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토완역 서경집전(書經集傳)
▣ 현토완역(懸吐完譯) 서경집전(書經集傳)
『○ 서경집전서(書經集傳序)+1』
『○ 서경 ; 우서(虞書)+2』
『○ 서경 ; 하서(夏書)+88』
『○ 서경 ; 상서(商書)+220』
『○ 서경 ; 주서(周書)+408』
『○ 서경 ; 부록+952』
*서경집전서(書經集傳序)
▣ 서경집전서(書經集傳序)
『慶元己未冬에 先生文公이 令沈으로 作書集傳케하시고 明年에 先生歿하시고 又十年에 始克成編하니 總若干萬言
이라 嗚呼라 書豈易言哉아 二帝三王治天下之大經大法이 皆載此書하니 而淺見薄識이 豈足以盡發蘊奧리오 且生於
數千載之下하여 而欲講明於數千載之前하니 亦已難矣라』
『 경원(慶元)『[남송(南宋) 영종(寧宗)의 연호]』 기미년(己未年)『[1199]』 겨울에 선생 주문공(朱文公)이 나로
하여금 서집전(書集傳)을 짓게 하시고 이듬해에 선생이 별세하였으며, 다시 10년만에 비로소 책이 이루어졌으니,
모두 약간 만자(萬字)이다.』
『 아! 서경(書經)을 어찌 쉽게 말할 수 있겠는가. 이제(二帝)•삼왕(三王)이 천하를 다스린 대경대법(大經大法)이
모두 이 책에 실려 있으니, 식견이 얕은 자가 어찌 깊은 뜻을 다 발명할 수 있겠는가. 더구나 수천 년 뒤에 태어나서
수천 년 전의 것을 강명(講明)하려 하니, 또한 이미 어려운 것이다.』
『然二帝三王之治는 本於道하고 二帝三王之道는 本於心하니 得其心이면 則道與治를 固可得而言矣라 何者오 精一
執中은 堯舜禹相授之心法也요 建中建極은 商湯周武相傳之心法也니 曰德, 曰仁, 曰敬, 曰誠이 言雖殊나 而理則一이니
無非所以明此心之妙也라 至於言天則嚴其心之所自出이요 言民則謹其心之所由施니 禮樂敎化는 心之發也요 典章文物
은 心之著也요 家齊國治而天下平은 心之推也니 心之德이 其盛矣乎인저 二帝, 三王은 存此心者也요 夏桀, 商受는 亡
此心者也요 太甲, 成王은 困而存此心者也니 存則治하고 亡則亂하나니 治亂之分이 顧其心之存不存如何耳라 後世人主
有志於二帝三王之治인댄 不可不求其道요 有志於二帝三王之道인댄 不可不求其心이니 求心之要는 舍是書면 何以哉
리오』
『 그러나 이제(二帝)•삼왕(三王)의 정치는 도(道)에 근본하였고 이제(二帝)•삼왕(三王)의 도는 마음에 근본하였으니,
그 마음을 알면 도(道)와 정치(政治)를 진실로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어째서인가? 정일집중(精一執中)은 요(堯)•순(舜)•
우(禹)가 서로 전수한 심법(心法)이요, 중(中)을 세우고 극(極)을 세움은 상(商)나라 탕왕(湯王)과 주(周)나라 무왕(武
王)이 서로 전수한 심법(心法)이다. 덕(德)과 인(仁)과 경(敬)과 성(誠)이 글자는 비록 다르나 이치는 하나이니,
모두 이 마음의 묘함을 밝힌 것이다. 하늘을 말함에 이르러는 마음의 소자출(所自出)을 엄하게 하였고, 백성을 말함에
이르러는 마음이 말미암아 베풀어짐을 삼가하였으니, 예악(禮樂)과 교화(敎化)는 이 마음에서 나온 것이요,
전장(典章)과 문물(文物)은 이 마음이 드러난 것이요, 집안이 가지런해지고 나라가 다스려져서 천하가 평안해짐은 이
마음이 미루어 확대된 것이니, 마음의 덕(德)이 성대(盛大)하다 할 것이다.』
『 이제(二帝)와 삼왕(三王)은 이 마음을 보존한 자이고, 하(夏)나라 걸왕(桀王)과 상(商)나라 수왕(受王)은 이 마음을
잃은 자이고, 태갑(太甲)과 성왕(成王)은 애써서 이 마음을 보존한 자이니, 보존하면 다스려지고 잃으면 혼란하니,
다스려짐과 혼란함의 구분은 마음을 보존하느냐 보존하지 못하느냐의 여하에 달려있을 뿐이다.
후대의 군주가 이제(二帝)•삼왕(三王)의 정치에 뜻을 두려 한다면 그 도(道)를 찾지 않을 수 없고, 이제(二帝)•삼왕(三
王)의 도(道)에 뜻을 두려 한다면 그 마음을 찾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니, 마음을 찾는 요점은 이 책을 버린다면 무엇으로
하겠는가.』
『沈이 自受讀以來로 沈潛其義하고 參考衆說하여 融會貫通일새 쨷敢折衷호되 微辭奧旨는 多述舊聞이요 二典禹謨는
先生이 蓋嘗是正하사 手澤尙新하니 嗚呼惜哉라 集傳은 本先生所命이라 故凡引用師說을 不復識『(지)』別하노라 四
代之書를 分爲六卷하니 文以時異나 治以道同이라 聖人之心見於書가 猶化工之妙著於物하니 非精深이면 不能識也라
是傳也 於堯舜禹湯文武周公之心에 雖未必能造其微어니와 於堯舜禹湯文武周公之書에 因是訓¢면 亦可得其指意之大
略矣리라』
『嘉定己巳三月旣望에 武夷蔡沈은 序하노라』
『 나는 이 책을 배워 읽은 이래로 그 뜻에 침잠하고 여러 학설들을 참고하여 융회관통(融會貫通)하고서야 이에 감히
절충하되 은미(隱微)한 말과 깊은 뜻은 옛날에 들은 것을 기술함이 많고, 이전(二典)과 대우모(大禹謨)는 선생이
일찍이 시정하시어 손때가 아직도 새로우니, 아! 애석하다.』
『 집전(集傳)은 본래 선생이 명하신 것이므로 인용한 모든 사설(師說)을 다시 별도로 표지(標識)하여 구별하지
않았다. 우(虞)•하(夏)•은(殷)•주(周) 사대(四代)의 글을 나누어 6권(卷)으로 만들었으니, 글은 때에 따라 다르나
정치는 도(道)가 같다.
성인(聖人)의 마음이 책에 나타남은 화공(化工)『[하늘의 조화]』의 묘함이 물건에 드러나는 것과 같으니,
정심(精深)한 자가 아니면 알 수 없다.』
『 이 집전(集傳)은 요(堯)•순(舜)•우(禹)•탕(湯)•문(文)•무(武)•주공(周公)의 마음에 있어서는 비록 그 은미한 경지에
나아가지 못하였으나 요(堯)•순(舜)•우(禹)•탕(湯)•문(文)•무(武)•주공(周公)의 글에 있어서는 이 훈고(訓¢)를 따른다
면 또한 그 뜻의 대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 가정(嘉定) 기사년(己巳年, 1209) 3월 기망(旣望)에 무이(武夷) 채침(蔡沈)은 쓰다』
*서경 ; 우서(虞書)
▣ 우서(虞書)
『虞는 舜氏이니 因以爲有天下之號也니 書凡五篇이라 堯典은 雖紀唐堯之事나 然本虞史所作이라 故曰虞書요 其舜典
以下는 夏史所作이니 當曰夏書라 春秋傳에도 亦多引爲夏書하니 此云虞書는 或以爲孔子所定也라』
『 우(虞)는 순(舜)의 씨(氏)이니, 인하여 천하를 소유한 칭호로 삼았으니, 우서(虞書)는 모두 5편이다. 〈요전(堯典)〉
은 비록 당요(唐堯)의 일을 기록하였으나 본래 우(虞)나라 사관(史官)이 지은 것이므로 우서(虞書)라 하고, 〈순전
(舜典)〉 이하는 하(夏)나라 사관이 지은 것이니 마땅히 하서(夏書)라 하여야 할 것이다. 《춘추전(春秋傳)》에도
하서(夏書)라고 인용한 경우가 많으니, 여기에서 우서(虞書)라 한 것은 혹 공자(孔子)께서 정한 것이라 한다.』
『○ 서경 ; 우서 ; 요전(堯典)+1』
『○ 서경 ; 우서 ; 순전(舜典)+14』
『○ 서경 ; 우서 ; 대우모(大禹謨)+43』
『○ 서경 ; 우서 ; 고요모(皐陶謨)+65』
『○ 서경 ; 우서 ; 익직(益稷)+74』
*서경 ; 우서 ; 요전(堯典)
▣ 요전(堯典)
『堯는 唐帝名이라 說文曰 典은 從冊在틇上하니 尊閣之也라하니라 此篇은 以簡冊載堯之事라 故로 名曰堯典이요
後世에 以其所載之事可爲常法이라 故로 又訓爲常也라 今文古文皆有하니라』
『 요(堯)는 당(唐)나라 황제의 이름이다. 《설문(說文)》에 이르기를 “전(典)은 책이 책상 위에 있음을 따랐으니,
높여서 보관함이다.” 하였다. 이 편은 간책(簡冊)에 요(堯)의 일을 기재하였기 때문에 요전(堯典)이라 이름하였고,
후세에 여기에 기재된 일이 떳떳한 법이 될 만하다 하여 또 떳떳하다고 훈(訓)『[풀이]』하였다.
금문(今文)『[금문상서(今文尙書)]』과 고문(古文)『[고문상서(古文尙書)]』에 모두 있다.』
『○ 서경 ; 우서 ; 요전 ; 제1장+1』
『○ 서경 ; 우서 ; 요전 ; 제2장+2』
『○ 서경 ; 우서 ; 요전 ; 제3장+3』
『○ 서경 ; 우서 ; 요전 ; 제4장+4』
『○ 서경 ; 우서 ; 요전 ; 제5장+5』
『○ 서경 ; 우서 ; 요전 ; 제6장+6』
『○ 서경 ; 우서 ; 요전 ; 제7장+7』
『○ 서경 ; 우서 ; 요전 ; 제8장+8』
『○ 서경 ; 우서 ; 요전 ; 제9장+9』
『○ 서경 ; 우서 ; 요전 ; 제10장+10』
『○ 서경 ; 우서 ; 요전 ; 제11장+11』
『○ 서경 ; 우서 ; 요전 ; 제12장+12』
*서경 ; 우서 ; 요전 ; 제1장
▣ 제1장(第一章)
『曰若稽古帝堯한대 曰放勳이시니 欽明文思安安하시며 允恭克讓하사 光被四表하시며 格于上下하시니라』
『 옛 제요(帝堯)를 상고하건대 방훈(放勳)『[공이 큼]』이시니, 공경하고 밝고 문채롭고 생각함이 편안하고 편안
하시며 진실로 공손하고 능히 겸양하시어 광채가 사표(四表)에 입혀지시며 상하(上下)에 이르셨다.』
『曰은 췺, 越通이라 古文作췺하니 曰若者는 發語辭니 周書越若來三月이 亦此例也라 稽는 考也라 史臣이 將敍堯事
라 故로 先言考古之帝堯者컨대 其德이 如下文所云也라 曰者는 猶言其說如此也라 放은 至也니 猶孟子言放乎四海是
也라 勳은 功也니 言堯之功이 大而無所不至也라 欽은 恭敬也요 明은 通明也니 敬體而明用也라 文은 文章也요 思는
意思也니 文著見而思深遠也라 安安은 無所勉强也니 言其德性之美 皆出於自然이요 而非勉强이니
『所謂性之者주:소위성지자』也라 允은 信이요 克은 能也라 常人은 德非性有하여 物欲害之라 故로 有强爲恭而不實
하고 欲爲讓而不能者로되 惟堯性之라 是以로 信恭而能讓也라 光은 顯이요 被는 及이요 表는 外요 格은 至요 上은
天이요 下는 地也라 言其德之盛如此라 故로 其所及之遠이 如此也라 蓋放勳者는 總言堯之德業也요 欽明文思安安은
本其德性而言也요 允恭克讓은 以其行實而言也요 至於被四表, 格上下하여는 則放勳之所極也라 孔子曰 惟天爲大어
시늘 惟堯則『(칙)』之라하시니 故로 書敍帝王之德이 莫盛於堯요 而其贊堯之德이 莫備於此라 且又首以欽之一字爲
言하니 此書中開卷第一義也라 讀者深味而有得焉이면 則一經之全體 不外是矣리니 其可忽哉아』
『 왈(曰)은 월(췺), 월(越)과 통한다. 고문(古文)에는 월(췺)로 되어 있는바, 왈약(曰若)은 발어사이니, 〈주서(周書)〉
의 ‘월약래삼월(越若來三月)’도 이러한 예(例)이다. 계(稽)는 상고함이다. 사신(史臣)이 장차 요(堯)의 일을 서술하려
하였으므로 먼저 말하기를 “옛 제요(帝堯)를 상고하건대 그 덕(德)이 하문(下文)에 말한 바와 같다.”고 한 것이다.
왈(曰)은 그 말이 이와 같다고 말한 것과 같다. 방(放)은 이름이니, 《맹자(孟子)》에 “사해(四海)에 이른다.”고 말씀한
것이 이것이다. 훈(勳)은 공이니, 제요(帝堯)의 공이 커서 이르지 않은 바가 없음을 말한 것이다. 흠(欽)은 공경함이요
명(明)은 통명(通明)함이니, 경(敬)이 체(體)이고 명(明)이 용(用)이다. 문(文)은 문장(文章)이요 사(思)는 의사(意思)
이니, 문장이 드러나고 생각이 심원한 것이다. 안안(安安)은 힘써서 억지로 하는 바가 없는 것이니, 덕성(德性)의 아름
다움이 다 자연(自然)에서 나오고 힘써서 억지로 함이 아님을 말한 것이니, 이른바 ‘성(性)대로 한 자’라는 것이다.
윤(允)은 진실로요, 극(克)은 능함이다. 상인(常人)은 덕(德)이 성(性)대로 소유한 것이 아니어서 물욕(物慾)이 해치므
로 억지로 공손하여 성실하지 못하고 겸양하고자 하여도 능하지 못한 자가 있다. 오직 제요(帝堯)만은 성(性)대로 하
였다. 이 때문에 진실로 공손하고 능히 겸양한 것이다. 광(光)은 드러남이요, 피(被)는 미침이요, 표(表)는 밖이요,
격(格)은 이름이요, 상(上)은 하늘이요, 하(下)는 땅이니, 그 덕(德)의 성대함이 이와 같으므로 그 미친 바의 먼 것이
이와 같음을 말한 것이다.
방훈(放勳)은 제요(帝堯)의 덕을 총괄하여 말한 것이요, 흠명문사안안(欽明文思安安)은 그 덕성에 근본하여 말한 것
이요, 윤공극양(允恭克讓)은 그 행실을 가지고 말한 것이요, 사표(四表)에 입혀지고 상하(上下)에 이름에 이르러서는
방훈(放勳)의 지극함이다. 공자(孔子)가 말씀하기를 “하늘이 위대하신대 요(堯)가 이를 본받았다.”
하였으니, 그러므로 《서경(書經)》에서 제왕의 덕을 서술한 것이 요(堯)보다 더 성한 이가 없고 요(堯)의 덕을 찬미
함이 이보다 더 구비된 것이 없다. 또 첫번에 한 흠자(欽字)를 말씀하였으니, 이는 책 가운데에 권을 시작하는 첫번째
뜻이다. 읽는 자가 깊이 음미하여 터득하는 것이 있으면 《서경(書經)》 전체가 여기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이니,
소홀히 할 수 있겠는가.』
*서경 ; 우서 ; 요전 ; 제2장
▣ 제2장(第二章)
『克明俊『(峻)』德하사 以親九族하신대 九族이 旣睦이어늘 平章百姓하신대 百姓이 昭明하며 協和萬邦하신대
黎民이 於『(오)』變時雍하니라』
『 능히 큰 덕(德)을 밝혀 구족(九族)을 친하게 하시니 구족(九族)이 이미 화목하거늘 백성을 고루 밝히시니 백성
이 덕을 밝히며 만방(萬邦)을 합하여 고르게 하시니 여민(黎民)들이 아! 변하여 이에 화(和)하였다.』
『明은 明之也요 俊은 大也니 堯之大德은 上文所稱이 是也라 九族은 高祖至玄孫之親이니 擧近以該遠하니 『五服異
姓之親주:오복이성지친』도 亦在其中也라 睦은 親而和也라 平은 均이요 章은 明也라 百姓은 畿內民庶也라 昭明은
皆能自明其德也라 萬邦은 天下諸侯之國也라 黎는 黑也니 民首皆黑이라 故曰黎民이라 於는 歎美辭라 變은 變惡爲善
也라 時는 是요 雍은 和也라 此는 言堯推其德하여 自身而家而國而天下하니 所謂放勳者也라』
『 명(明)은 밝힘이요, 준(俊)은 큼이니, 요(堯)의 큰 덕은 윗글에 말한 것이 이것이다. 구족(九族)은 고조(高祖)로
부터 현손(玄孫)까지의 친족(親族)이다. 가까운 것을 들어 먼 것을 다하였으니, 오복(五服)의 성(姓)이 다른 친척도
이 가운데에 들어있다. 목(睦)은 친하고 화함이다. 평(平)은 고름이요, 장(章)은 밝음이다. 백성은 기내(畿內)의 백성
들이다. 소명(昭明)은 다 스스로 그 덕을 밝히는 것이다. 만방(萬邦)은 천하의 제후국이다. 여(黎)는 검음이니,
백성들의 머리가 다 검으므로 여민(黎民)이라 한 것이다. 어(於)는 감탄하는 말이다.
변(變)은 악(惡)을 변하여 선(善)을 하는 것이다.
시(時)는 이것이요, 옹(雍)은 화함이다. 이는 요(堯)가 그 덕을 미루어 자신으로부터 집에 이르고 나라에 이르고 천하
에 이름을 말하였으니, 이른바 방훈(放勳)『[공이 큼]』이라는 것이다.』
*서경 ; 우서 ; 요전 ; 제3장
▣ 제3장(第三章)
『乃命羲和하사 欽若昊天하여 曆象日月星辰하여 敬授人時하시다』
『 이에 희씨(羲氏)•화씨(和氏)에게 명하여 호천(昊天)을 공경히 따라서 해와 달과 성신(星辰)을 역상(曆象)
『[책력으로 기록하고 관상(觀象)하는 기구로 관찰함]』하여 인시(人時)『[백성의 농사철]』를 공경히 주게 하셨다.』
『乃者는 繼事之辭라 羲氏, 和氏는 主曆象授時之官이라 若은 順也라 昊는 廣大之意라 曆은 所以紀數之書요 象은 所
以觀天之器니 如下篇璣衡之屬이 是也라 日은 陽精이니 一日而繞地一周하고 月은 陰精이니 一月而與日一會라 星은
『二十八宿(수)주:이십팔수』衆星爲經과 金木水火土五星爲緯가 皆是也라 辰은 以日月所會로 分周天之度하여 爲
『十二次주:십이차』也라 人時는 謂耕穫之候니 凡民事早晩之所關也니 其說이 詳見『(현)』下文하니라』
『 내(乃)는 일을 계속하는 말이다. 희씨(羲氏)와 화씨(和氏)는 역상(曆象)으로 농사철을 알려주는 것을 맡은 관원
이다. 약(若)은 순함이다. 호(昊)는 광대하다는 뜻이다. 역(曆)은 수(數)를 기록하는 책이요 상(象)은 하늘을 관찰하는
기구이니, 하편(下篇)의 선기옥형(璿璣玉衡) 따위와 같은 것이 이것이다. 일(日)은 양(陽)의 정(精)이니 하루에 땅을
한 바퀴를 돌고 월(月)은 음(陰)의 정(精)이니 한 달에 한 번 해와 만난다. 성(星)은 경성(經星)인 이십팔수(二十八宿)
와 여러 별 및 위성(緯星)인 금(金)•목(木)•수(水)•화(火)•토(土) 오성(五星)이 모두 이것이다.
신(辰)은 해와 달이 만나는 곳으로 주천(周天)의 도수(度數)를 나누어 12차(次)를 만든 것이다.
인시(人時)는 밭 갈고 수확하는 기후를 이르는바, 모든 민사(民事)『[농사]』의 이르고 늦음이 관계되는 것이니,
그 해설이 하문(下文)에 자세히 보인다.』
*서경 ; 우서 ; 요전 ; 제4장
▣ 제4장(第四章)
『分命羲仲하사 宅췗夷하시니 曰暘谷이니 寅賓出日하여 平秩東作이니 日中이요 星鳥라 以殷仲春이면 厥民은 析
이요 鳥獸는 칕尾니라』
『 희중(羲仲)에게 나누어 명하여 우이(췗夷)에 머물게 하시니, 양곡(暘谷)이라 하는 바, 나오는 해를 공경히 맞이
하여 동작(東作)『[봄에 시작하는 일]』을 평질(平秩)『[고르게 차례함]』하니, 해는 중간이고 별은 조수(鳥宿)이다.
알맞은 중춘(仲春)이 되게 하면 백성들은 흩어져 살고 조수(鳥獸)는 새끼를 낳고 교미한다.』
『此下四節은 言曆旣成而分職以頒布하고 且考驗之하니 恐其推步之或差也라 或曰 上文所命은 蓋羲伯和伯이요 此乃
分命其仲叔이라하니 未詳是否也라 宅은 居也라 췗夷는 卽禹貢췗夷旣略者也라 曰暘谷者는 取日出之義니 羲仲所居官
次之名이니 蓋官在國都나 而測候之所는 則在於췗夷東表之地也라 寅은 敬也요 賓은 禮接之如賓客也니 亦帝줱曆日月
而迎送之意라 出日은 方出之日이니 蓋以春分之旦으로 『朝方出之日주:조방출지일』하여 而識『(지)』其初出之景『(影)』
也라 平은 均이요 秩은 序라 作은 起也니 東作은 春月은 歲功方興하니 所當作起之事也라 蓋以曆之節氣早晩으로 均次
其先後之宜하여 以授有司也라 日中者는 春分之刻이 於夏永冬短에 爲適中也하여 晝夜皆五十刻이니 擧晝以見夜라 故
曰日이라 星鳥는 南方朱鳥七宿니 『唐一行이 推以쳏火爲春分昏之中星주:당일행』也라 殷은 中也니 春分은 陽之中也
라 析은 分散也라 先時冬寒하여 民聚於춛러니 至是則以民之散處而驗其氣之溫也라 乳化曰칕요 交接曰尾니 以物之生
育而驗其氣之和也라』
『 이 아래 4절(節)은 책력이 이미 이루어짐에 직책을 나누어 반포하고 또 이를 상고하고 시험함을 말하였으니,
그 추보(推步)『[천체의 운행을 관측함]』가 혹 착오가 있을까 염려해서이다. 혹자는 말하기를 “윗글에서 명한 것은
희백(羲伯)과 화백(和伯)에게 한 것이고, 여기서는 중(仲)과 숙(叔)에게 나누어 명한 것이다.” 하니,
그 말이 옳은 지는 자세하지 않다.』
『 택(宅)은 거함이다. 우이(췗夷)는 〈우공(禹貢)〉에 “이미 우이(췗夷)가 경략(經略)되었다.”는 것이다.
