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전 이야기

[스크랩] 이지 이탁오 <분서>

강나루터 2017. 2. 5. 21:47


이지 이탁오 <분서> 도서

2010/03/07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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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서

이지 지음 | 홍승직 옮김
홍익출판사 1998.11.01
평점

『분 서』에 대한 관심은 대학 3학년 당시, 박노자의 『우리가 몰랐던 동아시아』에서의 이지에 대한 언급에서 시작됐다. 책에서 박노자는 현재 사회에서의 문제들을 일관되게 인식하고 그에 대한 해결점을 제시하고 있었다. 여전히 사람들을 짓누르고 있는 '민족'과 '국가'의 무게에서 벗어나서 주체적인 개인으로서의 삶이 존중되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현실에서 사람들을 움직이는 힘을 갖고 있는 것은 사실은 계급적 이해관계인 것을 간파해야 한다는 것. 그러한 역사적 사례들 속에서 기존의 통념에 반하는, 진보적이고 새로운 전통을 만들어가자고 하는 것. 저자는 이와 같은 주장의 논거로써 이지를 소개하고 있었다. 박노자의 주체적 개인에 대한 설명 속에서의 ‘이지’는 아주 매력적인 인물이었고, 이지의 저서를 읽어보리라는 다짐을 당시에 하게 됐던 것이, 지금에 이르게 되었다.

앞 에서와 같은 개인적 동기와 더불어 요즘 중국 명나라 말 청나라 초의 지식인들이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분서가 완역된데 이어 최근 그의 일생을 조명한 ‘이탁오 평전’이 출간됐다. 또 그를 흠모했던 자유주의적 문인 원굉도의 전집 ‘원중랑전집’이 완역 출간되고, 장대, 대명세 등 낯선 명말청초 학자들의 글들도 잇따라 소개되고 있다.

나의 개인적 동기와 현재 사회 문화적으로 재평가 되고 있는 고전이라는 점에서 이지에 대해 그의 저서『분서』에 대한 정리를 하고자 한다.

 

 나는 한 마리의 개였다.

 

“나 는 어릴 때부터 성인의 가르침이 담긴 책을 읽었지만 성인의 가르침이 무엇인지 몰랐고, 공자를 존중했지만 공자에게 무슨 존중할 만한 것이 있는지 몰랐다. 속담에 이른바 난쟁이가 키 큰 사람들 틈에 끼어 굿거리를 구경하는 것과 같아, 남들이 좋다고 소리치면 그저 따라서 좋다고 소리치는 격이었다. 나이 오십 전까지는 나는 정말 한 마리 개와 같았다. 앞의 개가 그림자를 보고 짖어대자 나도 따라 짖어댄 것일 뿐, 왜

그렇게 짖어댔는지 까닭을 묻는다면, 그저 벙어리처럼 아무 말 없이 웃을 뿐이었다.”

 

 

송 나라 이후 주희의 주석으로 고정된 유교경전은 국가에서 인정하는 유일한 학문체계였다. 공자를 비판하거나 경전의 진리성을 부정한다는 것은 당시로선 충격적인 일이었다. 그렇다고 이탁오가 공자 자체를 부정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고대의 한 사상가이자 교육자요 학자로서 공자를 존경했다. 하지만 그를 신성불가침의 우상으로 떠받들면서 중생의 눈과 귀를 다른 사상으로부터 막는 것은 가증스러운 짓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이 탁오는 ‘분서’ ‘장서(藏書)’ ‘설서(說書)’ 등을 통해 자신의 이 같은 사상을 설파했다. 그는 책을 집필할 때 이미 예견했다. 책이 세상에 선보여 질 때 자신에게 미치게 될 화가 단지 지금처럼 비난 하는 강도에 끝마쳐질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러했기에 책 이름도 불태워버려야 할 책(분서), 감추어야 할 책(장서)이라고 스스로 붙였다. 그러나 정작 그의 책은 불태워지지도, 감춰질 수도 없었다. 이는 자연스럽게 당시로선 신성불가침한 권위로 세상을 지배했던 공자에 대한 공격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분서를 이해하기 위해 그리고 당시 이지의 입장을 이해하기 위해 우선 「소자유의 『노자해』서문」의 비유를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예 전에 북방에서 공부를 할 때, ……날씨가 추운데다 큰비와 눈이 사흘 동안 내려서, 7일 동안 식량이 끊겨 굶주리고 꽁꽁 얼어 뒹굴다, 주인에게 한 가닥 희망을 걸고 찾아갔다. 주인은 나를 불쌍하게 여겨, 기장을 끓여 내게 먹으라고 했다. 나는 이것저것 가릴 틈도 없어 입을 있는 대로 벌려 마음껏 먹었다. 밥상을 물리고 나서 나는 ‘제가 먹은 것이 아마 쌀밥인가 보군요! 어쩌면 이렇게 맛이 있는지요!’라고 물었다. 주인은 웃으며 말했다. ‘이것은 기장일세. 쌀하고는 다르지. 또한 지금의 기장은 옛날의 기장과 다를 것이 없다네. 다만 배가 아주 고프니 아주 맛있는 것이요. 아주 맛있게 먹으니 배가 아주 부른 것이라네. 자네는 이제부터 쌀이라고 생각하지도 말고 기장이라고 생각하지도 말게.’ 나는 주인의 그 말을 듣고 문득 탄식하며 ‘만약 내가 도를 추구하는 것이 지금 먹을 것을 추구하는 것과 같다면, 공자든 노자든 가릴 겨를이 있는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지의 입장에서 볼 때 도를 추구하는 간절한 심정은 바로 극도의 기아감으로 비유될 수 있고, 극도의 기아감 속에서는 이것저것 먹을 것을 가리지 않는다는 측면에서 공자니 노자니 하는 구분마저(심지어 오늘날의 입장에서 보자면 기독교니 회교니 하는 교파나 사회적 이념의 경계의 구분마저) 파괴하는 것이었다.

