧無言             상고무언              서로 돌아볼 뿐 말은 못하고
惟有淚千行          유유루천행         눈물만 하염없이 흘러내렸소

料得年年斷腸處   류득년년단양처   해마다 애간장 끊었구려
明月夜                명월야                달 밝은 밤
短松岡                단송강                작은 소나무 늘어선 언덕위에서

 

                        赤壁賦     적벽부 
                                                蘇東坡   소동파 1036~1101

且夫天地之間   차부천지지간    하늘과 땅 사이에 있는 사물은
物各有主       물각유주             각각 주인이 있어서

苟非吾之所有   구비오지소유    내 것이 아니면
雖一毫而莫取   수일호이막취    터럭 하나라도 가질 수 없지만

惟江上之淸風   유강상지청풍    오직 강가에 부는 맑은 바람과
與山間之明月   여산간지명월    산에 떠 있는 밝은 달은

耳得之而爲聲   이득지이위성    귀로 들으면 소리가 되고
目寓之而成色   목우지이성색    눈으로 보면 색이 된다네

取之無禁      취지무굼              그것을 가진다고 막을 사람 없고
無之無竭       용지무갈             그것은 쓴다고 고갈되지 않으니

是造物者之     시조물자지         조물주가 준 무진장한 선물이로다


 

 

                   惠崇春江晩景  혜숭춘강만경   혜승의 춘강만에 부쳐
                                                      蘇軾   소식 1037~1101

竹外桃花三兩枝   죽외도화삼량지   대밭 밖에는 활짝 핀 봉숭아나무
春江水暖鴨先知   춘강수난압선지   봄 강물이 따뜻한 것은 오리가 먼저 안다
蔞蒿滿地蘆芽短   루호만지노아단   쑥이 가득한 데  갈대는 이제 싹이 트니
正是河豚欲上時   정시하돈욕상시   바로 황복이 올라올 때라네

 
                            望雲樓   망운루   
                                                      蘇軾   소식 1036~1101

陰晴朝暮幾回新   음청조모기회신   흐리고 개이고 아침저녁 몇 번 바뀌는가
已向虛空付此身   기향허공부비신   나도 허공에 몸 맡기고 살아간다네
出本無心歸亦好   출본무심귀역호   무심코 생긴 터에 돌아가도 그만인걸
雲還以望雲人   백운환이망운인      흰 구름아  너는 어찌 나를 그리 닮았느냐


                  

 

                       薄命佳人  박명가인     박명한 여인
                                                           蘇軾(宋)  소식 1037~1101

雙頰凝?髮抹漆   쌍협응소발말칠   두 뺨은 젖이 엉긴 듯, 머리는 옻칠한 듯
眼光入簾珠白樂   안광입렴주백락   눈빛은 발로 들어 구슬처럼 또렷하구나

故將白練作仙衣   고장백련작선의   짐짓 흰 비단으로 선녀의 옷을 만들어도
不許紅膏汚天質   불허홍고오천질   붉은 연지로 원래의 바탕 더럽히지 못하는구나

吳音嬌軟帶兒癡   오음교연대아치   오나라 사투리 귀엽고 부드러워 어린 티 나고
無限間愁總未知   무한간수총미지   무한한 인간의 근심 전혀 알지도 못하는구나

自古佳人多薄命   자고가인다박명   예부터 가인은 운명이 기박한 사람 많다지만
閉門春盡楊花落   폐문춘진양화락   닫은 문에 봄도 다 가니 버들 꽃이 지는구나

 

 

 

                     中秋月  중추월    한가위 달
                                                     蘇軾(宋)  소식 1036~1101

暮雲收盡溫淸寒   모운수진온청한   저녘 구름 걷히니 썰렁 맑은 기운 넘치고
銀漢無聲轉玉盤   은한무성전옥반   은하수 소리 없이 쟁반에 옥을 굴리네
此生此夜不長好   차생차야부장호   이 세상 이런 밤 늘 있는 것도 아닌데
明年明月何處看   명년명월하처간   내년엔 밝은 달  어디에서 볼 것인가


                      

 

                           春夜  춘야    봄밤에
                                                 蘇軾(北宋)   소식 1036~1101

春宵一刻直千金   춘소일각직천금   봄밤 한 시각이 천금의 값이라
花有淸香月有陰   화유청향월유음   꽃은 맑은 향기품고, 달은 그림자가 아름답다
歌管樓臺聲寂寂   가관루대성적적   누대엔 노래와 거문고 소리  고요하고
추韆院落夜沈沈   추천원락야심심   그네 뛰던 후원 뒤뜰엔 밤이 깊어만 간다

 

 

 

 소동파가 즐겼다는 삼겹살찜 동파육 
지글지글 불 앞에 먹는 삼겹살 말고, 색다르게 삼겹살을 요리하자~ 
 
삶고, 지지고, 찌는 동파육은 중국의 소동파가 즐겨 먹었다고해요.. ^^

물(5컵)에 대파(1/2대), 양파(1/4개), 마늘(2쪽),
생강(1쪽), 통후추(10알), 월계수잎(2장) 넣어 끓이다가,
1.5cm 간격으로 칼집 낸 삼겹살(덩어리 400g) 넣어 30분 정도 끓이고,
(줄어드는 물을 보충하고, 거품은 걷어내세요.)

식용유(2) 두른 팬에 황설탕(2) 넣어 약불에서 녹인 다음
삶은 삼겹살을 넣어 고루 색이 나도록 지지고,

지진 삼겹살을 담은 냄비에 삼겹살 삶은 물(5컵)을 면보에 걸러 넣어주고,

진간장(3), 굴소스(1), 설탕(2), 맛술(2), 계피가루(0.3) 넣어
중불에서 1시간 정도 졸인 다음 삼겹살을 건져내 썰어 접시에 담고,

참기름(0.3), 녹말물(1) 넣고 끓여 걸쭉하게 소스 만들어 삼겹살에 뿌리고,

끓는 물(2컵)에 굵은소금(0.5), 청경채(2포기) 넣어 40초 정도 데친 다음
찬물에 헹궈 물기 빼서 접시에 담고 마무리.
 

 


柳氏二外甥求筆跡 (유씨이외생구필적) 二首
유씨 두 조카가 필적을 요구하였다. 2수.
소식(蘇軾). 중국 송(宋) 나라의 문장가.
자는 자첨(子瞻), 호는 동파(東坡)

 

退筆如山未足珍 (퇴필여산미족진)
몽당 붓이 산처럼 쌓여도 그리 대단할 거 없고

 

讀書萬卷始通神 (독서만권시통신)
책 일만권을 읽어야 비로소 신명이 통하는 걸세.

 

君家自有元和脚 (군가자유원화각)
그대 집안엔 대대로 전해오는 필법이 있으니

 

莫厭家계更問人 (막염가계갱문인)
그 필법을 버리고 다시 남에게 묻지 마시게.

 
이 시는 희녕 7년(1074) 1월에 지은 것이라고 합니다. 유근(柳瑾)의 집에서 술잔치가 베풀어졌는데, 이 자리에서 유근의 두 손자(소동파 사촌여동생의 아들) 굉(門+肱-月)과 벽(闢)이 소동파에게 시를 글씨로 써주기를 청하였습니다. 소동파도 서예에 뛰어난 분이었기 때문에 유굉 형제가 글씨를 받고자 한 것입니다. 이 때에 소동파가 조카들에게 두 수의 시를 지어 글씨로 써 주었는데, 위의 시는 그중 첫 번째 것입니다.
* 외생(外甥) : 누나 또는 여동생의 아들.
* 유씨이외생(柳氏二外甥) : 유굉과 유벽을 말함.
* 퇴필(退筆) : 독필(禿筆)과 같은 뜻. 몽당 붓. 지영(智永)이라는 스님이 영흔사(永欣寺)에서 글씨공부를 할 때에 글씨를 쓰고 닳은 몽당 붓이 열 항아리나 되었고, 항아리마다 수천 개씩의 몽당 붓이 들어 있었는데, 나중에 이것들을 땅에 묻고 퇴필총(退筆총, 몽당 붓 무덤)이라고 하였다는 고사가 있음.
* 여산(如山) : 산과 같이 많음. 산처럼 언덕을 이룸.
* 미족진(未足珍) : 진기할 게 없음. 보배로울 게 못됨.
* 통신(通神) : 신명에 통함. 신령에 통함. 도통한 경지에 들어감.
** 글씨 연습을 아무리 많이 해도 그다지 대단한 게 아니고, 독서를 해서 일만 권쯤은 읽어야 도통한 경지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임. 조카들에게 서예에 지나치게 관심 갖지 말고 책읽기에 치중하라고 충고를 한 것으로 보임.
* 군가(君家) : 그대의 집안.
* 자유(自有) : 절로 있음. 본디 있음.
* 원화각(元和脚) : 유굉 형제의 조상 가운데 유공권(柳公權 778-865)이라는 분이 있는데 당나라 원화년간(806-820)에 진사시에 급제하여 서예로 이름을 떨쳤음. 각은 날각(捺脚)의 의미로 필법을 말함. 후대에 원화각은 유공권의 필법을 가리키는 말로 쓰임.
* 염가계(厭家계) : 계는 닭 계 자임. 계(谿-谷+錐-金). 가계는 집안에 있는 닭. 염가계 애야치(厭家계 愛野雉)라는 말이 있는데, 집안에서 기르는 닭을 싫어하고 들에 야생하는 꿩을 좋아한다는 말로서, 자기가 소유한 것을 가벼이 여기고 타인의 물건을 선망한다는 의미로 쓰임. 때로는 자신의 본처를 버리고 밖에서 만난 사람을 좋아한다는 뜻으로도 쓰임.
* 갱문인(更問人) : 다시 남에게 물음.
** 그대 집안에 훌륭한 필법이 집안 전통으로 전해져 오는데 그것을 익히면 그만이지, 굳이 다른 사람, 즉 나에게 필법을 배울 생각을 가질 필요가 없음을 말함.

 


소동파의 저울 

당시(唐詩)는 매우 서정적인데, 그의 시는 매우 철학적입니다.
그래서 “새로운 시의 경지(詩境)를 개척했다”는 평가를 듣고 있죠.
학식이 높았던 소동파는 웬만한 스님은 거들떠 보지도 않았습니다.
쥐뿔도 모르면서 ‘대사(大師)’란 소리만 듣는다고 생각한 거죠.
그런 소동파가 당대의 큰스님이었던 승호(承皓) 스님을 찾았습니다.
승호 스님이 물었죠.
“그대의 존함은 무엇인가.”
소동파는 ‘저울 칭’자를 쓰며 답했죠. “저는 ‘칭(秤)’가입니다.”
사실 중국에 ‘칭(秤)’이란 성씨는 없습니다.
잠시 후 소동파는 “세상의 내로라하는 도인들을 달아보는 저울입니다”라고 말했죠
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승호 스님은 벼락같은 소리를 ‘버럭’ 질렀죠.
“하~알!”
깜짝 놀란 소동파가 뒤로 ‘벌렁’ 나자빠졌습니다.
그때를 놓치지 않고 승호 스님이 물었죠.
“이 소리는 몇 근이나 되는가?” 천하의 소동파도 말문이 막히고 말았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소동파는 이렇게 읊었다고 합니다.
“산색(山色)’은 그대로가 법신(法神)이고, 물소리는 그대로가 설법이다.” 
이 일화는 스님의 ‘한판승’입니다. 그럼 소동파의 급소는 뭘까요. 바로 ‘저울’입니다.
소동파의 저울은 뭔가요. 학식, 즉 배움과 앎이죠.
소동파는 ‘내가 배운 것’과 ‘내가 아는 것’으로 상대의 무게를 쟀던 겁니다.
그런 저울은 상대도 ‘배움과 앎’으로 똘똘 뭉쳤을 때만 상대적인 무게를 따질 수 있는 거죠.
그런데 승호 스님은 딴판이었죠. 배움을 넘은 자리, 앎을 여읜 자리에 서 있었던 겁니다.
한마디로 무게가 없는 자리죠. 동시에 온 우주를 담은 무게이기도 합니다.
푸른 산, 흐르는 물, 날아가는 새, 묵묵한 소나무, 들녘에 핀 숱한 꽃들이 모두 ‘나’를 여읜 자리에 있으니까요.
 
이들을 몽땅 저울에 올려야만 무게가 나오겠죠. 세상에 그런 저울이 있을까요.
어떤 저울이 이 무한대 온 우주를 담을 수 있을까요.
“할! 이 소리가 몇 근이나 되느냐”는 물음에 소동파는 그걸 깨친 게 아닐까요.
그래서 “산색은 ‘그대로가’ 법신”이라고 했겠죠.
‘나’라는 저울을 빼고, 있는 그대로 봐야만 부처의 나라를 볼 수 있으니까요.
거기선 ‘졸졸졸’하는 물소리가 그대로 설법이니까요. 어디 물소리 뿐인가요.
새소리, 바람소리, 빗소리, 모두가 부처의 음성이죠. 부처에게서 나오는 소리니까요.
그럼 소동파의 저울만 급소일까요. 우리의 저울도 급소입니다.
그래서 나는 어떤 ‘저울’로 세상의 무게를 달고, 비교하고, 평하고,
상처까지 주고 받는지 늘 살펴야죠.

 
 


蘇東坡 (소동파)


且夫天地之間  하늘과 땅 사이에 있는 사물은
物各有主      각각 주인이 있어서
苟非吾之所有  내 것이 아니면
雖一毫而莫取  터럭 하나라도 가질 수 없지만
惟江上之淸風  오직 강가에 부는 맑은 바람과
與山間之明月  산에 떠 있는 밝은 달은
耳得之而爲聲  귀로 들으면 소리가 되고
目寓之而成色  눈으로 보면 색이 된다네
取之無禁      그 것을 가진다고 막을 사람 없고
用之無竭      그 것은 쓴다고 고갈되지 않으니
是造物者之    조물주가 준 무진장한 선물이로다.

 

 

넓고 넓다는
중원대륙을 활보하며
 


호탕하게 살다간
대 문장가들 조차
당시의 각박한 사회를 질타하고,

 

 
    溪聲便是廣場舌(계성변시광장설) - 소동파(蘇東坡) 

계성변시광장설 溪聲便是廣場舌 시냇물 소리가 부처님 설법이니
산색기비청정신 山色豈非淸淨身 산색이 어찌 부처님 법신이 아니랴
야래팔만사천게 夜來八萬四千偈 밤새 내린 비로 불은 물소리 법문을
타일여하거사인 他日如何擧似人 남에게 어떻게 전해줄 수 있을까

 

소동파(蘇東坡)의 오도송(悟道頌)이라고 알려져 있는 이 시는 불도를 닦는 많은 사람들이 애송하는 시이다. 당대의 시인이요 학자였던 동파거사가 만년에 벼슬에서 물러나 동쪽 언덕에 초암을 지어 놓고 기거하였다 하여 동파란 호가 붙었다. 처음에는 불교를 우습게 알았던 그가 옥천사 승호(承浩)선사의 할(喝)에 눌려 선(禪)을 시작하였다는 일화가 있다. 그런 후 그는 많은 고승들을 방문하면서 법문을 듣고 선지(禪旨)를 익혔다. 한번은 상총(常聰)선사를 찾아가 법문을 청했더니, 사람이 설해 주는 말만이 법문이 아니라 우주 만상이 모두 법을 설하고 있으니 그 법을 들을 줄 알아야 된다는 말을 하는 것이었다. 이른바 무정설법(無情說法)을 들으라는 말이다. 마침 절을 나와 돌아오는데 골짜기 계곡 밑을 지나자 폭포에서 물 떨어지는 소리가 세차게 들렸다. 전날 밤에 비가 와서 물이 불어 폭포의 물이 더욱 세차게 흘렀던 것이다. 순간 소동파의 머리에 섬광이 번쩍이는 것이었다. 그때 바로 이 송을 지었다고 한다. 산과 물이 부처의 몸이요 부처의 설법이라는 이 말은 우주의 근원을 사무쳐 알고 난 오도의 경계에서 나오는 말이다. 현상에 미혹해 속고 있을 때는 어림없는 이야기다. 두두(頭頭)가 비로(毘盧)요 물물(物物)이 화장(華藏)이라, 이 세상 모든 것이 부처요 존재의 세계는 모두 부처의 세계라는 이 말의 뜻을 알 때 부처와 친해질 수 있을 것이다.

 
 
소동파의 옥대를 벗기다 / 불인 요원(佛印了元)선사

 


불인(佛印了元:1032■1098)스님이 어느 날 방에 들어가려는데 생각찮게 소동파(蘇東坡:1036■經01)가 오자, 그에게 말하였다.

"이곳에는 앉을 자리가 없어 거사를 모실 수 없습니다."

"잠시 스님의 육신[四大]을 자리로 빌어 앉아 봅시다."

