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전 이야기

[스크랩] 금강경 1강

강나루터 2016. 12. 9. 06:02

안녕하십니까?

또 이렇게 인연이 되었습니다.

지금부터 7개월 간에 걸쳐서 여러분과 금강경 산림을 시작하겠습니다. 저 나름대로는 금강경산림을 하되 선에서 본 금강경, 이런 의미를 가지고 시작하려고 합니다. 그러면은 조금 비유를 하자면은  자성이라는 이 브랜드는 하는 일이, 만들어내는 제품은, 그 브랜드에서 나오는거는 전부 명품만 나와요.그렇죠? 그 명품은  항상 남을 배려해주고 이해해 주고

또 이 금강경에서 말하는 아무 조건없이 생색없이 남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 이런 것들이 자성에서 나오는 작용이거든  그런데 나라는 아집이 욕심이 에고라는 것이 딱 이게 서게 되면은 여기서 나오는 제품들이 다 뭐냐하면은 가짜만 나오기 시작하는 거야. 소위 말해서 짝퉁만 나온다 이말이야. 그 짝퉁이 뭐냐? 그게 차별도 하고 미워도 하고 그리고 사랑하고 증오하고 다 이러면서 그것들이 나를 위하는 제품인줄 알았는데 이 공부를 해보니까 그런 것들이 남 보담도 나를 먼저 괴롭게 만들고 고통스럽게 만들고  내가 나를 학대 하고  내가 나를 시달리게 하는 그런 것들이었구나 하는거를 알면은  그 자리가 공덕자리가 드러난다 이말이야.  고요한 자리고  그자리가 아주 뭐라그럴까 안심된 자리다, 그래서 이거를 '안심입명이다' 이런말도 하는데  안심된  이 자리에 딱 들어가면은 생각이 항상 단순해져요.  단순하다는 말은 순수하다는 이야기이고  순수하다는 말은 천진하다 이말이여, 그렇게 변화가 일어난다는것이지. 그렇게 될 때 그 산에는 가지가지 모든 나무들이 다 거기에는 살 수가 있어요. 요즘 많이 피는 찔레도 살고 또 사철 기상을 부리는 소나무도 살고 그 산에는 갖가지 나무가 살면서 거기에 갖가지 새 울음 소리가 자유롭게 생명의 노래를 부르게끔 되어있다 이말이야.  그래서 우리가 그러한 마음의 공덕성을 말이지 보기 위해서 우리가 참선도 하고 염불도 하고, 참회, 봉사 여러가지를 하잖아요? 본문에 들어가서는 그러한 것들이 모두 다 선으로 다 돌아간다.  요거를 정리를 해드릴려고 그래. 뭐 선이라고해서 딱 가부좌하고 도인태를 내고 앉았는거만  선이 아니고 내가 생활해나가는 그 생활, 예를 들어  엿장수는 엿장수대로 공무원은 공무원대로  자기가 하고 있는 그 생활에서 자기 입장에서  이 본래 무심한 공덕의 자리를 보면은 거기서 내 스스로가 할 수 있는 지혜의 눈이 딱 열리게 되어있어요. 7개월 동안에 그런 변화를 일으켜서 한 번 살아보자 이게 살림의 뜻입니다.

