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전 이야기

[스크랩] 최초의 성경

강나루터 2017. 2. 20. 03:17

1.  한국의 성경

 

우리나라 성경의 역사는 스코틀랜드 소속 중국 선교사인 <존 로스>로부터 시작되었다.

로스는 만주 근교에서 조선인 상인들과 만나면서 조선의 문서 선교의 중요성을 인식하고는

만주를 넘나들던 의주의 젊은 상인인 이응찬, 백홍준, 서상륜 등과 성경의 한글 번역을 시작하였다.

이때가 1876년경인데, 이런 노력의 일환으로 1881년에 로스는 심양에 “문광서원”을 설립하고

1882년, 최초의 한글 성경인 <예수셩교누가복음젼셔>를 발간하고

연이어 <예수셩교요안복음젼셔>도 발간하여 조선 땅에 한글로 복음의 첫 씨앗을 심었다.

그 후에도 이들은 번역작업을 계속해 1887년에 심양에서 최초의 한글 신약성서인 <예수셩교젼셔>를 발간하기에 이른다.

 

이후 국내에서도 많은 선교사들이 성경 번역에 참여하게 되고

종국에는 성경번역위원회를 조직하여 체계적인 번역 작업을 펼쳤다.

그 결과로 1906년 공인역 신약성경을 완성하고 1910년에는 구약까지 완성해 1911년에 첫 한글 신구약성경을 발간하게 되었다.

이 공인역 첫 성경도 여전히 번역에 불완전 점이 있어 다시 개역 작업을 시작하여 1938년에 신구약 개역본이 나오게 되었다.

개역본 성경이 나온 후부터는 이전의 성경을 “구역” 성경이라고 불렀다.

이 개역본도 몇 차례의 수정을 거쳐 현재의 개역개정판 성경에 이르게 되었다.

 

우리나라 성경의 역사에는 두 가지 큰 특징이 있다.

첫째는 선교사가 이 땅에 들어오기도 전에 성경이 한글로 번역되어 첫 선교사들이 번역된 성경을 가지고 들어올 수 있었고,

두 번째는 거의 모든 성경이 철저하게 한글로 번역되어 이 땅에 한글 보급에 혁혁한 공을 세우며

기층민들에게 저항 없이 다가갈 수 있었다는 것이다.

 

 

예수셩교 누가복음젼셔     『최초의 한글 성경』

 

 

예수셩교 누가복음전서, 존로스 역, 문광서원, 1882년 (영인본)

 

중국 선교사였던 존 로스는 심양 근처에서 만난 조선 사람들을 통해 조선이란 나라를 알게 되고,

그 조선에는 아녀자도 쉽게 익힐 수 있는 한글이란 문자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더구나 당시 조선은 서양종교의 포교활동이 금지되어 있어

로스는 성경의 한글 번역을 통한 선교가 가장 효과적일 것으로 예상하고

조선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1876년부터 성경번역을 시작하였다.

결국 1882년 중국 심양 문광서원에서 비록 단편 성경이긴 하지만 최초의 한글 성경을 발간하게 되었다.

이것이 <예수셩교 누가복음젼셔>로 한국기독교사의 가장 기념비적인 사건의 하나가 되었다.

 

당시 도움을 받았던 이응찬, 서상륜, 백홍준 등은 모두 서북지방 사람들 이었기에

이 첫 성경에는 서북 사투리가 많이 포함되어 있었지만 한글로 쓰여 조선인이면 누구나 쉽게 복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성경은 처음 3,000권을 찍어 김청송, 서상륜 등의 권서인을 통해 만주와 조선에 복음을 전했고

일부는 일본을 경유해 부산지방을 포함한 남부지방에도 복음을 전했다.

 

이러한 선교는 열매를 맺어 1885년 첫 선교사인 언더우드, 아펜젤러가 이 땅에 오기도 전에

이미 첫 교회 (소래교회, 1884)가 세워지고 서울 근교에만 수십 명의 신자들이 세례받기를 기다리는

세계선교사에서 전무후무한 역사들이 이 땅에서 이루어졌다.

 

이 <예수셩교 누가복음젼셔>는

현재 영국성서공회와 대한성서공회에 전세계 2권만 존재하는 한국기독교사에 가장 빛나는 국보급 유물이며,

전시되고 있는 성경은 초기 원본의 영인본이다.

 

 

 

新約聖書 馬太傳 (신약성서 마태전)      『한국인이 번역한 최초의 성경』

 

신약성서 마태전, 이수정 역, 일본 요코하마, 1884년 초판 원본

 

이 성경은 일본에서 처음으로 개신교 신자가 된 李樹廷(이수정)에 의해 편찬된

한국인이 한국인을 위해 번역한 최초의 성경이다.

역자인 이수정은 1882년 수신사 박영효의 비공식 수행원으로 일본에 가서는

농학자이자 기독교인인 <쓰다 센>을 만나 기독교를 접한 후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일본에 간지 7개월 만에 세례까지 받게 되었다.