"이 산승에게 한 가지 질문이 있는데 거사께서 만일 대답을 하면 앉도록 하겠지만 대답을 못하신다면 옥대(玉帶)를 풀어 주시오."

이 말에 소동파가 선뜻 말씀해 보라 하니 스님이 말하였다.

"거사는 조금 전에 이 산승의 육신을 빌어 앉겠다고 하셨는데, 이 산승의 육신은 본디 빈[空] 것이며 오음(五陰:五蘊)도 있는 것이 아닙니다. 거사는 어디에 앉겠소?"

이 말에 소동파는 생각해 보았지만 대답하지 못하고, 마침내 옥대를 풀어 놓고 껄껄대며 밖으로 나가자 불인스님은 행각할 때 입던 누더기를 그에게 선물하였다. 이에 소동파는 세 수의 게를 읊었다.

 


백천 개의 등불이 하나의 등불이라
항하의 모래알이 모두가 묘한 법왕이기에
나, 소동파는 감히 이를 아끼지 않고
그대 육신을 빌어서 자리 삼으려 하였다오.

百千燈作一燈光  盡是恒沙妙法王
是故東坡不敢惜  借君四大作禪牀

 

병든 몸에 옥대를 두르기란 벅찬 일이라
노둔한 근기가 그대의 활촉같은 기봉에 떨어졌노라
기생집 앞에서 걸식할 뻔하였는데
행각선승 옛 누더기와 바꾸었다네

病骨難堪玉帶圍  鈍根闖落箭鋒機
會當乞食歌姬院  換得雲山舊衣

 


이 옥대 숱한 사람 여관[旅閣]처럼 거쳐오다가
이 내 몸에 전해온 지도 아득하여라
비단 도포 위에 서로 어울리더니
거짓 미치광이 노스님에게 빌려 주노라.


此帶閱人如傳舍  流傳到此赤悠哉
錦袍錯落渾相稱  乞與佯狂老萬回

 


이에 대하여 불인스님은 게송 두 수를 지어 화답하였다.


석상(石霜:807■888)스님, 배휴(裴休:796■870)의 홀(笏)을 빼앗아


3백년간 많은 입에 그 소문 자자했지만
길이 밝은 달과 티없이 함께 할
소동파가 끌러 놓은 옥대만이야 하겠는가

石霜尊得裴休笏  三百年來衆口誇
長和明月共無瑕  爭似蘇公留玉帶

 


형산 땅 변씨[卞和]는 세 임금에게 옥을 바쳤고*
조나라 인상여는 온갖 죽음 무릅쓰고 되찾아왔네*
귀중한 보배란 오로지 천자만이 쓰는 것인데
어이하여 이 소봉래산(小蓬山:金山)에 있는 것일까

 

荊山卞氏三朝獻  趙國相如萬死回
至寶只應天子用  因何留在小蓬萊
 

 

오강(吳江)에서 또 일재(一齋)를 모시고 소동파(蘇東坡)의 운에 따라 짓다
 

십 년 동안 티끌 속에 구부리고 있으니       十年俯首塵土窟
꿈속에 강호 생각하니 근심이 이네           夢想滄洲欲愁絶
뛰어난 오강 경치 천하에 드물다는 말은      吳江淸勝天下稀
내가 처음 조송설에게 들었었네              我初聞之趙松雪
배에다 술을 싣고 미인도 데리고 가니        滿船載酒?佳人
예쁜 웃음 맑은 노래에 이와 볼이 아름답구나 巧笑淸歌玉齒頰
수홍교 밑에는 백구가 나는데                垂虹橋下百鷗飛
흰 물결 하늘에 닿고 하늘은 물과 닿았네     白波接天天四垂
술잔을 멈추고 달 뜨기를 기다리면서         停杯更待江月上
배가 가는 대로 밤새도록 즐길 수 있네       信棹自喜風帆遲
잠삼과 두보 생각나니                       却憶岑參與杜甫
미파에서 즐긴 일 참으로 아이들 희롱이라오  渼陂之樂眞兒嬉


[주C-001]소동파(蘇東坡) : 동파는 송(宋)의 문장가 소식(蘇軾)의 호.
[주D-001]조송설(趙松雪) : 송설은 원(元) 나라 조맹부(趙孟?)의 호.
[주D-002]잠삼(岑參)과……희롱이라오 : 잠삼은 당(唐) 나라 사람으로 두보(杜甫)와 함께 문장에 능하였다. 미파(渼陂)는 섬서성(陝西省) 호현(?縣) 서쪽에 있는 물이름인데, 일찍이 두보는 잠삼의 형제와 함께 이 물에서 놀았다. 그리하여 "잠삼의 형제 모두 기이한 것을 좋아하여 나를 초청해서 멀리 와 미파에 놀았네[岑參兄弟皆好奇 邀我遠來遊渼陂]"라는 시를 지었다.
 
 

 

가로로 보면 고개요, 세로로 보면 봉우리라,
멀리서 가까이에서, 높은 데서 낮은 데서 각각 다르구나.
여산(廬山)의 참 모습을 알 수 없는 것은,
단지 내가 이 산 가운데 있기 때문이리라.

- 소동파의 <제서림벽題西林壁>중에서
 

우물 안에 있는 개구리는 우물을 제대로 볼 수 없다.
산 가운데 있는 자는 산을 제대로 볼 수 없다.
어떠한 일에 닥쳐있는 사람은 그 일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할 수 있다.
오히려 주변에서 그를 바라보고 있는 누군가가
더욱 정확하게 상황을 파악하고 있을 수 있다.
우리들은 삶의 주체로서 각자의 삶을 바라보고 있지만,
때로는 관조하고 있는 누군가가 나의 삶을 더욱 정확히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원소와 조조가 관도에서 대치하고 있을 때
순욱이 그러했던 것처럼...

 

피카소를 떠올리게 된다.
그도 이러한 이치를 이해하고,
본질에 다가서기를 갈구했던 것일까.

 


강물을 길어 차를 달인다 
汲江煎茶(급강전다) / 소동파(蘇東坡)


活水還修活火烹
활수환수활화팽

 

自臨造石取深淸
자림조석취심청

 

大瓢貯月歸春饔
대표저월귀춘옹

 

小均分江入夜甁
소표분강입야병

 

雪乳己飜煎提脚
설유기번전체각

 

松風忽作寫詩聲
송풍홀작사시성

 

枯腸未易禁三椀
고장미역금삼완

 

坐聽荒城長短更
좌청항성장단경


흐르는 맑은물 길어 반드시 활수로서 다리며
스스로 바위를 찾아 깊고 맑은물 구하네.
큰 표주박으로 하여 달을 함께 떠 봄독에 가두며
작근 구기로 하여 강물을 퍼 밤병에 넣네.
말차는 눈같이 희고 벌써 다려진 물다리를 뒤쳐
솔바람 바로 일어 때가됨을 알리네.
굶주린 창자는 차 세잔을 금하기 어려웠으며
깊은밤 앉아서 장단의 북소리 듣네.

 

             화자유민지회구-소동파(蘇東坡)

人生到處知何似(인생도처지하사) : 도처의 인생이 무엇과 같던가
應似飛鴻蹈雪泥(응사비홍도설니) : 하늘 나는 기러기 구름과 땅을 오감이라.
泥上偶然留指爪(니상우연류지조) : 진흙위에 우연히 발자욱 남겼으도
鴻飛那復計東西(홍비나복계동서) : 기러기 하늘을 날며 어찌 동서를 가렸을까.
老僧已死成新塔(노승이사성신탑) : 노승은 이미 죽어 탑 하나 생겼는데
壞壁無由見舊題(괴벽무유견구제) : 무너진 벽에는 옛 글귀 찾아볼 길 없어라.
往日崎嶇還記否(왕일기구환기부) : 예전의 기구했던 때를 아직 기억할까
路長人困蹇驢嘶(노장인곤건려시) : 길 멀고 사람은 지쳐 나귀 절름거리며 울던 일을.

 

좋은글/소동파

부유하다고 친하지 않으며
가난하다고 멀리하지 않음은
이것이  바로 인간 세상 대장부이고,

부유하면 가깝게 지내고
가난하다고 멀리하면
이는 곧 인간 세상  소인배이다.

                                         


소동파를 살린 식혜

1079년, 소동파가
필화로 옥에 갇혔을 때
아들에게 자신의
목숨이 위태로워지면
식혜를 넣어 달라고 했다.
하루는
아들에게 옥바라지를
부탁받은 친척이
우연히 식혜를 들여보냈다.
소동파는
생의 마지막을
맞는 심정으로
임금에게 시를 지어 올렸고,
애절함에
감동한 임금은 죄를 감해주었다.

 

 
소동파의 선시 

 山色豈非淸淨身 
 산색은 어찌 청정 법신불이 아니며

 

 溪聲卽是長廣舌 
 계곡 물소리는 부처님 장광설이라

 

 夜來八萬四千偈 
 밤새 들려온 8만4천 게송을

 

 他日如何擧似人 
 훗날 어떻게 남에게 이르리오.

 

 和子由민(水+?)池懷舊
(화자유전지회구)
 
人生到處知何似   인생도처지하사
應似飛鴻踏雪泥   응사비홍답설니
泥上偶然留指爪   이상우연류지조
鴻飛那復記東西   홍비나복기동서
老僧已死成新塔   노승이사성신탑
壞壁無由見舊題   괴벽무유견구제
往日崎嶇還知否   왕일기구환지부
路長人困蹇驢嘶   노장인곤건려시
 
사람의 인생이 무엇과 같은가
기러기가 땅에 내려섰음 같은 것.
진흙위에 발자욱 남겼으로되
기러기 하늘을 날음에 어찌 동서를 가렸으랴.
노승은 이미 죽어 새로 탑 하나 생겼는데
무너진 벽에는 옛 글귀를 찾아볼 길 없네.
예전의 기구했던 때를 아직 기억하느냐?
길은 멀고 사람은 지쳤는데 당나귀 절름거리며 그리도 울던 것을...
 
蹇 절건       64괘중 하나, 절다
驢 가라말여  온털이 검은 말
嘶 울시      울다. 흐느끼다

 


적벽부(赤壁賦)

임술(壬戌) 가을 7월 기망(기望)에 소자(蘇子)가 손[客]과 배를 띄워 적벽(赤壁) 아래 노닐새,

맑은 바람은 천천히 불어 오고 물결은 일지 않더라.

 

술을 들어 손에게 권하며 명월(明月)의 시를 외고 요조(窈窕)의 장(章)을 노래하더니,

이윽고 달이 동쪽 산 위에 솟아올라 북두성(北斗星)과 견우성(牽牛星) 사이를 서성이더라.

흰 이슬은 강에 비끼고, 물빛은 하늘에 이었더라.

 

한 잎의 갈대 같은 배가 가는 대로 맡겨, 일만 이랑의 아득한 물결을 헤치니, 넓고도 넓게

허공에 의지하여 바람을 타고 그칠 데를 알 수 없고, 가붓가붓 나부껴

인간 세상을 버리고 홀로 서서, 날개가 돋치어 신선(神仙)으로 돼 오르는 것 같더라.

이에 술을 마시고 흥취가 도도해 뱃전을 두드리며 노래를 하니, 노래에 이르기를

"계수나무 노와 목란(木蘭) 상앗대로 속이 훤히 들이비치는 물을 쳐 흐르는 달빛을 거슬러 오르도다.

아득한 내 생각이여, 미인(美人)을 하늘 한 가에 바라보도다."

 

손 중에 퉁소를 부는 이 있어 노래를 따라 화답(和答)하니, 그 소리가 슬프고도 슬퍼 원망하는 듯 사모하는 듯,

우는 듯 하소하는 듯, 여음(餘音)이 가늘게 실같이 이어져 그윽한 골짜기의 물에 잠긴 교룡(蛟龍)을 춤추이고

외로운 배의 홀어미를 울릴레라.

소자(蘇子)가 근심스레 옷깃을 바루고 곧추앉아 손에게 묻기를 "어찌 그러한가?" 하니,

손이 말하기를 "'달은 밝고 별은 성긴데, 까막까치가 남쪽으로 난다.'는 것은 조맹덕(曹孟德)의 시가 아닌가?

서쪽으로 하구(夏口)를 바라보고 동쪽으로 무창(武昌)을 바라보니 산천(山川)이 서로 얽혀 빽빽이 푸른데,

예는 맹덕이 주랑(周郞)에게 곤욕(困辱)을 받은 데가 아니던가?

 

바야흐로 형주(荊州)를 깨뜨리고 강릉(江陵)으로 내려갈 제, 흐름을 따라 동으로 감에 배는 천 리에 이어지고

깃발은 하늘을 가렸어라. 술을 걸러 강물을 굽어보며 창을 비끼고 시를 읊으니 진실로 일세(一世)의 영웅(英雄)이러니

지금 어디에 있는가? 하물며 나는 그대와 강가에서 고기 잡고 나무하며, 물고기와 새우를 짝하고 고라니와 사슴을 벗함에랴.

 

한 잎의 좁은 배를 타고서 술을 들어 서로 권하며, 하루살이 삶을 천지(天地)에 부치니

아득한 넓은 바다의 한 알갱이 좁쌀알이로다. 우리 인생의 짧음을 슬퍼하고 긴 강(江)의 끝없음을 부럽게 여기노라.

 

날으는 신선을 끼고 즐겁게 노닐며, 밝은 달을 안고서 길이 마치는 것은 갑자기 얻지 못할 줄 알새,

끼치는 소리를 슬픈 바람에 부치노라."

소자 말하되 "손도 저 물과 달을 아는가 ? 가는 것은 이와 같으되 일찍이 가지 않았으며, 차고 비는 것이 저와 같으되

마침내 줄고 늚이 없으니, 변하는 데서 보면 천지(天地)도 한 순간일 수밖에 없으며, 변하지 않는 데서 보면

사물과 내가 다 다함이 없으니 또 무엇을 부러워하리요? 또, 천지 사이에 사물에는 제각기 주인이 있어,

나의 소유가 아니면 한 터럭이라도 가지지 말 것이나, 강 위의 맑은 바람과 산간(山間)의 밝은 달은 귀로 들으면

소리가 되고 눈에 뜨이면 빛을 이루어서, 가져도 금할 이 없고 써도 다함이 없으니, 조물주(造物主)의 다함이 없는

갈무리로 나와 그대가 함께 누릴 바로다."

손이 기뻐하며 웃고, 잔을 씻어 다시 술을 드니 안주가 다하고 잔과 쟁반이 어지럽더라.

배 안에서 서로 팔을 베고 누워 동녘 하늘이 밝아 오는 줄도 몰랐어라.

임술(壬戌) 가을 7월 기망(기望)에 소자(蘇子)가 손[客]과 배를 띄워 적벽(赤壁) 아래 노닐새, 맑은 바람은 천천히 불어 오고 물결은 일지 않더라. 술을 들어 손에게 권하며 명월(明月)의 시를 외고 요조(窈窕)의 장(章)을 노래하더니, 이윽고 달이 동쪽 산 위에 솟아올라 북두성(北斗星)과 견우성(牽牛星) 사이를 서성이더라. 흰 이슬은 강에 비끼고, 물빛은 하늘에 이었더라. 한 잎의 갈대 같은 배가 가는 대로 맡겨, 일만 이랑의 아득한 물결을 헤치니, 넓고도 넓게 허공에 의지하여 바람을 타고 그칠 데를 알 수 없고, 가붓가붓 나부껴 인간 세상을 버리고 홀로 서서, 날개가 돋치어 신선(神仙)으로 돼 오르는 것 같더라.- 적벽의 야경과 흥취

이에 술을 마시고 흥취가 도도해 뱃전을 두드리며 노래를 하니, 노래에 이르기를 "계수나무 노와 목란(木蘭) 상앗대로 속이 훤히 들이비치는 물을 쳐 흐르는 달빛을 거슬러 오르도다. 아득한 내 생각이여, 미인(美人)을 하늘 한 가에 바라보도다." 손 중에 퉁소를 부는 이 있어 노래를 따라 화답(和答)하니, 그 소리가 슬프고도 슬퍼 원망하는 듯 사모하는 듯, 우는 듯 하소하는 듯, 여음(餘音)이 가늘게 실같이 이어져 그윽한 골짜기의 물에 잠긴 교룡(蛟龍)을 춤추이고 외로운 배의 홀어미를 울릴레라.- 주흥이 일어남

소자(蘇子)가 근심스레 옷깃을 바루고 곧추앉아 손에게 묻기를 "어찌 그러한가 ? " 하니, 손이 말하기를 '달은 밝고 별은 성긴데, 까막까치가 남쪽으로 난다.' 는 것은 조맹덕(曹孟德)의 시가 아닌가 ? 서쪽으로 하구(夏口)를 바라보고 동쪽으로 무창(武昌)을 바라보니 산천(山川)이 서로 얽혀 빽빽이 푸른데, 예는 맹덕이 주랑(周郞)에게 곤욕(困辱)을 받은 데가 아니던가 ? 바야흐로 형주(荊州)를 깨뜨리고 강릉(江陵)으로 내려갈 제, 흐름을 따라 동으로 감에 배는 천 리에 이어지고 깃발은 하늘을 가렸어라. 술을 걸러 강물을 굽어보며 창을 비끼고 시를 읊으니 진실로 일세(一世)의 영웅(英雄)이러니 지금 어디에 있는가 ? 하물며 나는 그대와 강가에서 고기 잡고 나무하며, 물고기와 새우를 짝하고 고라니와 사슴을 벗함에랴. 한 잎의 좁은 배를 타고서 술을 들어 서로 권하며, 하루살이 삶을 천지(天地)에 부치니 아득한 넓은 바다의 한 알갱이 좁쌀알이로다. 우리 인생의 짧음을 슬퍼하고 긴 강(江)의 끝없음을 부럽게 여기노라. 날으는 신선을 끼고 즐겁게 노닐며, 밝은 달을 안고서 길이 마치는 것은 갑자기 얻지 못할 줄 알새, 끼치는 소리를 슬픈 바람에 부치노라.”- 손의 말

소자 말하되 "손도 저 물과 달을 아는가 ? 가는 것은 이와 같으되 일찍이 가지 않았으며, 차고 비는 것이 저와 같으되 마침내

줄고 늚이 없으니, 변하는 데서 보면 천지(天地)도 한 순간일 수밖에 없으며, 변하지 않는 데서 보면 사물과 내가 다

다함이 없으니 또 무엇을 부러워하리요? 또, 천지 사이에 사물에는 제각기 주인이 있어, 나의 소유가 아니면 한 터럭이라도

가지지 말 것이나, 강 위의 맑은 바람과 산간(山間)의 밝은 달은 귀로 들으면 소리가 되고 눈에 뜨이면 빛을 이루어서,

가져도 금할 이 없고 써도 다함이 없으니, 조물주(造物主)의 다함이 없는 갈무리로 나와 그대가 함께 누릴 바로다."-

 

  소자의 말(손의 말에 대한 반론)

손이 기뻐하며 웃고, 잔을 씻어 다시 술을 드니 안주가 다하고 잔과 쟁반이 어지럽더라.