        자 금강경을 가지고 여러분들에게 7개월 동안 하는데 이 금강경은 부처님의 경전말씀 중에 팔만장경 가운데에 가장 불자들이  많이 간경하고 독경하고 그리고 기도로써 사경도 많이 하고 또 여러분들이 가정마다 불자라면 금강경 한 권 가지고 있지 않는 분이 없다 이말이여,  다 가지고 있어, 그렇다면은 이 금강경이 가장 우리 불자님들에게 친숙되어 있고 그리고 이 금강경이 가장 많이 읽히고 있으니까 어떻게 보면 영원한 베스트셀러다 이말이야.  그래서 이번에는 금강경을 또 교재로 선택을 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금강경이라는 것이 너무나도  금강경이 가지고 있는 가치와 사상적인 의미의 비중이  부처님 팔만가지 여러가지 사상 가운데 근본 바탕이 되기 때문에 반야사상이!  반야사상이 근본 바탕이 된다  이런말은  반야는 지혜를 말하잖아요  지혜라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지혜,  말은 많이 하는데 지혜를 어떻게 정리할 수 있습니까? 이렇게 물으면 지혜에 대해서 쉽게 정리하는 것이  쉽지가 않지요.  우리가 지혜라고 그럴 때는 이 세상에 천삼라 만삼라 생명있는 것이나 생명 없는 것이나 모든 것이 이렇게 생명세계에 드러나있잖아요. 그렇죠?  드러나 있는데 그 드러난 형상만 보고 거기에다가 의미를 가지고 판단하고 거기에 집착하고  거기에서 머물려고 하면은 그것은 우리가 본성의 명품에서 보는게 아니라는 말이야. 그래서 모든 생명있는 거나 어떤 것이라도 볼 적에 그 생명이 어떻게 이루어진 것인가? 그 본질은 무엇인가?  본질에 대해서 잘 꿰뚫어 볼 수 있는 것을 갖다가 지(智)라고 그런러거든 그리고 그 본질을 잘 꿰뚤어 본 그 자리에서 장미는 붉은 것이고 배꽃은 흰 것이고 개나리는 봄에 피는 것이고 국화는 가을에 피는 것이다. 그래서 소위말해서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 이렇게 딱 본다 이말이야 보는 그것을 뭐라고 그런다? 혜라고 그런다. 이 본질을 잘 봐야 그 모양을 우리가 잘 판단한다 이말이야. 왜 본질을 잘 보는 것이 그렇게 중요하냐 본질을 잘 볼 수 있다는 것은 마음의 빈 본 성품자리를 본다는 이야기거든  마음이 비어있는 본 성품자리를 본다는 건데, 그 본 성품자리 바탕에서 모든 사물을 잘 판단할 수 있는 지혜가 나올때 그 지혜가 아주 나도 행복하게 만들고 남도 행복하게 만들고 세상도 평화롭게 만들고 모든 이들을 다  기쁘게 할 수 있는 지혜가 된다는 거에요. 그래서 왜 그러냐 하면은 아까 첨에 말씀드렸듯이  우리의 본 자성자리는 본래 아무 문제가 없다 이말이야. 그렇죠? 본래 아무 문제가 없기 때문에  이 마음이 지혜로서 마음 눈이 열려버리면은 이 마음에는 번뇌망상이 다 가라앉아도  본래 없던 번뇌 망상이기 때문에 마음은  가라앉아서 조용해지면, 고요해지면 앙금이 없어요.  우리가 물에는 가라앉으면 앙금이 있죠? 마음은 번뇌망상이 가라앉아도 앙금이 없어. 그 앙금이 없다는 것은 그대로 마음 물이 일급수와 같다 이말이야, 일급수는 어디로 가서 하루종일 흔들어도 거기에는 흐린 앙금이 뜨지를 않는다. 그렇지요? 그래서 그 뒤가 참 깨끗하다. 흔적이 없다.  이거를 비유를 하자면은 새가 허공을 날라 가되 흔적을 찾을 수 없다. 봄빛이 만산에 쫓아다니면서 만산에 다 꽃을 피우되 봄빛이 다닌 흔적 자욱을 볼 수가 없어.  마음 쓰는 자리가 그렇게 된다는 거지 얼마나 좋아? 반야사상 이 공사상이 대단한 거지 그래서 이 반야사상이 부처님의 그 팔만 장경에 설하신 사상 가운데도 가장 근본바탕이 된다 이렇게 말씀을 전해드리고  그래서 금강경에 대해서는 여러분도 교학적으로 잘 아시지만은 금강경이 본래 그 부수가 600부나 되, 참 많죠?