양곡(暘谷)이라 한 것은 해가 나오는 뜻을 취한 것이니, 희중(羲仲)이 거하는 관차(官次)『[관사]』의 이름이니,
관원은 국도(國都)에 있으나 측후(測候)하는 곳은 우이(췗夷)인 동표(東表)『[동쪽 밖]』의 땅에 있는 것이다.
인(寅)은 공경함이요, 빈(賓)은 예(禮)로 접대하기를 빈객처럼 하는 것이니, 또한 제곡(帝줱)이 해와 달을 책력에
기록하여 맞이하고 전송한 뜻이다.
출일(出日)은 막 솟아나오는 해이니, 춘분(春分)의 아침에 막 나오는 해를 보고서 처음 나오는 그림자를 기록한 것
이다. 평(平)은 고름이요, 질(秩)은 차례이다. 작(作)은 일어남이니, 동작(東作)은 봄철에는 세공(歲功)이 한창 일어
나니, 마땅히 시작해야 할 일이다. 책력의 절기(節氣)가 이르고 늦음으로써 그 선후(先後)의 마땅함을 고르게 차례
하여 유사(有司)에게 준 것이다. 일중(日中)은 춘분(春分)의 시각이 여름에는 해가 길고 겨울에는 해가 짧은데 비해
알맞아서 주야(晝夜)가 모두 50각(刻)이니, 낮을 들어 밤을 나타냈기 때문에 일(日)이라고 한 것이다. 성조(星鳥)는
남방의 주조(朱鳥)『[주작(朱雀)]』 7수(宿)이니, 당(唐)나라의 석일행(釋一行)은 추리하기를 순화(쳏火)를 춘분날
해가 질 무렵의 중성(中星)이라 하였다. 은(殷)은 알맞음이니, 춘분은 양(陽)의 중(中)이다. 석(析)은 나누어 흩어짐
이다. 앞서는 겨울에 추워서 백성들이 아랫목에 모여 있었는데, 이에 이르면 백성들이 흩어져 삶을 가지고 기후가
온화함을 징험하는 것이다. 유화(乳化)『[새끼를 침]』를 자(칕)라 하고 교접(交接)함을 미(尾)라 하니,
물건의 생육(生育)을 가지고 기후가 화함을 징험하는 것이다.』
*서경 ; 우서 ; 요전 ; 제5장
▣ 제5장(第五章)
『申命羲叔하사 宅南交하시니 『[曰明都니]』 平秩南訛하여 敬致니 日永이요 星火라 以正仲夏면 厥民은 因이요
鳥獸는 希『(稀)』革이니라』
『 거듭 희숙(羲叔)에게 명하여 남교(南交)에 머물게 하시니, 명도(明都)라 하는 바,
남와(南訛)『[여름에 변화하는 일]』를 평질(平秩)하여 공경히 맞이하니, 해는 길고 별은 대화(大火)이다.
바른 중하(仲夏)가 되게 하면 백성들은 그대로 흩어져 살고 조수(鳥獸)는 털이 듬성해져 가죽이 바뀐다.』
『申은 重也라 南交는 南方交趾之地라 陳氏曰 南交下에 當有曰明都三字라 訛는 化也니 謂夏月은 時物長盛하니 所當
變化之事也라 史記索隱에 作南爲하니 謂所當爲之事也라 敬致는 周禮所謂冬夏致日이니 蓋以夏至之日中으로 祠日而
識其景『(影)』이니 如所謂『日至之景尺有五寸을 謂之地中주:일지지경』者也라 永은 長也니 日永은 晝六十刻也라
星火는 東方蒼龍七宿라 火는 謂大火니 夏至昏之中星也라 正者는 夏至는 陽之極이니 午爲正陽位也라 因은 析而又析
이니 以氣愈熱하여 而民愈散處也라 希革은 鳥獸毛希而革易也라』
『 신(申)은 거듭함이다. 남교(南交)는 남방 교지(交趾)의 땅이다. 진씨(陳氏)가 이르기를 “남교(南交)의 아래에
마땅히 ‘왈명도(曰明都)’ 세 글자가 있어야 한다.” 하였다. 와(訛)는 변화함이니, 여름철에는 시물(時物)이 장성하니,
마땅히 변화하는 바의 일을 이른다. 《사기(史記)》의 색은(索隱)에는 ‘남위(南爲)’로 되어 있으니, 마땅히 해야 할
바의 일을 이른다. 경치(敬致)는 《주례(周禮)》에 이른바 ‘겨울과 여름에 날을 맞이한다.’는 것이다. 이는 하지(夏至)
의 일중(日中)『[정오]』에 해에 제사하고 그림자를 기록하는 것이니, 이른바 ‘일지(日至)의 그림자가 1척 5촌인 것
을 지(地中)이라고 한다.’는 것과 같다. 영(永)은 긴 것이니, 일영(日永)은 낮이 60각(刻)이다.
성화(星火)는 동방의 창룡(蒼龍) 7숙(宿)이다.
화(火)는 대화(大火)『[심성(心星)]』를 이르니, 하짓날 해가 질 무렵의 중성(中星)이다. 정(正)은 하지(夏至)는
양(陽)의 극이니, 오방(午方)은 정양(正陽)의 자리가 된다. 인(因)은 흩어지고 또 흩어짐이니, 기후가 더욱 더워져서
백성들이 더욱 흩어져 사는 것이다. 희혁(希革)은 조수(鳥獸)의 털이 듬성해져 가죽이 바뀌는 것이다.』
*서경 ; 우서 ; 요전 ; 제6장
▣ 제6장(第六章)
『分命和仲하사 宅西하시니 曰昧谷이니 寅餞納日하여 平秩西成이니 宵中이요 星虛라 以殷仲秋면 厥民은 夷요
鳥獸는 毛?이니라』
『 화중(和仲)에게 나누어 명하여 서쪽에 머물게 하시니, 매곡(昧谷)이라 하는 바, 들어가는 해를 공경히 전송하여
서성(西成)『[가을에 수확하는 일]』을 평질(平秩)하니, 밤은 중간이고 별은 허숙(虛宿)이다. 알맞은 중추(仲秋)가
되게 하면 백성들은 평화롭고 조수(鳥獸)는 털갈이를 하여 윤택해진다.』
『西는 謂西極之地也라 曰昧谷者는 以日所入而名也라 餞은 禮送行者之名이라 納日은 方納之日也니 蓋以秋分之莫『(暮)』로 夕方納之日하여 而識其景也라 西成은 秋月은 物成之時니 所當成就之事也라 宵는 夜也니 宵中者는 秋分
夜之刻이 於夏冬爲適中也하여 晝夜亦各五十刻이니 擧夜以見日이라 故로 曰宵라 星虛는 北方玄武七宿之虛星이니
秋分昏之中星也라 亦曰殷者는 秋分은 陰之中也라 夷는 平也니 暑退而人氣平也라 毛?은 鳥獸毛落更生하여 潤澤鮮
好也라』
『 서(西)는 서극(西極)『[서쪽 끝]』의 땅을 이른다. 매곡(昧谷)은 해가 들어가는 것으로 이름한 것이다.
전(餞)은 길을 떠나는 자를 예(禮)로 전송하는 명칭이다. 납일(納日)은 막 들어가는 해이니, 추분(秋分)의 저녁에 막
들어가는 해를 보고서 그 그림자를 기록하는 것이다. 서성(西成)은 가을철은 만물이 이루어지는 때이니, 마땅히
성취해야 할 바의 일이다. 소(宵)는 밤이니, 소중(宵中)은 추분 밤의 시각이 여름과 겨울에 비해 알맞아서 주야(晝夜)
가 각각 50각(刻)이니, 밤을 들어 낮을 나타냈기 때문에 소(宵)라고 한 것이다. 성허(星虛)는 북방의 현무(玄武) 7숙
(宿)의 허성(虛星)이니, 추분날 해가 질 무렵의 중성(中星)이다. 또한 은(殷)이라 말한 것은 추분은 음(陰)의 중(中)
이기 때문이다. 이(夷)는 평함이니, 더위가 물러가서 사람의 기운이 평안한 것이다. 모선(毛?)은 조수(鳥獸)가 털이
빠지고 다시 나서 윤택하여 선명하고 아름다운 것이다.』
*서경 ; 우서 ; 요전 ; 제7장
▣ 제7장(第七章)
『申命和叔하사 宅朔方하시니 曰幽都니 平在朔易이니 日短이요 星昴라 以正仲冬이면 厥民은 춛요 鳥獸는 Ã\毛
니라』
『 거듭 화숙(和叔)에게 명하여 삭방(朔方)에 머물게 하시니, 유도(幽都)라 하는 바, 삭역(朔易)『[다시 소생함]』을
고르게 살피니, 해는 짧고 별은 묘수(昴宿)이다. 바른 중동(仲冬)이 되게 하면 백성들은 아랫목에 있고 조수(鳥獸)는
가는 털이 난다.』
『朔方은 北荒之地니 謂之朔者는 朔之爲言은 蘇也니 萬物至此면 死而復蘇하니 猶月之晦而有朔也라 日行至是면 則淪
於地中하여 萬象幽暗이라 故로 曰幽都라 在는 察也라 朔易은 冬月은 歲事已畢하여 除舊更新하니 所當改易之事也라
日短은 晝四十刻也라 星昴는 西方白虎七宿之昴宿니 冬至昏之中星也라 亦曰正者는 冬至는 陰之極이니 子爲正陰之位
也라 춛는 室之內也니 氣寒而民聚於內也라 Ã\毛는 鳥獸生?퀡細毛以自溫也라 蓋旣命羲和하여 造曆制器하고 而又分
方與時하여 使各驗其實하여 以審夫推步之差하니 聖人之敬天勤民이 其謹如是라 是以로 術不違天而政不失時也라 又按
此冬至엔 日在虛하고 昏中昴어늘 今冬至엔 日在斗하고 昏中壁하여 中星不同者는 蓋天有三百六十五度四分度之一하고 歲有三百六十五日四分日之一이로되 天度는 四分之一而有餘하고 歲日은 四分之一而不足이라 故로 天度常平運而舒하
고 日道常內轉而縮하여 天漸差而西하고 歲漸差而東하니 此歲差之由니 唐一行所謂歲差者是也라 古曆은 簡易하여 未
立差法하고 但隨時占候修改하여 以與天合이러니 至東晉虞喜하여 始以天爲天하고 以歲爲歲하여 乃立差以追其變하니
約以五十年退一度라 何承天이 以爲太過라하여 乃倍其年이나 而又反不及이러니 至隋劉칷하여 取二家中數七十五年하
니 爲近之라 然亦未爲精密也니 因附著于此하노라』
『 삭방(朔方)은 북쪽의 황폐한 땅이니, 삭(朔)이라 이른 것은 삭(朔)이란 말은 소생한다는 뜻이니,
만물이 이에 이르면 죽었다가 다시 소생하니, 달이 그믐이 되었다가 초하루가 있는 것과 같다.
해의 운행이 이에 이르면 지중(地中)에 빠져서 만상(萬象)이 어둡기 때문에 유도(幽都)라 한 것이다. 재(在)는 살핌
이다. 삭역(朔易)은 겨울철은 한 해의 농사일이 이미 끝나 옛 것을 버리고 새 것으로 바꾸니, 마땅히 개역(改易)해야
할 바의 일이다. 일단(日短)은 낮이 40각(刻)이다.
성묘(星昴)는 서방의 백호(白虎) 7수(宿)의 묘수(昴宿)이니, 동짓날 해가 질 무렵의 중성(中星)이다. 또한 정(正)이
라고 말한 것은 동지(冬至)는 음(陰)의 극이니, 자방(子方)은 정음(正陰)의 자리가 된다. 오(춛)는 집의 안이니,
기후가 추워져서 백성들이 집안에 모인 것이다. 용모(Ã\毛)는 조수(鳥獸)가 연한 털과 가는 털이 나서 스스로 따뜻
하게 하는 것이다.』
『 이미 희씨(羲氏)와 화씨(和氏)에게 명하여 책력을 만들고 기구를 제작하게 하고 또 방소와 시기를 나누어서 각기
그 실제를 징험하여 추보(推步)의 오차를 살피게 하였으니, 성인(聖人)이 하늘을 공경하고 백성의 일에 수고로움이
그 삼감이 이와 같았다. 이 때문에 관측하는 방법이 하늘에 위배되지 않고 정사가 때를 잃지 않는 것이다.』
『 또 살펴보건대 여기의 동지에는 해가 허수(虛宿)에 있고 해질 무렵의 중성(中星)이 묘성(昴星)인데 지금 동지에는
해가 두수(斗宿)에 있고 해질 무렵의 중성(中星)이 벽수(壁宿)에 있어서 중성(中星)이 똑같지 않은 것은 하늘
『[천체(天體)]』은 365도(度)와 4분의 1도(度)이며, 1년은 365일(日)과 4분의 1일(日)인데,
하늘의 도수(度數)는 4분의 1도(度)에 남음이 있고 1년의 일수(日數)는 4분의 1일(日)에 부족하다.
그러므로 하늘의 도수는 항상 고르게 운행하여 펴지고, 해의 길은 항상 안으로 돌아 위축된다. 그리하여 하늘은 점점
차이가 나서 서쪽으로 가고 해는 점점 차이가 나서 동쪽으로 간다. 이것이 세차(歲差)가 생기게 되는 이유이니,
당(唐)나라 일행(一行)의 이른바 ‘세차(歲差)’란 것이 바로 이것이다.
옛날의 책력은 간역(簡易)하여 차이가 나는 법을 세우지 않고 다만 때에 따라 기후를 점쳐서 개정하여 하늘의 도수와
합하게 하였는데, 동진(東晉)의 우희(虞喜)에 이르러 비로소 천(天)을 천(天)이라 하고 세(歲)를 세(歲)라 하여 차이가
나는 법을 세워서 그 변함을 추적하여 고치니, 대략 50년에 1도(度)를 물렸다.
하승천(何承天)은 이것이 너무 과하다 하여 그 연수(年數)를 곱절로 하였으나 또 도리어 미치지 못하였는데,
수(隋)나라의 유작(劉칷)에 이르러 두 사람의 중간수인 75년을 취하였으니, 근사하다.
그러나 또한 정밀하지는 못하니, 인하여 여기에 붙이는 바이다.』
*서경 ; 우서 ; 요전 ; 제8장
▣ 제8장(第八章)
『帝曰 咨汝羲쨑和아 朞는 三百有六旬有六日이니 以閏月이라사 定四時成歲하여 允釐百工하여 庶績이 咸熙하리라』
『 제요(帝堯)가 말씀하였다. “아! 너희 희씨(羲氏)와 화씨(和氏)야. 기(朞)는 366일(日)이니, 윤달을 사용하여야 사시
(四時)를 정하여 해를 이루어 진실로 백공(百工)『[백관]』을 다스려서 모든 공적이 다 넓혀질 것이다.”』
『咨는 嗟也니 嗟嘆而告之也라 쨑는 及也라 朞는 猶周也라 允은 信이요 釐는 治요 工은 官이요 庶는 衆이요 績은 功이
요 咸은 皆요 熙는 廣也라 天體至圓하니 周圍三百六十五度四分度之一이라 繞地左旋호되 常一日一周而過一度하나니
日麗天而少遲라 故로 日行이 一日亦繞地一周로되 而在天에 爲不及一度라 積三百六十五日九百四十分日之二百三十五
而與天會하니 是一歲日行之數也라 月은 麗天而尤遲하여 一日에 常不及天十三度十九分度之七이라 積二十九日九百四
十分日之四百九十九而與日會하니 十二會면 得全日三百四十八이요 餘分之積이 又五千九百八十八이니 如日法九百四
十하여 而一得六이면 不盡이 三百四十八이니 通計得日이 三百五十四九百四十分日之三百四十八이니 是一歲月行之數
也라 歲有十二月하고 月有三十日하니 三百六十者는 一歲之常數也라 故로 日與天會而多五日九百四十分日之二百三十
五者는 爲氣盈이요 月與日會而少五日九百四十分日之五百九十二者는 爲朔虛니 合氣盈朔虛而閏生焉이라 故로 一歲閏
率『(율)』은 則十日九百四十分日之八百二十七이니 三歲一閏이면 則三十二日九百四十分日之六百單一이요 五歲再閏
이면 則五十四日九百四十分日之三百七十五요 十有九歲七閏이면 則氣朔分齊하니 是爲一章也라 故로 三年而不置閏이
면 則春之一月이 入于夏而時漸不定矣요 子之一月이 入于丑而歲漸不成矣라 積之之久하여 至於三失閏이면 則春皆入夏
하여 而時全不定矣요 十二失閏이면 子皆入丑하여 歲全不成矣라 其名實乖戾하고 寒暑反易하여 農桑庶務 皆失其時라
故로 必以此餘日로 置閏月於其間然後에 四時不差而歲功得成하나니 以此로 信治百官而衆功皆廣也라』
『 자(咨)는 감탄함이니, 감탄하고 고하는 것이다. 기(쨑)는 및이다. 기(朞)는 주년(周年)과 같다. 윤(允)은 진실로요,
이(釐)는 다스림이요, 공(工)은 관(官)이요, 서(庶)는 여럿이요, 적(績)은 공이요, 함(咸)은 모두요, 희(熙)는 넓음이다.
천체(天體)는 지극히 둥그니, 주위가 365도(度)와 4분의 1도이다. 천체는 땅을 왼쪽으로 한 바퀴 돌되 항상 하루에
한 바퀴를 돌고 1도를 지나치게 되니, 해는 하늘에 걸려 있는데 이보다 다소 늦다. 그러므로 해의 운행은 하루에 또한
땅을 한 바퀴 돌되 하늘에 있어 1도를 미치지 못하게 된다. 365일과 940분의 235일을 쌓아 하늘과 만나니,
이는 1년 동안 해가 운행하는 수이다. 달은 하늘에 걸려 있는데 더욱 느려서 하루에 항상 하늘보다 13도와 19분의 7도
를 미치지 못한다. 29일과 940분의 499일을 쌓아 해와 만나니, 열두 번 만나면 온전한 날을 얻은 것이 348일이요 여분
을 모은 것이 940분의 5988이니, 날짜의 법에 940과 같이 하여 1일을 여섯 번 얻으면 나누어지지 않고 남는 수가 348
이니, 얻은 날을 통틀어 계산하면 354일과 940분의 348일이 되니, 이는 1년동안 달이 운행하는 수이다. 해에는 12개
월이 있고 달에는 30일이 있으니, 360은 1년의 떳떳한 수이다. 그러므로 해가 하늘과 만날 적에는 5일과 940분의
235일이 더 많은데 이것을 기영(氣盈)이라 하고, 달이 해와 만날 적에는 5일과 940분의 592일이 적은데 이것을 삭허
(朔虛)라 하니, 기영과 삭허를 합쳐서 윤달이 생긴다. 그러므로 1년에 윤달의 비율은 10일과 940분의 827일이 되니,
3년에 한번 윤달을 두면 32일과 940분의 601일이 되고, 5년에 두번 윤달을 두면 54일과 940분의 75일이 되며,
19년에 일곱번 윤달을 두면 기영(氣盈)과 삭허(朔虛)가 분한(分限)이 똑고르게 되니, 이를 1장(章)이라 한다.
그러므로 3년에 윤달을 두지 않으면 봄의 한 달이 여름으로 들어가서 철이 점점 정해지지 못하고 자월(子月)『[11월]』의 한 달이 축월(丑月)『[12월]』로 들어가서 해가 점점 이루어지지 못한다. 이렇게 쌓인 것이 오래되어 세번 윤달을
잃게 되면 봄이 다 여름으로 들어가서 철이 전혀 정해지지 못하고, 열두번 윤달을 잃으면 자월(子月)이 모두 축월
(丑月)로 들어가서 해가 전혀 이루어지지 못한다. 이렇게 되면 그 명칭과 실제가 괴리되고 추위와 더위가 뒤집어져서
농상(農桑)의 모든 일이 다 때를 잃게 된다. 그러므로 반드시 남는 날을 가지고 윤달을 그 사이에 둔 뒤에야 사시(四時)
가 어그러지지 않고 세공(歲功)이 이루어지니, 이로써 진실로 백관을 다스려서 모든 공적이 다 넓혀지게 되는 것이다.』
*서경 ; 우서 ; 요전 ; 제9장
▣ 제9장(第九章)
『帝曰 疇咨若時하여 登庸고 放齊曰 胤子朱啓明하니이다 帝曰 췕라 ¯)訟이어니 可乎아』
『 제요(帝堯)가 말씀하기를 “누가 때를 순히 할 사람을 두루 물어서 등용할 수 있는가?” 하니, 방제(放齊)가 말하기를
“맏아들인 단주(丹朱)가 계명(啓明)합니다.” 하였다. 제요(帝堯)가 말씀하기를 “아! 너의 말이 옳지 않다. 어리석고 다
투니, 가(可)하겠는가.” 하였다.』
『此下至툵績用弗成은 皆爲禪舜張本也라 疇는 誰요 咨는 訪問也라 若은 順이요 庸은 用也라 堯言 誰爲我訪問能順時
爲治之人하여 而登用之乎아하시니라 放齊는 臣名이라 胤은 嗣也니 胤子朱는 堯之嗣子丹朱也라 啓는 開也니 言其性
開明하여 可登用也라 췕者는 歎其不然之辭라 ¯)은 謂口不道忠信之言이요 訟은 爭辯也라 朱蓋以其開明之才로 用之於
不善이라 故로 ¯)訟하니 禹所謂傲虐이 是也라 此見堯之至公至明하여 深知其子之惡하여 而不以一人病天下也라 或曰
胤은 國이요 子는 爵이니 堯時諸侯也라 夏書에 有胤侯하고 周書에 有胤之舞衣라하니 今亦未見其必不然일새 姑存於
此云이라』
『 이 아래로부터 ‘곤(툵)의 적용(績用)『[공적]』이 이루어지지 못하였다’는 데에 이르기까지는 다 순(舜)에게 선위
하는 장본(張本)이 된다. 주(疇)는 누구요 자(咨)는 방문함이다. 약(若)은 순함이요 용(庸)은 등용함이다.
제요(帝堯)가 말씀하기를 “누가 나를 위하여 때를 순히 따라 다스릴 수 있는 사람을 두루 물어서 등용할 수 있는가?”
라고 한 것이다.
방제(放齊)는 신하의 이름이다. 윤(胤)은 맏아들이니, 윤자(胤子) 주(朱)는 제요(帝堯)의 맏아들인 단주(丹朱)이다.
계(啓)는 열림이니, 그 성품이 개명(開明)하여 등용할 만함을 말한 것이다. 우(췕)는 그렇지 못함을 탄식하는 말이다.