배 안에서 서로 팔을 베고 누워 동녘 하늘이 밝아 오는 줄도 몰랐어라.- 두 사람의 화해

요점 정리

작자 : 소식(蘇 軾)/ 이응백(李應百)옮김
성격 : 자연 친화, 낭만적, 철학적, 사색적, 낙천적, 운문적, 설리적
사상적 배경 : 노장사상(老莊思想)과 불교의 제행무상(諸行無常 : 우주의 모든 사물은 늘 돌고 변하여 한 모양으로

                    머물러 있지 아니함), 자연친화사상
특징 : 대화의 기법, 서정, 서사, 서경, 설교적 표현기법, 인간의 보편적 관심사 생사(生死)문제,  관점의 차이 이해
갈래 : 부(賦)/  배경 : 공간적 배경은 적벽강, 시간적 배경은 가을 달밤


표현상 특징 :
① 대화(문답법)에 의해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다.
② 변증법적 사고에 의해 결론을 이끌어 간다. 대구법 사용
③ 작자의 인생관이 잘 나타난다.
④ 자연 현상 속에서 인생의 의미를 깨닫는 동양적인 전통 사상이 담겨 있다.


주제 : 적벽 아래에서 노닐며 느낀 인생과 자연에 대한 깨달음(손은 인생을 허무한 것으로  보고,

         소자는 무한한 본체의 관점에서 인생을 보면 삶과 죽음은 같은 것이라는  달관의 자세를 보임), 

         적벽에서 느낀 인생의 순간성과 자연의 영원성

단계;  내용, 특징


적벽의 야경과 흥취
풍류적
주흥과 퉁소 연주


손의 말 : 역사 회고와 인생의 무상
회고적, 무상감


소자의 말 : 사물의 무한한 본질과 시름의 극복
긍정적, 낙천적


두 사람의 화해(의견 일치)

줄거리 :

임술년 7월 16일 소자는 손과 함께 적벽 아래에서 놀았다. 손[客]과 더불어 술을 마시고 달밤의 아름다운 정취를 시로 읊으며 배를 타고 노닐면서 신선이 된 듯한 기분을 흠뻑 맛보았다. 이에 흥취가 도도해 흥겨운 노래를 부르고 손은 퉁솔 화답하는데, 그 퉁소 소리가 슬픈 가락으로 이어졌다.

그래서 소자는 손에게 왜 퉁소의 가락이 슬프냐고 묻자, 손은 '이 곳에서 이름을 떨쳤던 조조와 같은 천하의 영웅도 간 곳이 없으니, 우리 같은 하찮은 인생은 오죽 유한하겠는가. 그래서 허무한 마음이 들어 퉁소 가락에 그 슬픔을 실었노라.'고 말한다. 그래서 소자는 다음과 같은 말로 손을 위로한다.

'변한다는 관점에서 보면 모든 것이 유한한 것이겠지만, 변하지 않다는 관점에서 보면 사물이든 우리 인간이든 모두 다함이 없는 것이니 걱정 말고 함께 즐기자.'  손이 소자의 말에 공감하여 두 사람은 밤새도록 술을 들며 함께 어우러져 풍류를 즐겼다.

내용 연구

임술(壬戌 : 임술년. 여기서는 송나라 신종의 연호인 원풍 5년을 가리킴. 이때 소식의 나이는 47세) 가을 7월 기망(기望 : 음력 16일. 보름날의 만월을 지난 다음날)에 소자(蘇子 : 소식 자신을 가리켜 말함)가 손[客]과 배를 띄워 적벽(赤壁 : 중국 후베이 성에 있는 암벽으로 붉은 빛을 띠고 있다.) 아래 노닐새, 맑은 바람은 천천히 불어 오고 물결은 일지 않더라. 술을 들어 손에게 권하며 명월(明月)의 시('시경'에 나오는 '진풍 월출편'의 시' )를 외고 요조(窈窕 : 시경의 남풍의 관저편으로 추정)의 장(章)을 노래하더니('시경'에 나오는 '진풍' 월출편'의 시를 외우고, 소식의 풍류객의 모습이 반영된 구절. 대구법), 이윽고 달이 동쪽 산 위에 솟아올라 북두성(北斗星)과 견우성(牽牛星) 사이를 서성이더라. 흰 이슬은 강에 비끼고, 물빛은 하늘에 이었더라(일망무제). 한 잎의 갈대 같은 배(일엽편주)가 가는 대로 맡겨, 일만 이랑(갈아 놓은 밭의 한 두둑과 한 고랑을 합하여 이르는 말)의 아득한 물결(만경창파/ 이윽고 달이 동쪽 산 위에 솟아올라 ~ 물빛은 하늘에 이었더라 : 달이 떠서 동남쪽 하늘에서 고요히 빛을 내고 있었고, 밤 이슬이 강변의 풀잎에 맺히며, 강물은 아득하고 넓어서 마치 하늘과 맞붙어 있는 것 같았다. 대구법으로 자연의 정경을 묘사한 부분. 북두성과 견우성의 중간은 동남쪽을 가리킴.)을 헤치니, 넓고도 넓게 허공에 의지하여 바람을 타고 그칠 데를 알 수 없고, 가붓가붓 나부껴 인간 세상을 버리고 홀로 서서, 날개가 돋치어 신선(神仙)으로 돼 오르는 것 같더라[우화등선(羽化登仙) : 사람의 몸에 날개가 돋아 하늘로 올라가 신선이 됨. 《진서(晉書)》의 허매전(許邁傳)에 나오는 말이다.]
- 적벽의 야경과 흥취

임술 : 임술년. 여기서는 송나라 신종의 연호인 원풍 5년을 가리킴. 이때 소식의 나이는 47세
기망 : 음력 16일. 보름날의 만월을 지난 다음날
소자 : 소식 자신을 가리켜 말함
적벽 : 중국 후베이 성에 있는 암벽으로 붉은 빛을 띠고 있다.
이랑 : 갈아 놓은 밭의 한 두둑과 한 고랑을 합하여 이르는 말
명월의 시를 ~ 장을 노래하더니 : '시경'에 나오는 '진풍' 월출편'의 시를 외우고, 소식의 풍류객의 모습이 반영된 구절. 대구법
이윽고 달이 동쪽 산 위에 솟아올라 ~ 물빛은 하늘에 이었더라 : 달이 떠서 동남쪽 하늘에서 고요히 빛을 내고 있었고, 밤 이슬이 강변의 풀잎에 맺히며, 강물은 아득하고 넓어서 마치 하늘과 맞붙어 있는 것 같았다. 대구법으로 자연의 정경을 묘사한 부분. 북두성과 견우성의 중간은 동남쪽을 가리킴.

이에 술을 마시고 흥취가 도도해 뱃전을 두드리며 노래를 하니, 노래에 이르기를 "계수나무 노와 목란(木蘭) 상앗대(초사에 나오는 구절을 인용한 용사의 예)로 속이 훤히 들이비치는 물을 쳐 흐르는 달빛을 거슬러 오르도다. 아득한 내 생각이여, 미인(美人)을 하늘 한 가에 바라보도다." 손 중에 퉁소를 부는 이 있어 노래를 따라 화답(和答)하니, 그 소리가 슬프고도 슬퍼 원망하는 듯 사모하는 듯, 우는 듯 하소하는 듯, 여음(餘音)이 가늘게 실같이 이어져 그윽한 골짜기의 물에 잠긴 교룡(蛟龍 : ①상상 속에 등장하는 동물의 하나. 모양이 뱀과 같고 몸의 길이가 한 길이 넘으며 넓적한 네 발이 있고, 가슴은 붉고 등에는 푸른 무늬가 있으며 옆구리와 배는 비단처럼 부드럽고 눈썹으로 교미하여 알을 낳는다고 한다. ②때를 못 만나 뜻을 이루지 못한 영웅호걸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을 춤추이고 외로운 배의 홀어미를 울릴레라.
- 주흥이 일어남

도도해 : 거침없이 그득 퍼져 흘러/  상앗대 : 삿대
미인 : 마음에 드는 좋은 사람. 또는 아름다운 여인을 가리키는 말로 널리 쓰이지만, 임금을 가리키기도함.
가붓가붓 나부껴 인간 세상을 ~ 오르는 것 같더라. : 자연 속에서 풍류를 즐기는 서정적 자아의 흥취를 표현한 구절로 세속을 잊고 그 무엇에도 구애받음이 없는 자유의 경지를 읊고 있음.
손 중에 퉁소를 부는 이 ~ 홀어미를 울릴레라 : 같이 뱃놀이를 하는 손님중에 한 사람이 나의 노래에 맞추어 퉁소를 연주하는데 그 소리가 매우 애절하였으며 그 여운이 길게 이어져 물 속의 용과 의지할 곳 없는 홀어머니 마음까지 움직일 듯했다. '교룡'은 물 속에 사는 뿔 없는 용을 가리키고, '외로운 배의 홀어미'는 한 척의 배를 집으로 삼아 의지할 곳이 없이 지내는 홀어미를 뜻함. 퉁소 소리를 슬프고   하소연하는 듯하다고 한 것은 감정 이입된 표현이다. 여운이 길게 이어져 교룡과 홀어미의 마음을 울리었다는 말은 사람의 심금을 울릴 만큼 그 소리가 애절한 느낌을 주었다는 뜻임. 대구에 의한 표현으로 퉁소 소리의 느낌을 드러내고 있다.

소자(蘇子)가 근심스레 옷깃을 바루고 곧추앉아 손에게 묻기를 "어찌 그러한가 ?(어찌 그리 신통한 소리를 내는가) " 하니, 손이 말하기를 '달은 밝고 별은 성긴데, 까막까치가 남쪽으로 난다.' 는 것은 조맹덕(曹孟德)의 시가 아닌가 ? 서쪽으로 하구(夏口)를 바라보고 동쪽으로 무창(武昌)을 바라보니 산천(山川)이 서로 얽혀 빽빽이 푸른데, 예는 맹덕이 주랑(周郞)에게 곤욕(困辱)을 받은 데가 아니던가(조조가 주유의 군사에게 대패한 장소) ? 바야흐로 형주(荊州)를 깨뜨리고 강릉(江陵)으로 내려갈 제, 흐름을 따라 동으로 감에 배는 천 리에 이어지고 깃발은 하늘을 가렸어라(군대의 위용). 술을 걸러 강물을 굽어보며 창을 비끼고 시를 읊으니 진실로 일세(一世)의 영웅(英雄)이러니 지금 어디에 있는가(죽고 없음, 무상한 인생) ? 하물며 나는 그대와 강가에서 고기 잡고 나무하며, 물고기와 새우를 짝하고 고라니와 사슴을 벗함에랴.(서민의 생활, 맹덕과 주랑->영웅, 나. 그대->서민) 한 잎의 좁은 배를 타고서 술을 들어 서로 권하며, 하루살이 삶을 천지(天地)에 부치니 아득한 넓은 바다의 한 알갱이 좁쌀알이로다(보잘것 없는 자신의 삶). 우리 인생의 짧음을 슬퍼하고 긴 강(江)의 끝없음을 부럽게 여기노라. 날으는 신선을 끼고 즐겁게 노닐며, 밝은 달을 안고서 길이 마치는 것은 갑자기 얻지 못할 줄 알새, 끼치는 소리를 슬픈 바람에 부치노라.”
- 손의 말

바루고 : 바르게 하고
곧추 : 굽히거나 구부리지 않고 곧게
조맹덕 : 위의 조조
하구, 무창 : 중국 후베이 성의 지명.
주랑 : 오의 장수인 주유.
"어찌 그러한가?" : 어찌 그리 신통한 소리를 내는가? 소동파의 노래 소리에 맞춰 연주하는 퉁소 소리가  손의 비감한 마음을 절실하게 잘 드러내었다는 뜻
산천이 서로 얽혀 ~ 받은 데가 아니던가? : 산과 강은 한데 어울려 푸르렀는데, 우리가 지금 뱃놀이하고 있는 이 곳은 조조가 주유에게 참패를 당했던 적벽 대전이 있었던 곳이 아닌가? 자연 경치를 바라보면서 인간의 삶을 생각해 보고 있다. 자유 연상의 방법으로 역사를 회고하는 대목이다.
바야흐로 형주를 깨뜨리고 ~ 지금 어디에 있는가? : 조조는 유비의 군대를 연파하고 강릉에서 유비를 추격하여 백만의 대군을 태운 대선단으로 장강을 기세 좋게 내려갔다. 그렇게 위풍당당하던 조조는 주유의 화공으로 참패한 채 육로로 도망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어디에 있는가?' 라는 구절은 패전한 조조의 비참한 모습을 나타냄과 동시에 인생의 무상함을 드러내고 있다. '배는 천리에 이어지고 깃발은 하늘을 가렸어라.' 는 구절은 조조의 수군의 위용을 묘사한 부분이다.
하루살이 삶을 천지에 부치니 아득한 넓은 바다의 한 알갱이 좁쌀알이로다. : 하루살이 같은 덧없는 삶을 광활한 천지에 견주니 우리 인생이란 것은 넓은 바다의 좁쌀 한 톨에 지나지 않는구나. 대자연의 광활함과 영원함에 비할 때 우리들의 인생은 너무나 덧없다는 것을 토로한 대목
신선을 끼고 즐겁게 노닐며, 밝은 달을 안고서 길이 마치는 것은 갑자기 얻지 못 할 줄 알새, : 신선과 더불어 즐겁게 노닐고, 밝은 달을 안고 길이 운명을 같이하기란 별안간에 수월히 이루어질 수 없는것임을 알므로. 인생의 유한함을 표출함.
조맹덕의 시 : 조맹덕은 조조. 조조는 그의 시 '단가행'에서 "달은 밝고 별은 성긴데, 까막까치가 남쪽으로 난다."고 하였는데, 달이 밝으면 별빛이 희미하듯이 조조 자신의 위력에 군웅(群雄)이 그림자를 감추는 것과 같으며, 까치가 남쪽으로 세 번 돌아도 의지할 가지가 없다."는 말이 이어져 있는데, 이는 유비 등이 그처럼 몸을 붙일 데도 없이 남쪽으로 패주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처럼 조조의 시를 끌어 온 것은 자연스럽게 그 다음에 이어지는 역사적 사실에 대해 생각으로 발전하게 된다. 그리고 조조는 문학을 사랑하여, 많은 문인들을 불러들였으며, 자신도 그 아들 조비․조식과 함께 시부의 재능이 뛰어나 이른바 건안문학의 흉륭을 가져 오게 하였다. 후세에 조조는 간신의 전형처럼 여겨져 왔는데, 근년에 이르러 중국 사학계에서는 그의 재평가를 둘러싼 논쟁이 일기도 하였다.

