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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산간 지역의 땟거리 05
땟거리에 오른 음식들. 옥수수
갓 수확한 옥수수를 가마솥에 쪄서 김이 빠지기 전에 깨물어 먹으면 탱글탱글한 알맹이가 터지면서 고소하고도 단맛이 올라온다. 톡톡 터지는 알갱이가 씹는 맛을 더해주는 영양 간식이다. 그러나 강원도 산간 지역에서 옥수수는 오랜 세월 간식이 아닌 주식이었다. 섬유질이 많은 옥수수는 조금만 먹어도 포만감을 느낄 수 있다. 감자, 메밀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같은 양을 조리했을 때 옥수수로 만든 음식이 상대적으로 묵직한 느낌을 준다. 때문에 강원도 산간 지역민들은 그들의 환경에서 비교적 쉽고도 많이 수확할 수 있었던 옥수수를 활용해 그들만의 땟거리 음식을 만들어 먹었다.
올창묵
국수이고 싶은 그대는 묵?
올챙이국수는 모양새가 얕은 개울가에서 헤엄치고 다니는 뒷다리 나오기 전의 올챙이를 닮았다고 알려진 강원도 토속음식이다. 요즘은 꼭 강원도가 아니더라도 이 올챙이국수를 맛볼 수 있는데 조사 과정에서 만난 강원도 산골 지역민들은 올챙이국수를 다르게 불렀다. ‘올창묵’ 또는 ‘올챙묵’이라고 했다.
국수와 묵은 만드는 방법도 완성된 음식의 형태도 다르다. 그러면 이것은 묵일까, 국수일까?
조리 과정을 살펴보면, 먼저 옥수수 알갱이를 물에 불린다. 중간 중간 불순물을 걸려 낸 다음 맷돌에 간다. 곱게 갈기 위해서는 한 번에 반 숟가락 정도가 적당하다. 물을 적당히 섞어서 갈아야 옥수수 알갱이가 겉돌지 않고 체에 걸려 내리는 다음 작업도 용이해진다. 그날 수확한 옥수수는 수분을 충분히 머금고 있기 때문에 물에 불리지 않아도 된다. 맷돌에 아무리 곱게 간다 하더라도 갈아 놓은 옥수수 속에 충분히 갈리지 않은 알갱이들이 숨어 있다. 이를 분리해내기 위해 체에 거른다. 거르면서도 손으로 계속 으깨주어야 한다.
불을 때서 달궈 놓은 가마솥에 옥수수 간 것을 붓고 눋지 않도록 저으면서 뭉근하게 끓이면 묵이 만들어진다. 점도가 적당해지면 묵을 퍼내서 구멍 뚫린 틀 위로 붓는다. 이때 찬물을 채운 큰 대야를 받쳐서 틀을 통과해서 나오는 묵을 받는다. 틀을 통과한 묵의 모양은 묵의 점도에 따라 달라진다.
묵이 묽으면 찰기가 적어 분통에 붓는 즉시 틀을 통과하기 때문에 동글동글 방울진 형태가 된다. 반대로 점도가 높으면 진액이 틀 구멍으로 잘 빠져나오지 못한다. 그때에는 손잡이 달린 뚜껑으로 눌러 진액을 떨어뜨리는데 점성 때문에 잘 끊어지지 않고 국수가닥처럼 길게 이어져 나온다.
점도가 적당해야 틀 아래로 앞머리는 둥글고 꼬리는 가늘게 올챙이를 닮은 형태가 된다.
그러나 만들고 보니 올챙이 모양이 된 것이지 처음부터 올챙이 형태를 내려고 한 것은 아니다. 조리를 하는 과정에서 우연하게 올챙이를 닮은 모양이 나왔다는 말이다.
올챙이 모양이든 국수가닥이든 묵이 대야의 찬물에 떨어질 때는 서로 달라붙지 않도록 저어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묵이 떡처럼 한 덩어리로 엉기게 된다. 이 올챙이들을 채로 떠 물기를 뺀 다음 그릇에 담고 양념한 갓김치를 올리면 올창묵이 완성된다. 양념장으로 간을 맞추기도 한다.
올창묵을 만드는 과정은 간단치 않지만 먹을 때에는 젓가락을 사용하지 않고도 먹을 수 있을 만큼 간편한 땟거리 음식이다. 조리 방식은 묵에 가깝지만 완성된 요리는 국수와 닮았다. 결국에는 올창묵이라 해도, 올챙이국수라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러나 현재 시판되는 올챙이국수는 본래의 올창묵과는 상당히 다르다. 겉모습은 비슷하지만 조리의 효율성, 가격 경쟁력 등의 영향으로 속이 달라진 것이다. 올챙이국수라는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이름만 남고 본래 올창묵이 담고 있는 의미와 참맛은 사라지고 있는 것 같아 아쉬운 생각이 든다.
끓인 옥수수 진액을 바가지로 떠서 틀에 붓기
틀을 빠져나와 물에 잠긴 올창묵
올창묵 틀
옥수수나 메밀로 쑨 묵을 내리는 데 사용하는 틀이다. 집집마다 한두개는 가지고 있으며, 직접 제작한 것이다. 분통에 담은 묵이 아래로 떨어지도록 된 판은 양철에 대못으로 구멍을 뚫어 만들었다. 국수틀의 원초적인 모습이다.
올창묵틀 길이 58cm 높이 14cm 정선 아리랑학교 소장
강냉이밥
뭉개진 모양 속에서 터지는 옥수수쌀의 묘미
꼭 밥상머리에서만 땟거리를 만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지역 민요에서도 땟거리를 찾을 수 있다.
《정선아리랑》 등 우리에게도 익숙한 지역 민요에 옥수수를 재료로 만든 또 하나의 대표적인 땟거리 강냉이밥이 등장한다.
수암 단임 봉고도니 제모잽이 메밀쌀 사절치기
강낭밥은 조목 같은 통노구에 오골박작 끓는데
시어머니 잔소리는 부싯돌 치듯하네
《정선 엮음 아리랑》 中
이밥에 고기 반찬을 맛을 몰라서 못 먹나
사절치기 강냉이밥은 마음만 편하면 되잖소
《정선아리랑 2》 中
골목골길이 인심이 좋다고 딸놓지를 마세요
강냉이밥 아이듬하다가 잔허리 살짝 꺽어요
미탄땅이 살기좋대서 내가 살러왔더니
돈 그립고 님 그리워서 나는 못살겠네
강냉이밥 사절치기는 오글박작 끊는데
임자 당신은 어딜 가시려고 신발 단속을 하시오
《평창아리랑》 中
쪼개진 옥수수 알갱이는 물에 충분히 불려서 밥을 지어야 한다. 방아를 찧거나 맷돌에 갈아도 옥수수의 껍질이 온전히 벗겨지지 않기 때문에 물에 불려서 익혀도 까칠하고 딱딱해 먹기가 좋지 않다.
이가 약한 고령의 어르신들은 더욱 먹기가 불편해서 여기에 감자, 콩, 팥 등을 추가해 식감을 부드럽게 하는 동시에 밥의 양도 불렸다.
강냉이밥은 방순자(여, 1947년생, 정선군 여량면) 씨가 재연해 주었다.
솥에 재료들을 한꺼번에 넣고 끓인다.
감자는 껍질을 깎고 적당한 크기로 손질한다. 콩은 주로 강낭콩을 넣지만 계절에 따라 수확하는 곡물을 두루 활용했다. 뜸이 들기 시작할 무렵 솥 아래 위를 고루 솎아준다. 감자와 옥수수에서 빠져 나온 전분 때문에 밥이
눌어붙는 경우가 많다. 다 된 밥을 그릇에 담을 때에도 너무 치대지 않는 것이 좋다. 감자와 콩은 물을 머금으면 형태가 쉽게 뭉개져 떡처럼 서로 엉겨 붙기 때문이다.
옥수수알과 함께 넣은 감자와 강낭콩 준비. 완성된 강냉이밥 푸기
강냉이밥은 메옥수수를 재료로 한다.
요즘에는 개량종 찰옥수수가 주종을 이루지만 집집마다 작은 양을 경작할 때에는 재래종 메옥수수를 심었다. 수확량이 월등히 많았기 때문이다. 찰옥수수는 경작을 하더라도 밥으로 해먹지 않았다.