그 600부 되는 가운데에 지금 여러분들과 공부하고자 하는 이 교재 금강경은  577번 째에 해당하는 한 권입니다. 그래서 이 반야부 경전을 게송으로 말하면은 한 300 게송이 된다. 이렇게해서 보통 우리가 300송 반야경이다 이렇게도 이야기 합니다. 그리고 또 이제 내용적으로 들어가면은  중생이 가지고 있는 그 착각의 거짓된 짝퉁, 잘못된 제품들 말이요. 미워하고 싫어하고 이기심 이런게 다 잘못된 제품이거든 이런 것들을 다 버리고 여읜다고 해서 離相經이라고도 이야기 합니다. 이상  떠날 이(離)자  모양상(相)자  상을 다 떠난다 이런뜻에서도 이야기하고, 이 금강경은 서기 150년에서 200년 사이에 편집이 된 경전입니다. 그렇다면은 이 금강경은 부처님이 열반하시고 대승경전으로서는 아주 초기에 아주 그 대승경전이 이루어지는 초기에 이루어지는 경전입니다. 그래서 공이라는 단어가 이 금강경에는 들어있지 않습니다.  공이라는 단어가 세상에 사상적으로 드러나기 전에 이미 금강경이 만들어졌기 때문에 그래서 금강경은 계속 공을 드러내면서도 공이라는 단어가 거기 들어있지 아니하고 또 이 금강경에는 보면은 다른 경전은 시작 서두가 비구스님이 몇분이 참여되었고 부처님이 설법하시는 법회장소에, 보살이 몇만 보살이 참여가 됬고, 대승경전은 다 그렇게 시작이 되는데  이 금강경은 보살이 참여가 되어 있다는 서두가 없다 이말이야. 그래서 이 금강경이 이루어질 때만 해도 대승이다 소승이다. 그리고 보살의 그 보살행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이게 시대적으로 그렇게 사상이 정리가 도기 이전에 금강경이 편집 된 것이 아니냐, 내용적으로 들어가면은  이제 '보살이 보리심을  발했을 때는 부처님, 어떻게 그 마음을 머물고 어떻게 그 마음을 항복받겠습니까' 하는 이야기가 나오지요  보살의 행을 어떻게 해야되느냐 이것이 죽 나오죠. 그러나 서두는 그렇다 이말입니다. 그래서 이 금강경을 여러분들하고 보는데 교재를 어떤 교재라고 정하고 싶지 않아요. 왜 그러냐? 여러분들 가정에  금강경 한 권은  다 가지고 계시죠?  다만 먼지가 좀 앉아서 그렇지 없는 집이 없어 그래서 굳이 또 어려운 살림에 금강경을 새로 장만할것 있느냐?  먼지만 털면 된다 이말이요. 그래서  구마라즙이라는 대 선지식이 번역하신 금강경이 있고 당나라때  현장 삼장법사가 번역한 금강경이 있습니다. 거기에는 책 이름이  능단 금강반야바라밀경 이렇게 했습니다. 그러니까 금강반야바라밀경에 능단이라는 것이 앞에 붙어요. 그 能斷이라는 것이 능할 능자 끊을 단자거든,  이야기 안해도 알겠죠? 내가 끊어야 될 것이 무엇이라는 것 그래서 금강경에는 네가지 상을 끊어야 된다는 의미에서 그런 겁니다.

 