소자 말하되 "손도 저 물과 달을 아는가 ? 가는 것은 이와 같으되(강물의 영원함) 일찍이 가지 않았으며, 차고 비는 것이 저와 같으되 마침내 줄고 늚이 없으니(달의 영원함), 변하는 데서 보면 천지(天地)도 한 순간일 수밖에 없으며, 변하지 않는 데서 보면 사물과 내가 다 다함이 없으니 또 무엇을 부러워하리요?(우리들 개개의 존재는 각기 고유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또, 천지 사이에 사물에는 제각기 주인이 있어, 나의 소유가 아니면 한 터럭이라도 가지지 말 것이나, 강 위의 맑은 바람과 산간(山間)의 밝은 달은 귀로 들으면 소리가 되고 눈에 뜨이면 빛을 이루어서, 가져도 금할 이 없고 써도 다함이 없으니, 조물주(造物主 물건을 잘 정리하여 간수함)의 다함이 없는 갈무리로 나와 그대가 함께 누릴 바로다."
_ 소자의 말(손의 말에 대한 반론)

터럭 : 길고 굵은 털/  조물주 : 조화옹
갈무리 : 물건을 잘 정리하여 간수함.
가는 것은 이와 같으되 ~ 사물과 내가 다 다함이 없으니 : 물이 흘러간다는 것과 달이 차고 기운다는 것을 변한다는 관점에서 본다면 천지도 한 순간일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마찬가지이며, 변하지 않는다는 관점에서 본다면 강물이나 달이나 언제나 변하지 않고 그대로라고 할 수 있으니, 모든 사물과 나도 또한 그렇다고 말할 수 있다는 뜻. 소자는 강물이 영원히 흐르고, 달도 영원히 비추고 있는 사물의 본체라는 관점에서 보면 만물은 다 같은 것임을 설파하여 인생의 무상을 극복하고 있다. 서정과 철학을 융합한 대표적인 대목이다.
강 위의 밝은 바람과 ~ 그대가 함께 누릴 바로다. : 대자연은 소유주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 아무리 향유해도 소모됨이 없으니, 그대와 내가 즐길 만한 것이다. 인생에 대한 필자의 직접적 서술이라는 수필적 성격을 갖고 있음을 확인하는 대목임.

손이 기뻐하며 웃고(소자의 말을 듣고 인생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음), 잔을 씻어 다시 술을 드니 안주가 다하고 잔과 쟁반이 어지럽더라. 배 안에서 서로 팔을 베고(손과 소자의 화해 : 의견 일치) 누워 동녘 하늘이 밝아 오는 줄도 몰랐어라. - 두 사람의 화해

손이 기뻐하여 웃고, ~ 오는 줄도 몰랐어라. : 무한하고 영원한 사물의 본체라는 관점의 소자의 말을 들은 손이, 인생에 대한 깨달음을 얻고 기뻐하여 소자와 즐겁게 술을 나누고 동이 트는 줄도 모르고 배위에 함께 누워 있었다. 두 사람의 생각이 일치하고, 인생관의 차이를 극복하고 화해에 이르렀음을 알 수 있다. 동양적 사고의 표현임.

㈎ 임술(壬戌) 가을 7월 ①기망(旣望)에 소자(蘇子) 손(客)과 배를 띄워 적벽(赤壁) 아래 노닐새, 맑은 바람은 천천히 불어 오고 물결은 일지 않더라. ㉠술을 들어 손에게 권하며 명월(明月)의 시를 외우고 ②요조(窈窕) 장(章)을 노래하더니, 이윽고 달이 동쪽 산 위에 솟아 올라 북두성(北斗星)과 견우성(牽牛星) 사이를 서성이더라. 흰 이슬은 강에 ③비끼고, 물빛은 하늘에 이었더라.

㉡한 잎의 갈대 같은 배가 가는 대로 맡겨, ㉢일만 이랑의 아득한 물결을 헤치니, 넓고도 넓게 허공에 의지하여 바람을 타고 그칠 데를 알 수 없고, ④가붓가붓 나부껴 인간 세상을 버리고 홀로 서서, ㉣날개가 돋치어 신선(神仙)으로 돼 오르는 것 같더라. (적벽의 야경과 흥취)

㈏ 이에 술을 마시고 흥취가 ⑤도도해 뱃전을 두드리며 노래를 하니, 노래에 이르기를 "계수나무 노와 목란(木蘭) 상앗대로 속이 훤히 들이비치는 물을 쳐 흐르는 달빛을 거슬러 오르도다. 아득한 내 생각이여, ⑥미인(美人)을 하늘 한 가에 바라보도다." ㉤손 중에 퉁소를 부는 이 있어 노래를 따라 화답(和答)하니, 그 소리가 슬프고도 슬퍼 원망하는 듯 사모하는 듯, 우는 듯 하소하는 듯, 여음(餘音)이 가늘게 실같이 이어져 그윽한 골짜기의 물에 잠긴 교룡(蛟龍)을 춤추이고 외로운 배의 홀어미를 울릴레라. (주흥이 일어남)

① 기망(旣望) 16일 밤, 보름날의 만월(滿月)이 지난 다음 날
② 요조(窈窕) 부녀자의 행실이 아리땁고 얌전함
    (요조(窈窕) 장(章 시경(詩經)에 나오는 시의 일부)
③ 비끼고 (비스듬이 비치고)
④ 가붓가붓 여럿이 다 조금 가벼운 모양 (가벼이 나부끼는 모양)
⑤ 도도해 물이 그득 넘쳐 흐르는 모양 (즐거움이 넘쳐)
⑥ 미인(美人) 아름다운 사람 (사랑하는 사람, 마음에 그리는 사람)

밑줄친 구절(㉠~㉤)에 알맞는 고사성어를 적용해 보기.

㉠ 음풍농월(吟風弄月) : 맑은 바람과 밝은 달에 대하여 시를 짓고 즐겁게 놂.
㉡ 유유자적(悠悠自適) : 아무것에도 속박되지 않고 자기 하고 싶은 대로 조용하고
                                 가만히 생활하는 일
㉢ 만경창파(萬頃蒼波) : 한없이 넓고 넓은 바다
㉣ 우화등선(羽化登仙) : 날개가 돋아 하늘에 오르는 신선과 같다.
㉤ 고장난명(孤掌難鳴) : 혼자서는 일을 하지 못함.(=獨掌不鳴)

서술 양식의 특성

① 글의 전개가 시간적 순서로 되어 있다.
② 서정적 정감을 드러내기에 힘썼다.
③ 감정에 호소하는 방식으로 작품이 전개되고 있다.
④ 장면 묘사를 통하여 배경과 상황을 생동감 있게 그렸다.
⑤ 대상이 화자의 의식 속에서 그 의미가 주관화되고 있다.
⑥ 심리 변화에 초점을 맞춰 인물의 내면을 분석하고 있다.
⑦ 처음에는 사실을 제시하고 뒤에는 느낌을 표현했다.
⑧ 자연과 인간의 대비를 통해 점층적인 효과를 가져 왔다.
⑨ 자연과 인간의 친화에 바탕을 둔 상상의 세계를 펼쳐 보였다.
⑩ 윗글을 감상하는 데 있어서 긴요한 것은 시  공간 배경의 이해이다.

글의 구성

㈎ 적벽에서의 즐거운 뱃놀이
㈏ 흥취와 슬픈 퉁소 소리

㈎ 소자(蘇子)가 근심스레 옷깃을 바루고 ①곧추 앉아 손에게 묻기를 "어찌 그러한가?" 하니, 손이 말하기를 "'달은 밝고 별은 ②성긴데, 까막까치가 남쪽으로 난다.'는 것은 조맹덕(曹孟德)의 시가 아닌가? 서쪽으로 하구(夏口)를 바라보고 동쪽으로 무창(武昌)을 바라보니 산천(山川)이 서로 얽혀 빽빽히 푸른데, 예는 맹덕이 주랑(周郞)에게 ③곤욕(困辱)을 받은 데가 아니던가? 바야흐로 형주(荊州)를 깨뜨리고 강릉(江陵)으로 내려갈제,흐름을 따라 동으로 감에 배는 천 리에 이어지고 깃발은 하늘을 가렸어라. 술을 ④걸러 강물을 굽어보며 창을 비끼고 시를 읊으니 진실로 일세(一世)의 영웅(英雄)이러니 지금 어디에 있는가? 하물며 나는 그대와 ㉠강가에서 고기 잡고 나무하며, 고기와 새우를 짝하고 고라니와 사슴을 벗함에랴. 한 잎의 좁은 배를 타고서 술을 들어 서로 권하고, 하루살이 삶을 천지(天地)에 부치니 ㉡아득한 넓은 바다의 한 알갱이 좁쌀알이로다. 우리 인생의 짧음을 슬퍼하고 긴 강(江)의 끝없음을 부럽게 여기노라. 날으는 신선을 끼고 즐겁게 노닐며, 밝은 달을 안고서 길이 마치는 것은 갑자기 얻지 못 할 줄 알새, ⑤끼치는 소리를 슬픈 바람에 부치노라."(손의 말 - 조맹덕의 시구, 적벽대전의 회곡)

㈏ 소자 말하되 "손도 저 물과 달을 아는가? ⑥가는 것은 이와 같으되 일찍이 가지 않았으며, ⑦차고 비는 것이 저와 같으되 마침내 줄고 늚이 없으니, 변하는 데서 보면 천지(天地)도 한 순간일 수밖에 없으며, 변하지 않는 데서 보면 사물과 내가 다 다함이 없으니 또 무엇을 부러워하리오. 또, 천지 사이에 ⑧사물에는 제각기 주인이 있어, 나의 소유가 아니면 한 ⑨터럭이라도 가지지 말 것이나, ㉢강 위의 맑은 바람과 산간(山間)의 밝은 달은 귀로 들으면 소리가 되고 눈에 뜨이면 빛을 이루어서, 가져도 금할이 없고 써도 다함이 없으니, 조물주(造物主)의 다함이 없는 ⑩갈무리로 나와 그대가 함께 누릴 바로다."(소자의 말 - 손의 말에 대한 반론)

㈐ 손이 기뻐하며 웃고, 잔을 씻어 다시 술을 드니 안주가 다하고 잔과 쟁반이 어지럽더라. 배안에서 서로 팔을 베고 누워 동녘 하늘이 밝아오는 줄도 몰랐어라. (두 사람의 화해)

① 곧추 굽히거나 구부러지지 않고 곧게
② 성긴데 공간적으로 사이가 뜨다
③ 곤욕(困辱) 심한 모욕(패전의 쓰라림을 겪은)
④ 걸러 매달려 있다. (술을 마심)
⑤ 끼치는 (가슴에 사무치는)
⑥ 가는 것 (흘러가는 물)
⑦ 차고 비는 것 (차고 기우는 달)
⑧ 사물 일과 물건 (사유물(私有物))
⑨ 터럭 털 (조금, 추호(秋毫))
⑩ 갈무리 일을 처리하여 마무리하는 것, 창고 (물건을 정돈하여 간수하는 것)

1)壬戌之秋(임술지추), 七月2)旣望(칠월기망), 蘇子與客(소자여객), 泛舟遊於3)赤壁之下(범주유어적벽지하).淸風徐來(청풍서래), 水波不興(수파불흥). 擧舟4)屬客(거주촉객), 誦5)明月之詩(송명월지시), 歌6)窈窕之章(가요조지장).少焉(소언), 月出於東山之上(월출어동산지상), 徘徊於7)斗牛之間(배회어두우지간)白露橫江(백로횡강), 水光接天(수광접천). 縱8)一葦之9)所如(종일위지소여), 10)凌萬頃之茫然(능만경지망연).11)浩浩乎(호호호), 如12)憑虛御風(여빙허어풍), 而不知其所止(이부지기소지).13)飄飄乎(표표호), 如14)遺世獨立(여유세독립), 15)羽化而登仙(우화이등선).於是(어시), 飮酒樂甚(음주락심). 16) 舷而歌之(구현이가지).歌曰(가왈), [17)桂棹兮蘭 (계도혜난장), 擊18)空明兮 19)流光(격공명혜소류광). 20)渺渺兮21)予懷(묘묘혜여회), 望22)美人兮23)天一方(망미인혜천일방).客有吹24)洞簫者(객유취통소자), 倚歌而和之(의가이화지). 其聲25)嗚嗚然(기성오오연), 如怨如慕(여원여모), 如泣如訴(여읍여소), 餘音26)(여음요요), 不絶如縷(부절여루).舞27)幽壑之28)潛蚊(무유학지잠문), 泣29)孤舟之釐婦(읍고주지리부).蘇者30) 然正襟(소자추연정금), 31)危坐而問客曰(위좌이문객왈),[何爲其然也(하위기연야).]客曰(객왈), [32)月明星稀 烏鵲南飛(월명성희 오작남비), 此非曹孟德之詩乎(차비조맹덕지시호). 西望33)夏口(서망하구), 東望34)武昌(동망무창), 山川上繆(산천상무), 35)鬱乎蒼蒼(울호창창). 此非36)孟德之困於 周郞者乎(차비맹덕지곤어 주랑자호).方其破荊州(방기파형주), 下江陵(하강릉), 順流於東也(순류어동야), 37)  千里(축로천리), 38)旌旗蔽空(정기폐공). 39) 酒臨江(시주임강), 40)橫 賦詩(횡삭부시). 固一世之雄也(고일세지웅야). 而今安在哉(이금안재재). 況吾與子(황오여자).41)漁樵於42)江渚之上(어초어강저지상), 侶魚43)蝦而友44) 鹿(여어하이우미록). 賀一葉之扁舟(하일엽지편주), 擧45)匏樽而46)相屬(거포준이상촉), 寄47)浮遊於天地(기부유어천지), 渺滄海之一粟(묘창해지일속). 哀吾生之48)須臾(애오생지수유), 長江之無窮(이장강지무궁). 挾飛仙49) 遊(협비선오유), 抱明月而長終(포명월이장종), 知不可乎50)驟得(지부가호취득), 託51)遺響於52)悲風(탁유향어비풍)蘇者曰(소자왈) [客亦知夫水與月乎(객역지부수여월호). 53)逝者如斯(서자여사), 而54)未嘗往也(이미상왕야). 盈55)虛者如彼(영허자여피), 而卒莫消長也(이졸막소장야), 蓋將自其變者而觀之(개장자기변자이관지), 則天地曾不(칙천지증불),能以一瞬(능이일순). 56)自其不變者而觀之(자기불변자이관지). 則物與我皆無盡也(즉물여아개무진야). 而又何 乎(이우하이호), 且夫天地之間(차부천지지간), 物各有主(물각유주), 苟非吾之所有(구비오지소유), 雖一毫而莫取(수일호이막취).惟江上之淸風(유강상지청풍), 與山間之明月(여산간지명월), 而得之而爲聲(이득지이위성), 目遇之而成色(목우지이성색). 57)取之無禁(취지무금), 用之不竭(용지불갈), 是58)造物者之59)無盡藏也(시조물자지무진장야). 而吾與者之所共樂(이오여자지공락),客喜而笑(객희이소), 洗盞更酌(세잔갱작). 60)肴核旣盡(효핵기진), 61)杯盤62)狼藉相與63)枕籍乎舟中(배반낭자상여침적호주중), 不知東方之旣64)白(부지동방지기백).
          주(註) - 일부 한자 지원되지 않음