 

기존의 질서를 전복하는 거침없는 발언

 

…… 그러나 선(仙)아닌 불(佛)이니 유(儒)니 하는 것은 모두 ‘명분’일 뿐입니다. 공자는 사람이 명분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므로 명교(名敎)로 사람을 유도했습니다. 석가는 사람이 죽음을 두려워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므로 죽음으로 사람을 두려워하게 하였습니다. 노자는 사람이 삶을 탐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므로 장생(長生)으로 사람을 끌어들였습니다. 모두 부득이 하게 어떤 명목을 내세워 후세 사람들을 교화하고 유도한 것으로, 진실 그 자체는 아닙니다.

 

‘경 사구에게 답하다’ 편에서의 말이다. 이탁오는 거침없는 발언과 저술로 수많은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당시 최고의 도학자로서 자처하던 경정향과의 10년 논전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공맹의 도로 질책하는 경정향에게 이탁오는 망설이거나 거리끼는 것 없이 붓을 들어 써내려갔다.

 

“세상 사람들은 대낮에 잠꼬대를 하는데, 공만 혼자 꿈속에서 대낮 얘기를 하니 항상 깨어 있다고 할 만하겠군요.”

 

유 교 문화를 주체로 한 중국 문화는 줄곧 사회 질서를 강조하여, ‘개체’는 사회라는 거대한 기계의 나사 하나에 불과했다. 삼강오상이라는 윤리 관계 안에서 생활하면서 이 관계 준칙을 유지하고 보호하는 일이야말로 바로 천리에 맞는 사람의 일이었다. 하지만 이탁오는 당당하게 한 가지 원칙을 제시했다. “사람은 자기를 위하는 것을 귀하게 여기고, 자기 길을 가는 데 힘쓴다.” 이는 당시 중국 사회로 볼 때 대역무도한 발언이었다.

만약 자기 길을 가지 않고 남의 길을 가면 비록 백이·숙제라도 마찬가지로 괴벽스러운 성벽이 되고, 자기를 위할 줄 모르고 오직 남을 위하는 데 힘쓰면 비록 요순이라도 마찬가지로 하잘것없는 티끌이나 쭉정이가 된다.

이 탁오의 사상은 윤리 본위와 "사회 지향"의 유교 국가에서 부처와 노자보다 훨씬 파괴력을 지닌 이단이었다. 도학자들의 입장에서 볼 때, 이탁오의 이러한 사상이 전파되는 대로 내버려둔다면 2천 년 이어진 사유 양식과 가치 표준의 전통이 깨질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탁오의 이러한 광언(狂言)은 수많은 사람들이 말하고 싶어도 감히 말하지 못했던 것으로, 가짜 인의에 불만이고 인성을 속박하는 예교에 불만이던 사람들을 고무시켜 확실히 적지 않은 사람들을 선동하고 미혹했다. 이리하여 명교의 울타리에 가하는 이탁오의 충격과 명교의 전통을 수호하려는 도학자 사이의 충돌은 피할 수 없는 일이 되었다.