지역민들에게 ‘메옥수수는 밥, 찰옥수수는 떡’이라는 그들만의 공식이 있다고 했다.
많이 생산되는 것으로는 땟거리를 만들고, 적게 나는 것으로는 특별한 날에 특별한 음식을 해 먹었을 거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강냉이밥을 시식하는데 반응이 제각각이었다. 강냉이밥을 처음 맛보는 조사자는 순박하면서도 깊은 맛, 먹을수록 당기는 맛을 느꼈지만 재연 과정을 함께 한 방순자씨의 시어머니와 남편의 반응은 달랐다.
없던 시절 배를 채우려 얼마나 먹었던지 이제 보기도 싫다고 했다. 오히려 맛있어하고 남은 것을 싸가도 되냐는 조사자를 보고 상당히 의아해했다.
음식의 맛은 사람마다 다르게 느끼기기 마련이지만 비단 맛으로만 음식을 평가하지는 않는다. 재료와 조리방법을 충분히 전달한 다음 먹음직스럽게 완성한 강냉이밥을 보기 좋게 담아 상에 내놓으면 아마도 웰빙이 화두인 이 시대에 많은 이들이 관심을 보일 것이다. 인기 메뉴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힘든 날들을 이 강냉이밥으로 이겨온 사람들에게는 얼마든 다를 수 있다. 사라졌거나 잊혀 가는 음식들을 그저 맛과 차림새로 판단하기보다 그 음식이 간직하고 있는 이야기를 되새길 때 음식의 원형을 제대로 파악하고 그 참맛을 제대로 음미할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보게 된다.
그런 면에서 강냉이밥은 대중화되어 가는 올창묵보다 더 깊은 강원도를 품고 있는 매력적인 음식이다.
감자.
감자는 옥수수, 메밀과 함께 보릿고개 시절을 상징하는 구황작물이지만 이제는 일반적으로 주식보다는 반찬용으로 조리한다. 통째로 찐 감자는 충분히 포만감을 주지만 대개 새참으로 먹거나 밤늦은 시간 출출함을 달래는 야식으로 즐겨 먹었다. 그러나 강원도에서는 산허리에 지천으로 심었던 이 감자가 부식이나 주전부리 이상이었다. 감자는 온전하게 한 끼니를 책임져주는 매우 중요한 작물이었다. 특히 감자는 옥수수나 메밀에 비해 전분의 함량이 높다. 찰기가 부족한 산간의 재료들을 감자의 풍부한 전분이 맛깔나게 이어주었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감자를 재배하기 시작한 것은 채 300년이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감자가 가장 익숙한 먹거리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은 것은 제 혼자 튀지 않으면서도 짝을 이루는 재료가 무엇이든 잘 어우러지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감자송편
달콤한 떡, 썩감자가루 송편에게 이기긴 어렵다
감자송편은 썩감자 가루로 피를 만들어 빚은 송편 떡이다. 모양은 만두에 가깝지만 지역민들은 송편이라고 부른다. 투명하고도 매끈한 피가 인상적이다. 감자떡이라고도 한다.
썩감자 가루를 뜨거운 물에 반죽한다. 뜨거운 물을 한꺼번에 부으면 썩감자 가루가 고르게 풀리지 않는다. 물을 처음엔 조금씩 흘리면서 가루를 살살 젓다가 가루전체에 물기가 고루 퍼지면 손으로 눌러 반죽한다.
갓김치나 묵나물을 소로 넣는다. 갓김치는 들기름, 쪽파, 깨소금, 마늘, 고춧가루로 양념한다. 묵나물도 양념을 하는데 고춧가루 대신 고추장을 넣는 것이 다르다. 묵힌 나물이라 고춧가루보다는 고추장을 사용해야 간이 잘 배어난다.
송편은 반달 모양으로 빚기도 하고 손바닥에 비빈 다음 손가락으로 눌러 동글동글하게 빚기도 한다. 반죽을 할 때까지는 눈처럼 새하얗지만 송편을 찌고 나면 피의 색깔이 진한 갈색으로 변한다. 피의 식감도 밀가루나 메밀가루 또는 언감자 가루로 만든 것보다 훨씬 쫀득하고 밀도가 치밀한 것이 특징이다
썩감자 앙금 만들기
썩감자는 말 그대로 감자를 썩혀 가루를 만들기 때문에 불리는 명칭이다. 수확해서 제 계절에 먹고 남은 감자를 항아리에 넣고 완전히 잠기도록 물을 부은 후 돌로 눌러둔다.
이렇게 물에 잠긴 감자는 껍질이 자연스럽게 분리가 되고 속의 성분은 물에 잘 녹아들지 않는 녹말(전분) 이외에는 자연스럽게 물에 녹아든다. 이 과정은 최소 두 달 정도가 걸린다.
항아리를 여는 날은 집은 물론이고 주변 이웃까지 감자 썩은 냄새가 진동을 한다. 항아리에서 퍼낸 내용물은 대야를 받치고 체에 걸러 내는데, 손으로 빨래하듯 계속 치대면 아래로 전분을 머금은 액체가 흘러내린다.
하얗던 감자 속살은 부패가 되면서 시커먼 색으로 변하고 썩는 동안 발생한 기포 때문에 거품이 위에 떠다니게 된다. 썩은 물을 빼내는 작업을 계속한다. 불순물이 어느 정도 제거되었다고 판단되면 백색의 감자 전분이 가라앉도록 가만히 둔다.
이렇게 모인 전분이 굳어가는 과정에도 수시로 깨끗한 물을 부어 남은 냄새를 제거한다. 색과 냄새가 완전히 빠지고 나면 물을 버리고 앙금을 자루에 넣고 돌로 눌러 수분을 제거한 후 덩어리를 깨서 햇볕에 바싹 말린다. 이를 가루로 만들어 보관한다.
감자만두
투박하지만 겨울을 견뎌내고 살아남은 맛
감자만두는 언감자(‘얽군감자’라고 부른다) 가루로 피를 만들어 빚은 만두다. 썩감자 가루로 피를 만드는 감자송편과는 피를 만드는 재료가 다를 뿐 만두 속에 들어가는 소와 쪄내는 방식은 동일하다.
언감자 가루에 뜨거운 물을 조금씩 넣으며 숟가락으로 살살 저어 가루와 물을 섞는다. 고루 섞이면 손으로 반죽한 다음 보자기를 덮어 숙성시킨다. 숙성시키는 동안 채를 썬 갓김치에 간단한 양념을 한다. 반죽은 조금씩 떼어 둥글고 얇게 편 후에 피 가운데에 소를 넣고 오므려 만두 모양을 만든다.
만두의 모양은 빚는 사람에 따라 다르다. 송편처럼 검지와 중지로 표면을 눌러 손가락 마디 자국을 내기도 한
다. 빚은 후에는 솥에 넣고 쪄내기만 하면 된다.
지금은 감자만두를 별식 또는 간식으로 즐긴다. 그러나 식량 사정이 좋지 않았던 춘궁기에는 아주 요긴한 땟거리였다. 언감자 가루로 만들었기 때문에 성글고 식감 또한 그리 매끄럽지 않았지만 먹거리가 부족했던 시기를 견뎌내는 데는 더없이 든든한 음식이었다.
감자적
싱싱한 감자의 식감으로 승부한다
‘감자부치기’ 혹은 ‘감자부치개’라고도 불리며 감자로 조리하는 땟거리 가운데 가장 간편하다. 껍질 벗긴 감자를 강판에 간 다음 체에 걸러 물기가 빠질 때까지 놔둔다. 물기를 인위적으로 짜면 부치고 나서 폭신한 식감이 덜할 뿐 아니라 금방 딱딱해진다. 어느 정도 물기가 빠지면 따로 가라앉혀 놓았던 전분을 섞고 소금으로 간을 해 반죽한다. 번철에 들기름을 두른 다음 반죽을 적당히 눌러 편다. 타지않게 불 조절을 하면서 양면을 고루 노릇하게 굽는다. 금방 간 감자로 만든 감자 부치기는 씹을 때 사각대는 소리가 날 정도로 아삭한 식감을 낸다. 이는 전분이 그 역할을 크게 하는데 갈아두었던 감자와 금방 간 감자에서 많은 차이가 난다.