1) 壬戌(임술) 송(宋) 원풍5년   
2) 旣望(기망) 음력 16일
3) 赤壁(적벽) 양자강 상류에 있는 황강현 황주의 강언덕 이름
4) 屬客(촉객) 손님에게 (술을) 따르다.
5) 明月之詩(명월지시) 시경(詩經) 진풍(陣風)에 있는 월출편(月出編)
6) 窈窕之章(요조지장) 서경(書經) 국풍(國風) 주남(周南)에 있는 관저편(關雎篇)
7) 斗牛之間(두우지간) 북두성과 견우성의 중간
8) 一葦(일위) 한 잎의 갈대. 작은 배를 가리킨다.
9) 所如(소여) 여(如)는 왕(往), 거(去)의 뜻. 가는 대로
10) 凌萬頃之茫然(능만경지망연) 凌은 (배 같은 것을) 타고 건너가다. 萬頃은 한 없이 너른 바다. 望然은 하도 너르고 멀어서 아득한 모양을 말함.
11) 浩浩乎(호호호) 넓은 것을 뜻하는 형용사
12) 憑虛御風(빙허어풍) 憑은 의지한다. 虛는 허공을 가리키며, 御는 乘과 같다. 허공에 의지하여 바람을 타고 간다는 말은 마음이 이미 신선의 경지에 들어가고 있음을 말함.
13) 飄飄乎(표표호) 가볍게 나부끼는 모습. 여기서는 몸이 두둥실 가벼이 떠오른 모양을 말함.
14) 遺世獨立(유세독립) 遺世(유세)는 속세를 떠나다. 속세를 떠나 그 어떠한 사물에도 속박되지 아니한 대자연의 경지를 말함
15) 羽化而登仙(우화이등선) 몸에 날개가 돋치어 신선이 되어 하늘에 오르다.
16)  舷(구현) 뱃전을 치다.
17) 桂棹兮蘭 (계도혜난장) 계수나무로 만든 노(櫓)와 난나무로 만든 상앗대
18) 空明(공명) 달이 물속을 환히 비친 것을 가리킴.
19) 流光(류광) 달빛으로 물결이 반짝이는 것.
20) 渺渺(묘묘) 아득히 먼 모양  
21) 予懷(여회) 자기가 품고 있는 회포
22) 美人(미인) 평소에 사모하여 잊지 못하는 사람. 군자(君子)를 비유한 것
23) 天一方(천일방) 하늘 저 한 쪽. 조정을 가리키는 설(?)
24) 洞簫(통소) 퉁소) 악기 이름 
25) 嗚嗚然(오오연) 구슬픈 소리의 형용.
26)   (요요) 실같이 가늘고 긴 것을 표현한 형용사. 가날프고 길게 이어지다.
27) 幽壑(유학) 깊은 골짜기
28) 潛蚊(잠문) 숨어 있는 교룡(蛟龍)) 교룡-뿔 없는 용
29) 孤舟之釐婦(읍고주지이부) 孤舟(고주)는 외로운 작은 배요, 釐婦(이부)는 과부이니 의지할 곳 없어 작은 배를 삼고 외로이 지내는 과부를 말한다.
30)  然(추연) 감상에 젖어 얼굴색이 변한 모습. 애처로운 얼굴빛
31) 危坐(위좌) 몸을 바로 세우고 단정히 앉는 것. 단좌(端坐) 도는 정좌(正坐)와 같다.
32) 月明星稀 烏鵲南飛(월명성희 오작남비) 조조(曹操)가 지은 단가행(短歌行)이라는   시(詩)의 일절
33) 夏口(하구) 지명) 지금의 호북성(湖北省)) 한구(漢口)
34) 武昌(무창) 지명) 지금의 호북성(湖北省) 무창
35) 鬱乎(울호) 초목이 빽빽하게 들어서 무성한 모양
36) 孟德之困於 周郞(맹덕지곤어 주랑) 맹덕은 조조의 자(字). 주랑은 주유(周喩). 적벽대전에
            조조가 주유에게 크게 패한 것을 말함.
37)   千里(축로천리)   (축로)는 배의 뒤쪽( ) 즉 선미(船尾)와 배의 앞머리( ) 즉 선두(船頭). 배가 천리를 잇닿아 있음을 뜻한다.
38) 旌旗(정기) 군(軍)에서 쓰는 여러 가지 기    
39)  酒(시주) 술을 따르다.
40) 橫 (횡삭)  (삭)은 여덟자나 되는 긴 창. 창을 가로 놓다.
41) 漁樵(어초) 고기 잡고 나무 하는 일  
42) 江渚(강저) 강 가
43) 蝦(하) 새우
44)  (미) 고라니
45) 匏樽(포준) 표주박 술잔     
46) 相屬(상촉) 주객(主客)이 서로 술을 권하는 일
47)   (부유) 하루살이 48) 須臾(수유) 잠깐 동안, 눈 깜짝할 사이
49)  遊(오유) 멀리 가서 놀다. 밖에 나와 자유롭게 노니는 것.
50) 驟(취) 갑짜기, 쉽사리     
51) 遺響(유향) 퉁소 소리의 여운(餘韻)
52) 悲風(비풍) 가을 바람(秋風)
53) 逝者如斯(서자여사) 일찍이 공자가 한 말로써, 흐르는 물은 잠시도 쉬지 않고 밤낮으로 흐른다는 말이다.
54) 未嘗往也(미상왕) 돌아온 일이 없다. 
55) 盈虛(영허) 곧 달이 차고 이지러지는 것
56) 自其變者而觀之(자기변자이관지)~ 우주 만상을 동적(動的)인 개념으로 본다면 어느 것 하나 그대로 가만히 있는 것이 없고, 불변(不變)의 개념으로 본다면 천지 만물(天地萬物)은 오직 하나의 근원이라, 나고 죽음이 따로 없으니, 그 생명 또한 무한(無限)하여 다함이 없다.
57) 取之(취지) 맑은 바람을 쏘이고 밝은 달을 보는 것.
58) 造物者(조물자) 조물주(造物主)
59) 無盡藏(무진장) 한 없이 있는 보물, 써도 써도 다함이 없는 한정 없이 많은 것.
60) 肴核(효핵) 肴(효)는 어육(魚肉)의 안주요, 核(핵)은 과실(果實)의 안주임. 술안주와 과실
61) 杯盤(배반) 잔과 접시       
62) 狼藉(낭자) 어지럽게 흩어지다.
63) 枕籍(침적) 베개 삼아 베고 눈고, 깔고 앉다.
64) 白(백) 하얗게 날이 새는 것

이해와 감상

당송(唐宋) 팔대가의 하나인 소식(호 동파(東坡)가 황주에 유배되어 있을 때, 적벽 아래에서 한 나그네와 함께 뱃놀이를 한 이야기를 읊은 운문이다. 인생의 의미를 적벽 대전의 영웅인 조조와 주유를 회상하고 인생이란 덧없는 것이라는 것과, 무한한 본체의 관점에서 보면 만물이 다 같은 것임으로 반론을 제시하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내용상 전편과 후편으로 나누는데, 전편에서 작가는 삼국 시대에 유비와 조조의 군사가 격렬한 싸움을 벌였던 적벽에서 친구들과 뱃놀이를 하면서 옛날을 회고하고 인생과 대자연의 의미를 노래한다. 그리고 후편에서는 적벽의 겨울 풍경이 지닌 아름다움을 감동어린 시선으로 묘사한다. 한편 이러한 내용 가운데서 특히 주목되는 부분은 노장 사상의 영향을 받은 전편의 뒷부분과 후편이다. 이 부분에서 작자는 자연의 장구한 시간성에 비하여 순간에 지나지 않는 인생의 짧음을 한탄함으로써 자연으로 귀의하고자 하는 마음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이해와 감상1

송나라 원풍(元豊, 송의 연호) 5년(1082) 가을 7월 16일의 달 밝은 밤에 소동파가 적벽에서 뱃놀이를 하며 삼국의 영웅인 조조(曹操)와 주유(周瑜)의 풍류에 비겨 자신의 덧없는 인생을 생각하고, 결국은 저들이나 자신이 다 무한한 생명 앞에서는 모두 덧없는 존재라는 것과, 무한한 본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만물이 다 같은 것임을 깨닫고 시름을 잊는다는 내용을 술회한 명문이다.

적벽강은 한(漢)나라 때 유비(劉備)와 조조(曹操)가 싸웠던 전쟁터이다. 이 작품은 소식이 황주(黃州)로 유배 갔을 때 친구들과 뱃놀이를 하면서 지은 것인데. 전.후 적벽부 2편이 있다. 그러니까 이 글에 이어서 쓴 '후적벽부'도 있다는 것이다.

'부(賦)'는 한문체의 하나로 글귀 끝에 운을 달고 대(對)를 맞추어 짓는다. 때로는 '감상을 느낀 그대로 읊은 글'의 뜻으로도 쓰인다. 이 작품은 중국의 명문(名文)을 가려 뽑은 책인 <고문진보(古文眞寶)>에 들어 있다.

이 작품은 작가가 조정의 비리를 풍자한 혐의를 받아 황주(黃州)로 유배 갔을 때 지은 것이라고 한다. 전편에서 작가는 삼국 시대에 유비와 조조의 군사가 격렬한 싸움을 벌였던 적벽에서 친구들과 뱃놀이를 하면서 옛날을 회고하고 인생과 대자연의 의미를 노래하고 있으며, 후편에서는 적벽의 겨울 풍경이 지닌 아름다움을 감동 어린 시선으로 묘사한다.

한편 이러한 내용 가운데 특히 주목되는 부분은 노장(老莊) 사상의 영향을 받은 전편의 뒷부분과 후편이다. 이 부분에서 작가는 자연의 장구(長久)한 시간성에 비하여 순간에 지나지 않는 인생의 짧음을 한탄함으로써 자연으로 귀의하고자 하는 마음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당송팔대가

중국당의 한유․유종원․송의 구양수․소순․소식․소철․증공․왕안석 등 8명의 산문 작가의 총칭. 한유․유종원은 육조 이후 산문의 내용이 공소하며 화려한 사륙변려체의 문장인 데 대하여, 진한 이전의 고문으로 돌아가, 유교적 정신을 바탕으로 간결하며 뜻의 전달을 지향하는 새로운 산문 운동을 전개하였다. 이것이 소위 고문운동이다. 이 운동은 획기적인 성과를 거두었지만 두 사람이 죽은 후에는 점차 기세가 약해졌다. 그것은 새로운 표현과 착상의 연구가 뜻의 전달성을 희박하게 하였고, 도한 도덕 지향의 면이 지나치게 강조되어 도학 냄새가 짙은 것이 원인이었으며, 그 반동으로 당 말기에서 5대에 걸쳐 육조식 탐미적 산문이 부활하였고, 북송의 천성기가 되자 구양수가 한유의 문집을 규범으로 하여, 알기 쉽고 유창한 산문을 만드는 혁신 운동에 앞장서, 이 운동으로부터 소순․소식․소철․증공․왕안석 등 우수한 문학자가 배출되었다.

중국 사상의 특징

중국인들은 선진 시대부터 인문 중심의 가치 철학을 바탕으로 존재 철학과 방법철학의 세 전통을 형성하였다. 사회 정치 사상으로서의 법가(法家)와 논리학파로서의 명가(名家) 등은 이 전통 위에 서 있으며 뒤에 전래된 인도의 불교도 여기에 용해되어 법화․화엄․선종 같은 중국 불교로 변모하였다. 송나라 이후 이른바 신유학이나 고거(考據)학들은 이 전통들을 유가를 중심으로 일원화시켰던 새로운 창조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 사상의 일반적 특성은

1. 우주 및 자연과, 인과 및 만물을 언제나 유기적 관계로 이해했다는 점이다(이른바 천일 합일, 도즉만물, 일이다, 이즉사 등이 좋은 예이다.)
2. 본체를 설명함에 있어 공간적 단위상 보다는 시간적 변화상을 중시하였다. 즉, 본체의 존재론적 측면보다는 생성 변화론적 측면에 관심을 두었다.
3. 인륜 또는 인문과 도덕을 중시하는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 즉, 인간을 그들의 관계 속에서 이해하되 바람직한 관계 형식을 심성(心性)과 연관시켜 정립하려 하였다.(제성론과 제규범의 발달이 그 좋은 예이다.)
4. 동양사상의 마지막 특징은 그 방법이 직관적이고 그 성격이 예술적이라는 점이다. 사유의 단계적 과정이나 논리적 추론보다는 본질을 밝혀 내어 깨닫는 것을 중요시하고 사실의 과학적 세계보다 미적 경지를 지향하는 경향은 동양 사상의 일반적 특성임에 틀림없다.

중국 문학의 경향

중국 문학은 한민족(漢民族)을 중심으로 구축된 긴 역사를 가지며, 그 역사의 장구함과 문헌의 풍부함에서 세계에 그 유례가 없다. 중국 문학의 언어, 즉 한어는 원래 단음절어이며, 1어가 1음절. 1개념을 나타내고 1문자로 표기된다. 그 문자 즉, 한자도 알파벳과 같은 표음 문자로 발달한 기회를 얻지 못한 채, 표의 문자로서 복잡하고 다양한 구조를 가지게 되었다.

이와 같은 언어 문자의 특성이 결국은 중국 문학의 특성을 규정하게 된다. 수사에서 대구를 존중하는 것도 그 하나이며, 언어와 문자의 특성은 청각적으로나 시각적으로나 의미 내용적으로나, 좌우 대칭의 대구를 만들기 쉽게 한다. 이 대구의 기교는 당대의 율시의 중심적 요소가 되기도 하는데, 그것이 문장에서 가장 극단적으로 발휘된 것이 사륙변려문이며, 4자구6자구를 기조로 변(쌍두마차)․여(부부의 짝)와 같은 대구를 존중하는 문장이 중세에 성행하여, 언제나 하나의 흐름을 이루고 있었다. 이에 대해서, 고대 문장의 자연스럽고 소박한 양식을 존중하는 고문은 근세 이후의 주류가 되었다. 단, 양쪽이 모두 전고(典故)를 즐겨 인용하는 것은 하나의 공통적 특색이라고 하겠다. 시나 문장은 선인의 명언이나 고사를 인용함으로써 표현 내용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 수 있지만, 전고가 지식인의 공통의 광장에서 벗어나면 난해하다는 비난을 면할 수 없게 된다. 근대의 문학 혁명 운동에서 전고를 인용하지 않는다는 조목이 들어 있었던 것도 그 때문이다. 대구나 전고의 존중은 주로 귀족과 사대부의 문학, 시문의 장르, 이른바 아(雅)의 세계의 문제였으며, 이와는 달리 서민의 문학, 민가나 소설. 연극의 장르, 이른바 속의 세계가 존재했는데, 아의 세계와 속(俗)의 세계는 단절된 것이 아니라, 언제나 깊은 교섭을 가지면서 발전하였다. 아의 세계의 문학은 문언을 주로 했으나, 속의 세계의 문학은 백과를 중심으로 했으며 근세 서민의 발흥을 배경으로 송대부터 눈부신 발전을 이룩하였다. 후자의 강인한 생명력과 전자의 꾸준한 문학 기법은 끊임없는 교섭을 가지면서 중국 문학을 떠받쳐 온 거대한 두 기둥이다.

동양의 자연관

서양인들은 자연을 정복과 지배의 대상으로 삼거나 개발의 대상으로 보아 자연 파괴 현상을 초래했다. 그러나 동양인들은 자연에서 삶의 의미를 발굴해 내거나, 미적 존재라는 차원을 훨씬 뛰어넘어 자연에서 이상향의 모습을 찾아내고자 했다. 자연에서 삶의 의미를 발굴해 내려는 태도가 드러난 것을 문학 작품에서 찾아보면, 이화의 '도산십이곡'이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 될 것이다. '청상은 엇대하야, 만고애 프르르며, 유수는 엇뎨하야 주야에 긋디 아니난고. 우리도 그치디 마라 만고상청호리라'처럼 산과 냇물의 영원성에서 변함없는 학문 정진이라는 의미를 추구하였다. 이러한 태도는 이양하의 수필 '나무', 김수영의 시 '폭포'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나타난다. 그런가 하면 동양인은 주변의 자연을 단순한 삶의 터전으로 의식하지 아니하고 이상향의 구체적 모습으로 인식하고자 하였다. 이와 같은 태도는 윤선도의 '어부사시사'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그러기 떳는 밧긔 못 보던 뫼 뵈나고야. 낙시질도 하려니와 취한 거시 이 흥이라. 석양이 비치니 천산 금수로다.'에서 자연은 선경, 즉 이상향의 모습으로 인식되었다. 이러한 자연관은 현대에도 계승되어 박목월의 '산도화' 등의 작품을 낳게 되었다.

