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의 고향

[스크랩] 삼천갑자 동방삭

강나루터 2011. 4. 28. 07:54

동방삭(東方朔 · ? ~ 기원전93)은 전한(漢) 무제(武帝·기원전 156~87)에게 스스로를 천거해 미관말직에 등용된 이래 평생을 조정에 '은거'했다는 익살과 해학의 정치가였다.

제나라 출신으로 알려져 있으며 고문서나 경학을 사랑해, 잡서, 사전을 넓게 공부했다. 한나라의 수도인 장안에 들어갔을 때에, 장안에는 인재들이 넘치고 있었다. 동방삭은 공거부(公車府)로 가서 황제에게 글을 썼다. 당시 한나라의 황제인 무제는 선비들에게 글을 써서 직접 자신에게 바치도록 하였다.

동방삭은 죽간(竹簡) 3,000개에 자화자찬으로 가득 찬 자기소개서를 보냈는데 무제는 2개월 걸쳐 다 읽은 후 동방삭을 낭관(郎官)에 임명했다. 그 후로 무제의 측근으로서 살았다.동방삭은 박학하고 임기응변에 능하고 기지가 뛰어나다고 알려져 있는데 세 가지 유명한 사례가 알려지고 있다. 

 

첫째는 한(漢)나라 무제(武帝)가 동방으로 유람을 나갈 때, 함곡관(函谷關)을 벗어나기 전에 길에서 어떤 괴물을 만났다. 키는 수십 길이고 형상은 소를 닮았으며, 푸른 눈에는 정기가 빛나고 네 발은 땅에 들어가 흔들어도 까딱하지 않았다. 모든 관리들도 다 놀라고 두려워했다. 그러자 동방삭(東方朔)이 술을 청해 거기 쏟았는데, 수십 섬을 쏟고 나서야 그 괴물은 비로소 사라졌다. 무제가 그 까닭을 물으니 동방삭은 말하였다.
  "이것은 걱정하는 기운에서 생긴 것으로서 반드시 진가(秦家)의 옥지(獄地)일 것이며, 그렇지 않으면 죄인들이 지나가다가 만든 것일 것입니다. 대개 술이란 근심을 잊게 하는 것이므로 이것을 녹인 겁니다."
  무제가 말했다.
  "아아, 과연 모든 사물에 능통한 사람이구나."

 

둘째로 어느 날은 무제가 나무 한그루를 보고 동방삭에게 나무이름을 물었는데 동방삭은 선재(善哉)라고 하였다. 몇 년 후 무제는 동방삭에게 이 나무의 이름을 다시 물어보았다. 동방삭은 구소(瞿所)라고 하였다.

무제가 옛일을 되살리며 오랜 동안 네가 나를 속여 왔다고 화를 냈다. 그러자 동방삭은 소가 어릴땐 송아지라고 하였다가 크면 소라 하고, 닭이 어릴 땐 병아리라고 하다가 크면 병아리라 하듯이 이 나무의 이름도 어릴때는 선재라고 하였으나 지금은 구소라고 한다고 하였다.

 

셋째로 어느 날 궁궐에 사슴 모양의 동물이 뛰어 들었는데 아무도 그의 이름을 알지 못했다. 한무제가 동방삭을 불러 동물의 이름을 묻자 동방삭은 맛있는 술과 음식, 전답을 요구했다.

한무제가 승낙하자 동방삭은 이 동물의 이름이 추아(騶牙)라고 한다고 하였다. 이 동물이 나타나면 먼 곳에 있는 나라가 한나라에 귀속하려고 한다고 하였다. 과연 1년 뒤 흉노족의 혼사왕이 10만의 부하들을 데리고 귀순하였다.

 

동방삭은 황제의 하사품으로 받은 많은 돈과 전답을 아름다운 미녀들을 사는데 모두 소비하였다. 그러나 일 년이 지나 흥미가 사라지면 다른 미녀로 갈아치웠다고 한다.

동방삭은 처를 취하는 기준으로 세 가지를 들었는데, 첫째로 장안의 사는 여자이어야 하고 둘째로 어린 미녀여야 하고 셋째로 일 년에 한 번씩 처를 바꾼다는 것이다.

그의 돈과 재물, 정력은 어린미녀를 물색하고 성숙한 미녀와는 결혼하고 나이 든 미녀와는 헤어지는데 다 써버렸다고 한다. 주위사람들은 시기반 농담반으로 그를 광인(狂人)이라고 하였다. 일설에 따르면 채음보양이라는 일종의 수신법이라고도 한다.

 

동방삭은 자신을 놀리는 그들에게 하은은어산, 중은은어시, 상은은어조(下隱隱於山, 中殷殷於市, 上隱隱於朝 : 작은 은자는 산에 숨어있고, 중간은자는 시장에 숨어 있고, 큰 은자는 조정에 숨어있다.)라고 하였다.