감자옹심이
전분의 진검, 우리가 먹어왔던 건 뭐지
새알심을 강원도에서는 옹심이라고 한다. 감자옹심이는 감자로 새알심을 만들어 끓여 먹는 땟거리다.
숟가락으로 껍질을 벗긴 감자를 강판에 간다. 강원도에서는 주로 철판에 굵은 못으로 구멍을 뚫어 만든 강판을 사용했다. 간격은 일정하지 않았지만 철판 표면이 날카로워 분쇄하는 힘이 좋았다. 그러나 작은 조각을 갈 때에는 손이 다치지 않게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강판에 간 감자를 보자기에 넣고 최대한 물기를 짠다.
간 감자를 짜낸 물은 잠시 그대로 두면 전분이 아래로 가라앉는다. 윗물은 버리고 아래 남은 전분 앙금을 물을 짜내고 남은 감자 건더기와 섞어 치댄다. 이것이 감자옹심이 반죽이다.
냄비에 물이 끓기 시작하면 먼저 납작하게 썬 감자를 넣고 감자옹심이 반죽을 새알심처럼 뜯어 넣어 함께 끓인다. 감자옹심이는 익으면서 물 위로 떠오른다. 이때 기호에 따라 호박, 파 등을 곁들인다. 소금과 집간장으로 간을 하는데 집간장은 국물을 탁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소금으로 기본 간을 하고 집간장은 풍미를 더하는 용도로 활용한다.
감자옹심이는 생감자에 비해 투명하고 포실포실한 것이 특징이다. 씹는 식감도 생감자와는 다른데 지역민들은 감자옹심이의 씹는 맛을 ‘오록오록하다’고 표현한다.
감자옹심이는 예나 지금이나 감자를 수확하는 여름철 별미로 인기가 좋다. 열무김치를 곁들이면 별도의 양념장 없이도 조화로운 한 끼 식사가 된다.
감자수제비
수제비는 투명해야 한다
수제비는 여름철 농가 주식으로 즐겨 먹었고 그 역사가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대표적인 서민음식, 대중음식 중 하나이다. 요즘에는 밀가루나 찹쌀가루를 반죽하여 끓는 물에 얇게 떠서 익혀 먹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쌀이 귀한 강원도 산간에서는 썩감자에서 얻은 감자가루나 메밀가루로 수제비를 해먹었다.
감자가루는 뜨거운 물로 반죽하여 숙성시킨다. 반죽을 납작하게 적당한 크기로 떼서 끓는 물에 넣는다. 수제비가 어느 정도 익으면 호박을 넣고 뚜껑을 덮어 익힌 다음 마지막에 채 썬 파를 넣어 마무리 한다.
다 익은 감자수제비는 반죽했을 때와 달리 투명한 빛깔이다. 감자 전분 때문이다.
전분은 물에 넣어 가열할 때 부피가 늘어나고 점성이 생겨 풀처럼 끈끈해지는 동시에 표면이 투명해진다. 같은 감자에서 시작한 재료로 반죽을 했지만 감자옹심이와는 질감과 밀도가 또 다르다.
감자붕생이밥
몽글몽글 피어올라 그 이름을 얻으니
수확한 감자 중에 싹이 덜 난 것들을 골라 껍질을 벗기고 깨끗이 씻는다. 큰 것은 강판에 간 다음 베에 싸서 물을 짜낸다. 이 물을 가라앉혀 얻은 앙금을 말리면 감자 전분이 된다. 물을 짜내고 남은 건더기도 버리지 않고 따로 보관한다. 작은 감자는 2~3등분하여 덩어리 채로 준비한다.
가마솥에 덩어리 감자를 넣고 물을 부은 다음 아궁이 불을 지핀다. 물이 끓으면서 감자가 어느 정도 익으면 솥의 물을 조금만 남기고 바가지로 퍼낸다. 그 사이 감자 건더기를 전분, 소금과 섞어 반죽한다. 반쯤 익은 감자 위에 반죽을 적당한 크기로 떼어 듬성듬성 얹고 다시 삶는다. 강낭콩 같은 부재료를 추가하기도 한다. 감자 건
더기를 따로 한 번 쪄서 삶으면 식감이 더 쫄깃해진다.
감자붕생이밥이 완성됐다. 밥이 포슬포슬한 상태를 지역민들은 붕실거린다고 표현한다. 밥이 붕실대는 것은 조리할 때 넣은 감자 전분이 밥이 질척대지 않도록 해주기 때문이다. 밥을 하는 방법은 설탕으로 간을 하고 솥에 쪄내는 떡과 비슷하다. 재료와 조리 방식에 있어 감자뭉생이와 감자투생이도 감자붕생이밥과 유사하다.
감자붕생이밥을 주걱으로 뜨는데 각각의 재료들이 엉겨 있다. 그릇에 예쁘게 담아보려 해도 좋은 모양새로 담을 수 있는 형태는 아니다. 그럼에도 감자라는 한 가지 재료를 다양한 방식으로 손질하고 각각의 성질에 맞게 조리하여 하나의 땟거리가 완성되었다. 강원도라는 터전이 이렇게 복잡한 과정과 수고를 거치게 한 것이다.
지역민들은 척박한 환경에 순응하면서 지혜를 발휘했다. 아마도 수많은 시행착오가 있었을 것이다. 감자붕생이밥 한 그릇에 들어간 그 노력과 오랜 시간들이 그려진다. 강원도의 생활환경이 다른 지역에서는 만나기 힘든, 놀라운 감자의 변신을 이끌어 냈다.
메밀
옥수수, 감자와 함께 강원도의 메밀은 산간 지역민들이 추운 겨울을 든든하게 날 수 있도록 해주는 아주 유용한 곡물이었다. 바싹 말린 메밀은 필요할 때마다 방아를 찧거나 맷돌로 갈아 껍질을 벗기고 가루를 냈다. 그리고 그 메밀가루를 반죽해 국수, 송편, 죽 등 다양한 음식을 만들어 먹었다.
메밀묵
도심의 골목까지 누비던 익숙하고 정겨운 음식
곡식이나 열매에서 가루 형태의 전분을 추출하여 물을 붓고 끓여 되직하게 풀처럼 쑨 것을 식혀서 굳힌 음식을 묵이라고 한다. 메밀묵과 도토리묵이 대표적이다.
재료에 따라 맛과 향은 다르지만 식감은 대동소이하다. 겨울밤 도심 골목골목 메밀묵과 찹쌀떡을 외치는 장사꾼의 목소리가 퍼졌던 시절이 있다. 계절이 계절이니만큼 김장김치와 곁들여 먹기에도 좋고 출출한 배를 채워주는 저녁나절 부담없는 간식거리로 인기를 끌었다.
밤거리 메밀묵 장사꾼은 이제 추억 속의 장면이 되었지만 묵은 여전히 친근한 먹거리다. 지역을 가리지 않고 토속음식으로 묵을 판매하는 식당이 있고, 가공식품으로 나온 것을 집에서 반찬으로 조리하기도 한다. 아직까지 직접 묵을 쑤어 먹는 집도 적지 않다.
잘 말린 메밀쌀을 8시간 이상 물에 충분히 불려 맷돌에 갈아 체에 걸러 내린다. 껍질 사이사이에 낀 메밀이 모두 빠져나오도록 손으로 잘 주물러 준다. 체에 거른 메밀물을 솥에 넣고 끓이는데 한꺼번에 다 붓는 것이 아니라 묵이 덩어리지는 상태에 따라 조금씩 메밀물을 첨가하면서 계속 저어주어야 묵이 솥에 눌어붙지 않고 고루 익는다. 이 때 한쪽 방향으로 저어야 묵이 풀어지지 않고 찰기를 유지하게 된다.
메밀물이 끓기 시작하면 중간 중간 기포가 올라오는데 이것이 맑은 색을 띄기 시작하면 묵이 완성되어 간다는 신호다. 기포의 크기가 커지면 묵을 용기에 붓는다. 식으면서 굳는 데는 2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묵을 굳히지 않고 걸쭉한 상태로 먹기도 했는데 이를 ‘메밀죽탕’이라고 한다. 부드러운 식감에 음식을 씹기 힘든 어르신들이 메밀죽탕을 즐겨 먹었다고 한다.