본문

壬戌之秋(임술지추) 七月旣望(칠월기망) 蘇子與客(소자여객) 泛舟遊於赤壁之下(범주유어적벽지하) 淸風徐來(청풍서래) 水波不興(수파불흥). 擧舟屬客(거주촉객) 誦明月之詩(송명월지시) 歌窈窕之章(가요조지장) 少焉(소언) 月出於東山之上(월출어동산지상) 徘徊於斗牛之間(배회어두우지간) 白露橫江(백로횡강) 水光接天(수광접천) 縱一葦之所如(종일위지소여) 凌萬頃之茫然(능만경지망연) 浩浩乎(호호호) 如憑虛御風(여빙허어풍) 而不知其所止(이부지기소지) 飄飄乎(표표호) 如遺世獨立(여유세독립)羽化而登仙(우화이등선) 於是(어시) 飮酒樂甚(음주락심)  舷而歌之(구현이가지) 歌曰(가왈) 桂棹兮蘭 (계도혜난장) 擊空明兮 流光(격공명혜소류광) 渺渺兮予懷(묘묘혜여회), 望美人兮天一方(망미인혜천일방) 客有吹洞簫者(객유취통소자) 倚歌而和之(의가이화지) 其聲嗚嗚然(기성오오연) 如怨如慕(여원여모) 如泣如訴(여읍여소), 餘音  (여음요요), 不絶如縷(부절여루) 舞幽壑之潛蚊(무유학지잠문) 泣孤舟之釐婦(읍고주지리부) 蘇者 然正襟(소자추연정금) 危坐而問客曰(위좌이문객왈) 何爲其然也(하위기연야) 客曰(객왈) 月明星稀 烏鵲南飛(월명성희 오작남비) 此非曹孟德之詩乎(차비조맹덕지시호) 西望夏口(서망하구) 東望武昌(동망무창) 山川上繆(산천상무)鬱乎蒼蒼(울호창창) 此非孟德之困於 周郞者乎(차비맹덕지곤어 주랑자호) 方其破荊州(방기파형주) 下江陵(하강릉), 順流於東也(순류어동야) 軸 千里(축로천리) 旌旗蔽空(정기폐공)  酒臨江(시주임강) 橫 賦詩(횡삭부시) 固一世之雄也(고일세지웅야) 而今安在哉(이금안재재) 況吾與子(황오여자) 漁樵於江渚之上(어초어강저지상) 侶魚蝦而友 鹿(여어하이우미록) 賀一葉之扁舟(하일엽지편주) 擧匏樽而相屬(거포준이상촉) 寄  於天地(기부유어천지) 渺滄海之一粟(묘창해지일속) 哀吾生之須臾(애오생지수유) 長江之無窮(이장강지무궁) 挾飛仙 遊(협비선오유)  抱明月而長終(포명월이장종) 知不可乎驟得(지부가호취득) 託遺響於悲風(탁유향어비풍) 蘇者曰(소자왈) 客亦知夫水與月乎(객역지부수여월호) 逝者如斯(서자여사), 而未嘗往也(이미상왕야). 盈虛者如彼(영허자여피) 而卒莫消長也(이졸막소장야) 蓋將自其變者而觀之(개장자기변자이관지) 則天地曾不(칙천지증불) 能以一瞬(능이일순) 自其不變者而觀之(자기불변자이관지) 則物與我皆無盡也(즉물여아개무진야) 而又何羨乎(이우하선호) 且夫天地之間(차부천지지간)  物各有主(물각유주) 苟非吾之所有(구비오지소유) 雖一毫而莫取(수일호이막취)  惟江上之淸風(유강상지청풍) 與山間之明月(여산간지명월) 而得之而爲聲(이득지이위성) 目遇之而成色(목우지이성색) 取之無禁(취지무금) 用之不竭(용지불갈) 是造物者之無盡藏也(시조물자지무진장야) 而吾與者之所共樂(이오여자지공락) 客喜而笑(객희이소) 洗盞更酌(세잔갱작) 肴核旣盡(효핵기진) 杯盤狼藉相與枕籍乎舟中(배반낭자상여침적호주중) 不知東方之旣白(부지동방지기백)

임술(壬戌) 가을 7월 기망(기望)에 소자(蘇子)가 손[客]과 배를 띄워 적벽(赤壁) 아래 노닐새, 맑은 바람은 천천히 불어 오고 물결은 일지 않더라. 술을 들어 손에게 권하며 명월(明月)의 시를 외고 요조(窈窕)의 장(章)을 노래하더니, 이윽고 달이 동쪽 산 위에 솟아올라 북두성(北斗星)과 견우성(牽牛星) 사이를 서성이더라. 흰 이슬은 강에 비끼고, 물빛은 하늘에 이었더라. 한 잎의 갈대 같은 배가 가는 대로 맡겨, 일만 이랑의 아득한 물결을 헤치니, 넓고도 넓게 허공에 의지하여 바람을 타고 그칠 데를 알 수 없고, 가붓가붓 나부껴 인간 세상을 버리고 홀로 서서, 날개가 돋치어 신선(神仙)으로 돼 오르는 것 같더라.

이에 술을 마시고 흥취가 도도해 뱃전을 두드리며 노래를 하니, 노래에 이르기를 "계수나무 노와 목란(木蘭) 상앗대로 속이 훤히 들이비치는 물을 쳐 흐르는 달빛을 거슬러 오르도다. 아득한 내 생각이여, 미인(美人)을 하늘 한 가에 바라보도다." 손 중에 퉁소를 부는 이 있어 노래를 따라 화답(和答)하니, 그 소리가 슬프고도 슬퍼 원망하는 듯 사모하는 듯, 우는 듯 하소하는 듯, 여음(餘音)이 가늘게 실같이 이어져 그윽한 골짜기의 물에 잠긴 교룡(蛟龍)을 춤추이고 외로운 배의 홀어미를 울릴레라.

소자(蘇子)가 근심스레 옷깃을 바루고 곧추앉아 손에게 묻기를 "어찌 그러한가?" 하니, 손이 말하기를 "'달은 밝고 별은 성긴데, 까막까치가 남쪽으로 난다.'는 것은 조맹덕(曹孟德)의 시가 아닌가? 서쪽으로 하구(夏口)를 바라보고 동쪽으로 무창(武昌)을 바라보니 산천(山川)이 서로 얽혀 빽빽이 푸른데, 예는 맹덕이 주랑(周郞)에게 곤욕(困辱)을 받은 데가 아니던가? 바야흐로 형주(荊州)를 깨뜨리고 강릉(江陵)으로 내려갈 제, 흐름을 따라 동으로 감에 배는 천 리에 이어지고 깃발은 하늘을 가렸어라. 술을 걸러 강물을 굽어보며 창을 비끼고 시를 읊으니 진실로 일세(一世)의 영웅(英雄)이러니 지금 어디에 있는가? 하물며 나는 그대와 강가에서 고기 잡고 나무하며, 물고기와 새우를 짝하고 고라니와 사슴을 벗함에랴. 한 잎의 좁은 배를 타고서 술을 들어 서로 권하며, 하루살이 삶을 천지(天地)에 부치니 아득한 넓은 바다의 한 알갱이 좁쌀알이로다. 우리 인생의 짧음을 슬퍼하고 긴 강(江)의 끝없음을 부럽게 여기노라. 날으는 신선을 끼고 즐겁게 노닐며, 밝은 달을 안고서 길이 마치는 것은 갑자기 얻지 못할 줄 알새, 끼치는 소리를 슬픈 바람에 부치노라."

소자 말하되 "손도 저 물과 달을 아는가 ? 가는 것은 이와 같으되 일찍이 가지 않았으며, 차고 비는 것이 저와 같으되 마침내 줄고 늚이 없으니, 변하는 데서 보면 천지(天地)도 한 순간일 수밖에 없으며, 변하지 않는 데서 보면 사물과 내가 다 다함이 없으니 또 무엇을 부러워하리요? 또, 천지 사이에 사물에는 제각기 주인이 있어, 나의 소유가 아니면 한 터럭이라도 가지지 말 것이나, 강 위의 맑은 바람과 산간(山間)의 밝은 달은 귀로 들으면 소리가 되고 눈에 뜨이면 빛을 이루어서, 가져도 금할 이 없고 써도 다함이 없으니, 조물주(造物主)의 다함이 없는 갈무리로 나와 그대가 함께 누릴 바로다."

손이 기뻐하며 웃고, 잔을 씻어 다시 술을 드니 안주가 다하고 잔과 쟁반이 어지럽더라. 배 안에서 서로 팔을 베고 누워 동녘 하늘이 밝아 오는 줄도 몰랐어라.

시어 풀이

  임술(壬戌) : 송나라 신종(神宗) 원풍(元豊) 5년(1082년). 소동파의 나이 47세

  기망(旣望) : 16일 밤

  손[客] : 소동파의 고향으로부터 온 도가(道家)의 무리인 양세창(楊世昌)

  교룡(蛟龍) : 뱀과 같고 넓적한 네 발이 있다는 상상의 동물

  바루고 : 바르게 하고

  곧추 : 굽히거나 구부러지지 않고. 곧게

  성긴데 : 공간적으로 사이가 뜨다

  조맹덕(曹孟德 154-220) : 중국 삼국 시대 위(魏)나라의 왕

  하구(夏口) : 호북성(湖北城)의 강하현(江夏懸) 서쪽의 지명

  무창(武昌) : 호북성(湖北城) 악주부(鄂州府)

  주랑(周郞) : 중국 삼국 시대 오(吳)나라의 장수. 이름은 주유(周瑜)

  형주(荊州) : 호북(湖北)과 호남(湖南)의 중간쯤에 위치한 지명

  가는 것 : 여기서는 '흘러가는 물'을 뜻함

  차고 비는 것 : 여기서는 '차고 기우는 달'을 뜻함

  한 터럭 : 털 한 개. 극히 적은 분량을 비유해서 나타내는 말

  다함이 없는 갈무리 : 원문은 '무진장(無盡藏)'이니, 원래 '유마경(維摩經)'에서 나온 말로 '다함이 없는 창고(倉庫)'란 뜻이다.

  어지럽더라 : 마구 흩어져 뒤섞여 있었다.

  명월(明月)의 시를 외고 요조(窈窕)의 장(章)을 노래하더니, : '명월의 시'란 '시경(詩經)'의 '진풍(陣風) 월출편(月出篇)'에 나오는 "달이 떠 환하게 비치니 아름다운 임의 얼굴 떠오르네. 아리따운 그대여, 마음의 시름 어이하리."라는 시 구절을 가리킨다. 여기서는 '낭만적인 정취를 흠뻑 맛보며 풍류의 즐거움을 노래로 불렀다.'는 뜻이다.

  인간 세상을 버리고 홀로 서서, - 오르는 것 같더라. : 번잡한 세상사를 잊고, 무엇에도 지배됨이 없는 절대 자유의 경지를 맛보았다.

  계수나무 노와 목란(木蘭) 상앗대 : '초사(楚辭)'에 나오는 말로. '초사'에는 '계수나무 노와 목란 돛대'라는 표현이 나온다. 이처럼 예전에 쓰인 훌륭한 표현을 따다가 쓰는 것을 잘 된 표현의 이상으로 삼은 것에서 고문(古文) 숭상의 문화적 전통을 엿볼 수 있다.

  미인(美人)을 하늘 한 가에 바라보도다. : '미인'은 내 마음에 드는 좋은 사람, 또는 달을 가리키는 말로 해석하기도 한다. '미인'이란 말은 오늘날 아름다운 여인을 가리키는 말로 널리 쓰이지만, 옛날에는 마음에 그리는 사람, 사랑하는 사람 등을 뜻하는 말로 쓰였다.

  그 소리가 슬프고도 슬퍼 원망하는 듯 사모하는 듯, 우는 듯 하소하는 듯 : 퉁소 소리가 그만큼 뛰어났다는 것인데, 여기서 느껴지는 서글픈 느낌은 동파에게 그 이유를 묻게 하는 계기가 된다. 즉, 작품을 발전적으로 전개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조맹덕(曹孟德)의 시 : 조맹덕(趙孟德)은 조조(曹操). 조조는 그의 시 '단가행(短歌行)'에서 "달은 밝고 별은 성긴데, 까막까치가 남쪽으로 난다.[月明星稀(월명성희), 烏鵲南飛(오작남비)]"라고 하였는데, 달은 밝고 별은 성기다는 시구는 달이 밝으면 별빛이 희미하듯이 조조 자신의 위력에 군웅(群雄)이 그림자를 감추었다는 의미이며 까치가 남쪽으로 난다는 시구의 뒤에는 본디 "나무를 세 번 돌아도 의지할 가지가 없다.[繞樹三 (요수삼잡), 無枝可依(무지가의)]"라는 말이 이어져 있는데, 이는 유비(劉備) 등이 그처럼 몸을 붙일 데도 없이 남쪽으로 패주(敗走)하였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처럼 인용된 조조의 시는 자연스럽게 그 다음에 이어지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생각으로 발전하게 만든다.

  맹덕이 주랑(周郞)에게 곤욕(困辱)을 받은 데가 아니던가? : 이 곳은 조조가 손권의 장수인 주유에게 패전의 쓰라림을 겪은 적벽이 아닌가? '적벽'이라는 이름을 통해 자연스럽게 영웅 조조를 연상하고, 그런 표현임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조조를 영웅으로 인식하는 데 초점을 맞추어야지, 적벽 대전에서 패주했다는 사실에 의미 부여를 해서는 안 된다.

  끼치는 소리를 슬픈 바람에 부치노라. : 이 슬픔을 퉁소의 여운에 실어 스산히 부는 가을 바람에 붙이는 것이다. 가슴에 사무치는 허무의 감정을 퉁소에 담아 부노라니 슬픈 가락으로 울리게 되었다는 뜻이다.

  가는 것은 이와 같으되 - 저와 같으되 마침내 줄고 늚이 없으니, : 물은 주야의 구별이 없이 이 장강(長江)처럼 흘러서 가나 아직까지 흘러가 버린 적 없이 언제나 변함 없이 흐르며, 차고 기울고 하는 달은 저같이 변화하는 것이지만 달의 본체는 완전히 소멸해 버리거나 끝없이 자라지 않고 언제나 일정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으니,

  변하지 않는 데서 사물과 내가 다 다함이 없으니 : 변한다는 현상의 입장에서 본다면 천지도 하나의 현상이니 일순간도 그대로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다는 입장에서 만물의 본체를 따져 보면 사물과 내가 다 무한한 생명에 뿌리박고 있는 것이다. 나를 자연과 분리하지 않고 자연에 동화시키면, 나 또한 자연의 속성대로 영원한 존재일 것이니, 더 이상 삶의 무상감에 슬퍼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자연에 몰입하여 마음껏 풍류를 즐겨 보자는 제안의 첫 번째 근거에 해당된다.

  가져도 금할 이 없고 써도 다함이 없으니, : 자연에 몰입하여 마음껏 풍류를 즐겨 보자는 제안의 두 번째 근거에 해당된다. 일찍이 김천택의 시조를 통해 옛사람들의 풍류의 정서를 감상해 보자. "강산(江山) 좋은 경(景) 힘센 이 다툴 양이면, / 내 힘과 내 분으로 어이하여 얻을쏜이. / 진실로 금(禁)할 이 없을새 나도 두고 노니노라."

  손이 기뻐하며 웃고, 잔을 씻어 다시 술을 드니 : 나의 설명을 듣고 나서 마음 속에 일던 허무의 감정이 사그러지며, 무상감에서 벗어나 다시 풍류를 즐기게 되었다는 말이다.

  배 안에서 서로 팔을 베고 누워 동녘 하늘이 밝아 오는 줄도 몰랐어라. :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이 혼연일체(渾然一體)가 되어, 세상사 하찮은 일에 얽매이지 않고 무한한 자유를 마음껏 누리고 있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다.

소동파(蘇東坡); 1036. 12. 19~1101. 7. 28.

중국 북송시대의 시인․산문작가․예술가․정치가로 본명은 소식(蘇軾), 자는 자첨(子瞻). 동파는 그의 호로 동파거사(東坡居士)에서 따온 별칭이다. 아버지 소순(蘇洵), 동생 소철(蘇轍)과 함께 '3소'(三蘇)라고 일컬어지며, 이들은 모두 당송8대가(唐宋八大家)에 속한다(→ : 소순, 소철).

소동파는 북송 인종(仁宗) 때 메이산[眉山:지금의 쓰촨 성(四川省)에 있음]에서 태어났다. 8세 때부터 메이산의 도인(道人)이라 불리던 장역간(張易簡)의 문하에서 공부를 시작했는데, 그 영향을 받아 도가(道家), 특히 장자(莊子)의 제물철학(齊物哲學)을 접하게 되었다. 1056년 그의 아버지 소순은 두 형제를 데리고 상경하여 이들의 시를 구양수(歐陽修)에게 보여주고 격찬을 받았다. 이들 형제는 그해 가을 진사(進士)가 되었고 이듬해 예부(禮部)에서 주관하는 시험에 나란히 급제했지만 모친상을 당하여 고향으로 돌아갔다. 1060년 복상(服喪)을 마치고 수도인 카이펑[開封]으로 돌아온 소동파는 관리임용 특별시험인 제과(制科)에 동생과 함께 급제했다. 이어 봉상부(鳳翔府:지금의 산시 성[陝西省]에 있음)의 첨서판관(簽書判官)이 되어 수도에 남게 된 동생과 헤어져 임지로 떠났다. 봉상부는 서주(西周) 이래의 여러 문화유적이 남아 있는 곳이다. 그는 공자묘의 석고(石鼓:고대문자를 새긴 10개의 북 모양의 돌)와 카이위안 사[開元寺] 동탑(東塔)에 남아 있는 당대 왕유(王維)․오도현(吳道玄)의 불화(佛畵) 등을 접한 감회를 〈봉상팔관 鳳翔八觀〉에서 읊었다. 봉상부에서의 임기가 끝나 상경한 1065년에 부인 왕씨(王氏)와 사별하고 그녀의 생전 모습을 〈망처왕씨묘지명 亡妻王氏墓地銘〉에 담았다.