회심 직후부터 미국성서공회 루미스 목사의 제안을 받아서 성경번역을 시작하였는데,

먼저 한문성경에 ‘이두’로 토를 달아 한자에 익숙한 당시 조선인들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번역했다.

이를 현토한한신약성서 (縣吐漢韓新約聖書)라 하는데,

1884년에 마태복음부터 사도행전까지 낱권으로 모두 5권의 쪽복음서를 미국성서공회의 도움으로

각권 1000권씩을 출판하였다.

 

전시된 성경은 그중 한권으로,

이것은 현재 미국성서공회와 한국기독교역사박물관에 각 한권씩만 소장중인 전세계 3권뿐인 귀한 성경이다.

이후 이수정은 이 현토한한성경을 바탕으로 1885년엔 최초의 국한문 성경인 <신약마가젼복음셔언해>를 출간하였는데,

이는 국한문 혼용 성서로 한문 옆에는 한글을 병기해 놓았다.

이 책은 후에 언더우드와 아펜젤러가 일본을 경유하여 조선으로 입국할 때 가지고 들어온 성경이다.

언더우드와 아펜젤러가 조선으로 오게 된 것도 이수정의 선교사 요청으로 이루어졌고,

그들이 간단한 조선말을 배우고 한글 성경책까지 들고 조선 땅을 밟을 수 있었던 것도 이수정 덕분이었다.

 

이런 이유로 이 성경은 한국선교사를 대표하는 기념비적 유물이다.

 

 

 

신약마가젼 복음셔언해        『선교사가 들고 온 한글 성경』

 

신약마가젼 복음셔언해, 이수정 역, 일본 요코하마, 1885년 (영인본)

 

이수정이 현토한한신약전서를 번역한 후에 이 한글 성경을 번역하였다.

실은 한글과 한문이 혼용되어 있는데 한자는 한글로 토를 달아 놓았다.

최초 선교사인 아펜젤러와 언더우드는 한국에 첫발을 디딜 때 이 책을 한 아름씩 들고 왔다고 한다.

 

 

 

 

예수셩교젼셔    『한국 최초의 신약성경』

 

 

예수셩교젼셔, 존 로스 역, 심양 문광서원, 1887년 (영인본)

 

한국 최초의 신약성경으로 1887년 중국 심양에서 편찬되었다.

 

 

 

 

 

누가복음젼    『예수셩교 누가복음젼셔의 개역』

 

 

누가복음젼, 아펜젤러 조성규 역, 삼문출판사, 1890년 (영인본)

 

 

누가복음젼은 로스가 번역한 최초의 한국 성경인 예수셩교 누가복음젼셔의 개역본으로

감리교의 아펜젤러와 그의 조사 조성규가 처음 번역한 성경이다.

또한 기독교 출판사인 삼문출판사에서 인쇄 발행한 최초의 단편성경으로 한반도 내에서 출판된 첫 성경이다.

이 역본은 의주 사투리를 서울말로 개역하여 많은 사람들이 읽을 수 있게 되었다.

 

 

 

 

新約全書 국한문     『최초의 국한문 신약성경』

 

신약전서 국한문, 유성준 역, 황성 대미국성경회, 1910년

 

최초의 공인 신약성경은 1906년 완성되었는데, 이는 완전 한글성경이었다.

한문에 능통한 지식인들은 한글이 오히려 이해하기 어려운 면도 많기에 그들을 위해

한문이 혼용된 국한문 혼용 성경을 발간하게 되었다.

역자인 유성준은 <서유견문>의 저자 유길준의 동생으로 한성감옥에서 이상재, 이승만 등과 함께 기독교에 귀의하였으며

후에 안국동교회를 설립하고 장로가 되었다.

우리나라의 초기 성경들이 대부분 당시 기층민들이 쓰던 한글로 제작되어

정치 경제적으로 소외받던 이들이 쉽게 복음을 접할 수 있었다.

그러나 기독교가 기층민만의 종교가 아니라 양반을 포함한 상류 지식인층에로 고루 퍼질 수 있었던 데에는

그들을 위한 이 성경이 큰 몫을 차지했다.

 

이 성경은 또한 1906년 발간 직후 고종황제에게 헌상된 것으로도 유명하다.

 

 

 

 

부표 관쥬 신약젼셔       『최초의 부표 및 칼라 인쇄 성경』

 

 

부표관쥬 신약젼셔, 카우만  이장하 역, 동양선교회, 1910년 (영인본)

 

성결교회의 전신인 동양선교회에서 발행한 성경으로,

당시 성서공회에서 출판한 신약성경에 부표와 관주를 붙여 성경을 잘 이해 할 수 있도록 편집하였다.