완성된 묵은 일반적으로 묵국으로 먹는다. 그릇에 손가락 크기로 채 썬 묵을 담고 위에 잘게 썬 김치와 김, 깨소금 등을 고명으로 올린 후 육수를 부으면 한 끼 땟거리가 완성된다. 기호에 따라 양념장을 곁들이기도 하지만 이도저도 없던 시절에는 묵에 김치를 썰어 얹고 목 넘김이 좋도록 물을 부은 후에 간장으로 간을 했다고
한다.
메밀은 소화가 잘 되는 곡식이다. 배불리 먹어도 허기가 빨리 되찾아온다. 때문에 메밀묵은 땟거리보다는 간식이나 별식에 가까웠다. 충분한 곡기가 되려면 조나 수수 등으로 밥을 지어 메밀묵국에 넣어 먹어야 했다. 이를 메밀묵밥이라고 한다. 이처럼 메밀묵은 그 자체로 완성된 요리인 동시에 또 다른 땟거리의 재료이기도 했다.
메밀올창묵
메밀도 올챙이가 된다
‘올챙이국수’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음식은 흔히들 옥수수를 재료로 만들어지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재료 때문에 생겨난 명칭이 아니고 모양이 만들어낸 특이한 경우다. 그리고 실제로 이 지역에서는 ‘국수’가 아닌 ‘올창묵’이라 부른다. 또한 옥수수가 아닌 메밀로도 같은 방법의 음식을 만들어 먹는다는 새로운 정보를 얻게 되었다. 지금까지 어디에서도 들어보지 못한 이야기였다.
메밀 추수를 하러 동네분과 들에 나갔다. 메밀은 알곡에 물기만 없으면 완전히 여물기 전에 수확을 해서 그 자리에 그냥 놔두어도 속이 차오른다고 했다. 올해 유난히 더위가 심했고 그 기간 또한 길었으며 비까지 많이 와서 알곡의 상태가 그렇게 튼실해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들에 눕혀두어도 속이 차오를 정도는 된 것들을 거두어 들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이걸루 올창묵 해먹으면 정말 맛나는데.’ 내가 알고 있던 올챙이국수가 올창묵이라는 것으로 이제 겨우 정리를 마친 즈음인데, 메밀로 올챙묵이라. 여쭤 보았다.
‘올창묵은 옥수수가루로 만드는 거 아닌가요?’
답이 돌아왔다.
‘아니여. 이게 훨씬 더 고소하고 맛이 좋아.’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먹거리, 이곳만의 숨어 있던 음식에 대한 궁금함에 수고스럽지만 만들어 주십사고 부탁을 드렸다.
메밀이든 옥수수든 알곡을 갈아 채에 거르면 진액을 얻을 수 있다. 이를 솥에 붓고 저어가면서 뭉근히 끓이면 수분은 날아가고 점성이 생기면서 농도가 점점 짙어지게 된다. 즉 묵을 쑤는 것이다.
적당한 상태에 이르면 내용물을 퍼내서 구멍이 뚫린 틀에 부어내리는데 이때 아래에 큰 대야를 받쳐놓고 찬물을 충분히 채워 둔다. 틀을 통과해서 나오는 모양은 끓인 진액의 농도에 따라 달라진다.
수분이 덜 증발해 묽은 경우는 분통에 붓는 즉시 바로 틀을 지나 아래로 떨어지기 때문에 길게 이어져서 나오지 못하고 똑똑 방울지듯이 물속으로 들어간다. 이를 건져 그릇에 담고 갓김치를 올리면 메밀올창묵이 완성된다. 재료는 다르지만 조리과정은 옥수수로만든 올창묵과 같다.
사실 이것은 메밀묵과도 또 메밀국수와도 교집합을 가진다. 먼저 메밀묵과 비교해 보자.
솥에서 수분을 줄이고 찰기가 지도록 계속 끓이는 과정까지는 똑같다. 그러나 메밀묵은 끓인 후 넓은 그릇에 퍼담아 식혀서 만든다. 굳어져 모양이 잡히면 이를 적당한 크기로 썰어 양념장과 함께 먹던지 육수에 말아 묵국을 만들어 먹는다. 메밀국수는 가루를 반죽하여 분틀로 면을 뽑아 끓는 물에 삶은 뒤 찬물에 헹궈 육수에 말아 먹는 게 보통이다.
재료를 익혀 모양을 만드는 것을 보면 묵에 가까운 음식이고, 이를 다시 틀에 내려 면을 뽑아내는 과정은 국수에 가깝다. 그래서 지금은 ‘올챙이국수’라는 이름으로 더 알려지게 되었다. 그러나 현지인들은 모두 ‘올창묵’이라 부른다. 같은 방법으로 만드는 묵이지만 그냥 굳혀서 먹는 묵과는 다른 음식을 만들어 먹고자 했던 여러 차례의 시도가 낳은 먹거리다. 그리고 국수를 내리는 분틀이 없어도 올창묵틀로 국수 비슷한 음식을 만들어 먹고자 한 의도가 보인다. 묵이든 국수든 그 이름보다는 이 음식이 유독 왜 이 지역에서 생겨나고 자주 먹었던 것인지가 중요하다. 그들에게 메밀은 한끼의 식사를 해결해주는 소중한 곡물이었기에, 척박한 먹거리에 지치기보다는 그것을 활용한 그들만의 식문화 하나를 창조해 낸 것이다.
맷돌로 갈아 껍질 벗기기
체로 메밀진국 거르기
가마솥에 메밀진국 끓이기
적당한 농도로 끓은 메밀진국
틀로 메밀올창묵 내리기
틀 구멍으로 떨어져 내리는 올창묵
느른국과 콧등치기 국수
고맙다. 콧등치기. 느른국을 만나게 해줘서
느른국 또는 누름국이라고 부르는 땟거리는 외지 사람들에게는 생소한 음식이지만 강원도 산간 지역민들에서는 매우 친근한 음식이다.
메밀가루에 찬물을 조금씩 섞어 가며 반죽한다. 평평한 판에 반죽을 올리고 홍두깨를 이용해 바깥쪽부터 반죽을 돌려가며 넓게 편다. 홍두깨를 계속 밀면 반죽안에 포함된 기포가 모두 빠지면서 끈기가 생긴다. 반죽의 지름이 30㎝ 정도가 되면 그때부터는 홍두깨에 말아 굴리면서 계속해서 얇고 넓게 면적을 늘여간다.
반죽을 펼 때 감자 전분을 간간이 뿌려 반죽이 판에 붙거나 질척해지지 않도록 한다. 반죽을 밀 때는 사방으로 균형을 잘 잡아야 일정한 두께의 면을 얻을 수 있다. 넓게 편 반죽은 칼국수 면을 써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여러 번 접어 칼로 썬다. 메밀가루는 밀가루보다 전분 성분이 적다. 그만큼 끈기가 적다는 말이다. 때문에 면발이 상대적으로 두껍고 투박하다.
면을 장만한 다음 멸치, 다시마 등으로 육수를 우린다. 육수가 끓으면 썰어 놓았던 국수 가닥을 서로 들러붙지 않도록 눌러가며 넣는다. 끓일 때 감자옹심이를 함께 추가하면 더욱 찰지고 씹는 맛이 좋아진다. 감자옹심이의 전분이 국물을 걸쭉하게 만들어 각각의 재료가 잘 어우러지게 돕고 풍미도 더욱 깊게 해준다. 국수와 감자옹심
이가 끓어오를 때 쯤 집된장(막장)으로 간을 한다. 집된장은 덩어리 째 넣지 않고 따뜻한 물에 풀어 넣어야 국물에 간도 고루 배고 국물 색도 탁하지 않게 조리된다.
느른국이라는 명칭은 반죽을 눌러서 만들기 때문이라는 말도 있고, 여러 사람이 나눠먹기 위해 양을 늘렸다는 데서 유래했다고도 한다. 또한 삶은 국수를 찬물에 헹구지 않아 국물에 메밀의 향과 맛이 느리하게 배어든다고 해서 불리게되었다는 의미도 담고 있다. ‘느리하다’는 녹듯이 스며든다 또는 흐물흐물하다는 뜻을 가진 이 지역의 말이다.
느른국과 비슷한 땟거리로 콧등치기가 있다.
맛집, 맛기행, 건강식 등 먹거리를 주제로한 방송이 많아지면서 연일 다양한 음식이 소개되고 있는 가운데 강원도의 콧등치기가 꽤 유명세를 탔다. 독특한 이름이 한 몫을 했다.