        자 그러면은 금강경을 제가 여러분들하고 강의를 들어가기 전에 오늘은 교재 본문 보담은 이 금강경이 불교 교리발달사 측면에서 볼 때 언제 어느시기에 이것이 만들어 졌으며 또 사상적으로는 어떤 의미가 있으며, 이 금강경이 지니는 크나큰  그 부처님의 진리의 가치가, 요지가 뭐냐 요런 것들을 조금 먼저 서두에 정리를 좀 하고 다음 시간에는 본문에 들어가도록 하죠. 이 금강경을 제가 인제 교리발달사 측면에서 말씀을 드리면은 이게 중국에서는 제가 항상 말씀을 드리지만은 인도에서는 1200년에 걸쳐서  부처님의 말씀이 그 시대의 많은 민초들이 원하는 원에 따라서 사상이 이렇게 전개되어 왔다 이말이요.  전개되어 왔기 때문에 큰 무리가 없었는데 이것이 어느날 인도에서 중국으로 불교가 건너갈 때는 순서없이 건너갔거든  대승경전이 먼저 건너가고  소승경전이 뒤에 건너가고 원시경전이 먼저가야되는데 원시경전이 또 뒤에 들어갈 수도 있고  그러다보니까 중국사람들이 불교를 받아들일 때는 혼란이 좀 왔겠죠. 대승경전에서는  여러 부처님이 출현하시고 여러사상들을 이렇게 받아들이면서 다양한 비유가 많이 나오고 이런데, 원시경전을 이렇게 보면  보살이라는 명호도 아니나오고  딱 보살이라 하면 부처님이 도솔천  내원궁에 계실 때 호명보살이라는 이름 하나만 나오고 부처님 한 분으로서 모든 것이 이렇게 되는데, 이것 참 이해하기가 어렵다는 거죠.  이것을 모든 부처님의 장경을 다 모아가지고 중국의 대 선지식들이 사상과 내용의 질에 따라서  시대적으로 분류하고 내용도 잘 정리정돈  해놓은 것이 있는데 그것을 뭐라고 그러느냐하면  교상판석이라 그럽니다. 교의 모양, 그 드러난 이치를 따라서 그 진리를 잘 판별해서 시기적으로  나누어 놓았다. 요거를 잘 하신 분 중의 한 분이 누구시냐 하면은  그 분이 바로 천태 지의선사라는 분이 계셨어요. 중국의 천태 지의선사가 말씀하신 五時敎라는 것이 있어요.  다섯오자 때시자 그 시기를 다섯가지로 분류해 나누어 놓았는데, 그 다섯가지 분류중에서   첫째가 뭐냐하면은 궁자경악화엄시다.  궁자라는 말은 못난 아들이라는 말이거든, 그게 어디에 나오느냐 하면 법화경의 신해품에 나옵니다. 이 비유가 아주 대단히 좋은 비유에요. 궁자라는 것이 못난 아들이거든 근데  못난 아들이 경악했다, 놀랬다 이말이야. 왜 놀랐느냐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놀래 버린거야 그거를 갖다가 화엄경이라고 그래요. 예를 들자면 대 부자집에 주인이 아들을 잃어버렸는데 어느날 보니까 그 아들이 장성해가지고 거지가 되어서  집에 동냥하러 왔어요.  그래서 부모가 쳐다보니까 내 자식이라는 것을 알았거든  그래서 '이놈아 니가 그동안에  어데가서 그리 고생했느냐 너는 내 자식이다' 이렇게 했는데. 그  자식이 주인을 바라보고 비단 옷도 입고 너무나도 화려하니까 나를 잡아다가 어디 또 써먹을 고통을 주려고 저러나 싶어  도망을 간거야 부모라는 말이 믿기지 않았다 이거야.  