은(¯))은 입으로 충신(忠信)의 말을 말하지 않음을 이르고 송(訟)은 쟁변(爭辯)하는 것이다.
단주(丹朱)가 개명(開明)한 재주를 불선(不善)한 데에 썼기 때문에 어리석고 다툰 것이니,
우왕(禹王)의 이른바 ‘오만하고 사납다’는 것이 이것이다. 이는 제요(帝堯)가 지극히 공정하고 지극히 밝아서 그 자식
의 악함을 깊이 알아 한 사람으로 천하를 해롭게 하지 않음을 볼 수 있다.
혹자는 말하기를 “윤(胤)은 나라이고 자(子)는 작위이니, 제요(帝堯) 때의 제후이다.
〈하서(夏書)〉에 윤후(胤侯)가 있고 〈주서(周書)〉에 윤국(胤國)의 춤추는 옷이 있었다.” 하니,
지금 또한 반드시 그렇지 않음을 발견할 수 없으므로 우선 여기에 두는 바이다.』
*서경 ; 우서 ; 요전 ; 제10장
▣ 제10장(第十章)
『帝曰 疇咨若予采오 驩兜曰 都라 共工이 方鳩?功하나니이다 帝曰 췕라 靜言庸違하고 象恭滔天하니라』
『 제요(帝堯)가 말씀하기를 “누가 나의 일을 순히 할 수 있는가?” 하니, 환도(驩兜)가 말하기를 “아! 훌륭합니다.
공공(共工)이 바야흐로 모아서 공적을 나타냅니다.” 하였다. 제요(帝堯)가 말씀하기를 “아! 너의 말이 옳지 않다.
고요할 때에는 말을 잘하나 등용하면 위배되고 외모만 공손하다.” 하였다.』
『采는 事也라 都는 歎美之辭也라 驩兜는 臣名이요 共工은 官名이니 蓋古之世官族也라 方은 且요 鳩는 聚요 ?은
見也니 言共工方且鳩聚而見其功也라 靜言庸違者는 靜則能言이나 用則違背也라 象恭은 貌恭而心不然也라 滔天二
字는 未詳이라 與下文相似하니 疑有舛誤라 上章은 言順時하고 此言順事하니 職任大小를 可見이라』
『 채(采)는 일이다. 도(都)는 탄미하는 말이다. 환도(驩兜)는 신하의 이름이요 공공(共工)은 관명이니, 아마도 옛부터
대대로 벼슬해오는 집안인 듯하다. 방(方)은 장차요 구(鳩)는 모음이요 잔(?)은 보임이니, 공공(共工)이 바야흐로 모아
서 그 공적을 나타냄을 말한 것이다. 정언용위(靜言庸違)는 고요할 때에는 말을 잘하나 등용하면 위배되는 것이다.
상공(象恭)은 외모는 공손하나 마음은 그렇지 않은 것이다. 도천(滔天) 두 글자는 미상이다. 하문(下文)과 서로 비슷
하니, 의심컨대 잘못이 있는 듯하다. 상장(上章)에서는 때를 순히 함을 말하였고 여기서는 일을 순히 함을 말하였으니,
직임(職任)의 크고 작음을 볼 수 있다.』
*서경 ; 우서 ; 요전 ; 제11장
▣ 제11장(第十一章)
『帝曰 咨四岳아 湯湯『(상상)』洪水方割하여 蕩蕩懷山襄陵하여 浩浩滔天일새 下民其咨하나니 有能이어든 쯸乂호
리라 僉曰 於『(오)』라 툵哉니이다 帝曰 췕라 퓆哉라 方命하며 쯺族하나니라 岳曰 휍哉나 試可오 乃已니이다 帝曰
往欽哉하라하시니 九載에 績用이 弗成하니라』
『 제요(帝堯)가 말씀하기를 “아! 사악(四岳)아. 넘실대는 홍수가 바야흐로 폐해를 끼쳐서 상상(蕩蕩)하게 산을 에워
싸고 언덕을 넘어 질펀하게 하늘까지 번지기에 하민(下民)들이 한탄하고 있으니, 능히 다스릴 만한 자가 있으면 다스
리게 하리라.” 하니, 여럿이 말하기를 “아! 곤(툵)입니다.” 하였다. 제요(帝堯)가 말씀하기를 “아! 너의 말이 옳지 않다.
명령을 거역하며 족류(族類)들을 패망(敗亡)시킨다.” 하니, 사악(四岳)이 말하기를 “그만두더라도 가(可)한가를 시험
해보고 이에 그만두어야 합니다.” 하였다. 제요(帝堯)가 “가서 공경히 임무를 수행하라.” 하였는데,
9년이 되도록 공적이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四岳은 官名이니 一人而總四岳諸侯之事也라 湯湯은 水盛貌라 洪은 大也라 孟子曰 水逆行을 謂之?水니 ?水者는
洪水也라하시니 蓋水涌出而未洩이라 故로 汎濫而逆流也라 割은 害也라 蕩蕩은 廣貌라 懷는 包其四面也요 襄은 駕出
其上也라 大阜曰陵이라 浩浩는 大貌요 滔는 漫也니 極言其大하여 勢若漫天也라 쯸는 使요 乂는 治也니 言有能任此
責者면 使之治水也라 僉은 衆共之辭니 四岳與其所領諸侯之在朝者 同辭而對也라 於는 歎美辭요 툵은 崇伯名이니 歎
其美而薦之也라 퓆者는 甚不然之之辭라 方命者는 逆命而不行也라 王氏曰 圓則行하고 方則止하나니 方命은 猶今言
廢閣詔令也니 蓋툵之爲人이 탣戾自用하여 不從上令也라 쯺는 敗요 族은 類也니 言與衆不和하여 傷人害物하니 툵之
不可用者以此也라 楚辭에 言툵?直이라하니 是其方命쯺族之證也라 岳曰은 四岳之獨言也라 휍는 義未詳하니 疑是已
廢而復强擧之之意라 試可乃已者는 蓋廷臣이 未有能於툵者하니 不若姑試用之하여 取其可以治水而已라 言無預他事
하니 不必求其備也라 堯於是遣之하여 往治水而戒以欽哉하시니 蓋任大事면 不可以不敬이니 聖人之戒 辭約而意盡也
라 載는 年也니 九載三考하여 功用不成이라 故黜之하니라』
『 사악(四岳)은 관명이니, 한 사람으로서 사악에 있는 제후의 일을 총괄한 것이다. 상상(湯湯)은 물이 성한 모양
이다. 홍(洪)은 큼이다. 맹자(孟子)가 말씀하기를 “물이 역행함을 홍수(?水)라 이르니, 홍수(?水)는 홍수(洪水)이다.”
라고 하셨으니, 물이 용솟음쳐서 빠져나가지 못하므로 범람하여 역류한 것이다. 할(割)은 해침이다.
상상(蕩蕩)은 넓은 모양이다. 회(懷)는 사면을 에워싸는 것이요, 양(襄)은 높이 그 위로 나오는 것이다.
큰 언덕을 능(陵)이라 한다. 호호(浩浩)는 큰 모양이요 도(滔)는 번짐이니, 커서 형세가 하늘에 번지는 것과 같음을
극언한 것이다. 비(쯸)는 하여금이요 예(乂)는 다스림이니, 능히 이 책임을 맡을 자가 있으면 그로 하여금 물을 다스
리게 하려 함을 말한 것이다. 첨(僉)은 여럿이 함께 하는 말이니, 사악과 그가 거느리고 있는 바의 제후로서 조정에
있는 자들이 함께 말하여 대답한 것이다. 오(於)는 탄미하는 말이요 곤(툵)은 숭백(崇伯)의 이름이니, 그 아름다움을
감탄하고 천거한 것이다. 불(퓆)은 매우 옳지 않게 여기는 말이다. 방명(方命)은 명을 거역하고 행하지 않는 것이다.
왕씨(王氏)가 말하기를 “둥글면 굴러가고 모나면 멈추니, 방명(方命)은 지금의 조령(詔令)을 폐각(廢閣)『[폐기]』
한다는 말과 같다.” 하였다. 곤(툵)의 사람됨이 고집세고 어그러져 자기 주장을 써서 윗사람의 명령을 따르지 않은
것이다. 비(쯺)는 패함『[무너짐]』이요 족(族)은 족류이니, 여러 사람들과 불화하여 남을 상하게 하고 물건을 해침
을 말한 것이니, 곤(툵)을 등용할 수 없음은 이 때문이었다. 《초사(楚辭)》에 “곤(툵)이 행직(?直)했다.”고 말하였
으니, 이것이 명령을 거역하고 족류를 무너뜨린 증거이다.
악왈(岳曰)은 사악(四岳)이 홀로 말한 것이다. 이(휍)는 뜻이 미상이니, 의심컨대 이미 폐하였다가 다시 억지로 그를
천거한 뜻인 듯하다. 시가내이(試可乃已)는 조정의 신하들이 곤(툵)보다 능한 자가 없으니, 우선 시험삼아 등용해서
물을 다스리는 것만을 취하는 것만 못한 것이다. 이는 다른 일에 간여됨이 없으니, 굳이 완비되기를 구할 필요가 없
음을 말한 것이다. 제요(帝堯)가 이에 그를 보내어 가서 물을 다스리게 하면서 공경하라고 경계하였으니,
큰 일을 맡으면 공경하지 않을 수 없으니, 성인(聖人)의 경계는 말이 간략하면서도 뜻이 극진하다. 재(載)는 해이니,
9년 동안 세 번 상고하여 공용이 이루어지지 못하였으므로 축출한 것이다.』
*서경 ; 우서 ; 요전 ; 제12장
▣ 제12장(第十二章)
『帝曰 咨四岳아 朕이 在位七十載니 汝能庸命하나니 巽朕位인저 岳曰 否德이라 쿈帝位하리이다 曰 明明하며 揚側陋
하라 師錫帝曰 有鰥이 在下하니 曰虞舜이니이다 帝曰 兪라 予聞호니 如何오 岳曰 줥子니 父頑하며 母¯)하며 象傲어
늘 克諧以孝하여 烝烝乂하여 不格姦하니이다 帝曰 我其試哉인저 女于時하여 觀厥刑于二女호리라하시고 釐降二女
于¤0汭하사 嬪于虞하시고 帝曰 欽哉하라하시다』
『 제요(帝堯)가 말씀하기를 “아! 사악(四岳)아. 짐(朕)이 재위한 지가 70년인데, 네가 나의 명령을 잘 따르니,
짐의 지위를 선양하겠다.” 하였다. 사악(四岳)이 말하기를 “저는 덕이 없어 제위(帝位)를 욕되게 할 것입니다.” 하니,
제요(帝堯)가 말씀하기를 “현달한 자를 밝히며 미천한 자를 천거하라.” 하였다. 여럿이 제요(帝堯)에게 말씀드리기를
“홀아비가 아래에 있으니, 우순(虞舜)이라 합니다.” 하였다.
제요(帝堯)가 말씀하기를 “아! 너의 말이 옳다. 나도 들었으니, 어떠한가?” 하니, 사악이 말하기를 “소경의 아들이니,
아버지는 완악하고 어머니는 어리석으며 상(象)은 오만한데도 능히 효(孝)로 화하게 하여 점점 다스려서 간악한 데에
이르지 않게 하였습니다.” 하였다. 제요(帝堯)가 말씀하기를 “내가 시험해보겠다. 이에게 딸을 시집보내어 그 법을 두
딸에게서 관찰하겠다.” 하시고, 두 딸을 치장하여 규수(¤0水)의 북쪽에 하가(下嫁)하여 우순(虞舜)의 아내가 되게
하시고는 제요(帝堯)는 딸들에게 “공경하라.”고 당부하셨다.』
『朕은 古人自稱之通號라 吳氏曰 巽, 遜은 古通用이라 言汝四岳이 能用我之命하니 而可遜以此位乎인저하니 蓋丹朱
旣不肖하고 群臣이 又多不稱이라 故로 欲擧以授人而先之四岳也라 否는 不通이라 쿈은 辱也라 明明은 上明은 謂明顯
之요 下明은 謂已在顯位者라 揚은 擧也요 側陋는 微賤之人也니 言惟德是擧하여 不拘貴賤也라 師는 衆이요 錫은 與也
니 四岳群臣諸侯同辭以對也라 鰥은 無妻之名이라 虞는 氏요 舜은 名也라 兪는 應許之辭라 予聞者는 我亦嘗聞是人也
요 如何者는 復問其德之詳也라 岳曰은 四岳獨對也라 줥는 無目之名이니 言舜乃줥者之子也니 舜父號줥첤라 心不則
『(칙)』德義之經이 爲頑이라 母는 舜後母也요 象은 舜異母弟名이라 傲는 驕慢也라 諧는 和요 烝은 進也라 言舜不幸
遭此로되 而能和以孝하여 使之進進以善自治하여 而不至於大爲姦惡也라 女는 以女與人也라 時는 是요 刑은 法也라
二女는 堯二女娥皇, 女英也라 此는 堯言其將試舜之意也니 莊子所謂二女事之以觀其內가 是也라 蓋夫婦之間 隱微之際
는 正始之道니 所繫尤重이라 故로 觀人者於此爲尤切也라 釐는 理요 降은 下也라 ¤0는 水名이니 在今河中府河東縣하
니 出歷山入河라 爾雅曰 水北曰汭니 亦小水入大水之名이니 蓋兩水合流之內也라 故從水從內하니 蓋舜所居之地라 嬪
은 婦也요 虞는 舜氏也니 史言堯治裝下嫁二女于¤0水之北하여 使爲舜婦于虞氏之家也라 欽哉는 堯戒二女之辭니 卽禮
所謂往之女『(汝)』家必敬必戒者라 況以天子之女로 嫁於匹夫하니 尤不可不深戒之也라』
『 짐(朕)은 옛사람들이 자칭(自稱)하는 통칭이었다. 오씨(吳氏)가 말하기를 “손(巽)과 손(遜)은 옛날에는 통용되었다.” 하였다. 말하기를 “너 사악이 나의 명을 잘 따르니, 이 지위를 선양하겠다.” 하였으니, 이는 아들인 단주(丹朱)가 이미
불초하고 군신(群臣)들이 또 지위에 걸맞지 않은 자가 많으므로 천하를 들어 남에게 주고자 하면서 사악에게 먼저 한
것이다. 부(否)는 불(不)과 통한다. 첨(쿈)은 욕됨이다.
명명(明明)은 위의 명자(明字)는 밝게 드러내는 것이고, 아래의 명자(明字)는 이미 현달한 지위에 있는 자를 이른다.
양(揚)은 천거함이요 측루(側陋)는 미천한 사람이니, 오직 덕이 있는 사람을 들어 써서 귀천에 구애하지 않음을 말한
것이다. 사(師)는 무리요 석(錫)은 줌이니, 사악(四岳)과 군신(群臣)과 제후(諸侯)들이 함께 말하여 대답한 것이다.
환(鰥)은 아내가 없는 자의 칭호이다. 우(虞)는 씨(氏)요 순(舜)은 이름이다.
유(兪)는 응대하고 허락하는 말이다. 여문(予聞)은 나 또한 일찍이 이 사람에 대해서 들었다는 것이고, 여하(如何)는
다시 덕(德)의 상세한 내용을 물은 것이다. 악왈(岳曰)은 사악이 홀로 대답한 것이다. 고(줥)는 눈이 없는 자의 칭호
이니, 순(舜)이 바로 소경의 아들임을 말한 것이니, 순(舜)의 아버지의 호가 고수(줥첤)이다. 마음이 떳떳한 덕의(德
義)를 본받지 않음을 완(頑)이라 한다. 모(母)는 순(舜)의 후모(後母)이고 상(象)은 순(舜)의 이복(異腹) 동생의 이름
이다. 오(傲)는 교만함이다. 해(諧)는 화함이요 증(烝)은 나아감이다. 순(舜)이 불행히도 이러한 일을 만났으나 능히
효로써 화합하여 나아가고 나아가 선(善)으로 스스로 다스려서 크게 간악함에 이르지 않게 하였음을 말한 것이다.
여(女)는 딸을 남에게 주는 것이다. 시(時)는 이것이요 형(刑)은 법이다.
이녀(二女)는 제요(帝堯)의 두 딸인 아황(娥皇)과 여영(女英)이다. 이는 제요(帝堯)가 장차 순(舜)을 시험해보고서
등용하겠다는 뜻을 말한 것이니, 《장자(莊子)》에 이른바 ‘두 딸로 순(舜)을 섬기게 하여 그 안을 관찰했다.’는 것이
이것이다. 부부(夫婦) 사이의 은미한 즈음은 시작을 바로잡는 도(道)이니, 관계되는 바가 더욱 중요하다.
그러므로 사람을 관찰하는 자가 여기에서 관찰하면 더욱 간절한 것이다. 이(釐)는 다스림이요 강(降)은 하가(下嫁)
이다. 규(¤0)는 물 이름이니, 지금의 하중부(河中府) 하동현(河東縣)에 있으니, 역산(歷山)에서 나와 황하(黃河)로
들어간다. 《이아(爾雅)》에 이르기를 “물의 북쪽을 예(汭)라 한다.” 하였으니, 또한 작은 물이 큰 물로 들어가는
이름이니, 두 물이 합류하는 안일 것이다. 그러므로 수(水)를 따르고 내(內)를 따랐으니, 순(舜)이 거주하던 곳의 땅
이다. 빈(嬪)은 부인이요 우(虞)는 순(舜)의 씨(氏)이니, 사관(史官)이 “제요(帝堯)가 두 딸을 치장하여 규수(¤0水)의
북쪽에 하가(下嫁)해서 그로 하여금 우씨(虞氏)의 집에서 순(舜)의 아내가 되게 하였다.”고 말한 것이다.
흠재(欽哉)는 제요(帝堯)가 두 딸을 경계한 말씀이니, 《예기(禮記)》에 이른바 ‘네 집에 가서 반드시 공경하고
반드시 경계하라.’는 것이다. 하물며 천자의 딸을 필부(匹夫)에게 시집보내니, 더더욱 깊이 경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서경 ; 우서 ; 순전(舜典)
▣ 순전(舜典)
『今文古文皆有로되 今文은 合于堯典하고 而無篇首二十八字하니라』
『○ 唐孔氏曰 東晉梅픂이 上孔傳에 闕舜典自乃命以位以上二十八字하니 世所不傳이라 多用王范之註補之하고 而皆
以愼徽五典以下로 爲舜典之初러니 至齊蕭鸞建武四年하여 姚方興이 於『大航頭주:대항두』에 得孔氏傳古文舜典하여
乃上之라가 事未施行하여 而方興이 以罪致戮이러니 至隋開皇初하여 購求遺典하여 始得之하니라 今按古文孔傳尙書
컨대 有曰若稽古以下二十八字라 伏生은 以舜典合於堯典하여 只以愼徽五典以上으로 接帝曰欽哉之下하여 而無此二十
八字하고 梅픂은 旣失孔傳舜典이라 故亦不知有此二十八字요 而愼徽五典以下는 則固具於伏生之書라 故傳者用王范之
註以補之러니 至姚方興하여 乃得古文孔傳舜典하니 於是에 始知有此二十八字라 或者는 由此하여 乃謂古文舜典一篇
이 皆盡亡失이러니 至是에 方全得之라하여 遂疑其僞하니 蓋過論也라』
『 금문과 고문에 다 있으나 금문은 〈요전(堯典)〉에 합쳐져 있고 편 머리의 28자(字)가 없다.』
『 ○ 당(唐)나라 공씨(孔氏)『[공영달(孔穎達)]』가 말하였다.』
『 “동진(東晉)의 매색(梅픂)이 공전(孔傳)『[공안국(孔安國)의 서전(書傳)]』을 올렸을 때에 〈순전(舜典)〉의
‘내명이위(乃命以位)’ 이상으로부터 28자(字)가 없었으니, 세상에 전해지지 않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대부분 왕씨(王氏)『[왕숙(王肅)]』와 범씨(范氏)『[범녕(范寗)]』의 주(註)를 가지고 공전(孔傳)에 없는
부분을 보충하고, 모두 ‘신휘오전(愼徽五典)’ 이하를 〈순전(舜典)〉의 처음으로 삼았었는데, 제(齊)나라 소란(蕭鸞)
『[명제(明帝)]』의 건무(建武) 4년에 이르러 요방흥(姚方興)이 대항(大航)의 머리『[앞]』에서 공씨(孔氏)가 전주
(傳註)한 고문(古文) 〈순전(舜典)〉을 얻어 올렸다가 일이 미처 시행되기 전에 요방흥이 죄를 받아 죽임을 당하였다.
그러다가 수(隋)나라 개황(開皇) 초기에 이르러 유전(遺典)을 구입하여 비로소 이것을 얻게 되었다.”』
『 이제 고문의 공전(孔傳) 상서(尙書)를 살펴보면 ‘왈약계고(曰若稽古)’ 이하 28자(字)가 있다.
복생(伏生)은 〈순전(舜典)〉을 〈요전(堯典)〉에 합쳐서 다만 ‘신휘오전(愼徽五典)’ 이상을 ‘제왈흠재(帝曰欽哉)’의
아래에 접속하여 이 28자가 없고, 매색은 이미 공전(孔傳)의 〈순전(舜典)〉을 잃었으므로 또한 이 28자가 있음을
알지 못하였으며, ‘신휘오전(愼徽五典)’ 이하는 진실로 복생(伏生)의 책에 갖추어져 있었다.