국수 면을 후루룩 빨아들일 때 그 끄트머리가 탄력있게 흔들리면서 콧등을 치고 입안으로 들어온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느른국은 면을 삶은 물을 버리지 않고 그대로 국수와 함께 담아 먹는다. 이에 반해 콧등치기는 면을 삶는 것까지는 동일하다. 그러나 삶아진 면을 건져내 찬물에 헹궈낸다. 뜨거운 물에 삶은 면을 찬물에 넣으면 면발에 탄력이 생긴다. 더운 여름철 국수를 시원하게 먹기 위해 뜨거운 면을 빠르게 식혀 먹고자 해서 만들어졌다고 한다. 느른국은 면을 삶은 자체의 국물과 함께 그릇에 담아내고, 콧등치기는 찬물에 헹군 후 물기를 빼고 준비되어 있던 육수를 붓는다. 고명은 둘 다 갓김치를 양념하여 올렸다. 음식의 온도만 다를 뿐 담아 놓은 모양새는 별반 차이가 없다. 찬물에 헹군 면 때문에 조금 더 탱탱해진 면발은 입으로 땡겨 넣는 순간 콧등을 치는 일이 발생했다. 시원하게 먹으니 좋고 재미나게 가끔은 콧등을 때려주니 무더운 여름날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며 잠시나마 웃을 수 있는 여유가 생겨났을 것이다.
느른국은 콧등치기를 조사하면서 새로이 알게 된 땟거리다. 그 과정에서 지역민들에게 느른국과 콧등치기의 닮은 점과 다른 점에 대해 이야기 들을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느른국은 겨울, 콧등치기는 여름에 제격이다.
선후를 따진다면 느른국이 먼저였을것이다. 대개 국수는 면을 삶은 물로 조리해왔다. 특히 메밀 면은 삶으면 물 자체에 메밀 향이 배어나와 육수로 손색이 없기에 더 조화로운 맛을 낼 수 있었다. 옛날에는 육수를 낼 재료가 마땅치 않았다는 것도 한 몫했을 것이다. 또한 육수를 차게 만들고 찬물에 면을 헹구는 것은 확실히 복잡하고 꽤 성가신 조리 과정이다.
면 음식의 시작이 메밀이었던 것으로 보아 느른국은 우리 선조들이 먹어온 국수의 원형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지금 느른국은 지역민들이나 아는 음식의 이름이 되었고, 콧등치기는 외지인들이 일부러 찾는 음식으로 자리바꿈하였다. 그 결과 콧등치기가 가지고 있던 음식 본연의 계절성은 희미해지고 겨울이면 냉면처럼 찬물에 헹궈낸 후에 다시 뜨거운 육수를 부어내기도 한다. 원형과 변형을 따지기 전에 이미 이들의 운명은 다른 길을 가고 있다.
느른국, 콧등치기와 비슷하게 가수기도 있다. 역시 칼국수 형태의 국수지만 그 재료가 다르다. 가수기의 면은 밀가루와 콩가루를 섞어 반죽한다. 암반 위에 반죽을 놓고 홍두깨로 얇게 밀어 면을 만든다. 막장으로 기본 간을 하고 감자 등의 채소를 넣어 끓여 낸다. 메밀로 만든 것보다 전분 함량이 많아 면을 좀 더 가늘고 매끈하게 만들 수 있어 모양새를 조금 더 고급스럽게 낼 수 있던 음식이다.
강원도의 갓김치
느른국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갓김치다. 갓김치 하면 대부분이 단번에 여수를 떠올리게 되는데 강원도 토속음식에도 이 갓김치가 자주 등장한다. 예전에 강원도 산간에는 삼베를 경작하는 곳이 많았다.
삼베를 추수한 다음에 파종하는 작물이 갓이었다. 갓은 별다르게 일손을 들이지 않아도 잘 자라났다. 강원도의 갓은 전라도의 갓과는 품종도 다르다. 기후의 영향인지 크게 자라지도 않고 낮게 땅에 깔리듯이 퍼진다. 잎은 전라도의 것에 비해 보드랍다.
땅이 얼기 전에 수확한 갓을 옹기에 담고 소금만으로 간해서 삭힌다. 옹기가 없으면 큰 나무의 속을 파낸 나무채독에 저장했다. 나무채독에 갓을 넣고 소금을 뿌린 뒤 아녀자들이 삼베 버선을 신고 꾹꾹 밟아 갓의 숨을 죽이면서 소금기가 고루 배게 했다. 나무채독은 아래 부분에 굽을 만들어 물이 새지 않도록 했는데 통과 굽 사이의 틈을 메우는 데는 느릅나무를 이용했다. 느릅나무는 점성이 있어 두드리면 붉은 색의 끈끈한 액이 나온다. 이 진액을 통과 굽 사이에 발라 수분이 밖으로 빠져나오는 것을 막았다.
갓김치는 3년 이상 묵어야 제대로 맛을 낸다. 독에서 바로 꺼낸 갓김치는 입에 대기가 힘들 정도로 짜다. 오래 저장해두어도 변하지 않도록 많은 양의 소금을 넣어 염장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염장을 하면 시간이 오래 지나도 갓 본래의 푸른빛도 변함이 없고 먹을때도 아삭거리는 식감이 살아있다. 필요할 때마다 꺼내 물에 헹궈 적당한 길이로 잘라 양념장으로 무쳐낸다.
김치라고 하면 대개 고춧가루로 버무린 빨간 음식을 떠올리기 마련인데 강원도 산간의 갓김치는 채소 본래 색을 그대로 간직하도록 한것이 초정이다. 느른국의 고명으로 올릴 때에는 양파, 쪽파, 풋고추, 깨소금, 다진 마늘, 고춧가루 등으로 양념장을 만들어 버무린다. 이렇게 해놓으면 줄기가 가늘고 잎이 숨이 죽어 마치 그 모양새가 여름철 열무김치를 연상케 한다.
갓김치는 메밀, 감자 등의 식재료와도 잘 어울린다. 갓김치만 있으면 집안 대소사, 손님 접대도 걱정이 없었다고 할 만큼 강원도의 식문화에서 상당히 큰 비중을 차지했다. 가장 흔한 채소인 콩나물에 갓김치를 양념해 무쳐 낸 것도 잔치음식으로 손색이 없었다고 한다.
윤봉열(남, 1945년생, 정선면 여량면 봉정리)씨는 먹을 것이 부족하던 시절 갓김치는 부식 이상의 의미를 지닌 음식이었다고 기억을 더듬었다.
메밀국수와 막국수
한 식구, 다른 이름
국수는 여러 얼굴을 가지고 있다. 한 끼 식사로도 손색이 없고, 새참으로도 만만하다. 그리고 잔치음식에도 빠지지 않는다. 미혼자에게 “국수 언제 먹여 줄거냐?” 고 묻는 것은 곧 “결혼을 언제쯤 할 거냐?”라는 말과 같다. 생일에도 국수를 챙겨 먹는 경우가 많다. 긴 국수 가닥처럼 오래오래 살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고 있다. 국수를 먹을 때 면을 끊어먹지 말라는 훈수도 같은 맥락이다.
우리의 전통 국수를 메밀국수라 불러도 틀리지 않을 만큼 오랜 세월 국수 반죽의 주재료는 메밀이었다. 예외는 있다. 메밀 재배가 힘들었던 함경도 지역에서는 감자 전분으로 국수를 말았다.
함경도의 이 감자국수는 ‘농마국수’라고 한다. 오늘날과 같이 국수 면을 밀가루에서 뽑는다고 생각하게 된 것은 한국전쟁 전후 미국의 원조 식량으로 밀가루가 대량 보급되면서 부터다.
메밀로 만든 국수는 모두 메밀국수라 칭할 수 있다. 그러나 평양냉면은 메밀로 만든 국수지만 메밀국수로 인식되기 보다는 그 자체가 하나의 독립적인 음식으로 여겨진다. 메밀가루를 반죽하여 면을 뽑고 삶는다. 삶을 면을 헹군 다음 육수를 붓고 고명을 얹는 일련의 조리 과정은 일반적인 메밀국수나 냉면이 다르지 않다.