이 말씀이 뭐냐하면 부처님께서 출가하셔가지고 6년고행을 하셔서 부처님께서 성도하시고는  그리고 깨달아서 세상의 생명세계를 바라보니 모든 생명이 그 생명 불성 그 자성 자체에는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부처님이 가지고 계신  자비스러운 자비성품과 조금도 다를 것이 없더라는 거죠. 조금 더 깊이 들어가면은  부처님도 성불을 하면은 뭔가 다른 세계가 이루어지고 뭔가가 부처님의 세계가 따로 펼쳐져 있는 줄 알고 당신이 6년동안 고행을 많이 하셨는데 그 깨닫고 보니까 출가전의 마음이나 깨달은 이 마음이나 그 마음 바탕은  조금도 문제가 없었다는 것을 알은거야. 그래서 여기에서 여러분들이 느껴야 할 것이 뭐냐하면은 본래 문제가 없으니까 들을 것도 없고 닦을 것도 없고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고  본래 문제가 없다는 이야기를  여러분들이 알려면은 본래 문제가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된다는 거에요. 그래서 불교는 깨침이 중요하다는 거죠.  그래서 부처님이  깨치고 나니까 뭐라고 하셨냐 하면은 화엄경 여래 출현품에 나오는 말씀이에요.  일체 중생들이 다 여래와 똑 같은 지혜의 덕상을 갖추었구나. 문제가 없다는 이야기죠.  듣는 것도 불편이 없고 보는 것도 불편이 없고, 생각하는 것도 모자람이 없고 다 갖추어져서 기능이 똑 같다는 거죠. 그런데 그 기능이 명품으로 잘 나오려면은 어떻게 해야되느냐? 그 기능이 명품으로 잘 나올 수 있게끔 말이지 효용이 드러나야 되는데 그렇지요? 좋은 제품은 그 효용이 다르잖아요, 그런데 기능적으로는 똑같은데  효능에 있어가지고는 좀 저질스럽게 나온다 말이야. 미워하고 질투하고 이기심 차리고 자기 에고이즘으로 나고 이러거든 그러니까  요것이 부처님하고 다르다는 말이여. 그래서 부처님이 말씀하시기를 '일체중생이 본래 나와 똑 같은 지혜의 덕상, 자비의 그 성품이 갖춰져가 있어서 여러분들도 다 부처님이시다' 이렇게 이야기를 했거든. 그런데 요거를 선가에서는 좀 더 간단하게 선가의 용어들은 알아듣던 못 알아듣던 심플하게 그냥 간단하게 이야기합니다.  선가에서는 뭐라고 그러냐 하면  '본래부처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 거에요. 그래서  본래부처라는 이 소리를 부처님이 하시니까  중생들이 그걸 듣고서는 한마디로 말해서  믿지 아니하였다 이 말이야.  내가 부처라는 말이 믿음이 안가는 거에요. 그래서 7개월 동안 여러분들이 계속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가 본래 부처다 라는 믿음이 여러분들이 성숙되고 또 성숙되어서 마지막에 가서는 조금도 여러분들이 자신을 의심하지 아니하는 살림이 되어야 된다는 거지.  그래서 제가 항상 이야기하지만은도  우리가 내가 본래 부처라는 여기에 믿음이 아주 깊어지고 성숙되어가는 사람을 우리는 뭐라고 그러냐 하면은 그런 사람을  상근기 인이다 라고 하지요.