 

처음의 마음을 존중하라 - 동심설(童心說)

 

동심설을 말하다

이지의 글을 볼 때, 무엇보다도 그의 「동심설」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글로써의 동심설이나 하나의 주장으로써의 동심설은 이지 사상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동 심은 참된 마음이다. 만약 동심이 있으면 안 된다고 하면, 이는 참된 마음이 있으면 안 된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동심이란 거짓 없고 순수하고 참된 것으로, 최초 일념의 본심이다. 동심을 잃으면 참된 마음을 잃는 것이며, 참된 마음을 잃으면 ‘참된 사람’을 잃는 것이다. 사람이 참되지 않으면 최초의 본심은 더 이상 전혀 있지 않게 된다.

아 이는 사람의 처음이요, 동심은 마음의 처음이다. 마음의 처음을 어찌 잃을 수 있으리오! 그런데 어떻게 동심을 갑자기 잃게 될까? 처음에는 듣고 보는 것이 귀와 눈을 통해서 들어오고, 그것이 마음의 주인이 됨으로써 동심을 잃게 된다. 자라면서 도리라는 것이 듣고 보는 것을 통해 들어오고, 그것이 마음의 주인이 됨으로써 동심을 잃게 된다. 오래되면 도리어 견문이 나날이 더욱 많아지고, 그러면 지식과 지각의 범위가 나날이 더욱 넓어진다. 그리하여 훌륭하나 이름을 떨치는 것이 좋다는 것을 알아 이를 떨치는 데 힘쓰려고 하는 과정에서 동심을 잃게 되고, 좋지 않은 명성이 추하다는 것을 알아 이를 감추는 데 힘쓰려고 하는 과정에서 동심을 잃게 된다.

…… 『육경』,『논어』,『맹자』등에 담긴 말은 그 당시 역사를 편찬한 관리가 지나치게 높이고 칭찬한 말이거나 또는 그 당시 신하가 극도로 찬미한 말이다. 이도저도 아니라면 세상 물정에 어두운 제자나 어리석은 제자들이 스승의 말을 기억으로 더듬어, 머리는 있는데 꼬리가 없거나, 뒤의 내용은 있는데 앞을 빠뜨리고, 그저 자기 소견에 따라 되는 대로 기록하여 책으로 만든 것일 뿐이다. 후학들이 이것을 판별하지 못하고 성인의 입에서 나온 것이라고 하여, 지목하여 경전으로 결정하였으니, 그 중의 태반이 성인이 한 말이 아님을 누가 알겠는가?

설 령 성인으로부터 나온 말이라고 해도, 요컨대 역시 뭔가 목적이 있어서 한 말들이어서, 병이 나면 약을 쓰되 그때에 알맞게 처방 하여 저 어리석은 제자와 세상 물정에 어두운 제자들을 구제하려고 한 것에 불과할 뿐이다. 의약의 처방은 그때그때 병세에 따른 것이어서 한 가지 처방을 고집하기 곤란한데, 어찌 이것을 가지고 만세에 통하는 불변에 이치로 삼을 수가 있겠는가? 그러므로 『육경』,『논어』,『맹자』등은 도학자의 구실이요 가짜 사람들이 우글대는 터전이다.

 

 

이 탁오가 동심을 강조한 이유는 도학을 외치며 지배이념의 권위에 안주하고 있던 학자와 관료들의 위선, 무능을 여지없이 폭로하기 위함이었다. 입으로는 인의를 외치며 점잖은 군자인양 처세하면서 명예욕과 이기심에 사로잡힌 「가짜 사람」이 그가 가장 미워한 비판의 대상이었다. 그는 불교와 노장을 진지하게 읽고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들을 이단으로 매도하고 사상적 박해를 가했던 지배자들의 「거짓」에 맞서 온몸으로 저항하였다.

동심은 또한 당시의 지배적인 문학 풍조를 극복하는 유력한 무기이기도 하였다. 화석화된 문학의 규범과 권위를 부정하고, 진실하며 자연스러운 작가의 감정 표출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문학운동을 펼치는 전환을 마련하였던 것이다.

이 탁오는 ‘천하의 지극한 문장이 동심에서 나오지 않은 것이 없다’고 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시를 짓거나 문장을 쓸 때 반드시 옛날의 전범과 권위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 시대마다의 문학이 지닌 독자적 가치를 인정하였으며, 나아가 음란한 것을 가르친다거나 도적질을 가르친다고 하여 매도하였던 「서상기」 「수호지」같은 소설을 오히려 더욱 높이 평가 하였다.문학은 시대에 따라 발전하며, 모방은 문학의 생명을 파괴하며, 소설과 극 같은 민중의 새로운 문학양식이 사대부의 시문 못지않은 가치를 지닌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주장의 핵심 근거가 바로 인간이 본래부터 지니고 있는 진신한 마음인 동심이었다.