그러므로 전주(傳註)하는 자가 왕씨(王氏)와 범씨(范氏)의 주(註)를 사용하여 보충하였는데, 요방흥에 이르러 비로소
고문의 공전(孔傳) 〈순전(舜典)〉을 얻게 되자, 이에 비로소 이 28자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혹자는 이로 말미암아
마침내 고문 〈순전(舜典)〉 한 편은 모두 다 망실되었었는데 이때에 이르러 비로소 완전히 얻었다 하여 마침내 위작
(僞作)이라고 의심하니, 이는 지나친 의론이다.』
『○ 서경 ; 우서 ; 순전 ; 제1장+1』
『○ 서경 ; 우서 ; 순전 ; 제2장+2』
『○ 서경 ; 우서 ; 순전 ; 제3장+3』
『○ 서경 ; 우서 ; 순전 ; 제4장+4』
『○ 서경 ; 우서 ; 순전 ; 제5장+5』
『○ 서경 ; 우서 ; 순전 ; 제6장+6』
『○ 서경 ; 우서 ; 순전 ; 제7장+7』
『○ 서경 ; 우서 ; 순전 ; 제8장+8』
『○ 서경 ; 우서 ; 순전 ; 제9장+9』
『○ 서경 ; 우서 ; 순전 ; 제10장+10』
『○ 서경 ; 우서 ; 순전 ; 제11장+11』
『○ 서경 ; 우서 ; 순전 ; 제12장+12』
『○ 서경 ; 우서 ; 순전 ; 제13장+13』
『○ 서경 ; 우서 ; 순전 ; 제14장+14』
『○ 서경 ; 우서 ; 순전 ; 제15장+15』
『○ 서경 ; 우서 ; 순전 ; 제16장+16』
『○ 서경 ; 우서 ; 순전 ; 제17장+17』
『○ 서경 ; 우서 ; 순전 ; 제18장+18』
『○ 서경 ; 우서 ; 순전 ; 제19장+19』
『○ 서경 ; 우서 ; 순전 ; 제20장+20』
『○ 서경 ; 우서 ; 순전 ; 제21장+21』
『○ 서경 ; 우서 ; 순전 ; 제22장+22』
『○ 서경 ; 우서 ; 순전 ; 제23장+23』
『○ 서경 ; 우서 ; 순전 ; 제24장+24』
『○ 서경 ; 우서 ; 순전 ; 제25장+25』
『○ 서경 ; 우서 ; 순전 ; 제26장+26』
『○ 서경 ; 우서 ; 순전 ; 제27장+27』
『○ 서경 ; 우서 ; 순전 ; 제28장+28』
*서경 ; 우서 ; 순전 ; 제1장
▣ 제1장(第一章)
『曰若稽古帝舜한대 曰重華協于帝하시니 濬哲文明하시며 溫恭允塞하사 玄德이 升聞하신대 乃命以位하시다』
『 옛 제순(帝舜)을 상고하건대 중화(重華)『[거듭 빛남]』가 제요(帝堯)에게 합하시니, 깊고 명철하고 문채나고
밝으시며 온화하고 공손하고 성실하고 독실하시어 그윽한 덕(德)이 올라가 알려지시니,
제요(帝堯)가 마침내 직위(職位)를 명하셨다.』
『華는 光華也라 協은 合也라 帝는 謂堯也라 濬은 深이요 哲은 智也라 溫은 和粹也라 塞은 實也라 玄은 幽潛也라 升
은 上也라 言堯旣有光華어시늘 而舜又有光華하여 可合於堯라 因言其目하면 則深沈而有智하고 文理而光明하고
和粹而恭敬하고 誠信而篤實하사 有此四者幽潛之德이 上聞於堯하신대 堯乃命之以職位也라』
『 화(華)는 광화(光華)이다. 협(協)은 합함이다. 제(帝)는 요(堯)를 이른다. 준(濬)은 깊음이요 철(哲)은 지혜로움이다.
온(溫)은 화하고 순수함이다. 색(塞)은 독실함이다. 현(玄)은 유잠(幽潛)『[그윽하고 잠겨있음]』이다. 승(升)은 올라
감이다. 요(堯)가 이미 광화가 있었는데 순(舜)이 또 광화가 있어서 요(堯)에게 합함을 말한 것이다.
인하여 그 조목을 말하면 심침(深沈)하면서도 지혜가 있고 문리(文理)가 있으면서도 광명하며, 화하고 순수하면서도
공경하고 성신(誠信)하면서도 독실하여, 이 네 가지 유잠(幽潛)한 덕이 있어 올라가 요(堯)에게 알려지셨으므로 요
(堯)가 마침내 직위(職位)를 명령한 것이다.』
*서경 ; 우서 ; 순전 ; 제2장
▣ 제2장(第二章)
『愼徽五典하신대 五典이 克從하며 納于百揆하신대 百揆時敍하며 賓于四門하신대 四門이 穆穆하며 納于大麓하신대
烈風雷雨에 弗迷하시다』
『 오전(五典)을 삼가 아름답게 하라 하시니 오전(五典)이 능히 순하게 되었으며, 백규(百揆)에 앉히시니 백규(百揆)
가 때로 펴졌으며, 사문(四門)에서 손님을 맞이하게 하시니 사문(四門)이 화목하며, 큰 산기슭에 들어가게 하시니
열풍(烈風)『[맹렬한 바람]』과 뇌우(雷雨)『[천둥 번개가 치고 비가 옴]』에 혼미하지 않으셨다.』
『徽는 美也라 五典은 五常也니 父子有親, 君臣有義, 夫婦有別, 長幼有序, 朋友有信이 是也라 從은 順也니 左氏所謂
無違敎也니 此蓋使爲司徒之官也라 揆는 度『(탁)』也니 百揆者는 揆度庶政之官으로 惟唐虞有之하니 猶周之¾4宰也라
時敍는 以時而敍니 左氏所謂無廢事也라 四門은 四方之門이니 古者에 以賓禮로 親邦國하여 諸侯各以方至而使主焉이
라 故曰賓이라 穆穆은 和之至也니 左氏所謂無凶人也니 此는 蓋又兼四岳之官也라 麓은 山足也라 烈은 迅이요 迷는
錯也라 史記曰 堯使舜入山林川澤하신대 暴風雷雨에 舜行不迷라하니라 蘇氏曰 洪水爲害어늘 堯使舜入山林하여 相視
原쳚이러니 雷雨大至하여 衆懼失常호되 而舜不迷하시니 其度量이 有絶人者요 而天地鬼神이 亦或有以相之歟아 愚謂
遇烈風雷雨非常之變호되 而不震懼失常은 非固聰明誠智確乎不亂者면 不能也라 易에 『震驚百里주:진경백리』호되
不喪匕鬯이라하니 意爲近之라』
『 휘(徽)는 아름다움이다.
오전(五典)은 오상(五常)이니, 부자유친(父子有親), 군신유의(君臣有義), 부부유별(夫婦有別), 장유유서(長幼有序),
붕우유신(朋友有信)이 이것이다. 종(從)은 순함이니, 좌씨(左氏)의 이른바 ‘가르침을 어김이 없다.’는 것이다.
이는 아마도 순(舜)으로 하여금 사도(司徒)의 관원이 되게 한 것이다. 규(揆)는 헤아림이니, 백규(百揆)는 여러 정사
를 헤아리는 관원으로 오직 당(唐)•우(虞) 때에 있었으니 주대(周代)의 총재(¾4宰)와 같은 것이다.
시서(時敍)는 때로 펴짐이니, 좌씨(左氏)의 이른바 ‘일을 폐함이 없다.’는 것이다. 사문(四門)은 사방의 문이니,
옛날에 손님의 예(禮)로 방국(邦國)『[제후국]』을 친히 하여 제후가 각기 방위에 따라 이르면 이를 주관하게 하였다.
그러므로 빈(賓)이라 한 것이다. 목목(穆穆)은 화함이 지극한 것이니, 좌씨(左氏)의 이른바 ‘흉한 사람이 없다.’는 것
이니, 이는 또 사악(四岳)의 벼슬을 겸한 것이다. 녹(麓)은 산기슭이다.
열(烈)은 빠름이요 미(迷)는 착란함이다. 《사기(史記)》에 이르기를 “요(堯)가 순(舜)으로 하여금 산림(山林)과 천택
(川澤)에 들어가게 하셨는데 폭풍과 뇌우(雷雨) 속에 순(舜)이 가면서도 혼미하지 않았다.” 하였다. 소씨(蘇氏)가 말
하기를 “홍수가 폐해를 입히므로 요(堯)가 순(舜)으로 하여금 산림에 들어가서 평원과 습지를 살펴보게 하였는데,
뇌우가 크게 이르러 딴 사람들은 두려워하여 떳떳한 법도를 잃었으나 순(舜)은 혼미하지 않으셨으니,
그 도량이 남보다 뛰어남이 있고 천지 귀신이 또한 혹 도움이 있었는가 보다.” 하였다. 내가 생각컨대 열풍과 뇌우의
비상한 변고를 만났으나 두려워하여 떳떳한 법도를 잃지 않는 것은 진실로 총명하고 성실하고 지혜로워 확고히 혼란
하지 않은 자가 아니면 능하지 못하다. 《주역(周易)》에 “우레가 백 리를 놀라게 하여도 수저와 울창주(鬱鬯酒)
『[울창주]』를 잃지 않았다.” 하였으니, 뜻이 이와 가깝다.』
*서경 ; 우서 ; 순전 ; 제3장
▣ 제3장(第三章)
『帝曰 格하라 汝舜아 詢事考言한대 乃言이 底可績이 三載니 汝陟帝位하라 舜이 讓于德하사 弗嗣하시다』
『 제요(帝堯)가 말씀하기를 “이리 오라! 순(舜)아. 일을 도모하고 말을 상고하건대 너의 말이 공적을 이룰 수 있음
을 본 것이 3년이니, 네가 제위에 오르라.” 하였다. 순(舜)은 덕이 있는 사람에게 사양하고 잇지 않으셨다.』
『格은 來요 詢은 謀요 乃는 汝요 底는 致요 陟은 升也라 堯言詢舜所行之事하고 而考其言컨대 則見汝之言이 致可有
功이 於今三年矣니 汝宜升帝位也라 讓于德은 讓于有德之人也라 或曰 謙遜하여 自以其德이 不足爲嗣也라』
『 격(格)은 옴이요 순(詢)은 도모함이요 내(乃)는 너요 저(底)는 이룸이요 척(陟)은 오름이다. 요(堯)가 말씀하기를
“순(舜)이 행한 일을 도모하고 말을 상고해 보건대 너의 말이 공적을 이룰 수 있음을 본 것이 지금 3년이 되었으니,
네가 마땅히 제위에 오르라.” 한 것이다. 양우덕(讓于德)은 덕이 있는 사람에게 사양한 것이다.
혹자는 “겸손하여 스스로 그 덕이 뒤를 이을 수 없다고 한 것이다.” 라고 한다.』
*서경 ; 우서 ; 순전 ; 제4장
▣ 제4장(第四章)
『正月上日에 受終于文祖하시다』
『 정월(正月) 초하루에 종(終)을 문조(文祖)께 받으셨다.』
『上日은 朔日也라 葉氏曰 上旬之日이라하고 曾氏曰 如上戊, 上辛, 上丁之類라하니 未詳孰是라 受終者는 堯於是終
帝位之事하여 而舜受之也라 文祖者는 堯始祖之廟니 未詳所指爲何人也라』
『 상일(上日)은 초하루이다. 섭씨(葉氏)는 “상순(上旬)의 날이다.” 하고 증씨(曾氏)는 “상무(上戊), 상신(上辛), 상정
(上丁) 따위와 같은 것이다.” 하니, 어느 것이 옳은지 미상이다. 수종(受終)은 요(堯)가 이에 제위(帝位)의 일을 마쳐서
순(舜)이 받은 것이다. 문조(文祖)는 요(堯)의 시조(始祖)의 사당이니, 어떤 사람을 가리키는 지는 자세하지 않다.』
*서경 ; 우서 ; 순전 ; 제5장
▣ 제5장(第五章)
『在璿璣玉衡하사 以齊七政하시다』
『 선기(璿璣)와 옥형(玉衡)으로 살펴 칠정(七政)을 고르게 하셨다.』
『在는 察也라 美珠를 謂之璿이요 璣는 機也니 以璿飾璣는 所以象天體之轉運也라 衡은 橫也니 謂衡簫也라 以玉爲管
하여 橫而設之하니 所以窺璣而齊七政之運行이니 猶今之渾天儀也라 七政은 日月五星也니 七者運行於天에 有遲有速
하고 有順有逆하니 猶人君之有政事也라 此는 言舜初攝位하여 整理庶務하시되 首察璣衡하여 以齊七政하시니 蓋曆象
授時는 所當先也라』
『○ 按渾天儀者는 天文志云 言天體者三家니 一曰周찠요 二曰宣夜요 三曰渾天이라 宣夜는 絶無師說하니 不知其狀如
何라 周찠之術은 以爲天似覆盆이라 蓋以斗極爲中하니 中高而四邊下어든 日月이 傍行?<之하니 日近而見之 爲晝요
日遠而不見이 爲夜라하니 蔡邕以爲考驗天象에 多所違失이라하니라 渾天說曰 天之形狀이 似鳥卵하니 地居其中하고
天包地外하여 猶卵之쥜黃하고 圓如彈丸이라 故로 曰渾天이라하니 言其形體渾渾然也라 其術은 以爲天半覆地上하고
半在地下하니 其天이 居地上見者一百八十二度半强이요 地下亦然이라 北極은 出地上三十六度요 南極은 入地下亦三
十六度而嵩高正當天之中이라 極南五十五度當嵩高之上하고 又其南十二度爲夏至之日道요 又其南二十四度爲春秋分
之日度요 又其南二十四度爲冬至之日道니 南下去地三十一度而已면 是夏至日이니 北去極六十七度요 春秋分은 去極
九十一度요 冬至는 去極一百一十五度니 此其大率也라 其南北極이 持其兩端이면 其天與日月星宿가 斜而廻轉하니
此必古有其法이언마는 遭秦而滅이러니 至漢武帝時하여 落下쥺이 始經營之하고 鮮于妄人이 又量度『(탁)』之하고
至宣帝時하여 耿壽昌이 始鑄銅而爲之象하고 宋錢樂이 又鑄銅作渾天儀하니 衡長八尺이요 孔徑一寸이요 璣徑八尺이
요 圓周二丈五尺强이라 轉而望之하여 以知日月星辰之所在하니 卽璿璣玉衡之遺法也라 歷代以來로 其法漸密이라
本朝因之하여 爲儀三重하니 其在外者는 曰六合儀니 平置黑單環하여 上刻『十二辰八干주:십이진팔간』四隅在地之
位하여 以準地面而定四方하고 側立黑雙環하여 背刻去極度數하고 以中分天脊하여 直跨地平하여 使其半入地下而結
於其子午하여 以爲天經하고 斜倚赤單環하여 背刻赤道度數하고 以平分天腹하여 橫繞天經하여 亦使半出地上하고
半入地下而結於其卯酉하여 以爲天緯하여 三環表裏가 相結不動하니 其天經之環은 則南北二極이 皆爲圓軸이라 虛中
而內向하여 以픫三辰四遊之環하나니 以其上下四方을 於是可考라 故로 曰六合이라 次其內曰三辰儀니 側立黑雙環
하고 亦刻去極度數하여 外貫天經之軸하고 內픫黃赤二道하니 其赤道則爲赤單環이니 外依天緯하되 亦刻宿度而結於
黑雙環之卯酉하고 其黃道則爲黃單環이니 亦刻宿度而又斜倚於赤道之腹하여 以交結於卯酉而半入其內하여 以爲春分
後之日軌하고 半出其外하여 以爲秋分後之日軌하고 又爲白單環하여 以承其交하여 使不傾컓하고 下設機輪하여 以水
激之하여 使其日夜隨天하여 東西運轉하여 以象天行하니 以其日月星辰을 於是可考라 故로 曰三辰이라 其最在內者
曰四遊儀니 亦爲黑雙環을 如三辰儀之制하여 以貫天經之軸하고 其環之內는 則兩面當中하여 各施直距하여 外指兩軸
而當其要『(腰)』中之內面하고 又爲小쥮하여 以受玉衡要中之小軸하여 使衡旣得隨環東西運轉하고 又可隨處南北低
昻하여 以待占候者之仰窺焉하니 以其東西南北이 無不周킂이라 故로 曰四遊니 此其法之大略也라 沈括曰 舊法에 規
環一面은 刻周天度하고 一面은 加銀丁하니 蓋以夜候天晦에 不可目察이면 則以手切之也라하니 古人以璿飾璣도 疑
亦爲此라 今大『(太)』史局秘書省에 銅儀가 制極精緻하니 亦以銅丁爲之라 曆家之說에 又以北斗魁四星爲璣杓하고
三星爲衡하니 今詳經文簡質하니 不應北斗二字를 乃用寓名이라 恐未必然이나 姑存其說하여 以廣異聞하노라』
『 재(在)는 살핌이다. 아름다운 구슬을 선(璿)이라 하고 기(璣)는 틀이니, 구슬로 틀을 꾸밈은 천체(天體)의 전운
(轉運)을 형상한 것이다. 형(衡)은 가로이니, 가로로 된 대통을 이른다. 옥으로 대통을 만들어 가로로 설치하였으니,
기(璣)를 살펴서 칠정(七政)의 운행을 똑고르게 하는 것이니, 지금의 혼천의(渾天儀)와 같다.
칠정(七政)은 일월(日月)과 오성(五星)이니, 일곱 가지가 하늘에 운행함에 느린 것도 있고 빠른 것도 있으며 순한 것
도 있고 거스르는 것도 있어 마치 군주에게 정사가 있는 것과 같다. 이는 순(舜)이 처음으로 섭위하여 여러 사무를
정리하되 첫번째로 선기와 옥형으로 살펴 칠정(七政)을 똑고르게 하였음을 말한 것이니, 역상(曆象)을 하여 농사철
을 알려줌은 마땅히 먼저 해야 할 일이다.』
『 ○ 살펴보건대 혼천의는 〈천문지(天文志)〉에 “천체를 말한 것이 삼가(三家)이니,
첫번째는 주비(周찠)이고 두번째는 선야(宣夜)이고 세번째는 혼천(渾天)이다. 선야는 스승으로 전해오는 학설이 전혀
없으니, 그 내용이 어떠한 지 알 수 없다. 주비의 방법은 하늘이 엎어놓은 동이와 같다고 하였다. 그리하여 두극(斗極)『[북두성(北斗星)과 북극성(北極星)]』을 중앙으로 삼으니, 중앙은 높고 사방 가장자리는 낮은데 해와 달이 옆으로
운행하여 돌아가는바, 해가 가까워서 보이면 낮이고 해가 멀어서 보이지 않으면 밤이다.” 하였는데, 채옹(蔡邕)은
“천상(天象)을 상고하고 징험함에 위배되고 맞지 않는 것이 많다.” 하였다.』
『 혼천설(渾天說)에는 이르기를 “하늘의 형상은 새알과 같으니, 땅은 가운데에 있고 하늘은 땅 밖을 싸고 있어서
알이 노른자를 싸고 있는 것과 같고 둥글기는 탄환과 같다. 그러므로 혼천의라 한다.” 하였으니,
그 형체가 혼혼(渾渾)함을 말한 것이다. 그 방법은 하늘이 반은 지상을 덮고 반은 지하에 있으니, 하늘이 지상에 있어
보이는 것이 182도와 반이 넘고, 지하도 그러하다. 북극(北極)은 지상으로 나온 것이 36도이고 남극(南極)은 지하로
들어간 것이 또한 36도인데 높은 곳이 바로 하늘의 중앙에 해당한다. 극남(極南)의 55도가 가장 높은 곳에 해당하고
또 그 남쪽 12도는 하지의 일도(日道)『[해가 다니는 길]』가 되고 또 그 남쪽 24도는 춘분과 추분의 일도(日道)가
되며, 또 그 남쪽 24도는 동지의 일도(日道)가 되니, 남쪽 아래로 땅과 31도가 떨어져 있을 뿐이면 이는 하짓날이니,
북쪽으로 북극과의 거리가 67도이고 춘분과 추분은 북극과의 거리가 91도이며 동지는 북극과의 거리가 115도이니,
이것이 그 대체이다. 남극과 북극이 두 끝을 잡고 있으면 하늘과 해와 달과 별이 비껴 회전하니, 이는 반드시 옛날에
이에 대한 법식이 있었을 것이나 진(秦)나라를 만나 불타 없어졌다.
그러다가 한(漢)나라 무제(武帝) 때에 이르러 낙하굉(落下쥺)이 처음으로 경영하고 선우망인(鮮于妄人)이 또 이것을
헤아렸으며, 선제(宣帝) 때에 이르러 경수창(耿壽昌)이 비로소 구리로 주조하여 상(象)을 만들고 송(宋)나라의 전악
(錢樂)이 또 구리로 주조하여 혼천의를 만드니, 가로의 길이가 8척(尺)이고 구멍의 지름이 1촌(寸)이며 틀은 지름이
8척(尺)이고 둘레는 2장(丈) 5척(尺)이 넘는다. 이것을 회전시키면서 바라보아 해와 달과 별의 소재를 알았으니,
곧 선기옥형의 유법(遺法)이다. 역대 이래로 이에 대한 법식이 점점 치밀해졌는데,
본조(本朝)『[송(宋)나라]』에서는 이를 따라 삼중(三重)의 의(儀)를 만들었으니, 밖에 있는 것을 육합의(六合儀)라
하는바, 흑색 단환(單環)『[한 개의 고리]』을 평평히 놓고 그 위에 십이진(十二辰)과 팔간(八干)을 네 귀퉁이 땅이
있는 위치에 새겨서 지면을 기준으로 하여 사방을 정하였다.
그리고 흑색 쌍환(雙環)『[쌍고리]』을 비스듬히 세운 다음 등에 북극과의 거리의 도수(度數)를 새기고 하늘의 등마
루를 반으로 나누어 곧바로 지평선을 넘어 반은 지하로 들어가서 자오선(子午線)에 묶어 천경(天經)으로 삼고, 적색
단환(單環)을 비스듬히 기울게 한 다음 등에 적도(赤道)의 도수(度數)를 새기고 하늘의 배를 반으로 나누어 천경(天
經)을 횡(橫)으로 돌아서 또한 반은 지상으로 나오고 반은 지하로 들어가게 하여 묘유(卯酉)에 묶어서 천위(天緯)로
삼아 세 고리의 겉과 속이 서로 연결되어 움직이지 않게 하였으니, 천경(天經)의 고리는 남극(南極)과 북극(北極) 두
극이 모두 둥근 축이 된다. 그리하여 가운데를 비우고 안을 향하여 삼진의(三辰儀)와 사유의(四遊儀)의 고리에 매니,
상하와 사방을 이것으로 상고할 수 있으므로 육합(六合)이라 하였다.』
『 다음으로 그 안에 있는 것을 삼진의(三辰儀)라 하니, 흑색 쌍환을 비스듬히 세운 다음 북극과의 거리 도수를 새기고
밖으로는 천경(天經)의 축을 꿰뚫고 안으로는 황도(黃道)와 적도(赤道)에 매단다. 적도는 적색 단환으로 만들었는바,
밖으로는 천위(天緯)에 의지하되 또한 28수의 도수를 새겨 흑색 쌍환의 묘유(卯酉)에 묶고, 황도는 황색 단환으로 만
들었는바, 또한 28수의 도수를 새기고 또 적도의 배에 비스듬히 기대게 하여 묘유에 묶어서 반은 안으로 들어가 춘분
뒤의 일궤(日軌)『[해의 궤도]』를 삼고 반은 밖으로 나와 추분 뒤의 일궤를 삼으며, 또 백색의 단환을 만들어 교차한
부분을 이어서 기울거나 빠지지 않게 하고 아래에는 틀에 바퀴를 설치하여 물로 격동시켜서 밤낮으로 천체(天體)를
따라 동서로 회전하게 하여 하늘의 운행을 상징하니, 해와 달과 별을 이것으로 상고할 수 있으므로 삼진(三辰)이라
하였다.』
『 그리고 가장 내면에 있는 것을 사유의(四遊儀)라 하니, 또한 흑색 쌍환을 만들기를 삼진의의 제도처럼 하여 천경
(天經)의 축에 꿰고 고리의 안은 양면이 중앙을 당하게 하여 각각 곧은 발을 설치하여 밖으로 두 축을 가리키면서
허리 가운데의 내면에 당하게 하고, 또 작은 구멍을 내어 옥형(玉衡)의 허리 가운데의 작은 축을 받게 하여 옥형이
이미 고리를 따라 동서로 회전하게 하고 또 곳에 따라 남북으로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게 하여 점후(占候)하는 자가
우러러 엿보도록 만드니, 동서남북으로 두루하지 않음이 없으므로 사유(四遊)라 이름하였는바, 이것이 그 방법의
대략이다.』
『 심괄(沈括)은 이르기를 “옛날 법에 규환(規環)『[둥근 고리]』의 일면에는 주천(周天)의 도수를 새기고 일면에는
은정(銀丁)『[은으로 찍어놓은 점]』을 가하였으니, 밤에 하늘을 관측함에 어두워서 눈으로 살필 수 없으면 손으로
만져보는 것이다.” 하였는바, 옛사람이 구슬로 틀을 꾸민 것도 의심컨대 또한 이 때문인 듯하다.