이 상근기 인이라는 말은 본래 부처에 대해서 의심이 없는 사람을  상근기라고 그런다. 그래서 상근기는  이런 말을 들으면은 화엄경 그 말씀을 듣는 순간에 바로 부처가 되어버린다는 것이죠.   믿음이 화엄경에서는 그것을 심만이라고 그러는데 믿음이 꽉 찼다 이말이야. 믿음만 꽉 차버리면  별 문제 될 것이 없어요. 그래서  초발심시가 변정각이다. 이런 말을 듣는 순간에 깨닫는다는 말이죠.  이렇게 깨달을려면 믿음이 성숙되어야 되는데, 그 믿음이 성숙되려면은 정견이 서야 된다. 제가 항상 정견이야기 많이 하죠? 정견이 서야 법을 보는 안목이 갖추어 진다. 안목이 갖추어지는 것을 가지고  정법안장이다 이렇게도 이야기 하죠 그 정견 세우는 내용들이 금강경에 그 내용들이 다 들어가 있다.  그래서 7개월 동안 들으시면 정견을 잘 세울 수가 있다. 그 때 중생들이 믿음이 약해서 못알아 들었기 때문에  부처님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한 거에요.  그 부처님도 조금 문제가 있지, 왜 문제가 있느냐? 상대를 보고 이야기를 해야 될 거 아니야 그렇죠? 상대가 믿음도 약하고  두려움도 많고 이기심도 많은데 네가 부처다 그러니까  상대도 말이지 사실 괴롭죠 오히려 번민을 많이 준다 이말이에요.  그래서 부처님이 그것을 깨닫고는 방법을 낮춘 것이지 낮춘 것이 여러분도 잘 알다시피 아함경을 설하셨다 이말이야. 그래서 화엄경 설했던 것을 갖다가 우리가 이제 궁자 못난 아들을 놀라게 했다. 누가 부처가 무엇으로 화엄경의 내용으로 이렇게 되는 거에요. 그래서 이제  부처님이 차원을 낮추어 가지고 그러면은  아함경을 시작했다. 그 아함경에서는 부처님이 무슨 말씀을 했느냐면  그러면 그 중생들을 먼저 이 말을 믿게끔 하려면은 저 마음의  욕망의 불꽃을 말이지 좀 잠재우고 쉬게 만들어야 되겠구나. 그러자면 무엇이 제일 중요하냐? 사람의 인성을 순화시키는데는 가장 좋은 교육이 뭐냐하면  무상한 거야. 세상은 무상하다.  흐르는 강물처럼 시간은 흘러가고  어제까지만 해도 꽃시절이었는데,  오늘 이렇게 눈도 희미해지고 머리도 색깔이 이상하게  희지고 이 무상한 교육이 참 좋은 거야. 그래서 무상을 말씀을 하신겁니다. 그래서 모든 것이 무상하기 때문에 고정적으로 불변하면서 영원히 머물고, 영원히 그 모습을 불변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 사대 육신은 이루어지기를 흙과 물과 바람과 불기운이라는 이런 원소로 이루어 진 것이다. 이것이 시절인연이 다해서 떠나갈 때는  갈때는 말없이 떠나버린다.  떠날 때는 말없이 깔끔하잖아요. 그기 좋잖아요? 그렇게 해버린다 이말이야. 그러니까 이 몸이 무상한 것인 줄을 알아라 그렇게 인제 아함경에서는 계속 이야기를 한거죠. 그러니까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모든 부처님 제자들과 불자들이 아 참 몸이라는 것은 무상한 것이구나. 그러면서  몸이 본래 집착할 것이 없다는 아공을 알게 된 거에요. 아함경에서는 아공을 깨닫게 되는거에요.  여러분들도 이 몸이 무상하다는 아공은 다 알고 계시잖아. 그렇죠? 근데 여러분들이 해결하지 못하는 것이 있거든 그게 뭐냐하면은 아함경에서도  부처님의 진리 법문을 들으면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그 진리, 법, 법의 진리 그것은 영원한 것이다. 이렇게 생각한거에요. 그래서 인제 법을  영원한 것이라고 생각하니까 법에 집착을 하게 되는거라. 그것을 뭐라 그러죠?  법집이라고 그러는거에요. 금강경의 내용에 들어가면 부처님이 말씀하신 모든 법도 저 생사를 건너고 부처님의 열반의 세계에 들어가기 위한 하나의 땟목과 같은 것이다. 이렇게 이야기 했거든.  법 그 자체도 부처님이 무상한 것이다 이말이야. 이거를 말씀을 드리고 싶었는 데, 그것까지 드리면 또 도망을 갈까봐 그때는 아공만 말씀을 했다 이말이야.  그래서 그 불자들이 아공은 알았는데 법이 공한 줄을 몰라가지고 그래서 아공법유다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나는 공하고  법법자(法) 있을 유자(有)법은 있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법에 어둡다고 해서  어리석을 우자 법법자 愚法소승이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거에요. 