이듬해 아버지 소순마저 죽자 아버지의 관을 가지고 고향으로 돌아가 상을 치렀다. 탈상(脫喪)하고 상경한 1068년은 신종(神宗)이 즉위한 해로, 참지정사(參知政事:부재상) 왕안석(王安石)을 중심으로 한 개혁파가 중앙정부의 물자조달을 합리화하기 위한 균륜법(均輪法), 농촌에 저리자금을 융통하여 빈농을 보호하려는 청묘법(靑苗法) 등 이른바 신법(新法)을 시행하던 시기였다. 신법에 대해서 비판적이었던 소동파는 감관고원(監官告院)이라는 지극히 사무적인 업무를 담당하다가 지방 근무를 청하여 저장 성[浙江省] 항저우[杭州]에서 근무했고, 이어 밀주(密州:지금의 산둥 성[山東省]에 있음)․쉬저우[徐州]․후저우[湖州] 등지의 지방관을 역임했다. 또한 그는 신법으로 인해 고생하는 농민들의 생활상을 시로써 묘사하고는 했다. 후저우 지사(知事)로 있던 1079년 조정의 정치를 비방하는 내용의 시를 썼다는 죄목으로 어사대(御史臺)에 체포되어 수도로 호송되었다. 이때 어사들의 심문과 소동파의 변명을 담은 기록이 〈오대시안 烏臺詩案〉에 남겨져 지금까지 전해오고 있다. 다행히 사형을 면한 그는 100일간의 옥살이를 마치고 황주(黃州:지금의 후베이 성[湖北省] 황강 현[黃岡縣]) 단련부사(團練副使)로 좌천되었다. 정치에는 일체 관여하지 않고 황주에 거주할 의무가 지워진 일종의 유형(流刑)이었다. 황주에서의 생활은 매우 비참했다. 부인은 양잠을 했고, 그는 본래 병영이었던 땅을 빌려 농사를 지었다. 이 땅을 동파(동쪽 언덕)라 이름짓고 스스로를 동파거사라고 칭했는데, 그의 호는 여기서 유래한다. 그 유명한 〈적벽부 赤壁賦〉가 지어진 것도 이곳에서였다.

1085년 신종이 죽고 철종(哲宗)이 즉위하자 신종의 어머니이며 철종의 할머니인 선인태황후(宣仁太皇后)가 섭정을 시작했다. 그녀는 뤄양[洛陽]에 운둔해 있던 사마광(司馬光)을 불러들여 왕안석 일파가 만든 신법들을 폐지했다. 이때 소동파도 다시 발탁되어 예부랑중(禮部郞中)을 시작으로 중서사인(中書舍人)․한림학사지제고(翰林學士知制誥) 등의 요직에 올랐다. 그러나 사마광의 신법 폐지가 모역법(募役法)의 폐지에 이르는 등 과격해지자, 소동파는 중서사인이 되어 수도로 올라온 동생과 함께 그에 대한 반론을 제기하기도 했다. 사마광이 죽고난 후 당쟁이 시작되었고, 선인황태후마저 사망하자 철종의 친정(親政)이 시작되었다. 철종은 신법들을 다시 부활시켰으며, 소동파는 다시 좌천되어 혜주사마(惠州司馬)로 임명되었다. 그에 대한 탄압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그를 질시하는 정치인들로 인해 하이난 섬[海南島]으로 유배되어 그곳에 주로 거주하던 리족[黎族]과 함께 비참한 생활을 했다. 철종의 죽음으로 휘종(徽宗)이 즉위하면서 제거옥국관(提擧玉局觀)이라는 명예직에 봉해져 상경하던 도중, 큰 병을 얻어 창저우[常州]에서 66세의 생을 마감했다.

소동파는 구양수․ 매요신(梅堯臣) 등에 의해서 기틀이 마련된 송시(宋詩)를 더욱 발전시켰다. 구양수․매요신 이전의 시가 대개 비애(悲哀)를 주제로 해왔던 데 비해서 이 두 사람은 평안하고 고요한 심정을 주로 읊었고, 소동파는 이에서 벗어나 훨씬 적극적․자각적인 관점을 취했다. 즉 인생체험에 대한 시각의 전환을 생활의 지혜로 삼아 인간 불행의 내면에서 자신만이 인식할 수 있는 행복을 추구했던 것이다. 그가 이처럼 비애의 지양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장자의 제물철학, 불교의 묘리(妙理) 등의 사상적 배경 때문이었으며 〈적벽부〉에는 이같은 그의 사상이 잘 표현되어 있다. 그의 시는 자유분방한 심정과 재능의 표현을 통해 경쾌한 리듬 속에 절묘한 비유와 유머를 담고 있다. 제재에 있어서도 특별히 구애받지 않아 이전까지 다른 사람들이 취하지 않았던 것, 간과되어왔던 것들도 시로 썼다. 그의 시는 모든 사람에 대한 폭넓은 애정을 기저에 깔고 있으며, 인간의 욕망을 긍정했고 인간의 선의(善意)를 신봉했다. 그는 사(詞)에서도 기존의 완약(婉約) 대신에 호방한 사풍을 창시했다. '적벽회고'(赤壁懷古)라는 부제가 붙은 〈염노교 念奴嬌〉․〈수룡음 水龍吟〉 등은 영물시(詠物詩)의 극치라 일컬어진다. 한편 산문에서는 당송8대가 중 소씨 부자, 즉 3소가 포함되었다. 동파의 산문은 송대의 다른 작가들의 작품에 비해 이색적이다. 그의 작품이 지닌 가장 큰 특징은 그 무엇에도 구속받지 않는 자유분방함이다. 동파는 작가의 마음이 자연스럽게 묻어나와야만 훌륭한 문장이 된다는 청년기의 생각을 평생토록 일관했다. 〈조주한문공묘비 潮州韓文公廟碑〉 등의 비문, 〈유후론 留侯論〉․〈범증론 范增論〉 등의 사론(史論)을 비롯해 많은 산문을 남겨 지금까지도 널리 읽혀지고 있다.

소동파는 서예에도 뛰어났다. 그의 글씨는 동진(東晋)의 왕희지(王羲之)․왕헌지(王獻之) 부자의 정통적인 서법과 당대 안진경(顔眞卿) 일파의 혁신적 서법을 겸비하고 있는데, 그 자신은 글씨 자체보다도 살아 있는 정신과 기백의 표현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겼다. 그는 〈제발 題跋〉이라는 평론에서 해서(楷書)가 모든 서체의 기본이며 서예는 사람 됨됨이의 표현이라는 생각을 일관되게 주장했다. 그의 글씨로는 유배지 황주에서 쓴 〈한식시권 寒食詩卷〉, 예부상서 시절에 쓴 〈이태백선시권 李太白選詩卷〉 등이 원본으로 남아 있다. 항저우에서 쓴 〈진규각비 宸奎閣碑〉와 같이 탁본이 남아 있는 경우도 있으나, 모두 신품(神品)이라 일컬어진다. 그의 필적을 모은 〈서루첩 西樓帖〉도 전해진다. 한편 그의 죽화(竹畵)는 문동(文同)에게서 배운 것이라고 스스로 밝혔다. 동파는 그림을 그리는 데 기교를 쓰지 않았으며, 친구들은 그러한 그의 그림에 한 점의 세속성도 보이지 않는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왕유의 그림에 대해 "시 속에 그림 있고 그림 속에 시 있네"라는 말을 남겼는데, 이는 이후 중국 화론사에 면면이 이어지고 있다. 이같은 예술 사상과 기교에 대한 무관심은 문인화(文人畵)를 크게 부흥시키는 힘이 되었다. 다른 문인들과는 달리 동파의 시문집은 생전에 이미 간행되어 재판의 물증으로 제출될 정도였다. 〈동파집 東坡集〉 40권과 〈동파후집 東坡後集〉 20권은 남송 데의 판본이 여러 종류 남아 있다. 이 두 책에 〈주의 奏議〉․〈내제집 內制集〉․〈외제집 外制集〉․〈응소집 應詔集〉․〈속집 續集〉을 합친 〈동파칠집 東坡七集〉은 100권이 넘으며, 〈동파전집 東坡全集〉이라 불리기도 한다. (출처 : 브리태니커백과사전)

  '적벽부'와 노장 사상; 유가와 대척되는 것이 노장 사상으로, 노자와 장자의 사상이 근본을 이룬다.

노자의 사상은 허무를 주체로 한 무위자연설로서, 그 학도들은 유교의 인의예지를 물리치고 모든 인위적 기교와

지혜를 배척하여 자연 무위의 도로 귀의 할 것을 주장했다.

 

노자의 사상은 유교와 더불어 중국의 2대사상이 되었다. 노장 사상의 중국 시인에는 이백과 두보가 있다.

이백의 시는 선경의 세계와 이상향을 읊었다. 두보의 시는 우수와 비장미의 극치를 보여 준다.

소식의 '적벽부'에는 노장 사상이 많이 깃들어 있다.
 노장 사상

 

           月夜與客飮酒杏花下 월야여객음주행화하
                                              蘇 東 坡
 

 杏花飛簾散餘春    행화비렴산여춘
살구꽃이 발 안에 날아드니 남은 봄 흩어지고
 明月入戶尋幽人    명월입호심유인
밝은 달 깊은 곳에 고요히 사는 사람 찾아오네!
 ?衣步月踏花影      ?의보월답화영
옷 자락 걷고 달 빛 아래 꽃 그림자 밟으니
 炯如流水涵靑?      형여유수함청?
환하기가 흐르는 물에 개구리밥을 적시는 듯!
 花間置酒淸香發     화간치주청향발
꽃나무 사이 술자리를 펴니 맑은 향기 피어나고
 爭挽長條落香雪     쟁만장조락향설
다투어 긴 가지 끌어당기니 향기로운 꽃잎 눈처럼 떨어지네!
 山城薄酒不堪飮     산성박주부감음
산성의 술은 묽어 마실 만한 것이 못되니
 勸君且吸杯中月     권군차흡배중월
그대여! 술 잔 속의 달빛을 드시게나!
 洞簫聲斷月明中     통소성단월명중
퉁소 소리 끊어지고 달빛만 밝은데
 惟憂月落酒盃空     유우월락주배공
오직 달 지고 술잔 빌까 그 것이 걱정이네!
 明朝卷地春風惡     명조권지춘풍악
내일 아침 봄 바람이 거세게 불면
 但見綠葉栖殘紅     단견록엽서잔홍
지다 남은 꽃 사이에 푸른 잎을 바라볼 뿐!


달밤에 손님과 함께 살구꽃 아래 술을 마시며
 
살구꽃 휘장에 날아들어 봄날 흩어지는 밤
밝은 달 창문으로 들어와 은둔자를 찾누나
옷자락 올리고 달 아래 꽃 그림자 밟으니
반짝반짝 시냇물에 부평초 넘실댄다
꽃 아래서 술 따르니 맑은 향 퍼지는데
어찌 긴 가지 잡아당겨
향설 꽃잎 잔 속에 떨구랴
산마을 멀건 술이 떨떠름하긴 해도
그대여 잔에 뜬 달까지 다 마시게나
퉁소 소리 끊기고 달만 휘영청한데
오직 걱정은 달 지고 술잔 비는 일
내일 아침 강한 봄바람이 몰아지면
푸른 잎 사이에 붉은 꽃 몇 점만
붙어 있는 걸 보게 되리

 

 

       題西林寺壁 제서림사벽 蘇軾 소식
        서림사 벽에 붙여


橫看成嶺側成峰 횡간성령측성봉 
옆에서 보니 고개인데 다른 쪽에서 보니 봉우리이네
(옆으로 보니  고갯마루요, 또 곁으로 보아도 봉우리로다)
遠近高低各不同 원근고저각불동
멀리서 보고 가까이 보아도 산은 그때마다 똑같지 않네
(멀고 가깝고, 높고  낮음이 저마다 같지 않구나)
不識廬山眞面目 불식여산진면목 
여산의 진면목(眞面目)을 알 수 없으니
(여산의 참 모습 알기 어려우니)
只緣身在此山中 지연신재차산중
단지 이 몸이 산 속에 있을 뿐이네
(이는 나만 내 몸이 이 산중에  묻혀 있음이로다)
바로 이 시의 "진면목"이란 표현이 명구가 되어 오늘날까지도 일상화된 문구로 사용되는 것이다.

 

깨달은 소동파(蘇東坡)의 일화


  법문(法門)
여산 땅 아침 비와 절강의 조수 물결
와 보지 않았을 땐 천가지 한이었지
와 보니 원래부터 별일도 아닌 것을
여산 땅 아침 비와 절강의 조수더라.

여산조우 절강조(廬山朝雨 浙江潮)
미도천반 한말초(未到千般 恨未消)
도료원래 무별사(到了元來 無別事)
여산조우 절강조(廬山朝雨 浙江潮)
(消, 潮가 韻)

소식(蘇軾, 1036-1101, 66세)은 북송 때의 거사이다. 자는 자담(子膽), 호는 동파(東坡) 거사이다. 박학다식하며 문재(文才)가 뛰어났다.
관직에 있을 때에는 왕안석과 맞지 않아 귀양살이를 하기도 하다.
집안이 불자가정이다. 관직을 잃고 귀양지에서 지낼 때였다. 아미타불 염불을 일념으로 하여 삼매 경지에 올랐다. 항상 <나는 전생에 중이었다>고 말하였다. 이 뜻을 받들어 임종시에는 스님 장례에 의거하여 장례를 치뤘다. 동생은 소철(蘇轍)이다.

① 저울
북송 때에 옥천사(玉泉寺)에서 승호(承皓) 선사를 친견한 소동파가 크게 당한 일화이다.
소동파는 평소에 자만심에 차있었다. 성 씨를 물으면,
"칭(秤, 저울) 가입니다."
하였다. 저울을 뜻하는데 모두를 무거운지 가벼운지 저울질한다는 말이다. 이날도 승호 선사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칭(秤) 가라고 하였다.
승호 선사는 틈을 주지 않고,
"할!"
하고 벽력같은 소리를 내지르고는,
"이 할이 몇 근이고?"
하고 물었다.
이때 임자를 만난 듯 소동파는 겸손한 자세로 돌아갔다.
소동파는 승호 선사의 기세에 눌려서 한마디 말도 못하고 무릎을 꿇었다.

② 옥대 보시
북송 때에 노산(鷺山) 귀종사(歸終寺)에서 불인 요원(佛印 了元) 선사를 친견하였을 때였다.
소동파는 평소 법담을 좋아한 편이었다. 이날도 상대를 잘못 골라 법담을 하였다.
"화상의 사대(四大, 곧 육신)를 빌어 의자(倚子)로 삼고자 합니다."
하고 불인 선사를 넌지시 어린 아이 취급하듯이 말하였다.
불인 선사가 웃으면서 대답하였다.
"사대(四大,육신)는 원래 공(空)한데 무엇을 가지고 의자로 삼겠느냐?"
소동파가 선사의 법문에 크게 감동하고 답례로 보배인 옥대(玉帶)를 바쳤다.
불인 선사가 다시 일러 주었다.
"일체 사량분별을 쉬거라, 다 쉬거라."

③ 무정설법
북송 때에 노산(鷺山) 흥룡사(興龍寺)에서 상총(常聰) 선사를 친견할 때였다. 소동파가 법문을 청하자 상총 선사가 말하였다.
"무정설법(無情 說法)을 듣거라."
하고 일러 주었다.
소동파는 그날 밤 절에서 깨달음을 이루고 오도송(悟道頌)을 읊었다.

시냇물 소리는 장광설 법문인데
산색이 어찌 청정법신이 아닐까?
밤새 읊는 8만4천 오도송을
다른 날 무슨 수로써 이웃에게 전할까?

계성변시 장광설(溪聲便是 長廣舌)
산색기비 청정신(山色豈非 淸淨身)
야래팔만 사천게(夜來八萬 四千偈)
타일여하 여사인(他日如何 與似人)
(身, 人이 韻)
【廬】오두막집 려 【浙】물이름 절 【潮】조수 조 【般】종류 반
【蘇】깨어날 소 【軾】수레 목 식 【轍】바퀴자국 철【皓】희게 빛날 호
 

 

 소동파 삼부자

 중국 문장가로 유명한 당송팔대가 중의 하나인 소동파 일가에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이다.
 소동파 선생의 아들은 우리말 표현으로 하자면 좀 멍청했고
 그 아들 그리니까 손자는 매우 똑똑했다고  하는데, 하루는
  소동파 선생이 아들과 손자에게 각 제목을 정해서 문장을
  지으라고 숙제를 내어주니,  손자는 어린 나이임에도 명문장을
  지었지만 아들은 전혀 되지도 않는  글로 이해조차 하기 힘들게
  지어와서 내 밀었다.  소 선생이 하도 기가 막히어 아들에게,
 "우리 소씨 가문에 너같은 멍청한 위인이 태어날 줄이야.
  쯧쯧...." 하니 아들은
 "그래도 아버님, 제가 아버님보다도 낫고 제 아들녀석보다도 
 더 나은 점이 있습니다."라고 하지 않는가?
 그래서 소선생은 "어째서 그렇다는거냐?"하니
 아들은
 "저의 아들이 아버님 아들보다 더 똑똑하니 제가 아버님보다 낫
 지요, 제 아버님이 저의 아들의 아비보다 더 훌륭하니 이 또한
 제가 저의 아들 보다 낫지 않습니까?"........
 그 이후 소 선생은 손자를 훌륭한 그릇으로 만들고자 엄격한 교
 육을 시켰는데, 손자가 과실을 한 번 범하자 체벌을 하는데,
 혹독한 추위에 눈밭에서 장시간 꿇어앉아 있게 하자, 보다 못한
 아들이 그 옆에 가서 함께 꿇어 앉으면서 한다는 말이,
 "우리 아버지가 내 아들을 얼게 하니, 나도 아버지의 아들을
 완전히 동태 만들어 버리겠다."고 하였다나.~
 

 

소동파가 조각총 스님께 올린 게송(偈頌) 

谿聲便是廣長舌 (계성변시광장설)
山色豈非淸淨身 (산색기비청정신)
後來八萬四千偈 (후래팔만사천게)
他日如何擧似人 (타일여하거사인)


소동파가 나름대로 한 소식을 했다고
조각총스님께 아뢰자
스님은 아직 멀었다고
인가를 안 해준 게송이다.