지금 태사국(太史局)과 비서성(秘書省)에 동의(銅儀)가 보관되어 있는데, 제도가 매우 정밀한바 또한 동정(銅丁)으로
만들었다. 역가(曆家)의 말에 “또 북두의 괴(魁) 네 별을 기(璣)의 자루라 하고 세 별을 형(衡)”이라 하는데 이제 경문
(經文)을 살펴보면 매우 간략하고 질박하니, 북두(北斗)의 두 글자『[기(璣)와 형(衡)을 가리킴]』를 써서 이름을
붙일 리가 없다. 이는 반드시 옳지는 않은 듯하나 우선 그 말을 두어서 딴 들음을 넓히는 바이다.』
*서경 ; 우서 ; 순전 ; 제6장
▣ 제6장(第六章)
『肆類于上帝하시며 禋于六宗하시며 望于山川하시며 킂于群神하시다』
『 드디어 상제(上帝)에게 유제사(類祭祀)를 지내시며 육종(六宗)에게 인제사(禋祭祀)를 지내시며 산천에 망제사
(望祭祀)를 지내시며 여러 신(神)에게 두루 제사하셨다.』
『肆는 遂也라 類, 禋, 望은 皆祭名이라 周禮에 肆師類造于上帝라하니 註云 郊祀者는 祭昊天之常祭니 非常祀而祭告
于天이면 其禮依郊祀爲之라 故曰類니 如泰誓武王伐商과 王制言天子將出에 皆云類于上帝가 是也라 禋은 精意以享之
謂라 宗은 尊也니 所尊祭者其祀有六이라 祭法曰 埋少牢於泰昭는 祭時也요 相近『(禳祈)』於坎壇은 祭寒暑也요 王宮
은 祭日也요 夜明은 祭月也요 『幽宗주:유종』은 祭星也요 雩宗은 祭水旱也라하니라 山川은 名山大川『五嶽四瀆주:
오악사독』之屬이니 望而祭之라 故曰望이라 킂은 周킂也라 群神은 謂丘陵墳衍古昔聖賢之類라 言受終觀象之後에 卽
祭祀上下神祗하여 以攝位告也라』
『 사(肆)는 드디어이다. 유(類)•인(禋)•망(望)은 모두 제사 이름이다.
《주례(周禮)》에 “드디어 여럿이 상제(上帝)에게 유조(類造)『[유제(類祭)의 예(禮)로 제사함]』했다.” 하였는데,
주(註)에 이르기를 “교사(郊祀)는 호천(昊天)을 제사하는 떳떳한 제사이니, 떳떳한 제사가 아니면서 하늘에 제사하여
고유하게 되면 그 예(禮)가 교사(郊祀)의 예(禮)를 따라서 하기 때문에 〈교사(郊祀)와 절차가 같다고 해서〉 유(類)라
한 것이니, 〈태서(泰誓)〉에 무왕(武王)이 상(商)나라를 정벌할 때와 〈왕제(王制)〉에 천자가 장차 나갈 때에 다
‘상제에게 유(類)제사를 지냈다’고 말한 것이 이것이다.” 하였다. 인(禋)은 뜻을 깨끗이 하여 제향하는 것을 이른다.
종(宗)은 높임이니, 높여 제사하는 것이 그 제사가 여섯 가지가 있다. 〈제법(祭法)〉에 이르기를 “소뢰(少牢)를 태소
(泰昭)에 묻음은 사시(四時)를 제사함이요, 감단(坎壇)에 기도함은 한서(寒暑)에 제사함이요, 왕궁(王宮)에 기도함은
해에 제사함이요, 야명(夜明)에 기도함은 달에 제사함이요, 유종(幽宗)에 기도함은 별에 제사함이요, 우종(雩宗)에
기도함은 수한(水旱)에 제사함이다.” 하였다. 산천(山川)은 명산대천(名山大川)으로 오악(五嶽)과 사독(四瀆) 따위
이니, 바라보고 제사하기 때문에 망(望)이라 한 것이다. 편(킂)은 두루함이다. 군신(群神)은 구릉과 분연(墳衍)『[물
가와 평지]』 및 옛날 성현(聖賢)과 같은 무리를 이른다. 종(終)을 받고 관상(觀象)한 뒤에 곧 상하(上下)의 신기
(神祗)에게 제사하여 섭위(攝位)함을 고유함을 말한 것이다.』
*서경 ; 우서 ; 순전 ; 제7장
▣ 제7장(第七章)
『輯五瑞하시니 旣月이어늘 乃日覲四岳群牧하시고 班『(頒)』瑞于群后하시다』
『 다섯 가지 서옥(瑞玉)을 거두시니 한 달이 다 되었는데, 날마다 사악(四岳)과 군목(群牧)을 만나보시고 서옥을
여러 제후들에게 나누어 돌려주셨다.』
『輯은 斂이라 瑞는 信也니 公執桓圭하고 侯執信圭하고 伯執躬圭하고 子執穀璧하고 男執蒲璧하여 五等諸侯執之하여
以合符於天子하여 而驗其信否也라 周禮에 天子執冒하여 以朝諸侯라하니 鄭氏註云 名玉以冒는 以德覆『(부)』冒天下
也라 諸侯始受命이면 天子錫以圭하나니 圭頭斜銳하고 其冒下斜刻하되 小大長短廣狹如之라가 諸侯來朝어든 天子以
刻處로 冒其圭頭하여 有不同者면 則辨其僞也라 旣는 盡이요 覲은 見이라 四岳은 四方之諸侯요 群牧은 九州之牧伯也
라 程子曰 輯五瑞는 徵五等之諸侯也라 此已上은 皆正月事니 至盡此月이면 則四方之諸侯有至者矣하니 遠近不同하여
來有先後라 故로 日日見之하여 不如他朝會之同期於一日이니 蓋欲以少接之면 則得盡其詢察禮意也라 班은 頒同이라
群后는 卽侯牧也라 旣見之後에 審知非僞면 則又頒還其瑞하여 以與天下正始也라』
『 집(輯)은 거둠이다. 서(瑞)는 신물(信物)이니, 공(公)은 환규(桓圭), 후(侯)는 신규(信圭), 백(伯)은 궁규(躬圭),
자(子)는 곡벽(穀璧), 남(男)은 포벽(蒲璧)을 잡아서 5등의 제후가 이것을 잡아 천자(天子)에게 부절(符節)을 합하여
진실 여부를 징험하는 것이다. 《주례(周禮)》에 “천자가 모(冒)를 잡고서 제후에게 조회를 받는다.” 하였는데,
정씨(鄭氏)의 주(註)에 이르기를 “옥(玉)을 모(冒)라고 이름한 것은 덕(德)이 온천하를 덮기 때문이다.” 하였다.
제후가 처음 명을 받으면 천자가 규(圭)를 하사하는데, 규(圭)의 머리는 비스듬하고 뾰족하며 모(冒)의 아래에는
비스듬히 새기되 대소(大小)와 장단(長短)과 광협(廣狹)을 똑같이 하였다가 제후가 조회오면 천자가 새긴 곳을 규
(圭)의 머리에 덮어 씌워 같지 않은 것이 있으면 거짓임을 분변한다. 기(旣)는 다함이요 근(覲)은 봄이다.
사악(四岳)은 사방의 제후이고 군목(群牧)은 구주(九州)의 목백(牧伯)이다. 정자(程子)가 말씀하기를 “다섯 가지
서옥을 거둠은 5등의 제후를 부른 것이다. 이 이상은 모두 정월(正月)의 일이니, 이 달이 다하게 되면 사방의 제후
중에 오는 자가 있는바, 원근(遠近)이 똑같지 않아 옴에 선후가 있으므로 날마다 만나보아서 딴 조회에 한 날을 똑
같이 기약하는 것과 같지 않다. 조금씩 접견하고자 해서이니, 이렇게 하면 물어보고 살핌과 예의(禮意)를 다할 수
있다.” 하였다. 반(班)은 반(頒)과 같다. 군후(群后)는 곧 후(侯)와 목(牧)이다. 이미 만나본 뒤에 거짓이 아님을 살펴
알았으면 또 그 서옥을 나누어 돌려주어서 천하와 더불어 시작을 바루는 것이다.』
*서경 ; 우서 ; 순전 ; 제8장
▣ 제8장(第八章)
『歲二月에 東巡守하사 至于岱宗하사 柴하시며 望秩于山川하시고 肆覲東后하시니 【五玉과 三帛과 二生과 一死贄러라】 協時月하사 正日하시며 同律度量衡하시며 修五禮하시며 『(五玉三帛二生一死贄)』 如五器하시고 卒乃復하시다
五月에 南巡守하사 至于南岳하사 如岱禮하시며 八月에 西巡守하사 至于西岳하사 如初하시며 十有一月에 朔巡守하사
至于北岳하사 如西禮하시고 歸格于藝祖하사 用特하시다』
『 순수(巡守)하는 해의 2월에 동쪽 지방을 순수(巡守)하여 대종(岱宗)『[태산(泰山)]』에 이르러 시(柴)제사를 지내
시며 산천을 바라보고 차례를 정하여 제사하고 마침내 동쪽 제후들을 만나보시니, 다섯 가지 서옥(瑞玉)과 세 가지
폐백과 두 가지 생물(生物)과 한 가지 죽은 예물이었다. 사시(四時)와 달을 맞추어 날짜를 바로잡으며 율(律)•도(度)•
양(量)•형(衡)을 통일시키며 다섯 가지 예(禮)를 닦으며 다섯 가지 기물『〔瑞玉〕』을 똑같게 하시고 마치면 다시
순수(巡守)하셨다. 5월에 남쪽 지방을 순수하여 남악(南岳)『[형산(衡山)]』에 이르러 대종(岱宗)의 예(禮)와 똑같이
하시며, 8월에 서쪽 지방을 순수하여 서악(西岳)『[화산(華山)]』에 이르러 처음과 똑같이 하시며, 11월에 북쪽 지방
을 순수하여 북악(北岳)『[항산(恒山)]』에 이르러 서쪽의 예와 똑같이 하시고, 돌아와 예조(藝祖)의 사당에 이르러
한 마리의 소를 써서 제사하셨다.』
『孟子曰 天子適諸侯曰巡守니 巡守者는 巡所守也라하시니라 歲二月은 當巡守之年二月也라 岱宗은 泰山也라 柴는
燔柴以祀天也요 望은 望秩以祀山川也라 秩者는 其牲幣祝號之次第니 如五岳은 視三公하고 四瀆은 視諸侯하고 其餘
는 視伯子男者也라 東后는 東方之諸侯也라 時는 謂四時요 月은 謂月之大小요 日은 謂日之甲乙이니 其法이 略見上篇
하니 諸侯之國에 其有不齊者면 則協而正之也라 律은 謂十二律이니 黃鍾, 大『(太)』簇, 姑洗, 츝賓, 夷則『(칙)』,
無射『(역)』, 大呂, 夾鍾, 仲呂, 林鍾, 南呂, 應鍾也라 六爲律이요 六爲呂하여 凡十二管이니 皆徑三分有奇요 空圍九
分이니 而黃鍾之長은 九寸이요 大呂以下는 律呂相間하여 以次而短하여 至應鍾而極焉하니 以之制樂而節聲音이면
則長者聲下하고 短者聲高하니 下者則重濁而舒遲하고 上者則輕淸而剽疾이요 以之審度而度『(탁)』長短이면 則九十
分黃鍾之長하여 一爲一分이니 而十分爲寸하고 十寸爲尺하고 十尺爲丈하고 十丈爲引이요 以之審量而量多少면 則黃
鍾之管에 其容子穀秬黍中者一千二百하여 以爲촾이니 而十촾爲合하고 十合爲升하고 十升爲斗하고 十斗爲斛이요 以
之平衡而權輕重이면 則黃鍾之촾의 所容千二百黍는 其重十二銖니 兩촾則二十四銖爲兩하고 十六兩爲斤하고 三十斤
爲鈞하고 四鈞爲石이니 此黃鍾所以爲萬事根本이니 諸侯之國에 其有不一者면 則審而同之也라 時月之差는 由積日而
成하니 其法則先粗而後精하고 度量衡은 受法於律하니 其法則先本而後末이라 故로 言正日이 在協時月之後하고 同律
이 在度量衡之先하니 立言之敍 蓋如此也라 五禮는 吉, 凶, 軍, 賓, 嘉也니 修之는 所以同天下之風俗이라 五玉은 五等
諸侯所執者니 卽五瑞也요 三帛은 諸侯世子는 執텛하고 公之孤는 執玄하고 附庸之君은 執黃이라 二生은 卿은 執羔
하고 大夫는 執雁이며 一死는 士는 執雉니 五玉, 三帛, 二生, 一死는 所以爲贄而見者라 此九字는 當在肆覲東后之下,
協時月正日之上이니 誤脫在此하니 言東后之覲에 皆執此贄也라 如五器는 劉侍講曰 如는 同也요 五器는 卽五禮之器
也니 周禮六器六贄는 卽舜之遺法也라 卒乃復者는 擧祀禮, 覲諸侯, 一正朔, 同制度, 修五禮, 如五器하여 數事皆畢이
면 則不復東行하고 而遂西向하여 且轉而南行也라 故曰卒乃復이라 南岳은 衡山이요 西岳은 華山이요 北岳은 恒山이
니 『二月東, 五月南, 八月西, 十一月北은 各以其時주:이월동』也라 格은 至也니 言至于其廟而祭告也라 藝祖는 疑卽
文祖라 或曰 文祖는 藝祖之所自出이라하니 未有所考也라 特은 特牲也니 謂一牛也라 古者에 君將出이면 必告于祖¥
5하고 歸면 又至其廟而告之하니 孝子不忍死其親하여 出告反面之義也라 王制曰 歸格于祖¥5라하니 鄭註曰 祖下及¥
5에 皆一牛라하고 程子는 以爲但言藝祖는 擧尊爾니 實皆告也라 但止就祖廟하여 共用一牛하여 不如時祭各設主於其
廟也라하시니 二說이 未知孰是일새 今兩存之하노라』
『 맹자(孟子)가 말씀하기를 “천자(天子)가 제후국(諸侯國)에 가는 것을 순수(巡守)라 하니, 순수는 지키는 곳을 순행
하는 것이다.” 하였다. 세이월(歲二月)은 순수하는 해를 당한 2월이다. 대종(岱宗)은 태산(泰山)이다. 시(柴)는 나무를
불태워 하늘에 제사함이요 망(望)은 바라보고 차례를 정하여 산천에 제사하는 것이다. 질(秩)은 희생과 폐백과 축호
(祝號)의 차례이니, 예컨대 오악(五岳)은 삼공(三公)에 비하고 사독(四瀆)은 제후(諸侯)에 비하고 그 나머지는 백(伯)•
자(子)•남(男)에 비하는 것과 같다. 동후(東后)는 동방의 제후이다. 시(時)는 사시(四時)이고 월(月)은 달의 크고 작음
이며 일(日)은 날의 갑을(甲乙)『[일진(日辰)]』을 이르니, 그 법이 대략 상편(上篇)에 보이니, 제후국에 똑같지 않은
것이 있으면 맞추어 바로잡는 것이다. 율(律)은 12율이니 황종(黃鍾), 태주(太簇), 고선(姑洗), 유빈(츝賓), 이칙(夷則),
무역(無射), 대려(大呂), 협종(夾鍾), 중려(仲呂), 임종(林鍾), 남려(南呂), 응종(應鍾)이다. 이 중에 여섯은 율(律)이고
여섯은 여(呂)여서 모두 12개의 관(管)이니, 모두 지름이 3푼하고 남음이 있으며 구멍의 둘레는 9푼이니, 황종(黃鍾)
의 길이는 9촌이고 대려(大呂) 이하는 율려(律呂)가 서로 사이하여 차례로 짧아져서 응종(應鍾)에 이르러 가장 짧다.
이것을 가지고 악기를 만들어 음성을 조절하면 긴 것은 소리가 낮고 짧은 것은 소리가 높아지니, 낮은 것은 무겁고 탁
하여 느리고 높은 것은 가볍고 맑아 빠르다. 그리고 이것을 가지고 도(度)를 살펴 장단(長短)을 헤아리면 황종의 길이
를 90분하여 1분이 1푼이 되니, 10푼이 1촌(寸)이고 10촌이 1척(尺)이고 10척이 1장(丈)이고 10장이 1인(引)이다.
이것을 가지고 양(量)을 살펴 다소(多少)를 헤아리면 황종의 관에 곡식 중에 중간 크기인 검은 기장 1천2백 개가 들어
가는바, 이것을 약(촾)이라 하니, 10약이 1합(合)이고 10홉이 1승(升)이고 10승이 1두(斗)이고 10두가 1곡(斛)이다.
이것을 가지고 형(衡)을 고르게 하여 경중(輕重)을 저울질하면 황종의 약(촾)에 들어가는 1천 2백 개의 기장은 그
무게가 12수(銖)인바, 2약(촾)이면 24수(銖)이니 이것이 1양(兩)이고 16냥이 1근(斤)이고 30근이 1균(鈞)이고 4균이
1석(石)이니, 이는 황종이 만사의 근본이 되는 것인바, 제후국에 통일되지 않은 것이 있으면 살펴서 통일하는 것이다.
사시(四時)와 달의 차이는 날짜가 누적됨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니 그 법은 거친 것을 먼저하고 정한 것을 뒤에 하며,
도(度)•양(量)•형(衡)은 율(律)『[황종관(黃鍾管)]』에서 법을 받으니 그 법은 본(本)을 먼저하고 말(末)을 뒤에 한다.
그러므로 날짜를 바로잡음이 사시와 달을 맞추는 뒤에 있고, 율을 통일함이 도•량•형의 앞에 있는 것이니, 글을 쓰는
차례가 이와 같은 것이다.』
『 오례(五禮)는 길(吉)•흉(凶)•군(軍)•빈(賓)•가(嘉)의 다섯 가지 예(禮)이니, 닦는다는 것은 천하의 풍속을 통일하는
것이다. 오옥(五玉)은 다섯 등급의 제후가 잡는 것이니, 곧 다섯 가지 서옥(瑞玉)이며, 삼백(三帛)은 제후의 세자(世子)
는 붉은 비단을 잡고 공(公)의 고(孤)는 검은 비단을 잡고 부용(附庸)의 군주는 누런 비단을 잡는 것이다.
이생(二生)은 경(卿)은 염소를 잡고 대부(大夫)는 기러기를 잡는 것이며 일사(一死)는 사(士)는 꿩을 잡는 것이니,
오옥(五玉)과 삼백(三帛), 이생(二生)과 일사(一死)는 예물을 잡고서 만나보는 것이다. 이 아홉 글자는 마땅히 ‘사근동
후(肆覲東后)’의 아래와 ‘협시월정일(協時月正日)’의 위에 있어야 하니, 오탈(誤脫)되어 여기에 있는 것이니, 동쪽 제후
를 만나볼 적에 모두 이 예물을 잡음을 말한 것이다. 여오기(如五器)는 유시강(劉侍講)이 말하기를 “여(如)는 같게 함
이요 오기(五器)는 곧 오례(五禮)의 기물이니, 《주례(周禮)》의 육기(六器)와 육지(六贄)는 곧 순(舜)의 유법(遺法)
이다.” 하였다. 졸내복(卒乃復)은 제사의 예를 거행하고 제후를 만나보고 정삭(正朔)을 통일하고 제도를 통일하고
오례(五禮)를 닦고 오기(五器)를 똑같게 하여 여러 일이 다 끝났으면 다시 동쪽으로 가지 않고 마침내 서쪽으로 향하
였다가 다시 바꾸어 남쪽으로 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졸내복(卒乃復)이라고 말한 것이다. 남악(南岳)은 형산(衡山)이
고 서악(西岳)은 화산(華山)이고 북악(北岳)은 항산(恒山)이니, 2월에는 동쪽, 5월에는 남쪽, 8월에는 서쪽, 11월에는
북쪽에 가는 것은 각기 그 철을 따른 것이다. 격(格)은 이름이니, 그 사당에 이르러 제사하여 고유함을 말한 것이다.
예조(藝祖)는 의심컨대 곧 문조(文祖)인 듯하다. 혹자는 말하기를 “예조는 문조가 말미암아 나온 것이다.”라고 하는데,
상고한 바가 없다. 특(特)은 특생(特牲)이니, 한 마리의 소를 이른다. 옛날에 군주가 장차 나갈 때에는 반드시 조고(祖
考)의 사당과 아버지의 사당에 고유하고, 돌아와서는 또 그 사당에 이르러 고유하였으니, 효자는 차마 그 어버이를
죽었다고 여기지 못하여, 나가면 고하고 돌아오면 얼굴을 뵙는 뜻이다. 〈왕제(王制)〉에 “돌아와 조녜(祖¥5)에 이르
렀다.” 하였는데, 정주(鄭註)에 이르기를 “할아버지 이하로 아버지 사당에 이르기까지 모두 한 마리 소를 쓴다.” 하였고, 정자(程子)는 “단지 예조(藝祖)만을 말한 것은 높은 분을 든 것이니, 실제로는 모두 고유하는 것이다.
다만 조묘(祖廟)에 나아가 함께 한 마리의 소를 써서 시제(時祭)에 각기 그 사당에 신주를 설치하는 것과는 같지 않다.” 하였으니, 두 해설이 어느 것이 옳은지 알 수 없으므로 이제 두 가지를 모두 두는 바이다.』
*서경 ; 우서 ; 순전 ; 제9장
▣ 제9장(第九章)
『五載에 一巡守어시든 群后는 四朝하나니 敷奏以言하시며 明試以功하시며 車服以庸하시다』
『 5년에 한번 순수하시면 여러 제후는 네 곳에서 조회하니, 펴서 아뢰기를 말로써 하게 하며 밝게 시험하기를 공으
로써 하며 수레와 의복으로 공을 표창하셨다.』
『五載之內에 天子巡守者一이요 諸侯來朝者四니 蓋巡守之明年엔 則東方諸侯來朝于天子之國하고 又明年엔 則南方
之諸侯來朝하고 又明年엔 則西方之諸侯來朝하고 又明年엔 則北方之諸侯來朝하며 又明年엔 則天子復巡守하니 是則
天子諸侯雖有尊卑나 而一往一來하여 禮無不答이라 是以로 上下交通하여 而遠近洽和也라 敷는 陳이요 奏는 進也라
周禮曰 『民功曰庸주:민공왈용』이라하니라 程子曰 敷奏以言者는 使各陳其爲治之說하여 言之善者는 則從而明考其
功하여 有功則賜車服以旌異之하고 其言不善이면 則亦有以告飭之也라 林氏曰 天子巡守엔 則有協時月日以下等事요
諸侯來朝엔 則有敷奏以言以下等事니라』
『 5년 안에 천자가 순수(巡守)하는 것이 한번이고 제후가 내조(來朝)하는 것이 네 번이니, 순수한 다음 해에는 동방
(東方)의 제후가 천자국에 내조하고 또 그 다음 해에는 남방(南方)의 제후가 내조하고 또 그 다음 해에는 서방(西方)의
제후가 내조하고 또 그 다음 해에는 북방(北方)의 제후가 내조하며 또 그 다음 해에는 천자가 다시 순수하니,
이는 천자와 제후가 비록 존비(尊卑)의 구분이 있으나 한번 가고 한번 와서 예(禮)에 답하지 않음이 없는 것이다.