면의 굵기와 육수를 우려내는 재료 등 그 속성이 다를 뿐이다. 상대적으로 곱고 가느다란 면발과 고기를 삶아낸 냉면 육수는 메밀국수에 비해 고급음식의 이미지를 갖추게 했고, 실제로도 더 깊고 풍부한 맛을 담아낸다.
최근에는 웰빙 트렌드 덕분에 밀가루에서 밀려나있던 메밀이 다시 요리의 재료로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 메밀 본연의 질감을 즐기고자 하는 사람들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평양냉면을 판매하는 유명 식당들은 햇메밀이 나오는 시기에 맞춰 ‘순면’을 선보인다.
순면의 면은 기타 작물의 전분을 첨가하지 않고 그 해 추수한 메밀만으로 뽑아내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보통 냉면을 만들 때에는 고구마나 밀가루 전분을 첨가한다. 메밀의 찰기가 적어 메밀가루만으로는 반죽이 쉽지 않고 국수를 삶았을 때 씹는 맛 즉, 쫄깃함이 덜하다. 그렇게 들어가는 전분의 양은 반죽의 70~80%를 차지한다. 단가 면에서도 메밀만으로 반죽하는 것보다 전분을 섞는 것이 남는 장사다.
순면의 면은 백색에 가깝고 잡티가 거의 없다. 면 사이사이에 박힌 검은 점들을 가리켜 100% 메밀만으로 만든 증거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순면의 가치는 백색이라는 데에 있다. 국산 메밀은 수확하여 껍질을 벗기면 푸르스름한 옥빛을 띈다. 시간이 흐르면서 누렇게, 다시 붉게 변한다. 순면이 백색에 가깝다는 것은 그만큼 수확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싱싱한 상태라는 뜻이다. 메밀의 변색은 아주 빠르게 일어난다. 때문에 순면을 즐길 수 있는 기간도 매우 짧다. 방부처리를 한 수입산 메밀은 1년을 묵혀도 변색되지 않는다. 수입산 묵은 메밀이 햇메밀로 둔갑하는 경우가 있으니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옥수수, 쌀, 밀가루 이거는 곡식이 내부는(내뱉는) 성분이 있어요. 내부는 성분이 있어서 밀가루는 반죽해서 한참 놔둬야 숙성시켜 국수를 하잖아요.
메밀은 물을 땡기는 성분이 있어요. 끓는 물에 넣고 국수를 누르면 바로 떠요.”
- 권오복 (남, 1959년생, 강원도 강릉시)
강원도에서 해먹던 메밀국수는 메밀가루를 반죽하여 반죽덩이를 국수틀에 넣고 눌러 면을 뽑는다. 이 면을 끓는 물에 넣고 삶아 익힌다. 삶은 면은 찬물에 여러 번 헹군다. 메밀은 물을 당기는 성질이 있어 끓는 물에 넣으면 바로 떠오른다. 면을 건져내는 때를 잘 맞춰야 한다.
면을 그릇에 담고 주로 동치미국물을 붓고 고명을 얹는다. 메밀은 동치미가 맛있게 익기 시작하는 초겨울에 수확을 한다. 메밀국수는 찬 음식이지만 시기적으로 겨울철에 가장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막국수도 메밀로 만든 국수다.
본래 막국수는 껍질을 대충 벗겨 만든 메밀가루로 반죽을 했다. 껍질을 대충 벗겼기 때문에 일반적인 메밀국수보다 식감이 조금 더 거칠 수 밖에 없었다. 국수 앞에 ‘막’이라는 접미사가 붙은 이유일 것이다.
껍질을 완전히 분리하여 가루를 낸 것이 아니라 국수 면발의 때깔도 거뭇거뭇하고 면발에 점이 찍힌 것처럼 티가 많다. 탈곡 또는 도정하는 기계 없이 발방아나 맷돌을 사용해 메밀가루를 만들었던 시절에는 티 없이 깨끗한 국수 면을 얻기도 힘들었을 것이다. 또한 농사일이 바쁘다보니 메밀타작에 공을 들이기도 쉽지 않았다.
막국수처럼 막사발, 막고무신 등 접두사 ‘막’이 붙은 단어들은 은연중에 품질 또는 품격이 낮은 의미를 내포하게 된다. 그러나 정교한 모양새는 갖추지 못했지만 친근한 인상을 주기도 하고 인위적으로 포장되지 않은 원형의 성질을 더 잘 지키고 있다 생각된다.
국수틀
메밀가루를 반죽하여 면으로 뽑기 위한 도구다.
틀 자체를 가마솥 위에 올려놓고 분통에 반죽을 넣고 눌러 아래로 떨어지는 국수가 솥안으로 들어가 삶아 지도록 하였다. 강원도의 많은 가정에서 직접 제작하여 사용하였다.
국수틀 길이 58cm 높이 30cm 정선 아리랑학교 소장
메밀국죽
이제라도 알게 되어 다행이다. 국도 죽도 아닌 새로운 세계
메밀국죽이라는 이름에서 주재료가 메밀임은 분명히 알 수 있다. 그런데 그 뒤에 ‘국죽’이라는 명칭이 따라 붙는다. 일반적으로 국은 여러 재료에 물을 많이 붓고 끓인 것이고, 죽은 재료의 형태가 모두 뭉그러질 때까지 오래도록 물을 졸여가며 조리한 것을 일컫는다.
그렇다면 국죽은 어떤 형태일까? 메밀국죽은 메밀묵이나 메밀국수처럼 널리 알려진 토속음식은 아니다. 다행히 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메밀국죽을 만날 수 있었고, 이것이 왜 다른 먹거리처럼 외부에 알려지지 못했는지가 의심될 만큼 소중한 대상이었다.
메밀쌀이 준비되어 있다면 만드는 과정은 비교적 간단하다. 메밀쌀을 씻어서 물에 잠시 불린다. 메밀쌀은 만드는 과정에서 불순물이 들어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씻을 때 세심한 손질이 필요하다. 기본 재료가 준비되면 멸치와 다시마 등으로 육수를 내고 메밀쌀을 넣어 함께 끓인다. 곤드레 나물이나 콩나물 등의 채소를 추가하기도 한다. 딱히 정해진 부재료는 없다. 간은 막장으로 하는데 체에 걸러서 사용한다. 강원도의 막장은 알맹이 상태의 콩이 그대로 들어가 있기 때문에 국물을 깔끔하고 담백하게 완성하기 위해서 체에 거르는 것이다. 국물이 한소끔 끓어오르면 적당한 길이로 썬 쪽파, 길쭉하게 칼질한 두부도 넣는다.
살림이 넉넉한 집에서는 풍미를 더하고 질감을 걸쭉하게 만들기 위해 감자옹심이를 추가하기도 했다. 그러나 메밀국죽에 들어가는 다양한 부재료는 살림살이 형편이 나아지고 식자재 유통이 용이해지면서 생긴 변화로 추측이 된다. 지금은 식당은 물론이고 지역 토박이들도 국물을 끓일 때 멸치와 다시마를 넣어 감칠맛을 더하지만 사실 메밀국죽의 원형은 메밀 외에 막장만으로 간을 한 아주 단출한 음식이었을 것이다.
메밀 알곡의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는 음식으로 메밀밥이 있다.
그러나 메밀은 찰기가 없고 질감이 거칠어 입안에서 겉돌아 먹기에 불편하다. 그래서 보통 메밀쌀로 밥을 지을 때에는 전분이 있는 감자와 함께 조리한다.
솥에 삶아서 익힌 감자와 메밀쌀을 넣고 밥을 짓는 것이다. 맛은 좋으나 그릇에 담았을 때 보기 좋은 모양새는
아니다. 가정식으로는 충분하지만 손님상에 내놓기에는 꺼려질 수도 있다. 반
면 메밀국죽은 식감이 훨씬 좋은데다 부재료를 활용하여 맛깔나게 차려낼 수 있어 메밀밥보다 더욱 즐겨 만들어 먹었다고 한다. 특히 노인이 있는 집에서는 국물과 함께 후루룩 목넘김을 할 수 있어 자주 해먹었던 먹거리였다.