 

후일, 대제 정지도와 시랑 정천유가
道行스님이 삼구에서 주석하고 있을 때,
세 분이 대화중에 소동파의 위의 詩가 나오자


道行스님께서 말씀 하시기를,
'소동파는 이미 두발이 진흙 땅에 빠졌다' 하시니
다른 분이 스님께 아뢰기를
그럼, 스님께서는 이 게송을 구제할 수 있습니까? 하니
도행스님은 다음과 같이 처리 해 주신다.

 


谿聲廣長舌 (계성광장설)
山色淸淨身 (산색청정신)
八萬四千偈 (팔만사천게)
明明擧似人 (명명거사인)

 

谿聲이 곧 廣長舌 인데
소동파는 便是 廣長舌이라 했고
山色은 이미 淸淨身인데
소동파는 청정신이 아니지 않은가 하였으며,
후일 팔만사천법을 타인들에게 어떻게 보여 줄것인가? 했는데
이미 팔만사천법은 명명백백 드러나 있음을
도행스님이 소동파의 잘못됨을 바로 잡아준 얘기다.

 

소동파는 송나라때 황정견과 같이 활동한 大문장가다.
소동파 어머니 태몽은 애꾸눈이
보였다고 한다.

참고로 오조사계 스님은 애꾸눈인데
사람들은 오조사계 스님이 소동파로 환생했다고 한다.

 

 
喜雨亭記~~蘇軾(소동파)


“매미가 더럽고 탁한 가운데서 껍질을 벗어 버리고 먼지 밖에 浮遊하는듯 하니, 이른바 문

장으로 희롱한다는 것이다.

o 東坡는 과거에 급제한 초기에 鳳翔府判官(봉상부판관)에 임명되니, 이때 나이 28세였는데

도 필력이 이미 이와 같았다. 이 篇은 凌虛臺記(능허대기)와 함께 모두 鳳翔府에 벼슬할 때

에 지은 것이니, 참으로 천재라 하겠다.

정자를 雨로 이름함은 기쁨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다. 옛날에 기쁜 일이 있으면 그것을 가지

고 물건의 이름을 지었으니, 이는 잊지 않음을 나타내려 해서이다. 周公은 벼를 얻고서는 그

것으로 책의 이름을 지었고, 漢武帝는 寶鼎(보정)을 얻고는 그것으로 年號를 이름하였고, 叔

孫은 敵을 이기고는 그것으로 아들을 이름 하였으니, 그 기쁨의 크고 작음은 같지 않으나

그 잊지 않을 나타냄은 똑 같다.

내가 扶風에 부임한 다음해에 비로소 관사를 수리하여 堂(동헌)의 북쪽에 정자를 만들고 그

남쪽에 못을 파고는 흐르는 물을 끌어 오고 나무를 심어 휴식하는 장소로 삼아섰다. 이해 봄

에 岐산의 남쪽에 보리를 위해 비가 내리니, 그 점괘가 풍년이었다. 그런데 이윽고 한 달이

넘도록 비가 오지 않아 백성들이 막 걱정을 하고 있었는데, 3일이 지난 乙卯日에 비가 왔고

甲子日에 다시 비다 내렸다. 그러나 백성들은 아직도 부족하게 여겼는데, 丁卯日에 큰 비가

내려 3일 동안 비가 그치니, 관리들은 서로 뜰에서 경하하고 상인들은 시장에서 노래를 부르

고, 농부들은 서로 들에서 손뼉을 쳐서 근심하던 자들이 즐거워하고 병든 자들이 기뻐하였는

데, 내 정자가 이때 마침 이루어졌다.

이에 나는 정자 위에서 술잔을 들어 손님들에게 권하며 이렇게 말하였다. “5일 동안 비가

오지 않는 것이 可하겠는가?” “5일 동안 비가 내리지 않으면 보리농사가 안 될 것이다.”

“10일비가 내리지 않는 것이 가하겠는가?” “10일 동안 비가 내리지 않으면 벼농사가 안

될 것이다.” “보리가 없고 벼가 없으면 연사가 거듭 흉년들어 獄訟(옥송)이 크게 일어나

고 도적이 더욱 설할 것이니, 내 二三子(여러분)와 더불어 비록 한가히 놀면서 이 정자에서

즐기려 하나 될 수 있겠는가? 이제 하늘이 이 백성을 버리지 않으시어 처음에 가물다가 비

를 내려 주셔서 나와 여러분으로 하여금 서로 더불어 한가히 놀며 이 정자에서 즐기니, 이

는 모두 비의 은혜이니, 이것을 잊을 수 있겠는가.”

이윽고 이것으로 정자의 이름을 짓고 또 따라서 다음과 같이 노래하였다.

“가령 하늘에서 진주가 쏟아지더라도 추운 자가 저고리로 삼지 못할 것이요. 가령 하늘에

서 玉 이 쏟아지더라도 굶주린 자가 곡식으로 삼을 수 없을 것이니, 한번 비가 내려 3일 동

안 쏟아진 것은 누구의 덕인가? 백성들은 태수라 하였다. 태수는 이를 차지하지 않고는 天子

에게 돌렸다. 天子는 그렇지 않다 하시고는 조물주에게 돌리시니, 조물주도 스스로 공으로

여기지 않고 太 公 (공중)에게 돌리니, 태공은 아득하고 아득하여 명칭 할 수가 없었다. 나

는 이에 이것으로 내 정자를 이름 하노라.” 

 


소동파(蘇東坡) 수행시(修行詩)

素紈不畵意高哉 소환불화의고재
撞着丹靑墮二來 당착단청타이래
無一物中無盡藏 무일물중무진장
有花有月有樓臺 유화유월유누대

흰 비단 그대로 그리지 않음도 뜻이 높더라.
만일 그린다면 붉고 푸른 두 가지에 떨어 지리
한 물건도 없는 그 가운데 다함이 없으니
꽃과 달 금루 옥대도 다 그 속에 있네.

 


소동파가 지방 장관시절, 유명한 고찰을 예고없이 유람하며 승려들과 교분을 가졌는데 어느날 불쑥 한 절을 찾아갔다. 주지스님이 누군지도 모르고 하여 시자승에게 차를 내 오게 하였는데 소동파는 중얼거리듯 글을 읊었다.
선산의 신령스러운 풀 떠가는 구름에 젖어
목욕하고 향기롭게 분단장한 듯하며
밝은 달 떠 올라 옥천자를 비추니
맑은 바람 불어 무림의 봄을 날 것만 같네
환한 모습과 고운 마음씨
분칠로 얼굴을 꾸며서가 아니라네
장난삼아 짧은 시를 썼다고 웃지말기를
예부터 좋은 차는 가인(佳人)과 같다네.
이에 주지스님은 그의 글체와 문장을 보고 이내 소동파임을 알고 다시 시자승에게 경향차(敬香茶) 를 올리게 하였다. 경향차란 "향기로운 차"를 말한다.

 


琴詩/소동파

若言琴上有琴聲
약언금상유금성

放在匣中何不鳴
방재갑중하불명

若言聲在指頭上
약언성재지두상

何不於君指上聽
하불어군지상청

거문고 소리가 있다 하면은
갑 속에 두었을 젠 왜 안 울리나
그 소리 손가락 끝에 있다 하면은
그대 손끝에선 왜 안 들리나.


거문고 소리는 어디서 나는가.
고문고에 손가락이 닿아 소리로 울리는
이 미묘한 이치를 아는가?
소리는 그렇다면 어디에 숨어 있었더란 말인가?
깨달음은 어디에 있는가? ^^:

 


소동파의 후회

북송 시대 정치가이고
당송 팔대가의 한 사람으로 알려진 대시인
소동파(1036~1101)가 젊었을 때의 일이다.

어느 날 소동파가 역시 정치가이자 당송 팔대가인
형국공 왕안석(1021~1086)의 집에 인사차 찾아갔다.

마침 왕안석은 출타 중이었고
마루에 그가 쓴 듯한
미완성의 시 한 수가 보였다.

간밤에 서풍이 불더니 / 뒤뜰의 국화꽃이 떨어져 /
황금이 땅에 가득 쌓인 듯하다.” 소동파는 고개를 갸웃했다.

국화는 서릿발이 내려도 잎을 떨구는 법이 없는데
서풍이 불었다고 해서 어찌 황금이 땅에 쌓인 듯 꽃잎을
떨굴 수 있을까?

이렇게 생각한 소동파는 이것은 명백한 왕안석의
실수라고 생각하여 감히 시 아래에 다음과 같은 글을
써놓고 자리를 떴다.

가을꽃은 봄꽃과 다르거늘 / 시인께서는 다시 한 번 살피소서”
보통 시인 같았다면 자신의 시에 참견하는 일에 화를 냈을 것이다.

그러나 뒤늦게 이 글을 확인한 왕안석은 오히려 빙그레 웃을 뿐이었다.

그리고는 며칠 후 황제에게
청하여 소동파를 호북성
검주로 발령 보냈다.

영문을 모른 소동파는 왕안석이 자신에게
앙심을 품고 좌천시킨 것이라 생각하며 원망했다.

그러던 어느 날 임지에서
그가 친구와 술을 마시기 위해
국화가 가득한 정원으로 들어섰다.

그 순간 그는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고 탄식을 했다.

친구가 놀라 이유를 물으니 소동파가 감개무량한
표정으로 이렇게 대답했다.

내가 정말 어리석었네.
여태까지 형국공이 나를 미워해서
이 곳에 좌천시킨 줄만 알았는데
이제서야 그 뜻을 알겠네.

과연 자신의 조그만 재주를 믿고
자만하는 사람은 나처럼 낭패를 보고야 만다는 것을.......”

그러면서 소동파는 손가락으로 정원을 가리켰다.

그 곳에는 요 며칠 동안 불어닥친 거센 바람에
국화꽃잎이 모조리 떨어져 땅에는 마치 황금이 가득 쌓인 듯했다.

왕안석의 시와 똑같은 광경이 생겨났던 것이다.

왕안석은 젊은 소동파의 섣부른 식견을
직접 눈으로 보게 함으로써 고쳐 주려 하였던 것이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이 때의 교훈을
소동파는 가슴 깊이 각인시켜 진정한 대가의 길로 들어섰다.

소동파가 누구인가.
천하의 대문장가로 알려진 천재가 아니던가.

그런 그도 자신의 지식이 최고인 줄만 알고
섣부른 충고를 했다가 이렇게 뒤늦게 깨우치고 있으니
평범한 우리로서는 그나마 위안이 된다 하겠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서 정말 알아 두어야 할 사실은
자신이 범한 실수를 뒤늦게라도 깨달았으면
즉시 반성하고 개선하는 일일 것이다.

그러면 끊임없이 발전할 것이고
그러다가 마침내 대가가 되지 말란 법도 없을 것이다

 


소동파(蘇東坡)의 시 한수

찰랑이며 반작이는 호숫물은 맑은 날 보기에 좋고
안개 긴 산색은 비 오는 날 또한 아름다워라.
서호를 옛적 미인 서시에 비긴다면
단장의 짙고 옅음도 또한 그러하리라

 

소동파 - 선시3 

종일토록 봄을 찾아 나섰지만
봄은 보이지 않고
짚신이 다 닳도록
고개 마루의 구름 사이를 다녔네.
집으로 돌아와서
스스로 매화를 잡고 냄새를 맡으니
봄이 가지끝에 있은지 오래 되었네...

 


    소동파 - 선시2 

초가집 짓고 인간 세상에 살지만
수레나 말의 시끄러운 소리는 없네.
그대에게 묻나니 어떻게 그럴수가 있는가?
마음이 멀리 있으면
지역도 외지게 되기 때문일세.
동쪽 울타리 아래서 국화를 꺽고
유유히 고개를 드니 남산이 보이네.
산 기운은 해지는 저녁에 아름답고
날아다니던 새들도 함께 둥지 로 돌아오네.
이 가운데 진실한 뜻이 있겠지만
막상 밝히려 하니 이미 말을 잊었네
 

 


蜀僧明操思歸書龍丘子壁 촉승명조사귀서용구자벽

久厭勞生能幾日,   구염노생능기일
莫將歸思擾衰年.   막장귀사요쇠년
片雲會得無心否   편운회득무심부
南北東西只一天.   남북동서지일천
오랜 시간 괴롭고 힘든 삶이 며칠이나 남았으리,
고향 생각에 늙어 가는 해를 어지럽히지 말아라.
한 조각구름 무심을 깨달아 얻었지 않았겠는가?
남북동서가 다만 한 하늘에 있으니 뭔 걱정인가.
(47세 작)


和王晉卿 화왕진경

吾生如寄耳,   오생여기이
何者爲禍福.   하자위화복
不如兩相忘,   불여양상망
昨夢那可逐.   작몽나가축
나의 인생은 잠시 기탁한 것일 뿐,
무엇이 화가 되고 복이 되겠는가!
둘 모두를 잊어버림이 좋지 않은가,
어젯밤 꿈을 어찌 좇기만 하는가?

 


更厭勞生能幾日(경염노생능기일)이니
莫將歸思搖衰年(막장귀사요쇠년)이지
片雲會得無心否(편운회득무심부)인가
南北東西只一天(남북동서지일천)이지

 

고단한 삶 싫다한들 며칠이나 남았으랴
고향에 돌아갈 생각으로 늘그막에 흔들리지 마시게
한조각 구름이야말로 무심을 깨닫지 않았겠는가
동이든 서든 남이든 북이든 다 하나의  하늘 아래가 아니던가

* 搖의 본 글자는 손 수(手) 변에 憂를 쓴 글자인데 컴퓨터에서 이 글자가 지원이 안 되어 비슷한 뜻으로 볼 수 있는 搖를 차용해서 썼습니다.

** 會는 '모인다'는 뜻 말고도 여러 뜻이 있는데, 그 가운데 '깨닫다'의 뜻도 있습니다.

 

    水調歌頭  수조가두
                       소   동   파
明月幾時有     명월기시유     밝은 달은 언제부터 있었을까
把酒問靑天     파주문청천     술잔을 들고 하늘에 물어본다
不知天上宮闕   부지천상궁궐    하늘의 궁전에서도 모를 것이다.
今夕是何年     금석시하년      오늘밤이 어느 해에 속하는가?
我慾乘風歸去   아욕승풍귀거    바람타고 하늘궁궐 돌아가고 싶지만
又恐瓊樓玉宇   우공경루옥루    경루에 선경도 두렵기만하고
高處不勝寒     고처불승한      저 높은 곳 추울까 두려워라.
起舞弄淸影     기무롱청영      일어나 춤추며 그림자와 노나니
何似在人間     하사재인간      인간 세상에 어찌 이런 곳 있으랴!
轉朱閣低綺戶   전주각저기호    붉은누각 돌아 비단 문에 내렸으니
照無眠         조무면          달빛에 잠을 이를 수 없네.
不應有恨       불응유한        달님은 나하고 원한도 없을 터인데
何事長向別時圓 하사장향별시원  어이하여 이별할 땐 둥그러운가?
人有悲歡離合   인유비환이합    사람에겐 기쁨과 슬픔이 있고
月有陰晴圓缺   월유음청원결    달은 밝고 어둡고 둥글고 이지러짐 있으니
此事古難全     차사고난전      이런 일은 자고로 완전하기 어려워
但願人長久     단원인장구      내 다만 바라는 건 오직 오래도록 천리밖에서
天里共嬋娟     천리공선연      저 아름다운 달빛을 함께 보고픈 것이라네
 

 


 

 

 

 

출처 : 산의품 보금자리
글쓴이 : 산의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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