 

동방삭이 나이가 들어 죽음이 가까워 오자 한무제에게 이렇게 권했다. “폐하께서는 말 잘하고 아첨하는 무리를 멀리하시고 그들의 참언을 멀리하소서.” 한 무제는 동방삭의 말을 듣고 지금 다시 동방삭을 생각해보니 그저 말만 잘하는 사람은 아니었다고 생각하고 놀랐다고 한다.

 

한무제가 동방삭에게 물었다. "선사께서는 인간이나 땅이 한결같이 그 근본이 잇있다면 온 천하도 반드시 그 뿌리가 있을텐데 천하의 뿌리는 어디가 되겠습니까" 하고 묻자.

동방삭은 그렇지요 세상모든 사물에 음양이 있듯이 이 세상이 만들어진 과정도 반드시 시작 발원성지가 잇사온데 그 발원성지는 바로 이웃나라인 해동국(海東國)이옵니다"라고 설명하자

 

임금은 궁금하다는듯 "왜 하필이면 해동국이란 말이요?" 하고 묻자 동방삭은 "주역에 시어간 종어간(始於艮 終於艮)이라고 적혀 있는데 그 뜻은 모든 만물의 시작과 끝이 간방(艮方:東北)에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 간방은 지구 중심부에서 볼때 바로 해동국이 있는 위치이옵니다"라 하여 한무제를 놀라게 했다고 한다.

 

새가 죽을 때는 그 우는 소리가 매우 애달프며. 사람이 죽을때는 그 말이 진실하도다. 이말은 동방삭과 같은 경우를 두고 하는 말한 것이었다.

 

설화에 따르면 동방삭은 서왕모(西王母)의 천도복숭아를 먹어 대단히 오래 살았다고 한다. 서왕모는 부도의 마고를 지나인들이 부르는 이름인데 부도의 역사를 감안하면 초기 부도 시대부터 살았다면 18만년은 아닐지라도 굉장히 오래살았을수도 있을 것이다. 이 설화의 동방삭은 오래 살았지만 영원히 산 것은 아니다.

 

동방삭이 죽었을때 백일승천(百日勝천) 했다는 말이 있는데  백일승천이란 사후의 현상을 말한 것으로 죽은 시신뿐 아니라 사용품 일체가 사라져 볼수없는 것을 일컬으며 생존시에 쓰던 옷가지나 지팡이 신발등만 관속에 남아있고 시신이 사라진 사후 상태를 시해(尸解)라고 한다.

도가(道家)에서 백일승천이나 시해를 한 사람은 노자(老子)를 비롯하여 강태공(姜太公) 이소군(李小君)등 40여명 되는데 20여명의 시체는 없어지고 쓰던 물건만 남이있는 시해를 했고 20여명은 물건도 깡그리 사라진 백일승천을 하였다고 한다.

 

본래 동방삭의 수명은 삼십(三十)갑자로 죽을 때가 되어 자기를 잡으러온 저승사자들에게 밥과 짚신, 감발(발감개) 만들어 잘 대접해 주었다고 한다.

저승사자는 동방삭의 환대에 고마움의 표시로 옥황상제 판관이 잠든 틈을 타서 동방삭의 수명이 적혀있는 장부의 십(十)자에 한 획을 그어 천(千)으로 고쳐 주어 삼천(三千)갑자를 살게 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설도있다. 1갑자는 60년이니 30(三十)갑자는 1,800년인데 그리 오래 살 사람이 뭐가 아쉬워 저승사자를 대접해서 삼천(三千)갑자 180,000년을 살려 했느냐는 의문에 부딛칠 수 있는데 중국에서는 삼천의 천(千)자를 천(遷)으로 해석하여 갑자를 세번 돌았다하여 태어날때 한번 환갑때 두번 120세에 세번의 갑둔(甲遁)을 하여 120세를 살아 삼천(三遷)갑자라고 부른다고도 한다.
 
원래 환갑을 한문자로 쓸때 환갑(還甲)으로 쓰는 이유는 육십갑자의 맨 첫머리가 갑으로부터 시작하니 환갑으로 부르나 정확한 해석은 만약 정유(丁酉)生이면 환정(還丁) 임인(壬寅)생이면 환임(還壬)으로 불러야 맞는 것이다.

 

아무튼 삼천갑자를 살고 난 동방삭이 죽을 때가 되었으나 저승사자들은 동방삭이 너무 오래 살아 알아볼 수 없게 되었다. 저승사자는 동방삭을 잡기 위해 꾀를 내었다.

 

 저승사자는 어느 냇가에서 숯을 씻고 있었는데, 동방삭이 지나가다 숯을 씻고 있는 이유를 물었다. 저승사자가 숯을 씻으면 하얗게 된다고 해서 씻는다고 대답하자 동방삭은 “내가 삼천갑자를 살았지만 그런 이야기는 처음 듣는 소리다.” 라고 말해 결국 자신이 동방삭임이 탄로나 저승으로 잡혀갔다고 한다.

 

그 숯을 씻은 냇가가 현재 경기도 성남 분당의 탄천(炭川)이다

출처 : 靑林(德卍)
글쓴이 : 靑林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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