메밀적
얇디 얇은 부치개 위 푸성귀, 넘치지 않는 조화
‘메밀적’ 또는 ‘메밀부치개’라는 이름은 다소 생소하지만 완성된 요리를 맛보면 그 정체를 금방 알아차릴 수 있다. 바로 메밀전이다. 강원도 유명 관광지 인근의 식당이나 노점에서도 흔하게 즐길 수 있는 부침 요리이다. 강원도 산간 지역의 메밀적은 주로 겨울철 농한기에 해먹었던 음식이다. 직접 농사지은 메밀만으로 반죽한 메밀적은 표면에 듬성듬성 구멍이 났다고 한다.
“메밀부치개 순종(진짜)은 어떤 게 순종이라 생각하세요?
갈기(가루)가 진짜면 끈기가 없어 구멍이 듬성듬성 뚫어져야 진짜래요. 젓가치(젓가락) 하나로 들어도 그냥 한번에 들려야 제대로 된 메밀부치개지.”
요즘은 마카 이상한 갈기를 섞어 써요.
- 김남기(남, 1937년생, 정선군 여량면)
현재 시중에서 판매하는 메밀적은 반죽할 때 밀가루나 전분을 혼합하기 때문에 전의 표면이 훨씬 매끈하고 반죽도 탄력이 있다. 그렇다고 해서 메밀가루만으로 만든 메밀적이 흘러내릴 정도로 흐물흐물한 것은 아니다.
토박이들이 제대로 솜씨를 부려 만든 메밀적은 얇으면서도 충분히 쫄깃한 식감을 낸다는 것이 지역민들의 이야기다.
메밀적을 만드는 과정은 다음과 같다. 메밀가루에 찬물을 조금씩 부어가며 가루와 물이 잘 섞이도록 숟가락으로 저어 준다. 찬물로 반죽하기 때문에 한꺼번에 물을 많이 넣으면 메밀가루가 잘 풀리지 않는다. 물과 메밀가루가 혼합되는 상태를 보면서 물을 조금씩 추가하는 것이 좋다. 메밀적은 국수 반죽보다 묽게 반죽한다.
그래야 얇게 부쳐낼 수 있다. 반죽이 빡빡하거나 그 때문에 적이 두텁게 부쳐지면 먹을때 퍽퍽한 식감이 든다.
보통 식당에서 판매하는 메밀적은 얇게 편 반죽 위로 배추 한두 잎과 쪽파 두세가닥을 올려 익힌다. 생야채를 사용하기도 하지만 배추와 같이 잎이 넓은 채소는 숨이 죽어야 반죽과 잘 어우러지기 때문에 소금물에 절인 것으로 준비한다. 그러나 보통의 강원도 농가에서 해먹었던 메밀적은 이와 상당히 달랐다고 한다.
메밀가루는 아껴 먹어야 하는 식량이었지만 주변에 널린 것이 푸성귀였다. 또한 푸성귀는 어떤 것을 첨가해도 상관이 없었기 때문에 강원도 산간 지역의 땟거리로서 메밀적은 반죽보다 푸성귀의 양이 더 많았다고 한다. 푸성귀도 그때그때 구할 수 있었던 것을 다양하게 올렸다. 배추나 쪽파는 물론이고 부추, 참나물 등 가리지 않았다. 겨울에는 물에 씻어낸 갓김치나 배추김치를 올려 부치기도 했다고 한다.
메밀적을 부칠 때는 소댕을 사용한다. 소댕은 솥을 덮는 쇠뚜껑으로 가운데가 볼록하게 솟고 그 중앙에 손잡이가 붙어 있다. 전을 부칠 때에는 뒤집어서 프라이팬 용도의 조리도구로 활용한다.
숯불로 은근히 달군 소댕에 기름을 두른다. 기름은 직접적으로 두르지 않고 콩기름과 들기름을 섞은 기름 그릇에 감자를 넣어 두었다가 꺼내 소댕 표면에 문질러준다. 감자는 기름을 계속 머금고 있어 소댕에 별도로 기름을 두르지 않고 필요할 때마다 이 감자를 문질러주면 된다. 기름을 직접적으로 두르면 소댕의 오목한 가운데로 기름이 흘러 모여 소댕 표면에 고르게 기름을 먹일 수가 없는데 감자를 이용하면 흘러내리는 것 없이 팬을 고르게 코팅할 수 있고, 기름도 절약하게 된다.
소댕이 적당한 온도에 달하면 먼저 푸성귀를 섞어 가지런히 올린다. 그리고 국자로 메밀반죽을 퍼서 외곽부터 원을 그리며 흘리면 반죽이 소댕 가운데로 자연스럽게 퍼져간다. 중간 중간 구멍 난 부분은 숟가락으로 눌러 메워주고 두께도 일정하게 조절한다. 한쪽 면이 다 익으면 뒤집어서 익힌다.
소댕이 너무 달구어지면 전이 타버린다. 이때는 화로에 재를 넣어 불의 세기를 조절한다. 메밀적을 부칠 때는 소댕의 온도와 반죽의 농도를 적절히 조절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금방 만들어 따뜻하게 먹어도 좋지만 메밀적은 식었을 때 반죽의 탄성이 좋아져 더 쫄깃한 식감을 느낄 수 있다. 평소에 만들어 먹기도 하지만 제사 등의 특별한 날에 빠지지 않았던 대표 음식이다. 단, 제사상에 올릴 때는 배추 줄기는 제거하고 잎만 사용한다. 비교적 조리하기 쉬워 현재까지 그 원형이 크게 변형되지 않은 땟거리다.
채소 올리기. 채소 위에 원을 그리며 메밀반죽 얹기
메밀전병
도로록 말아 부친 메밀가계의 귀족 음식
메밀전병은 메밀가루를 재료로 만든 부침 요리라는 점에서 메밀적과 유사하다. 그러나 완성된 형태와 푸성귀 대신 갓김치를 사용한다는 점이 다르다. 메밀적이 일반적인 부침개처럼 납작하게 부쳐낸다면 메밀전병은 반죽을 얇게 편 다음 양념한 갓김치를 올리고 돌돌 말아서 부쳐낸다. 갓김치가 소인 셈이다.
다른 지역에서도 메밀전병을 만들어 먹었다. 경상북도의 총떡, 제주도의 빙떡이 메밀전병의 일종이다. 메밀전병을 달리 메밀총떡이라 부르기도 한다.
메밀가루를 물에 갠 다음 국자로 퍼서 기름을 두른 뜨거운 소댕에 원을 그리며 얇게 편다. 구멍 난 부분을 숟가락으로 메워가며 일정한 두께로 펴는 것이 좋다. 한쪽 면이 익으면 뒤집어 반대쪽을 익힌다. 반죽 가장자리에 양념한 갓김치를 올리고 김밥을 말듯 말아 한두 번 굴려주면 끝이다.
갓김치는 고춧가루, 들기름, 다진 마늘을 버무려 양념한다. 완성된 메밀전병은 통째로 베어 먹기도 하고 적당한 길이로 잘라서 먹기도 한다. 메밀적처럼 식으면 식감이 더 쫄깃해진다. 메밀가루로 피를 만들고 갓김치를 소로 완성한 만두라고 볼 수도 있다. 피를 먼저 익히고 소는 마지막에 얹었기 때문에 기름이 덜 배어 있어 부침이지만 깔끔한 맛을 낸다.
지역민들은 메밀적보다는 메밀전병을 조금 더 고급음식으로 여긴다. 제사를 지낼 때도 메밀적은 생략해도 메밀전병은 꼭 진설한다. 음식 재료들이 풍성해지고 구하기도 편해지면서 메밀전병의 속에 들어가는 내용물도 많이 변했다. 요즘엔 갓김치 대신 배추김치를 넣기도 하고, 각종 채소와 육류도 가미한다. 다양한 재료가 어우
러지면서 내는 풍미가 좋지만 갓김치 하나로 맛을 낸 본래의 메밀전병에서 확실히 순박하고 정직한 맛을 느낄 수가 있었다.
국자로 메밀반죽 원을 그리며 올리기. 다 익은 메밀부침
부침 위에 양념한 갓김치를 소로 올기기. 굴리면서 마무리 익히기
채만두
깔끔한 갓김치를 품은 메밀 향기
채만두는 메밀가루를 반죽하여 피를 만들고 갓김치와 묵나물 혹은 채소를 양념하여 소를 채운다. 만두를 쪄낸 후에는 들기름을 발라 먹는다. 소를 채소로만 채워 채만두라는 이름이 붙은 것으로 추측된다. 겨울철 별미로 설과 같은 명절에도 많이 만들어 먹었다고 한다.