이러므로 상하(上下)가 서로 통하여 원근(遠近)이 흡족하고 화합하는 것이다. 부(敷)는 폄이요 주(奏)는 아룀이다.
《주례(周禮)》에 “백성의 공을 용(庸)이라 한다.” 하였다.』
『 정자(程子)가 말씀하였다. “부주이언(敷奏以言)이란 각기 다스리는 바를 아뢰게 하여, 말이 선(善)하면 따르고 그
공을 밝게 상고하여 공이 있으면 수레와 의복을 하사하여 표창하고 특별히 우대하며, 그 말이 선(善)하지 못하면 또한
고하고 경계함이 있는 것이다.”』
『 임씨(林氏)가 말하였다. “천자가 순수할 적에는 협시월일(協時月日) 이하 등의 일이 있고, 제후가 내조할 적에는
부주이언(敷奏以言) 이하 등의 일이 있는 것이다.”』
*서경 ; 우서 ; 순전 ; 제10장
▣ 제10장(第十章)
『肇十有二州하시고 封十有二山하시며 濬川하시다』
『 12주(州)를 처음으로 만들고 12주(州)의 산(山)을 봉표(封表)하며 내를 깊이 파셨다.』
『肇는 始也라 十二州는 冀, ", 靑, 徐, 荊, 揚, 豫, 梁, 雍, 幽, 幷, 營也라 中古之地는 但爲九州하니 曰冀"靑徐荊揚豫梁
雍이니 禹治水作貢에도 亦因其舊러니 及舜卽位하여 以冀靑地廣이라하여 『始分冀東恒山之地주:시분기동항산지지』
하여 爲幷州하고 其東北醫無閭之地를 爲幽州하며 又分靑之東北遼東等處하여 爲營州하여 而冀州는 止有河內之地
하니 今河東一路是也라 封은 表也니 封十二山者는 每州에 封表一山하여 以爲一州之鎭이니 如職方氏言 揚州其山鎭
曰會稽之類라 濬川은 濬導十二州之川也라 然이나 舜旣分十有二州로되 而至商時에 又但言九圍, 九有하고 周禮職方
氏에 亦止列爲九州하여 有揚荊豫靑"雍幽冀幷하고 而無徐梁營也하니 則是爲十二州는 蓋不甚久하니 不知其自何時復
合爲九也라 吳氏曰 此一節은 在禹治水之後니 其次序不當在四罪之先이라 蓋史官이 泛記舜所行之大事요 初不計先後
之敍也라』
『 조(肇)는 처음이다. 12주(州)는 기(冀)•연(")•청(靑)•서(徐)•형(荊)•양(揚)•예(豫)•양(梁)•옹(雍)•유(幽)•병(幷)•
영(營)이다. 중고(中古)『[우(禹)가 치수(治水)하던 시기]』의 땅은 다만 9주(州)였으니, 기(冀)•연(")•청(靑)•서(徐)•
형(荊)•양(揚)•예(豫)•양(梁)•옹(雍)이다. 우(禹)가 홍수를 다스리고 공(貢)을 만들 때에도 옛것을 그대로 따랐었는데,
순(舜)이 즉위하자 기주(冀州)와 청주(靑州)의 땅이 넓다 하여 비로소 기주(冀州)의 동쪽인 항산(恒山)의 땅을 나누어
병주(幷州)를 만들고, 그 동북쪽인 의무려(醫無閭)의 땅을 유주(幽州)로 만들었으며, 또 청주(靑州)의 동북쪽인 요동
(遼東) 등지를 나누어 영주(營州)를 만들어서 기주(冀州)는 단지 하내(河內)의 땅을 소유하였으니, 지금의 하동로
(河東路) 한 곳이 이것이다.
봉(封)은 표함이니, 12산(山)을 봉표(封表)한다는 것은 주(州)마다 한 산(山)을 봉표하여 한 주(州)의 진산(鎭山)으로
삼은 것이니, 예를 들면 《주례(周禮)》〈직방씨(職方氏)〉에 “양주(揚州)의 진산은 회계산(會稽山)이다.”라고 말한
것과 같은 따위이다. 준천(濬川)은 12주의 냇물을 깊이 파서 인도하는 것이다. 그러나 순(舜)이 이미 12주를 나누었
으나 상(商)나라 때에 이르러 단지 구위(九圍), 구유(九有)라고 말하였고, 《주례(周禮)》의 〈직방씨(職方氏)〉에도
단지 9주(州)를 나열하여 양(揚)•형(荊)•예(豫)•청(靑)•연(")•옹(雍)•유(幽)•기(冀)•병(幷)만 있고 서(徐)•양(梁)•
영(營)은 없으니, 그렇다면 이 12주를 만든 것이 그다지 오래가지 않은 것이니, 언제 다시 합하여 아홉이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 오씨(吳氏)가 말하였다. “이 한 절(節)은 우(禹)가 홍수를 다스린 뒤에 있는 것이니, 그 차례가 사흉(四凶)을 죄준
일의 앞에 있을 수가 없다. 이는 사관(史官)이 순(舜)이 행한 큰 일을 범연히 기록한 것이요, 애당초 선후의 차례를
따지지 않은 것이다.”』
*서경 ; 우서 ; 순전 ; 제11장
▣ 제11장(第十一章)
『象以典刑하사되 流宥五刑하시며 鞭作官刑하시고 ©/作敎刑하사되 金作贖刑하시며 챞災는 肆赦하시고 ¶:終은
賊刑하사되 欽哉欽哉하사 惟刑之恤哉하시다』
『 떳떳한 형벌로 보여주되 유형(流刑)으로 오형(五刑)을 용서해주시며, 채찍은 관부(官府)의 형벌로 만들고 회초리는
학교(學校)의 형벌로 만들되 황금으로 속죄하는 형벌을 만드시며, 과오와 불행으로 지은 죄는 풀어 놓아주고 믿고 끝
까지 재범(再犯)하는 자는 죽이는 형벌을 하시되 공경하고 공경하여 형벌을 신중히 하셨다.』
『象은 如天之垂象以示人이요 而典者는 常也라 示人以常刑은 所謂墨, ¯ 쯹, 宮, 大µ?五刑之正也니 所以待夫元惡大?
殺人傷人穿츓淫放 凡罪之不可宥者也요 流宥五刑者는 流는 遣之使遠去니 如下文流放竄튷之類也라 宥는 寬也니 所以
待夫罪之稍輕이니 雖入於五刑이나 而情可矜, 法可疑와 與夫親貴勳勞而不可加以刑者는 則以此而寬之也라 鞭作官刑
者는 木末垂革이니 官府之刑也요 ©/作敎刑者는 夏楚二物이니 學校之刑也니 皆以待夫罪之輕者라 金作贖刑者는
『金은 黃金주:금황금』이요 贖은 贖其罪也니 蓋罪之極輕하여 雖入於鞭©/之刑이나 而情法猶有可議者也라 此五句者
는 從重入輕하여 各有條理하니 法之正也라 肆는 縱也라 챞災肆赦者는 챞은 謂過誤요 災는 謂不幸이니 若人이 有如此
而入於刑이면 則又不待流宥金贖而直赦之也라 賊은 殺也라 ¶:終賊刑者는 ¶:는 謂有恃요 終은 謂再犯이니 若人有如此
而入於刑이면 則雖當宥當贖이라도 亦不許其宥하고 不聽其贖하여 而必刑之也라 此二句者는 或由重而卽輕하고 或由
輕而卽重하니 蓋用法之權衡이니 所謂法外意也라 聖人立法制刑之本末을 此七言者에 大略盡之矣라 雖其輕重取舍陽
舒陰慘之不同이나 然欽哉欽哉惟刑之恤之意는 則未始不行乎其間也라 蓋其輕重毫釐之間에 各有攸當者하니 乃天討不
易之定理요 而欽恤之意가 行乎其間하니 則可以見聖人好生之本心也라 據此經文하면 則五刑은 有流宥而無金贖하고
周禮秋官에 亦無其文이러니 至呂刑하여 乃有五等之罰하니 疑穆王始制之니 非法之正也라 蓋當刑而贖이면 則失之輕
이요 疑赦而贖이면 則失之重이며 且使富者幸免하고 貧者受刑은 又非所以爲平也라』
『 상(象)은 하늘이 상(象)을 드리워 사람에게 보여주는 것과 같은 것이며 전(典)은 떳떳함이다.
사람들에게 떳떳한 형벌을 보여준다는 것은 이른바 묵(墨)•의(¯•비(쯹)•궁(宮)•대벽(大µ?) 등 다섯 가지 형벌의 바른
것이니, 원악대대(元惡大?)로서 사람을 죽이거나 사람을 상해(傷害)하며 담을 뚫고 담을 넘어가 도둑질한 자와 음란
하고 방탕하여 무릇 용서할 수 없는 죄를 지은 자들을 대하는 것이요, 유유오형(流宥五刑)은 유(流)는 보내어 멀리
떠나가게 하는 것이니, 아랫글의 유(流)•방(放)•찬(竄)•극(튷)과 같은 따위이다.
유(宥)는 관대하게 처벌하는 것으로 죄가 다소 가벼운 자를 대하는 것이니, 비록 오형(五刑)에 해당되나 정상이 애처
롭고 법에 의심스러운 자와 친척『[왕족(王族)]』과 귀한 자와 공로가 있어 형벌을 가할 수 없는 자에게는 이로써
관대하게 처벌하는 것이다. 편작관형(鞭作官刑)은 나무 끝에 가죽을 늘어뜨린 것이니 관부(官府)의 형벌이며,
복작교형(©/作敎刑)은 복(©/)은 하(夏), 초(楚)『[모두 싸리나무임]』 두 물건으로 학교(學校)의 형벌이니,
이는 모두 죄가 가벼운 자를 대하는 것이다. 금작속형(金作贖刑)은 금(金)은 황금이고 속(贖)은 그 죄를 속죄함이니,
죄가 지극히 가벼워서 비록 편복(鞭©/)의 형벌에 해당하나 정상과 법에 오히려 의논할 만함이 있는 자이다.
이 다섯 구(句)는 무거운 것으로부터 가벼운 것으로 들어가 각기 조리가 있으니, 법의 바른 것이다.
사(肆)는 풀어 놓아줌이다. 생재사사(챞災肆赦)는 생(챞)은 과오를 이르고 재(災)는 불행을 이르니, 만약 사람이 이와
같아서 형벌에 들어감이 있으면 또 유형(流刑)으로 관대하게 처벌하거나 황금으로 속죄하기를 기다리지 않고 그대로
사면하는 것이다. 적(賊)은 죽임이다. 호종적형(¶:終賊刑)은 호(¶:)는 믿음이 있는 것이요 종(終)은 다시 범(犯)하는
것이니, 만약 사람이 이와 같이 하여 형벌에 들어감이 있으면 비록 관대한 처벌에 해당하고 속죄에 해당하더라도 또한
관대하게 처벌함을 허락하지 않고 속죄함을 허락하지 않고 반드시 형벌하는 것이다. 이 두 구(句)는 혹 무거운 것으로
부터 가벼운 것에 나아가고 가벼운 것으로부터 무거운 것에 나아가니, 이는 법을 쓰는 권형(權衡)이니, 이른바 법 밖의
뜻이라는 것이다. 성인(聖人)이 법을 세우고 형벌을 제정한 본말(本末)을 이 일곱 말씀에서 대략 다하였다.
비록 경중(輕重)과 취사(取捨)와 양(陽)으로 펴주고 음(陰)으로 참혹하게 함이 똑같지 않으나 공경하고 공경하여 형벌
을 신중히 하는 뜻은 일찍이 그 사이에 행해지지 않음이 없는 것이다. 가볍고 무거움이 털끝 만한 사이에 각각 해당
하는 바가 있으니, 이는 바로 천토(天討)의 바꿀 수 없는 정해진 이치이며, 공경하고 신중히 하는 뜻이 그 사이에 행
해지니, 여기에서 성인(聖人)이 살려주기를 좋아하는 본심을 볼 수 있다.』
『 이 경문(經文)에 의거하면 오형(五刑)은 유유(流宥)만 있고 금속(金贖)이 없으며, 《주례(周禮)》의 〈추관(秋官)〉
에도 이러한 글이 없었는데 〈여형(呂刑)〉에 이르러 5등의 벌금이 있으니, 목왕(穆王)이 처음 제정한 듯하니, 법의
바른 것이 아니다. 마땅히 형벌하여야 할 때에 속죄해주면 너무 가벼운 데에 잘못되고, 의심스러워 용서하여야 할
때에 속전(贖錢)을 내게 하면 너무 무거운 데에 잘못되며, 또 부유한 자는 요행으로 면하고 가난한 자는 형벌을 받는
것은 또 공평한 것이 아니다.』
*서경 ; 우서 ; 순전 ; 제12장
▣ 제12장(第十二章)
『流共工于幽洲하시며 放驩兜于崇山하시며 竄三苗于三危하시며 튷툵于羽山하사 『四罪주:사죄』하신대
而天下咸服하니라』
『 공공(共工)을 유주(幽洲)에 유배하고 환도(驩兜)를 숭산(崇山)에 유치(留置)하고 삼묘(三苗)를 삼위(三危)에
몰아내고 곤(툵)을 우산(羽山)에 가두어 네 사람을 죄주시니, 천하가 다 복종하였다.』
『流는 遣之遠去하여 如水之流也요 放은 置之於此하여 不得他適也요 竄은 則驅逐禁錮之요 튷은 則拘囚困苦之니
隨其罪之輕重而異法也라 共工, 驩兜, 툵은 事見上篇하니라 三苗는 國名이니 在江南荊揚之間하니 恃險爲亂者也라
幽洲는 北裔之地니 水中可居曰洲라 崇山은 南裔之山이니 在今澧州하니라 三危는 西裔之地니 卽雍之所謂三危旣宅
者요 羽山은 東裔之山이니 卽徐之蒙羽其藝者라 服者는 天下皆服其用刑之當罪也라 程子曰 舜之誅四凶에 怒在四凶
하니 舜何與焉이시리오 蓋因是人有可怒之事而怒之하시니 聖人之心은 本無怒也라 聖人은 以天下之怒爲怒라 故로
天下咸服之라 春秋傳所記四凶之名은 與此不同이라 說者以窮奇爲共工하고 渾敦爲驩兜하고 ¥|쿆爲三苗하고 쩾?
爲툵이라하니 不知其果然否也로라』
『 유(流)는 보내어 멀리 가게 해서 물이 흘러가는 것과 같이 하는 것이요, 방(放)은 이 곳에 가두어 딴 곳에 가지 못
하게 하는 것이요, 찬(竄)은 구축(驅逐)하고 금고(禁錮)함이요, 극(튷)은 가두어서 곤궁하게 하는 것이니,
그 죄의 경중에 따라 법을 달리한 것이다. 공공(共工)•환도(驩兜)•곤(툵)은 일이 상편(上篇)에 보인다.
삼묘(三苗)는 나라 이름이니, 강남(江南)의 형주(荊州)와 양주(揚州) 사이에 있었으니, 지형의 험함을 믿고 난을
일으킨 자이다. 유주(幽洲)는 북예(北裔)『[북쪽 변방]』의 땅이니, 물 가운데 거처할 만한 곳을 주(洲)라 한다.
숭산(崇山)은 남예(南裔)의 산이니, 지금의 예주(澧州)에 있었다. 삼위(三危)는 서예(西裔)의 땅이니, 곧 옹주(雍州)
의 이른바 ‘삼위가 이미 집을 짓고 살 수 있다’는 것이고, 우산(羽山)은 동예(東裔)의 산(山)이니, 곧 ‘서주(徐州)의
몽산(蒙山)과 우산(羽山)이 곡식을 심을 수 있다’는 것이다.
복(服)은 천하가 다 형벌을 씀이 죄에 합당함에 복종한 것이다.』
『 정자(程子)가 말씀하였다. “순(舜)이 사흉(四凶)을 처벌함에 노여움이 사흉에게 있었으니, 순(舜)이 어찌 관여하
셨겠는가. 이 사람들에게 노여워할 만한 일이 있음으로 인하여 노여워하신 것이니, 성인(聖人)의 마음은 본래 노여워
함이 없다. 성인(聖人)은 천하의 노여움으로 노여움을 삼기 때문에 천하가 다 복종하는 것이다.”』
『 《춘추전(春秋傳)》에 기록한 바 사흉의 이름이 여기와 같지 않은데, 해설하는 자는 궁기(窮奇)를 공공(共工)이라
하고 혼돈(渾敦)을 환두(驩兜)라 하고 도철(¥|쿆)을 삼묘(三苗)라 하고 도올(쩾?)을 곤(툵)이라 하니,
그 말이 과연 옳은 지는 알 수 없다.』
*서경 ; 우서 ; 순전 ; 제13장
▣ 제13장(第十三章)
『二十有八載에 帝乃±6落커시늘 百姓은 如喪考쯼를 三載하고 四海는 촀密八音하니라』
『 섭위(攝位)한 지 28년만에 제요(帝堯)가 마침내 조락(±6落)『[승하]』하시니, 백성들은 고비(考쯼)의 상(喪)을
당한 듯이 3연복(年服)을 입었고 사해에서는 팔음(八音)의 악기를 그쳐 조용히 하였다.』
『±6落은 死也니 死者는 魂氣歸于天이라 故曰±6요 體魄歸于地라 故曰落이라 喪은 爲之服也라 촀은 絶이요 密은
靜也라 八音은 金, 石, 絲, 竹, 匏, 土, 革, 木也라 言堯聖德廣大하여 恩澤隆厚라 故로 四海之民思慕之深이 至於如此也
라 儀禮에 圻內之民은 爲天子齊衰三月하고 圻外之民은 無服이어늘 今應服三月者 如喪考쯼하고 應無服者촀密八音
이라 堯十六卽位하여 在位七十載요 又試舜三載요 老不聽政二十八載에 乃崩하시니 在位通計百單一年이라』
『 조락(±6落)은 죽음이니, 죽은 자는 혼기(魂氣)가 하늘로 돌아가기 때문에 조(±6)라 하고, 체백(體魄)이 땅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낙(落)이라 한 것이다. 상(喪)은 위하여 복(服)을 입는 것이다. 알(촀)은 끊음이요 밀(密)은 조용히
하는 것이다. 팔음(八音)은 금(金)•석(石)•사(絲)•죽(竹)•포(匏)•토(土)•혁(革)•목(木)을 소재(素材)로 한 악기(樂器)
이다. 요(堯)는 성덕(聖德)이 광대하여 은택이 높고 후하였으므로 사해의 백성들이 사모함의 깊음이 이와 같음에
이름을 말한 것이다. 《의례(儀禮)》에 “기내(圻內)의 백성은 천자를 위하여 재최(齊衰) 3월복(月服)을 입고 기외
(圻外)의 백성은 복(服)이 없다.” 하였는데, 이제 마땅히 3월복을 입어야 할 자가 고비(考쯼)의 상을 당한 듯이 하고,
마땅히 복이 없어야 할 자가 8음의 악기를 그쳐 조용히 한 것이다. 요(堯)가 16세에 즉위하여 재위한 지가 70년이고
또 순(舜)을 시험하여 등용한 것이 3년이고 늙어서 정사를 다스리지 않은 지 28년 만에 붕(崩)하셨으니, 재위한 것이
통틀어 101년이다.』
*서경 ; 우서 ; 순전 ; 제14장
▣ 제14장(第十四章)
『月正元日에 舜이 格于文祖하시다』
『 정월(正月) 원일(元日)에 순(舜)이 문조(文祖)의 사당에 나아가셨다.』
『月正은 正月也요 元日은 朔日也라 漢孔氏曰 舜服堯喪하여 三年畢에 將卽政이라 故로 復至文祖廟告하시니라 蘇氏
曰 受終은 告攝이요 此는 告卽位也라 然이나 春秋國君이 皆以遭喪之明年正月로 卽位於廟而改元이어늘 孔氏云 喪畢
之明年이라하니 不知何所據也라』
『 월정(月正)은 정월(正月)이고 원일(元日)은 초하루이다. 한(漢)나라 공씨(孔氏)가 말하였다. “순(舜)이 요(堯)의
상을 입어 3년을 마치자 장차 정사에 나아가려 하였으므로 다시 문조(文祖)의 사당에 이르러 고유한 것이다.”
소씨(蘇氏)가 말하였다. “위의 수종(受終)은 섭정(攝政)을 고유한 것이요, 여기서는 즉위함을 고유한 것이다.
그러나 《춘추(春秋)》에 국군(國君)이 모두 상을 당한 다음해 정월에 사당에서 즉위하고 개원(改元)하였는데,
공씨(孔氏)는 상을 마친 다음해라 하였으니, 무엇을 근거한 것인지 알 수 없다.”』
*서경 ; 우서 ; 순전 ; 제15장
▣ 제15장(第十五章)
『詢于四岳하사 闢四門하시며 明四目하시며 達四聰하시다』
『 사악(四岳)에게 물어 사방의 문을 열어놓고 사방의 눈을 밝히고 사방의 귀를 통하게 하셨다.』
『詢은 謀요 闢은 開也라 舜이 旣告廟卽位하고 乃謀治于四岳之官하사 開四方之門하여 以來天下之賢俊하고
廣四方之視聽하여 以決天下之壅蔽하시니라』
『 순(詢)은 도모함이요 벽(闢)은 여는 것이다. 순(舜)이 이미 사당에 고유한 다음 즉위하고 마침내 사악(四岳)의
관원들에게 정사를 도모하여, 사방의 문을 열어 천하의 현준(賢俊)을 오게 하고, 사방의 보고 들음을 넓혀 천하의
막히고 가려진 것을 터놓은 것이다.』
*서경 ; 우서 ; 순전 ; 제16장
▣ 제16장(第十六章)
『咨十有二牧하사 曰 食哉惟時니 柔遠能邇하며 惇德允元하고 而難任『(壬)』人이면 蠻夷도 率服하리라』
『 12목(牧)에게 물으시어 말씀하였다. “곡식은 때『[농사철]』를 잘 맞추어야 하니, 멀리 있는 자를 회유하고 가까이
있는 자를 길들이며 덕이 있는 자를 후대하고 어진 자를 믿으며 간사한 자를 막으면, 만이(蠻夷)도 거느리고 와서
복종할 것이다.”』
『牧은 養民之官이니 十二牧은 十二州之牧也라 王政은 以食爲首요 農事는 以時爲先이니 舜言足食之道 惟在於不違
農時也라 柔者는 寬而撫之也요 能者는 擾而習之也니 遠近之勢如此하니 先其略而後其詳也라 惇은 厚요 允은 信也라
德은 有德之人也요 元은 仁厚之人也라 難은 拒絶也라 任은 古文作壬하니 包藏凶惡之人也라 言當厚有德, 信仁人하고
而拒奸惡也라 凡此五者를 處之各得其宜면 則不特中國順治라 雖蠻夷之國이라도 亦相率而服從矣리라』
『 목(牧)은 백성을 기르는 관원이니, 12목(牧)은 12주(州)의 목(牧)이다. 왕정(王政)은 양식을 첫번째로 삼고 농사는
때를 제일로 삼으니, 순(舜)이 양식을 풍족히 하는 방도가 오직 농사철을 어기지 않음에 있음을 말씀한 것이다.