그것이  이 법화경에서는 못난 아들을  주인이, 부모가 직접가는 것이 아니고 다른 거지를 시켜서 그 집에 들어와서 거름도 치우고 마당도 쓸고 품삯을 받으면서  친숙하게끔 만들어 주는 것이다. 그래서 이것을 제분전과아함시  제자는 없앨제(除)자지요. 분자는 똥분(糞)자입니다. 똥을 치우고 그리고 그 품삯을 , 전과를 받아서 부처님께 머물렀다고 해서 아함시다. 요거를 부처님이 몇년간 설하셨나 하면은 인욕을 가지고 12년간 설했다. 인욕이 참 대단하시죠? 그리고는 그 다음에 부처님이 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방등경을 설하셨습니다. 방등이라는 말은 대승경전을 말합니다. 금강경도 대승경전이잖아요. 그래서 그  또 아공에만 집착이 되어있고 자기가 공부한  자기의 그 마음에 편안한 것에만 안착되어 있는 사람들이 있거든. 공부해서 자기만 편안하게 안정되어 있는 사람이 있다 이말이에요. 이런 입장을 부처님이 중생의 고통을 교화하는 원이 없다고 해서 부처님이  뭐라카셨고요  그래서 이거를 뭐라카기 위해서 대승경전이 나오기 시작한거에요. 그래서 대승경전이 다른 말로  방등경이라고 그래, 그래서 그 대승경전 내용들이 보면 부처님과 제자들하고 질문형식으로 이루어져요. 금강경이 부처님과 제자와 질문 형식으로 이루어지면서 공의 사상을 드러내는 거야.  공의 사상을 드러내는데 아함에서 문제점이 뭐냐하면은, 왜 대승경전이 출현하게 되었느냐 날씨가 많이 가물면  농부의 마음은  어떻습니까?  비가와야 되는데 그렇잖아요? 그런데 어느날 천둥번개는 많이 치는데  비가 안오면 어떻게 됩니까 짜증나지? 그렇죠? 여러분들이나 저나 스님들이나 공부한다고 폼은 많이 잡았는데 가족이나 친지나 이웃이나 교화를 안한다, 전법을 안한다 이말이야.  그러니까  천둥번개 공부한다고 폼만 많이 잡았지 비는 실상 안오는 거야 그러니까 얼마나 갈증이 나?  그러니까 그것은  잘못된 공부다. 그래서 이제 대승경전이 나온거에요.그리고서는  방등경이 8년간 준비작업으로 들어간거지  바로 이야기 하면 도망을 갈거니까 그래서 부처님이 인욕을 가지고  8년을 하고서는 마지막 금강경에 들어가는거에요.  이 금강경에는 무슨 말씀을 하셨나 하면은 아공은 이해를 했지만은  법에 대한 법공을 이해를 못하고 법에 집착하게 되면은 오히려 오만해지고 자만해지고 법 자체가  자기를 구속시키고 법 자체가 자기를 힘들게 한다 이말이야. 그러니까 그것을  갖다가 또 이렇게 법까지도 거기에 매이지 아니하고 자유롭게 해주기 위해서 이 금강경이 이루어진다.  금강경에서 주장하는 것은 공도리잖아 그렇죠? 마지막에는 법화경을 했을 때에는 금강경에서 영지보물반야시라 이렇게 이야기한다. 집에 보물이 있는 장소를 알게끔 해주었다는것이지. 그리고 마지막에 법화경에 가서는 그 전 재산을 니가 내 아들이니까 다 가져라하고 물려주는 상황이거든,  그러면은 전 재산이라고 할 때는 무상사 대웅전처럼 이렇게 잘 지은 것을 다 주기는 주되, 이 집이 가장 실용적으로 필요한 것은 무엇이냐 하면은 이 공간이라는 거야, 밖의 형상도 좋지만은 공간 활용도 잘 할 줄 알아야 된다. 그것은 뭐냐하면은 사람이 이 형상 몸을 받아서 공부도 하고 다 하지만은  실제로 중요한 것은 본성을 알아야 된다. 본성의 자리는 이 빈 공간과 같이 항상 이렇게 비어있는 자리를 잘 볼 줄 알아야한다. 요거를 승가에 들어가면 요자리를  뭐라고 그러느냐 하면 경계에 매하지 아니하는 무심한 자리를 금강경에서는 이게 인제 공한 자리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이것을 반야심경에서는 색상은 색이라 그랬고 이 빈 공간을  공이라 그랬잖아. 그래서 색과 공을  잘 활용하고 응용할 줄 알아야 된다. 그래서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다' 요렇게 정리가 되는 거에요. 그래서  오늘은 여러분들에게 이 금강경이 이루어지게 된 교리적인 측면에서 시대적으로 말씀을 좀 드리고 또 금강경의 사상이 그 텅 비어있는 불성의 자비성품의 바다에서 무한하게 중생을 위해서 조건없이 생색없이 자비로움이 흘러나온다. 이말이요. 그렇죠? 이것을 인제 금강경의 요지를 오늘 정리를 해 드리고