메밀가루는 반죽을 하는데 이때 소금으로 약한 간을 한다. 간을 강하게 하지 않아도 소로 들어가는 갓김치가 충분히 간을 맞춰 준다. 반죽에 어느 정도 찰기가 생기면 손바닥으로 눌러가며 반죽을 이리저리 뒤집는다. 반죽 속에 스며들어 있는 공기를 최대한 빼기 위해서다. 완성된 반죽은 둥근 모양으로 뭉쳐 숙성이 되도록 잠시 놔두고 소를 준비한다.
갓김치는 물에 빤 다음 꼭 짜서 수분을 제거하고 곱게 채 썬다. 묵은 나물이 있으면 잘게 썰어 함께 넣는다. 양배추, 부추, 쪽파 등의 채소를 추가하면 맛이 더 풍성해진다. 여기에 양념장으로 깨소금, 고춧가루, 다진 마늘, 들기름 등을 넣고 버무린다.
반죽은 일정한 크기를 떼어 가장자리를 돌려가며 둥글납작한 피로 만든다. 피의 가운데를 엄지손가락으로 눌러 소가 들어갈 자리를 움푹하게 잡는다. 소를 듬뿍 담은 후 피를 반달 모양으로 접고 양쪽 귀를 맞붙여 만두 모양을 낸다.
음식을 만들기 시작할 때 미리 아궁이에 불을 피워둔다. 가마솥에 물이 끓으면 찜그릇을 넣고 보를 깐다. 여기에 빚은 만두를 겹치지 않게 가지런히 올려놓는다. 약 20분이 지나면 만두가 익는다. 찜 그릇 채로 솥에서 꺼낸 후 뜨거울 때 들기름을 골고루 표면에 발라준다. 이렇게 하면 표면이 말라 딱딱해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채만두는 봄철 양념한 갓김치에 물을 부어 만드는 물갓김치와 먹으면 맛이 잘 어우러진다고 한다. 채식이지만 심심하다든지 부족한 느낌은 없다. 일반적으로 만두라고 하면 두부, 숙주나물, 돼지고기 등의 소가 떠오르지만 채만두는 채소만으로 속을 꽉 채운 가장 강원도다운 땟거리라 할 수 있다.
강원도 산간 지역의 땟거리 06
강원도 땟거리의 미래
땟거리조차 구하기 어려웠던 시절에 없어서 못 먹었던 쌀밥이 지금은 가장 흔한 음식이 되었다. 반대로 쌀밥을 대신하여 겨우 배를 채웠던 음식들이 웰빙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고차원의 음식으로 재조명되기도 한다. 고맙고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땟거리의 존재 이유는 물론이고 재료, 조리법, 식감, 맛, 형태 등은 본연의 것과는 많이 달라졌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사람들의 입맛도 변하기 마련이다. 땟거리가 다른 옷을 입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현상일 것이다. 올챙이국수만 해도 다시물을 낼 멸치도, 고명으로 올릴 김도 없던 시절에 만들어 먹던 방식 그대로 만들어 내놓으면 맛이 없다는 평이 돌아온다고 한다. 양념을 더하고 고명을 얹은 올챙이국수는 확실히 세련되고 화려해졌다.
변화가 무조건 나쁘다거나 원형을 유지하는 것만이 바람직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그들의 땟거리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이해 없이 단순히 묵이 올챙이를 연상케 한다거나 국수가 콧등을 친다는 등 대중의 환심을 사려는 목적의 재미 요소에만 초점을 맞추어 땟거리의 원형을 무시하고, 자극적이고 화려한 옷을 덧입히는 것은 지양해야 할 부분이다. 원형을 잊은 변형은 그 뿌리를 흔들고 결국 문화적 단절을 초래할 위험이 있다.
앞서 언급했듯 강원도 산간 지역민들은 땟거리로 만들기 위해 알곡을 도정해 놓은 상태의 옥수수와 메밀에 ‘쌀’이라는 접미사를 붙였다. 이는 옥수수와 메밀이 주식이 되는 식자재로서 충분히 자격을 갖추었다는 상징적인 의미이다. 그들에게 강냉이쌀과 메밀쌀은 쌀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 ‘쌀’이었을 것이다. 또한 그런 믿
음이 있었기에 강원도 산간 지역 특유의 땟거리가 오늘날 건강한 밥상으로 재조명될 수 있었을 것이다.
강원도 산간 지역에서 만들어 먹어 오던 음식을 만나러 다니면서 그들의 식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지금 우리가 일상적으로 대하는 끼니는 잠시 잊어야했다. 강원도 산간에서는 자연환경적인 영향으로 쌀밥을 주식으로 먹는 일이 드물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그들이 주식으로 조리했던 재료 옥수수, 감자, 메밀 역시 우리가 현재 식재료로 활용하고 있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역할과 의미, 형태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흔하게 먹었지만 겨울을 이겨내기 힘든 감자는 오랜 시간에 걸쳐 그 핵심적인 성분만을 추출하여 다양한 먹거리를 만들 수 있는 새로운 모습으로 재탄생했다.
옥수수와 메밀은 털어낸 알곡이 밥을 짓는 식재료가 되어 뒤에 쌀이라는 말이 붙는다. 강원도 산간 지역민들은 주어진 자원을 알뜰하게 활용하는 방법을 찾아냈다. 그렇게 행복한 한 끼를 때울 수 있는 꺼리를 얻을 수 있었다.
올챙이국수, 콧등치기와 같이 강원도 산간 지역 땟거리의 원형을 찾아내는 것은 지역민들의 도움으로도 쉽지가 않았다. 식생활이 변화한 것과 더불어 어려웠던 시절 지겹게 먹던 음식을 잊어버리고 싶어 했던 것도 주요한 이유였다. 원래의 모습을 들여다보려 하면 마치 치부를 들킨 것처럼 더 감추려 하는 지역민들의 마음이 읽
혀졌다. 먹고 사는 것이 예전만큼 박하지 않은 시대에 그것들을 다시 내세운다는 것은 그 어려웠던 과거로 자신들을 다시 밀어 넣는 것처럼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이번 조사의 결과는 그런 가운데 얻어낸 이야기들이기에 더없이 소중한 자료이다.
덕분에 올챙이국수에 대한 궁금증으로 시작된 조사는 올창묵이라는 원형으로, 다시 메밀가루로 만든 메밀올창묵으로 이어져 갈 수 있었다. 메밀올창묵을 발견하기까지 이 일련의 과정은 사라져가는 강원도 산간 지역의 땟거리 조사에 있어 아주 기억할만한,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된다.
콧등치기도 마찬가지다. 콧등치기라는 이름에 집중하기보다 강원도 산간에서 해먹던 느른국이 사라지기 전에 그리고 그 조리법을 기억하고 있는 이들이 남아 있는 동안에 콧등치기라는 이름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그 뿌리를 되찾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환경의 변화는 강원도 산간에만 불어 닥친 것이 아니다. 사회 모든 곳에서 환경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으며, 변화의 속도는 점점 더 빨라지고 있다. 강원도 산간 지역은 도시에서처럼 집을 밀어내고 초고층의 빌딩을 짓는 것은 아니지만 예상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었다.
집에서 먹기 위해 심었던 작물은 그 역사를 마감하고 농협과의 계약재배를 통해 대량 생산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종자도 구하기 힘들고, 판로도 확보하기가 힘들다. 많은 것들이 획일화되어 가는 이러한 현실 역시 당장 먹고사는 일과 연계되어 있기에 함부로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가 과거 우리가 만들어 먹었던 먹거리를 앗아가 버렸다는 아쉬움은 지우기 힘들다. 이제 어디에 가면 그들을 맛볼 수 있을까?
강원도 산간 지역의 땟거리
옥수수, 감자, 메밀
발행일 2014년 3월 31일
발행인 천진기
발행처 국립민속박물관
Copyrightⓒ2014 The National Folk Museum of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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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민속박물관 홈페이지의 원본 PDF 파일에서 옮겼습니다.
자세한 조리방법의 이미지와 일부 초상이미지(인물)는 생략하였습니다.
블로그에 사진 당 10M 용량 이상의 고해상도 사진은 올릴 수가 없어, 원본 PDF 파일의 고해상도 이미지(사진) BMP 파일은 일반 JPG파일로 변환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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