유(柔)는 너그럽게 하여 어루만짐이요, 능(能)은 길들여 익숙하게 함이니, 원근의 형세가 이와 같으니, 간략함을 먼저
하고 자세함을 뒤에 한 것이다. 돈(惇)은 후대함이요 윤(允)은 믿음이다. 덕(德)은 덕이 있는 사람이요 원(元)은 어질
고 후한 사람이다. 난(難)은 거절함이다.
임(任)은 고문(古文)에 임(壬)으로 되어 있으니, 흉악함을 마음속에 감추고 있는 사람이다. 마땅히 덕이 있는 자를
후대하고 인(仁)한 사람을 믿으며 간악한 자를 거절하여야 함을 말한 것이다. 무릇 이 다섯 가지를 대처함에 각기
마땅함을 얻으면 단지 중국(中國)만 순히 다스려질 뿐만 아니라, 비록 만이(蠻夷)의 나라라도 또한 서로 거느리고
와서 복종할 것이다.』
*서경 ; 우서 ; 순전 ; 제17장
▣ 제17장(第十七章)
『舜曰 咨四岳아 有能奮庸하여 熙帝之載어든 使宅百揆하여 亮采惠疇호리라 僉曰 伯禹作司空하니이다 帝曰 兪라
咨禹아 汝平水土하니 惟時懋哉인저 禹拜稽首하여 讓于稷契『(설)』과 쨑皐陶한대 帝曰 兪라 汝往哉하라』
『 순(舜)이 말씀하기를 “아! 사악(四岳)아. 공용(功庸)을 일으켜 제요(帝堯)의 일을 넓힐 자가 있으면 백규(百揆)에
거하게 해서 여러 일을 밝혀 무리들을 순히 다스리게 하겠다.” 하니, 여럿이 말하기를 “백우(伯禹)가 현재 사공(司空)
이 되어 있습니다.” 하였다. 제순(帝舜)이 말씀하기를 “너의 말이 옳다. 아! 우(禹)야. 네가 수토(水土)를 평하게 다스
렸으니, 이것을 힘쓸진저.” 하였다. 우(禹)가 절하고 머리를 조아려 직(稷)과 설(契) 및 고요(皐陶)에게 사양하니,
제순(帝舜)이 말씀하기를 “아! 너의 말이 옳다. 네가 가서 임무를 수행하라.” 하였다.』
『奮은 起요 熙는 廣이요 載는 事요 亮은 明이요 惠는 順이요 疇는 類也라 一說에 亮은 相也라 舜言有能奮起事功하여
以廣帝堯之事者면 使居百揆之位하여 以明亮庶事하여 而順成庶類也라 僉은 衆也니 四岳所領四方諸侯『(有)』在朝者
也라 禹는 ª5姓이니 崇伯툵之子也라 平水土者는 司空之職이라 時는 是요 懋는 勉也니 指百揆之事以勉之也라 蓋四岳
及諸侯言 伯禹見作司空하여 可宅百揆라하니 帝然其擧而咨禹하여 使仍作司空而兼行百揆之事하니 錄其舊績而勉其新
功也라 以司空兼百揆는 如周以六卿兼三公이요 後世以他官平章事知政事도 亦此類也라 稽首는 首至地라 稷은 田正官
이라 稷은 名棄요 姓姬氏니 封於邰하고 契은 臣名으로 姓子氏니 封於商하니 稷, 契은 皆帝줱之子라 쨑는 及也라
皐陶는 亦臣名이라 兪者는 然其擧也요 汝往哉者는 不聽其讓也라 此章은 稱舜曰하고 此下에 方稱帝曰者는 以見堯老
舜攝하여 堯在時에 舜未嘗稱帝요 此後에 舜方眞卽帝位而稱帝也라』
『 분(奮)은 일으킴이요 희(熙)는 넓힘이요, 재(載)는 일이요 양(亮)은 밝힘이요 혜(惠)는 순함이요 주(疇)는 무리이다.
일설(一說)에 “양(亮)은 도움이다.”라고 한다. 순(舜)이 말씀하기를 “사공(事功)을 일으켜 제요(帝堯)의 일을 넓힐 자
가 있으면 백규(百揆)의 지위에 거하게 해서 여러 일을 밝혀 여러 무리들을 순히 이루게 하겠다.” 한 것이다.
첨(僉)은 무리이니, 사악이 거느리고 있는 사방의 제후로서 조정에 있는 자이다. 우(禹)는 사성(ª5姓)이니, 숭백(崇伯)
인 곤(툵)의 아들이다. 수토(水土)를 평하게 다스리는 것은 사공(司空)의 직책이다. 시(時)는 이것이고 무(懋)는 힘씀
이니, 백규의 일을 가리켜 권면한 것이다. 사악과 제후가 말하기를 “백우(伯禹)가 현재 사공(司空)이 되어 백규(百揆)
에 거할 만하다.” 하니, 제순(帝舜)이 그 천거를 옳게 여기고 우(禹)를 불러서 그대로 사공이 되어 백규의 일을 겸행
하게 하였으니, 옛 공적을 기록하고 새로운 공을 권면한 것이다. 사공으로서 백규를 겸직한 것은 주(周)나라 때에
육경(六卿)이 삼공(三公)을 겸직한 것과 같으며, 후세에 딴 관직으로 평장사(平章事)와 참지정사(參知政事)를 겸한
것도 이러한 따위이다. 계수(稽首)는 머리가 땅에 이름이다. 직(稷)은 전정(田正)의 벼슬이다.
직(稷)은 이름이 기(棄)이고 성이 희씨(姬氏)이니 태(邰)나라에 봉해졌고, 설(契)은 신하의 이름으로 성이 자씨(子氏)
이니 상(商)나라에 봉해졌으니, 직(稷)과 설(契)은 모두 제곡(帝줱)의 아들이다. 기(쨑)는 및이다.
고요(皐陶) 또한 신하 이름이다. 유(兪)는 그 천거를 옳게 여김이요, ‘네가 가라’고 한 것은 사양함을 들어주지 않은
것이다. 이 장(章)에서는 ‘순왈(舜曰)’이라 칭하고, 이 아래에서 비로소 ‘제왈(帝曰)’이라고 칭한 것은 요(堯)가 늙어
순(舜)이 섭정하여 요(堯)가 생존해 있을 때에는 순(舜)이 일찍이 제(帝)를 칭하지 않았고, 이 뒤에야 순(舜)이 비로소
참으로 제위(帝位)에 나아가 제(帝)를 칭하였음을 나타낸 것이다.』
*서경 ; 우서 ; 순전 ; 제18장
▣ 제18장(第十八章)
『帝曰 棄아 黎民이 阻飢일새 汝后稷이니 播時百穀하라』
『 제순(帝舜)이 말씀하였다. “기(棄)야! 여민들이 곤궁하고 굶주리므로 너를 후직(后稷)으로 삼으니,
이 백곡을 파종하도록 하라.”』
『阻는 厄이라 后는 君也니 有爵土之稱이라 播는 布也라 穀非一種이라 故曰百穀이라 此는 因禹之讓而申命之하여
使仍舊職하여 以終其事也라』
『 조(阻)는 곤액이다. 후(后)는 군주이니, 작위와 토지가 있는 이의 칭호이다. 파(播)는 폄『[뿌림]』이다.
곡식이 한 종류가 아니므로 백곡이라 하였다. 이는 우(禹)가 사양함으로 인하여 거듭 명해서 옛 직책을 그대로 이어
일을 마치게 한 것이다.』
*서경 ; 우서 ; 순전 ; 제19장
▣ 제19장(第十九章)
『帝曰 契아 百姓이 不親하며 五品이 不遜일새 汝作司徒니 敬敷五敎호되 在寬하라』
『 제순(帝舜)이 말씀하였다. “설(契)아! 백성이 친목하지 않고 오품(五品)이 순하지 않으므로 너를 사도(司徒)로
삼으니, 공경히 다섯 가지 가르침을 펴되 너그러움에 있게 하라.”』
『親은 相親睦也라 五品은 父子君臣夫婦長幼朋友五者之名位等級也라 遜은 順也라 司徒는 掌敎之官이라 敷는 布也라
五敎는 父子有親, 君臣有義, 夫婦有別, 長幼有序, 朋友有信이니 以五者當然之理로 而爲敎令也라 敬은 敬其事也니
聖賢之於事에 雖無所不敬이나 而此又事之大者라 故로 特以敬言之라 寬은 裕以待之也라 蓋五者之理는 出於人心之本
然하여 非有强而後能者로되 自其拘於氣質之偏하고 溺於物欲之蔽하여 始有昧於其理하여 而不相親愛하고 不相遜順者
라 於是에 因禹之讓하여 又申命契하여 仍爲司徒하여 使之敬以敷敎하고 而又寬裕以待之하여 使之優柔浸漬하여 以漸
而入하니 則其天性之眞이 自然呈露하여 不能自已하여 而無無恥之患矣리라 『孟子所引堯言勞來匡直輔翼주:맹자소
인요언노래광직보익』하여 使自得之하고 又從而振德之도 亦此意也라』
『 친(親)은 서로 친목함이다. 오품(五品)은 부자(父子)•군신(君臣)•부부(夫婦)•장유(長幼)•붕우(朋友) 다섯 가지의
명위와 등급이다. 손(遜)은 순함이다. 사도(司徒)는 교육을 관장하는 관원이다. 부(敷)는 폄이다. 오교(五敎)는 부자
유친(父子有親)•군신유의(君臣有義)•부부유별(夫婦有別)•장유유서(長幼有序)•붕우유신(朋友有信)이니, 다섯 가지
의 당연한 도리로써 교령(敎令)을 삼은 것이다. 경(敬)은 그 일을 공경함이니, 성현(聖賢)이 일에 있어 비록 공경
하지 않는 바가 없으나 이는 또 일 중의 큰 것이므로 특별히 공경하라고 말씀한 것이다. 관(寬)은 너그럽게 대함이다.
다섯 가지의 도리는 인심(人心)의 본연(本然)에서 나와 억지로 한 뒤에 능한 것이 아니나 자연히 기질(氣質)의 편벽
됨에 구애되고 물욕(物慾)의 가리움에 빠져서 비로소 그 도리에 어둠이 있어 서로 친애하지 않고 서로 손순(遜順)
하지 않은 자가 있는 것이다. 이에 우(禹)가 사양함으로 인하여 또 거듭 설(契)에게 명하시어 그대로 사도(司徒)가
되게 하여 공경히 가르침을 펴고 또 관유(寬裕)하게 대하게 해서 백성들로 하여금 우유(優柔)하고 무젖어서 점점
들어가게 하였으니, 천성의 참됨이 저절로 드러나서 스스로 그만둘 수 없어 부끄러움이 없는 근심이 없을 것이다.
맹자(孟子)가 인용한바, “요(堯)가 ‘위로하고 오게 하며 바로잡아 주고 곧게 해주며 보익하여 스스로 본성을 얻게
하고 또 따라서 진작하고 은혜를 베풀어주라.’고 말씀하였다.” 한 것도 이러한 뜻이다.』
*서경 ; 우서 ; 순전 ; 제20장
▣ 제20장(第二十章)
『帝曰 皐陶아 蠻夷猾夏하며 寇賊姦宄일새 汝作士니 五刑에 有服호되 五服을 三就하며 五流에 有宅호되 五宅에
三居니 惟明이라사 克允하리라』
『 제순(帝舜)이 말씀하였다. “고요(皐陶)야! 만이(蠻夷)가 중하(中夏)를 어지럽히며 약탈하고 죽이며 밖을 어지럽
히고 안을 어지럽히므로 너를 사(士)로 삼으니, 오형(五刑)에 복죄(服罪)하게 하되 오형(五刑)의 복죄(服罪)를 세 곳
에 나아가게 하며 다섯 가지 유형(流刑)에 머무는 곳이 있게 하되 다섯 가지 머무는 곳에 세 등급으로 거처하게 할
것이니, 밝게 살펴야 백성들이 믿을 것이다.”』
『猾은 亂이요 夏는 明而大也라 曾氏曰 中國은 文明之地라 故曰華夏니 四時之夏도 疑亦取此義也라 劫人曰寇요 殺人
曰賊이요 在外曰姦이요 在內曰宄라 士는 理官也라 服은 服其罪也니 呂刑所謂『上服下服주:상복하복』이 是也라
三就는 孔氏以爲 大罪於原野하고 大夫於朝하고 士於市라하니 不知何據라 竊恐惟大µ?은 棄之於市하고 宮µ?則下蠶
室하며 餘刑도 亦就屛處하니 蓋非死刑이면 不欲使風中其瘡하여 誤而至死니 聖人之仁也라 五流는 五等象刑之當宥
者也라 五宅三居者는 流雖有五나 而宅之는 但爲三等之居하니 如『列爵惟五에 分土惟三주:열작유오』也라 孔氏以爲
大罪는 居於四裔하고 次則九州之外하고 次則千里之外라하니 雖亦未見其所據나 然大槪當略近之라 此亦因禹之讓而
申命之하고 又戒以必當致其明察이라야 乃能使刑當其罪하여 而人無不信服也라』
『 활(猾)은 어지럽힘이요 하(夏)는 밝고 큼이다. 증씨(曾氏)가 말하기를 “중국(中國)은 문명한 땅이므로 화하(華夏)라
하였으니, 사시의 여름도 또한 이 뜻을 취한 듯하다." 하였다. 사람을 겁박함을 구(寇)라 하고 사람을 죽임을 적(賊)
이라 하며, 밖에 있는 것을 간(姦)이라 하고 안에 있는 것을 귀(宄)라 한다. 사(士)는 죄를 다스리는 관리이다.
복(服)은 그 죄를 받음이니, 〈여형(呂刑)〉에 이른바 ‘상복(上服), 하복(下服)’이 이것이다. 삼취(三就)는 공씨(孔氏)가
이르기를 ‘큰 죄인은 들에서 하고 대부(大夫)는 조정에서 하고 사(士)는 시장에서 한다.” 하였는데, 무엇을 근거한 것
인지 알 수 없다. 생각컨대 대벽(大µ?)『[사형(死刑)]』은 시장에 버리고 궁벽(宮µ?)『[궁형(宮刑)]』은 잠실(蠶室)에
내려보내며 나머지 형벌도 또한 병처(屛處)『[한가한 곳]』에 나아가게 한 듯하니, 사형이 아니면 상처에 바람을 쐬어
잘못하여 죽음에 이르지 않게 하고자 한 것이니, 성인(聖人)의 인자함이다. 오류(五流)는 다섯 등급의 상형(象刑) 중에
마땅히 관대하게 처벌해야 할 자이다. 오택(五宅)과 삼거(三居)는 유형(流刑)이 비록 다섯 가지가 있으나 머무는 곳은
단지 세 등급의 거처를 만드는 것이니, 관작을 반열함은 다섯 가지이나 땅을 나누어줌은 세 가지인 것과 같다.
공씨(孔氏)는 이르기를 “큰 죄는 사예(四裔)『[사방 변방]』에 거처하고, 다음은 구주(九州) 밖에 하고 다음은 천리
밖에 한다.” 하였는데, 비록 근거한 바를 볼 수 없으나 대개는 대략 비슷할 듯하다. 이 또한 우(禹)가 사양함으로 인
하여 거듭 명하고, 또 반드시 밝게 살핌을 지극히 하여야 형벌이 그 죄에 마땅하여 사람들이 믿고 복종하지 않는 이
가 없음을 경계한 것이다.』
*서경 ; 우서 ; 순전 ; 제21장
▣ 제21장(第二十一章)
『帝曰 疇若予工고 僉曰 垂哉니이다 帝曰 兪라 咨垂아 汝共工이어다 垂拜稽首하여 讓于첪?과 쨑伯與한대
帝曰 兪라 往哉汝諧하라』
『 제순(帝舜)이 말씀하기를 “누가 나의 백공(百工)의 일을 순히 다스리겠는가?” 하자, 여럿이 말하기를 “수(垂)입
니다.” 하였다. 제순(帝舜)이 말씀하기를 “아! 너의 말이 옳다. 수(垂)야! 네가 공공(共工)이 될지어다.” 하니, 수(垂)가
절하고 머리를 조아려 수(첪)와 장(?) 및 백여(伯與)에게 사양하였는데, 제순(帝舜)이 말씀하기를 “아! 너의 말이 옳다.
가서 네 직책을 화하게 수행하라.” 하였다.』
『若은 順其理而治之也라 曲禮六工에 有土工, 金工, 石工, 木工, 獸工, 草工하고 周禮에 有攻木之工, 攻金之工, 攻皮
之工, 設色之工, 팂埴之工하니 皆是也라 帝問誰能順治予百工之事者라 垂는 臣名이니 有巧思라 莊子曰 퍾工?之指라
하니 卽此也라 첪, ?, 伯與는 三臣名也라 첪는 以積竹爲兵하여 建兵車者요 ?은 方?斧也라 古者에 多以其所能爲名
하니 첪, ?은 豈能爲二器者歟아 往哉汝諧者는 往哉하여 汝和其職也라』
『 약(若)은 그 이치를 순히 하여 다스림이다. 〈곡례(曲禮)〉의 육공(六工)에 토공(土工)•금공(金工)•석공(石工)•
목공(木工)•수공(獸工)•초공(草工)이 있고, 《주례(周禮)》에 나무를 다스리는 공인과 쇠를 다스리는 공인과 가죽을
다스리는 공인과 색깔을 칠하는 공인과 진흙을 두들겨 만드는 공인이 있으니, 모두 이들이다.
제순(帝舜)이 묻기를 “누가 나의 백공(百工)의 일을 순히 다스리겠는가?” 한 것이다. 수(垂)는 신하의 이름이니,
공교한 생각이 있었다. 장자(莊子)가 “공인인 수(?)의 손가락을 꺾어놓아야 한다.”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수(첪)•장(?)•백여(伯與)는 세 신하의 이름이다. 수(첪)는 대나무를 모아 병기를 만들어서 병거(兵車)에 꽂는 것이고
장(?)은 구멍이 네모진 도끼이다. 옛날에는 능한 것으로 이름을 삼은 경우가 많았으니, 수(첪)와 장(?)은 아마도 이
두 기구를 잘 만든 자인가 보다. 왕재여해(往哉汝諧)는 가서 네가 직책을 화하게 수행하라는 것이다.』
*서경 ; 우서 ; 순전 ; 제22장
▣ 제22장(第二十二章)
『帝曰 疇若予上下草木鳥獸오 僉曰 益哉니이다 帝曰 兪라 咨益아 汝作朕虞하라 益이 拜稽首하여 讓于朱虎熊찈한대
帝曰 兪라 往哉汝諧하라』
『 제순(帝舜)이 말씀하기를 “누가 나의 산택(山澤)의 초목(草木)과 조수(鳥獸)를 순히 다스리겠는가?” 하니,
여럿이 말하기를 “익(益)입니다.” 하였다. 제순(帝舜)이 말씀하기를 “너의 말이 옳다. 아! 익(益)아! 네가 나의 우(虞)
가 되어라.” 하였다. 익(益)이 절하고 머리를 조아리며 주(朱)•호(虎)•웅(熊)•비(찈)에게 사양하니, 제순(帝舜)이 말씀
하기를 “아! 너의 말이 옳다. 가서 네 직책을 화하게 수행하라.” 하였다.』
『上下는 山林澤藪也라 虞는 掌山澤之官이니 『周禮에 分爲虞衡하여 屬於夏官주:주례』하니라 朱, 虎, 熊, 찈는
四臣之名也라 高辛氏之子에 有曰仲虎, 仲熊하니 意以獸爲名者는 亦以其能服是獸而得名歟아 史記曰 朱虎熊찈 爲伯
益之佐라하니 前첪?伯與 當亦爲垂之佐也라』
『 상하(上下)는 산림(山林)과 택수(澤藪)『[늪의 수풀]』이다. 우(虞)는 산택을 관장하는 관원이니,
《주례(周禮)》에 나누어 우인(虞人)과 형인(衡人)을 만들어서 하관(夏官)에 소속시켰다. 주(朱)•호(虎)•웅(熊)•
비(찈)는 네 신하의 이름이다. 고신씨(高辛氏)의 아들에 중호(仲虎), 중웅(仲熊)이 있었으니, 생각컨대 짐승으로
이름을 삼은 것은 또한 이 짐승들을 잘 복종시켰기 때문에 이름을 얻은 것인가 보다. 《사기(史記)》에 “주(朱)•
호(虎)•웅(熊)•비(찈)가 백익(伯益)의 보좌가 되었다.” 하였으니, 앞의 수(첪)•장(?)•백여(伯與)도 마땅히 수(垂)의
보좌가 되었을 것이다.』
*서경 ; 우서 ; 순전 ; 제23장
▣ 제23장(第二十三章)
『帝曰 咨四岳아 有能典朕의 三禮아 僉曰 伯夷니이다 帝曰 兪라 咨伯아 汝作秩宗이니 夙夜에 惟寅하여 直哉라사
惟淸하리라 伯이 拜稽首하여 讓于夔龍한대 帝曰 兪라 往欽哉하라』
『 제순(帝舜)이 말씀하기를 “아! 사악(四岳)아. 나의 삼례(三禮)를 맡을 자가 있는가?” 하니, 여럿이 말하기를
“백이(伯夷)입니다.” 하였다. 제순(帝舜)이 말씀하기를 “너의 말이 옳다. 아! 백(伯)아! 너를 질종(秩宗)으로 삼으니,
밤낮으로 공경하여 곧게 하여야 깨끗할 것이다.” 하였다. 백(伯)이 절하고 머리를 조아리며 기(夔)와 용(龍)에게
사양하니, 제순(帝舜)이 말씀하기를 “아! 너의 말이 옳다. 가서 공경히 임무를 수행하라.” 하였다.』
『典은 主也라 『三禮주:삼례』는 祀天神, 享人鬼, 祭地祇『(기)』之禮也라 伯夷는 臣名이니 姜姓이라 秩은 序也요
宗은 祖廟也니 秩宗은 主敍次百神之官이어늘 而專以秩宗名之者는 蓋以宗廟爲主也라 周禮에 亦謂之宗伯하고 而
『都家주:도가』에 皆有宗人之官하여 以掌祭祀之事하니 亦此意也라 夙은 早요 寅은 敬畏也라 直者는 心無私曲之謂
니 人能敬以直內하여 不使少有私曲이면 則其心潔淸하여 而無物欲之汚하여 可以交於神明矣라 夔, 龍은 二臣名이라』
『 전(典)은 주관함이다. 삼례(三禮)는 천신(天神)에게 제사하고 인귀(人鬼)에게 제향하고 지기(地祇)에게 제사하는
예이다. 백이(伯夷)는 신하의 이름이니, 성(姓)이 강(姜)이다. 질(秩)은 차례이고 종(宗)은 선조의 사당이니,
질종(秩宗)은 백신(百神)을 차례로 제사함을 주관하는 관직인데 오로지 질종(秩宗)이라고 이름한 것은 아마도 종묘
를 위주로 한 듯하다. 《주례(周禮)》에도 종백(宗伯)이라 이르고 도(都)와 가(家)에도 다 종인(宗人)의 관직이 있어
제사의 일을 관장하였으니, 또한 이러한 뜻이다. 숙(夙)은 일찍이요 인(寅)은 공경하고 두려워함이다.