합장해 주실래요?

아유일권경(我有一券經) /내게 한 권의 경이 있으니

불인지묵성(不因紙墨成)/종이와 글자로 된것이 아니다.

나무아미타불

전개무일자(展開無一字)/펼치면 한글자도 없지만

상방대광명(常放大光明)/ 항상 큰 광명을 놓는다.

나무아미타불

이 게송은 출처는 뚜렸하지 않습니다만  석문이범에 나와서 염불할 때도 많이 하는 게송인데 아유일권경이라 나에게 한 경전이 있다. 여러분들이 경전을 다 가슴에 가지고 있다는 거에요. 그 경전이 무슨 경전이냐?  화엄경이 될 수도 있고 금강경이 될 수도 있고 법화경이 될 수도 있고 팔만대장경이 다 될 수가 있는 그런 그 아주 효능이 뛰어난 경전이 여러분 가슴에 있다는 거에요. 그런데 이 경전은 세상에서 말하는 붓으로나 먹으로 가지고 글로 쓴 경전은 아니다 이말이야. 그게 항상 글자 한 자 없이  말이지 그 책은  이루어져가 있다 이말이야.  글자가 없다보니까 오히려 쓰는 것이 응용하는 것이 무궁무진하다는 거에요.  상대에 따라서는 아함경을 내 놓기도 하고  상대에 따라서는 금강경도 내 놓고 때에 따라서는 법화, 화엄경도 접어놓고 일구도리 선도리도 내 놓고,  무궁무진하게 쓸 수 있는 경전이 이 안에 있다. 이말이야.  그런데 이 경전이 어둡게 쓰기로 말하면은 사람을 속이고 상대를 고통을 주고 그리고 자기 자신도 괴로움 속에서 지옥 속에서 고통을 받으면서 윤회하고 고통받고  그런 일이 지금 이 순간에 일어나버리고 이게 다음생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고, 잘못 어둡기로 말하면 그렇게 된다 이말이요. 이것이 정견이 서서 밝게 잘 쓰기로 말하면은 남을 위하는 일이  내 자신을 위하는 일이되고 남을 사랑하는 일이 먼저 나를 사랑하는 일이 되고 남을 기쁘게 해주는 것이  먼저 내가 즐거운 일로써  되었더라 이말이야. 즉 말해서  부메랑을 던졌는데 나에게 먼저 돌아오듯이  그렇죠? 이렇게 하는 경전이기 때문에 이 경전은 한번도 사실은 어두워진 적도 없고 윤회한 적도 없고  남에게 고통과 자신도 고통 일으킨 적도 없는 경전이야 이 경전은. 내가 스스로 착각해서 어두워져가지고  그렇게 집착을 해서 만들었을 뿐이지  그것은 아니다는 거에요.

그래서 이 경전은 항상 닦을 것도 없고 증득할 것도 없이  본래 원만구족하게 잘 되어 있는 경전이기 때문에 세세생생토록 영원토록 이 경전은 항상 대광명이 쏟아져 나온다는 거에요. 그런데 그거를 대광명인줄 알려면은 여러분들이 깨달아야 된다는 거에요. 여기서 깨달아야 된다고 하니까 딱 폼잡고 앉아가지고 언제 깨달을런고 하면은 또 깨달음이라는  병에 든다 이말이여 그러면 그 깨달음이라는 것이 욕심의 대상이 되어버린다 이말이에요. 열반이라는 것이 욕심의 대상이 되고 부처의 세계라는 것이 욕심의 대상이 되면은 안된다는 겁니다. 아시겠죠? 다음시간 부터는 재미있게 하입시니다.

성불하입시다.

()()()

 

 

 

 

출처 : Running Through the Impermanence
글쓴이 : 아톰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