 

해석의 다양성 vs 인식론적 상대주의

위 인용문의 마지막 문장(굵은 글씨)에서 나는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일전에 이탁오가 도(道)에 대한 정의를 내리기를,

“모두 한결 같이 수신(修身)을 근본으로 한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올바른 맥락입니다. 이것이야 말로 ‘지극히 쉬우면서도 지극히 간략한 배움이요, 요점을 간략히 지니되 활용되는 범위는 무한한 도(道)입니다.

이 는 곧 해석에 따른 다양한 결과물의 가능성을 지닌, 예술의 그것과 비슷하며, 이는 앞의 인용문에서의 ‘만세에 통하는 불변의 이치란 없다’라는 논리와 반대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이다. 이에대해 박노자의 언급은 이탁오의 또 다른 저서 『장서』(숨겨두어야 할 책)에서 “정해진 시비란 없다. 사람마다 시비가 다를 수 밖에 없다.”에서의 맥락으로, 오늘날의 해체주의를 방불케하는 인식론적 상대주의라는 것이다. 이는 어떤 획일적인 거대 담론도 서로 다른 좌표를 가진 개인들을 억압할 권리가 없다는 것이다.

 

명나라 말기, ‘개인’을 말하다.

이 탁오가 「분서」에서 역설하였던 어린아이의 순진무구한 마음, 그것은 봉건적 지배이념과 문학의 질곡으로부터 벗어나 개체로서의 자유와 해방을 추구하고자 하는 순수한 열망이었다. 결국 이지의 이상(理想)이란 자신들의 욕망을 자유롭게 추구하고, 진실에 기반 해서 남과 교제할 줄 알며, 고립되지 않으면서 거짓이 없는 ‘열린 개인주의’였다.

 

 

사 회가 우리에게 주입하는 각종 제도권적 습관이나 가치관, 지식, 세계관이 결국 우리를 지배하고 ‘제도’의 노예로 만든다는 비판은 19세기의 니체와 20세기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사상가(마르쿠제, 아도르노) 푸코, 알튀세르 등 비판적 지성인들이 해오지 않았던가, 그런데 이지는 이미 명나라 말기에 ‘나’를 지키려면 외보의 이념 주입이나 훈육을 물리칠 줄 알아야 한다는 개인주의의 제 1조를 제창한 것이다.

 

 

동심을 보다

 

하루는 집에서 연락이 왔다. 고 김수환 추기경의 침대 위에 놓인 곰인형에 대한 이야기였고, 내가 초등학교 4학년 당시 선물 받았던 강아지 인형을 택배로 보내왔다.

그 의 침대 위에 놓인 곰인형을 보면, 그가 생전에 실천해온 화합과 사랑의 근본적인 바탕이 곧 ‘동심’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내가 살아있는 눈으로 봐온 한 인간의 생애가, 그 생의 총체가 ‘동심’을 본질로 하고 있다는 것에서 이탁오가 말하는 동심설은 아주 가깝게 다가온다. 나의 강아지 인형은 2010년에 새로이 침대 위에 놓았다.

분 서는 일정한 학문의 계보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거나, 자신만의 사상적 주류를 세우는 등의 저서라고 볼 수 없다. 이는 일종의 기존 학문, 그것을 넘어선 사회제도, 사상적 질서를 비판하고, 자신이 생각하는 대안을 제시하는 일종의 ‘비평’이다. 이러한 책을 읽는 다는 것은 여기서 다루고 있는 사상가, 이를테면 공자, 맹자, 노자, 석가 등의 일체를 어느 정도 수준에서의 이해를 필요로 한다. 그러한 선행 과정 없이 분서를 접했을 때의 당혹감은 인문대학생이 공통수학을 보지도 않고 대학수학을 보는 것과 거의 같은 수준의 책읽기라 할 것이다.

이러한 부족한 이해력을 보안하기 위해서라도, 이탁오를 다루고 있는 책들을 이것저것 들쑤셔 가며 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중 박노자의 책에서의 마무리 글로 이 글 또한 마무리 하고자 한다.

“생각의 노예가 되지 않으려면 부단히 ‘마음속의 반란’을 일으키고 내가 과연 나답게 살고 있는지, 나대로 생각하고 있는지 깊이 성찰해야 한다.”

 

 

[참고도서]

박노자 『우리가 몰랐던 동아시아』, 한겨레 출판, 2007

예리에산, 주지엔 구오(홍승직 역). 『이탁오 평전』, 돌베개, 2005

이지(홍승직 역). 『분서』, 홍익출판사, 1998

장정일. 『장정일의 공부』, 랜덤하우스, 2006

출처 : 貪 嗔 痴
글쓴이 : 멧돼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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