직(直)은 마음에 사곡(私曲)함이 없음을 이르니, 사람이 공경하여 안을 곧게 해서 조금이라도 사곡(私曲)한 마음이
있지 않게 하면 그 마음이 깨끗하고 맑아 물욕의 더러움이 없어서 신명(神明)을 사귈 수 있다. 기(夔)와 용(龍)은 두
신하의 이름이다.』
*서경 ; 우서 ; 순전 ; 제24장
▣ 제24장(第二十四章)
『帝曰 夔아 命汝하여 典樂하노니 敎胄子호되 直而溫하며 寬而栗하며 剛而無虐하며 簡而無傲케호리니 詩는 言志요
歌는 永言이요 聲은 依永이요 律은 和聲하나니 八音이 克諧하여 無相奪倫이라사 神人以和하리라 『(夔曰 於予擊石
©百獸率舞)』』
『 제순(帝舜)이 말씀하기를 “기(夔)야! 너를 명하여 전악(典樂)을 삼으니, 주자(胄子)를 가르치되 곧으면서도 온화
하며 너그러우면서도 엄하며 강하되 사나움이 없으며 간략하되 오만함이 없게 할 것이다. 시(詩)는 뜻을 말한 것이
요 가(歌)는 말을 길게 읊는 것이요 성(聲)은 길게 읊음에 의지한 것이요 율(律)은 읊는 소리를 조화시키는 것이니,
8음의 악기가 잘 어울려 서로 차례를 빼앗음이 없어야 신(神)과 사람이 화합할 것이다.” 하였다.』
『胄는 長也니 自天子至卿大夫之適子也라 栗은 莊敬也라 上二無字는 與毋同이라 凡人直者는 必不足於溫이라 故欲
其溫이요 寬者는 必不足於栗이라 故欲其栗이니 所以慮其偏而輔翼之也라 剛者는 必至於虐이라 故欲其無虐이요
簡者는 必至於傲라 故欲其無傲니 所以防其過而戒禁之也라 敎胄子者는 欲其如此요 而其所以敎之之具는 則又專在於
樂하니 如周禮大司樂이 掌成均之法하여 以敎國子弟요 而孔子亦曰 興於詩, 成於樂이라하시니 蓋所以『蕩滌邪穢하고
斟酌飽滿하며 動´[血脈하고 流通精神주:탕척사예』하여 養其中和之德而救其氣質之偏者也라 心之所之를 謂之志라
心有所之면 必形於言이라 故曰詩言志요 旣形於言이면 則必有長短之節이라 故曰歌永言이요 旣有長短이면 則必有高
下淸濁之殊라 故曰聲依永이니 聲者는 宮商角徵『(치)』羽也라 大抵歌聲이 長而濁者爲宮이요 以漸而淸且短이면 則
爲商, 爲角, 爲徵, 爲羽하니 所謂聲依永也라 旣有長短淸濁이면 則又必以十二律和之라야 乃能成文而不亂하니 假令
黃鍾爲宮이면 則大簇爲商, 姑洗爲角, 林鍾爲徵, 南呂爲羽하니 蓋以『三分損益하여 隔八相生주:삼분손익』而得之
하니 餘律皆然하니 卽禮運所謂五聲, 六律, 十二管이 還相爲宮이니 所謂律和聲也라 人聲旣和어든 乃以其聲으로 被之
八音而爲樂이면 則無不諧協하여 而不相侵亂失其倫次하여 可以奏之朝廷하고 薦之郊廟하여 而神人以和矣라 聖人作
樂하여 以養情性, 育人材하고 事神祗, 和上下하여 其體用功效廣大深切이 乃如此어늘 今皆不復見矣니 可勝嘆哉아 夔
曰以下는 蘇氏曰 舜方命九官에 濟濟相讓이어늘 無緣夔於此獨言其功하니 此益稷之文이니 簡編脫誤하여 複見於此라
하니라』
『 주(胄)는 맏이이니, 천자로부터 경대부에 이르기까지의 적자(適子)이다. 율(栗)은 장경(莊敬)함이다. 위의 두 무자
(無字)는 무(毋)와 같다. 무릇 사람이 곧은 자는 반드시 온화함에 부족하므로 온화하고자 하고, 너그러운 자는 반드시
엄숙함에 부족하므로 엄숙하고자 한 것이니, 이는 한쪽으로 편벽될까 염려하여 보익하는 것이다. 강한 자는 반드시
사나움에 이르므로 사나움이 없고자 하고, 간략한 자는 반드시 오만함에 이르므로 오만함이 없고자 한 것이니,
이는 지나침을 막아서 경계하고 금지시키는 것이다. 주자(胄子)를 가르치는 자는 이와 같고자 하되 이들을 가르치는
도구는 또 오로지 음악에 있으니, 《주례(周禮)》에 대사악(大司樂)이 성균(成均)의 법을 관장하여 국가의 자제들을
가르치고, 공자(孔子) 또한 “시(詩)에서 흥기하고 악(樂)에서 이룬다.”고 하였으니, 이는 사악함과 더러움을 깨끗이
씻어내고 포만(飽滿)함을 짐작(斟酌)하며 혈맥(血脈)을 움직이게 하고 정신을 유통시켜 중화(中和)의 덕을 길러서
기질의 편벽됨을 구원하는 것이다. 마음이 가는 바를 지(志)라 한다. 마음이 가는 바가 있으면 반드시 말에 나타나
므로 시(詩)는 뜻을 말한 것이라 하였고, 이미 말에 나타나면 반드시 장단(長短)의 절(節)『[리듬]』이 있으므로
가(歌)는 말을 길게 읊는 것이라 하였으며, 이미 장단이 있으면 반드시 고하(高下)와 청탁(淸濁)의 구분이 있으므로
성(聲)은 길게 읊음에 의지한 것이라 하였으니, 성(聲)은 궁(宮)•상(商)•각(角)•치(徵)•우(羽)이다. 대저 노래 소리가
길고 탁한 것은 궁(宮)이 되고, 점점 맑고 짧아지면 상(商)이 되고 각(角)이 되고 치(徵)가 되고 우(羽)가 되니,
이른바 성(聲)은 길게 읊음에 의지한다는 것이다. 이미 장단과 청탁이 있으면 또 반드시 12율로 고르게 하여야 이에
문채를 이루어 어지럽지 않으니, 가령 황종(黃鍾)이 궁(宮)이 되었으면 태주(太簇)는 상(商)이 되고 고세(姑洗)은
각(角)이 되고 임종(林鍾)은 치(徵)가 되고 남려(南呂)는 우(羽)가 된다. 삼분(三分) 손익(損益)하여 여덟을 띄우고
상생(相生)하여 얻어지니, 나머지 율(律)도 다 그러하다. 이는 곧 〈예운(禮運)〉에 이른바 ‘오성(五聲)과 육률(六律)
과 십이관(十二管)이 차례로 서로 궁(宮)이 된다.’는 것이니, 이른바 ‘율은 소리를 화하게 한다.’는 것이다.
사람의 소리가 이미 화하였거든 이에 그 소리를 8음에 입혀서 음악을 만들면 고르지 않음이 없어 서로 침노하고
혼란하여 그 차례를 잃지 않아서 이것을 조정에 연주하고 교제(郊祭)와 사당에 올려서 신(神)과 사람이 화하게 된다.
성인(聖人)이 음악을 만들어서 성정(性情)을 기르고 인재를 기르며 신기(神祗)를 섬기고 상하(上下)를 고르게 하여
그 체용(體用)과 공효(功效)의 광대하고 심절(深切)함이 이와 같았는데, 이제 모두 다시 볼 수 없으니, 이루 탄식할
수 있겠는가. ‘기왈(夔曰)’ 이하는 소씨(蘇氏)가 말하기를 “순(舜)이 이제 막 아홉 관원을 명함에 제제(濟濟)하게 서로
겸양하였는데 기(夔)가 홀로 여기에서 자기의 공을 말할 이유가 없다. 이는 〈익직(益稷)〉의 글이니, 간편(簡編)이
탈오(脫誤)하여 여기에 중복되어 나온 것이다.” 하였다.』
*서경 ; 우서 ; 순전 ; 제25장
▣ 제25장(第二十五章)
『帝曰 龍아 朕은 È*讒說이 殄行이라 震驚朕師하여 命汝하여 作納言하노니 夙夜에 出納朕命호되 惟允하라』
『 제순(帝舜)이 말씀하였다. “용(龍)아! 짐은 참언(讒言)이 선행(善行)을 끊어 짐의 무리들을 진동하고 놀라게 함을
미워하여, 너를 명하여 납언(納言)을 삼노니, 밤낮으로 짐의 명령을 출납하되 진실하게 하라.”』
『È*은 疾이라 殄은 絶也니 殄行者는 謂傷絶善人之事也라 師는 衆也니 謂其言之不正하여 而能變亂黑白하여 以駭衆
聽也라 納言은 官名이라 命令政敎를 必使審之하여 旣允而後出이면 則讒說不得行하여 而矯僞無所託矣요 敷奏復逆을
必使審之하여 旣允而後入이면 則邪僻無自進하여 而功緖有所稽矣리라 周之內史와 漢之尙書와 魏晉以來所謂中書門
下者 皆此職也니라』
『 즐(È*)은 미워함이다. 진(殄)은 끊음이니, 진행(殄行)은 선인(善人)의 일을 해치고 끊음을 이른다. 사(師)는 무리
이니, 그 말이 바르지 못하여 흑백을 변란(變亂)시켜서 여러 사람의 들음을 놀라게 함을 이른다. 납언(納言)은 관명
이다. 명령과 정교를 반드시 살펴서 이미 진실한 뒤에 나오게 하면 참설(讒說)이 행해지지 못하여 거짓이 의탁할 곳
이 없고, 펴서 아뢰고 복역(復逆)『[상주]』함을 반드시 살펴서 이미 진실한 뒤에 들이게 하면 사벽함이 말미암아
나올 수가 없어 공의 실마리가 상고할 바가 있을 것이다. 주(周)나라의 내사(內史)와 한(漢)나라의 상서(尙書)와
위(魏)•진(晉) 이래의 이른바 중서문하(中書門下)라는 것이 모두 이 직책이다.』
*서경 ; 우서 ; 순전 ; 제26장
▣ 제26장(第二十六章)
『帝曰 咨汝二十有二人아 欽哉하여 惟時로 亮天功하라』
『 제순(帝舜)이 말씀하였다. “아! 너희 22인(人)아. 공경하여 때로 하늘의 일을 도우라.”』
『二十二人은 四岳, 九官, 十二牧也라 周官에 言內有百揆四岳하고 外有州牧侯伯이라하니 蓋百揆者는 所以統庶官이요
而四岳者는 所以統十二牧也라 旣分命之하고 又總告之하여 使之各敬其職하여 以相天事也라 曾氏曰 舜命九官에 新命
者六人이니 命伯禹, 命伯夷는 咨四岳而命者也요 命垂, 命益은 泛咨而命者也요 命夔, 命龍은 因人之讓하여 不咨而命者
也라 夫知道而後可宅百揆요 知禮而後可典三禮니 知道, 知禮는 非人人所能也라 故必咨於四岳이요 若予工, 若上下草木
鳥獸는 則非此之比라 故泛咨而已라 禮樂命令은 其體雖不若百揆之大나 然其事理精微하여 亦非百工庶物之可比라
伯夷旣以四岳之擧로 而當秩宗之任이면 則其所讓之人이 必其中於典樂納言之選을 可知라 故不咨而命之也요 若稷契皐
陶之不咨者는 申命其舊職而已라 又按 此以平水土, 若百工으로 各爲一官이어늘 而周制는 同領於司空하며 此는 以士一
官으로 兼兵刑之事어늘 而周禮는 分爲夏秋兩官하니 蓋帝王之法이 隨時制宜하니 所謂損益可知者如此니라』
『 22인(人)은 사악(四岳)과 9관(官)『[아홉 관원]』과 12주(州)의 목(牧)이다. 〈주관(周官)〉에 “안에는 백규(百揆)
와 사악(四岳)이 있고 밖에는 주목(州牧)과 후백(侯伯)이 있다.” 하였으니, 백규는 여러 관직을 통솔하는 것이요,
사악은 12목을 통솔하는 것이다. 이미 나누어 명하고 또 총괄하여 말씀해서 각기 그 직책을 공경하여 하늘의 일을
돕게 한 것이다.』
『 증씨(曾氏)가 말하기를 “순(舜)이 9관을 명함에 새로 명한 자가 여섯 사람이니, 백우(伯禹)를 명하고 백이(伯夷)를
명한 것은 사악에게 물어서 명한 것이고, 수(垂)를 명하고 익(益)을 명한 것은 범범히 물어서 명한 것이고, 기(夔)를
명하고 용(龍)을 명한 것은 타인이 사양함으로 인하여 묻지 않고 명한 것이다.” 하였다.
도(道)를 안 뒤에 백규(百揆)의 자리에 처할 수 있고 예(禮)를 안 뒤에 삼례(三禮)를 맡을 수 있으니, 도(道)를 알고
예(禮)를 앎은 사람마다 능한 것이 아니므로 반드시 사악에게 물은 것이고, 나의 백공(百工)을 순히 다스리고 산택
(山澤)의 초목과 조수(鳥獸)를 순히 다스림은 이에 비할 바가 아니므로 범범히 물었을 뿐이다. 예악(禮樂)과 명령은
그 체(體)가 비록 백규처럼 크지는 않으나 사리가 정미하여 또한 백공(百工)과 서물(庶物)에 비할 바가 아니다.
백이(伯夷)가 이미 사악(四岳)의 천거로 질종(秩宗)의 임무에 합당하다면 그가 사양한 바의 사람이 반드시 전악
(典樂)과 납언(納言)의 선임에 알맞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묻지 않고 명한 것이요, 직(稷)•설(契)•고요(皐陶)를
묻지 않은 것으로 말하면 옛 직책을 거듭 명했을 뿐이다.』
『 또 살펴보건대 여기서는 수토(水土)를 평하게 다스리고 백공(百工)을 순히 다스림을 각기 한 관직으로 삼았는데,
주(周)나라 제도는 똑같이 사공(司空)에게 통솔되었으며, 여기서는 사(士) 한 관직으로 병(兵)•형(刑)의 일을 겸하
였는데 《주례(周禮)》는 나누어 하관(夏官)과 추관(秋官) 둘로 만들었으니, 제왕의 법은 때에 따라 마땅하게 만드니,
이른바 ‘손익함을 알 수 있다.’는 것이 이와 같다.』
*서경 ; 우서 ; 순전 ; 제27장
▣ 제27장(第二十七章)
『三載에 考績하시고 三考에 黜陟幽明하신대 庶績이 咸熙하더니 分北『(背)』三苗하시다』
『 3년에 한 번씩 공적을 상고하고 세 번 상고한 다음 어두운 자와 밝은 자를 내치고 올려주시니 여러 공적이 다
넓혀졌는데, 삼묘(三苗)를 나누어 등져 가게 하시다.』
『考는 核實也라 三考는 九載也니 九載則人之賢否와 事之得失을 可見이라 於是에 陟其明而黜其幽하여 賞罰明信
이면 人人이 力於事功하니 此所以庶績咸熙也라 北은 猶背也니 其善者留하고 其不善者竄徙之하여 使分背而去也라
此는 言舜命二十二人之後에 立此考績黜陟之法하여 以時擧行하고 而卒言其效如此也라 按三苗見於經者는 如典, 謨,
益稷, 禹貢, 呂刑에 詳矣라 蓋其負固不服하여 乍臣乍叛일새 舜攝位而竄逐之하시고 禹治水之時에 三危已宅이로되
而舊都猶頑不卽工이요 禹攝位之後에 帝命±3征이로되 而猶逆命이라가 及禹班師而後來格하니 於是에 乃得考其善惡
而分北之也라 呂刑之言촀絶은 則通其本末而言이니 不可以先後論也니라』
『 고(考)는 진실을 상고하는 것이다. 삼고(三考)는 9년이니, 9년이면 사람의 현부(賢否)와 일의 득실(得失)을 볼 수
있다. 이에 밝은 이를 올려주고 어둔 이를 내쳐서 상벌을 분명하고 미덥게 하면 사람마다 사공(事功)에 힘쓰게 되니,
이 때문에 여러 공적이 다 넓혀진 것이다. 배(北)는 배(背)와 같으니, 선(善)한 자는 머물게 하고, 선(善)하지 않은
자는 쫓아내고 옮겨서 나누어 등져 가게 한 것이다. 이는 순(舜)이 22인(人)을 명한 뒤에 이 공적을 상고하여 내치고
올리는 법을 세워서 때로 거행함을 말하고, 끝내 그 효험이 이와 같았다고 말한 것이다.
상고해 보건대 삼묘(三苗)가 경전에 보이는 것은 전(典)과 모(謨)와 〈익직(益稷)〉 〈우공(禹貢)〉과 〈여형(呂刑)〉
에 자세히 나와 있다. 그들은 지형의 험고함을 믿고 복종하지 않아서 별안간 신하가 되었다가 별안간 배반하였으
므로 순(舜)이 섭위(攝位)하여 쫓아내셨고, 우(禹)가 홍수를 다스릴 때에 삼위(三危)가 이미 집을 짓고 살 수 있었
으나 옛 도읍은 아직도 완악하여 해야 할 일에 나아가지 않았다.
우(禹)가 섭위한 뒤에 제순(帝舜)이 명하여 가서 정벌하게 하였으나 아직도 명령을 거역하다가 우(禹)가 반사(班師)
『[회군]』한 뒤에 이르러 와서 굴복하였으니, 이에 그 선악(善惡)을 상고하여 나누어 등져 보낸 것이다.
〈여형(呂刑)〉에 알절(촀絶)이라고 말한 것은 그 본말을 통틀어 말한 것이니, 선후를 가지고 논할 수 없다.』
*서경 ; 우서 ; 순전 ; 제28장
▣ 제28장(第二十八章)
『舜生三十이라 徵庸하시고 三十이라 在位하사 五十載에 陟方乃死하시니라』
『 순(舜)이 태어난 지 30년에 부름을 받아 등용되시고 30년에 제위(帝位)에 올라 50년만에 승하하시어 이에 죽으
셨다.』
『徵은 召也라 陟方은 猶言升遐也라 韓子曰 竹書紀年에 帝王之沒을 皆曰陟이라하니 陟은 昇也니 謂昇天也라 書曰
殷禮陟配天이라하니 言以道終하여 其德協天也라 故로 書紀舜之沒에 云陟하고 其下에 言方乃死者는 所以釋陟爲死
也라 地之勢東南下하니 如言舜巡守而死면 宜言下方이요 不得言陟方也라하니 按此得之나 但不當以陟爲句絶耳라
方은 猶『雲±3乎方주:운조호방』之方이니 陟方乃死는 猶言±3落而死也라 舜生三十年에 堯方召用하여 歷試三年
하고 居攝二十八年하니 通三十年에 乃卽帝位하시고 又五十年而崩하시니 蓋於篇末에 總敍其始終也라 史記에 言舜
巡守라가 崩于蒼梧之野라하고 孟子言舜卒於鳴條라하시니 未知孰是라 今零陵九疑에 有舜塚云이라』
『 징(徵)은 부름이다. 척방(陟方)은 승(升)『[승(昇)]』하(遐)라는 말과 같다. 한자(韓子)『[한유(韓愈)]』는 말하
기를 “《죽서기년(竹書紀年)》에 제왕의 죽음을 모두 척(陟)이라 하였으니, 척(陟)은 오름이니, 하늘에 오름을
이른다. 《서경(書經)》에 ‘성대한 예(禮)로 올라가 하늘에 짝하였다.’ 하였으니, 도(道)로써 세상을 마쳐 그 덕(德)이
하늘에 합함을 말한 것이다. 그러므로 《서경(書經)》에 순(舜)의 죽음을 기록할 적에 ‘척(陟)’이라 하고 그 아래에
‘방내사(方乃死)’라고 말하였으니, 이는 척(陟)을 죽음으로 해석한 것이다. 지형은 동남쪽이 낮으니,
만일 순(舜)이 순수하다가 죽었다고 말한다면 마땅히 하방(下方)이라 할 것이요 척방(陟方)이라 할 수 없다.” 하였다.
내가 살펴보건대 이 말이 맞으나 다만 척(陟)을 구절로 삼는 것은 마땅하지 않다. 방(方)은 ‘구름이 사방으로 간다’는
방(方)과 같으니, 척방내사(陟方乃死)는 조락(±3落)하여 죽었다는 말과 같다. 순(舜)이 태어난 지 30세에 요(堯)가
비로소 불러 등용하여 3년동안 시험하였고 섭위한 것이 28년이니, 통틀어 30년에 비로소 제위에 올랐고 또 50년에
붕(崩)하셨으니, 편(篇)의 끝에 그 시종을 다 서술한 것이다. 《사기(史記)》에는 “순(舜)이 순수하다가 창오(蒼梧)의
들에서 붕(崩)했다.” 하였고, 맹자(孟子)는 “순(舜)이 명조(鳴條)에서 별세하였다.” 하였으니, 누가 옳은지 알 수 없다.
지금 영릉(零陵)의 구의산(九疑山)에 순(舜)의 무덤이 있다.』
'경전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금강경 1강 (0) | 2016.12.09 |
---|---|
[스크랩] 반야심경 註解 (0) | 2016.12.03 |
淵澄取映연징취영 (0) | 2016.11.30 |
[스크랩] 《 荀子》 勸學篇 第一 (0) | 2016.11.29 |
[스크랩] 小學題辭 (0) | 2016.11.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