부표란 죄, 심판, 회개, 사죄, 구원 등 기독교의 주요 개념들을 12개의 그림(부표)으로 표시하여

성경 말씀을 쉽게 이해하도록 하였다.

 

또한 예수님의 말씀을 붉은 색으로 인쇄하였는데 이 모두 우리나라 최초의 일이다.

 

 

 

 

 

 

신약젼셔 관쥬     『최초의 관주 성경』

  

신약젼셔 관쥬, 대영셩셔공회, 1913년

 

1911년에 발간된 최초의 관주 성경의 1913년 판이다.

 

 

 

신약성경 주셕     『최초의 한글 성경주석』

 

신약성경 주셕집, 민준호 편, 동양서원, 1911~1913년

 

한글성경은 존 로스 중국 선교사가 1882년에 첫 한글성경인 <예수셩교 누가복음젼서>를

중국 심양에서 발간하면서 시작되었다.

그 후 1910년에 와서야 국내 선교사들에 의해 신구약 전체의 번역을 완성하고

1911년에 신구약 한글성경인 <셩경젼서>를 출판하게 되었다.

그래서 1911년은 완전한 형태의 우리글 성경을 갖게 된 역사적인 해다.

 

성경 말씀을 이해하기 쉽게 해설해 놓은 주석서는 성경의 번역 작업이 끝난 이후부터 출판되기 시작했다.

그 첫 작품이 동양서원이 발행한 신약의 주석서들입니다.

당시 최대 사설 출판사였던 동양서원에서는 1911년부터 1913년까지 신약성경의 주석서를 번역 발간했다.

이것은 중국의 주석서를 번역한 것으로 최초의 한글 성경주석이다.

중국은 1890년에 성경위원회 내에 주석위원을 임명하여 5년 만에 신약성경 주석을 완성했는데,

동양서원의 주석집은 이것을 번역한 것이다.

특히 이 주석집은  성경말씀이 먼저 수록되어있고 뒤따라 이에대한  주석이 실려 있어

성경 주석집이기 이전에  주석성경이기도 하다. 

 

동양서원에서는 전부 21권을 발간하였는데 이번 전시회에는 이 중 9권이 전시되고 있다.

 

 

 

新譯 新舊約全書 (신역 신구약전서)

『최초의 개인역 신구약 성경』

 

 

신역 신구약전서, 게일 역, 기독교창문사, 1925년 초판본

 

James Scarth Gale (1863~1936, 한국선교사로 1888~1927 시무)

 

한국명 기일(奇一)로 불리는 게일은 캐나다 출신 선교사로 1888년 한국에 왔다.

1889년 8월부터 1890년 6월까지 10개월간 부산에 거주하며 선교사업을 시작하여 최초의 부산거주 선교사가 되었으며

이후엔 주로 원산과 서울 연동교회를 중심으로 선교활동을 벌였다.

게일은 특히 문서 활동으로 많은 공헌을 하였는데, 특히 한국역사연구 등에도 관심을 기울여

한국 고전을 영어로 번역하여 세계에 소개하였다.

그 중에는 <한국풍속지> <구운몽> <춘향전> <심청전> <흥부전> 등 한국의 고전들이 망라되어있다.

한편 1895년엔 <천로역정>을 한글로 번역하여 우리나라에 소개하였는데 이것은 최초의 서양 소설 번역서이다.

그 외에도 <한영사전>을 최초로 출간하여 기념비적인 업적을 남겼다.

 

게일은 한글 신구약 성경 번역위원으로도 오랫동안 간여하였다.

그는 성경번역을 문자적인 번역보다는 한국인에게 이해하기 쉬운 의역(意譯)이 되어야한다고 주장하며 번역을 하였는데

이런 그의 번역 철학이 결국 다른 번역위원들과 대립하게 되어 번역위원직에 사퇴하게 되었다.

자신이 번역한 성경번역은 나중에 윤치호가 운영하는 기독교창문사에서 출판하게 되는데

이것이 한국 최초의 개인역(私譯) 신구약 성경이다.

현재의 직역 위주 개역판 성경보다는 어떤 면에서는 간결하며 더 매끄럽게 번역되었다는 주장도 많다.

 

전시되고 있는 1925년판 게일역 신구약전서는 원본이 몇 권 남아있지 않은 귀한 성경이다.

 

 

 

 

새번역 성경

『최초로 우리 학자들로만 번역한 현대어 공인역 성경』

 

 

초기 한글성경은 이수정의 <신약마가전 복음서언해>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외국 선교사들이 주체가 되어 번역 출간되었다.

그나마 마지막으로 번역된 <개역 성경>마저도 여러 오류가 눈에 띄고

1938년 출간 이후 세월이 지나면서 우리말도 급격히 변하여 현대 통용어와는 거리가 멀어지게 되었다.

이에 성서학을 공부한 학자들이 중심이 되어 젊은이들을 위해 이해하기 쉬운 현대어 성경을 번역하기에 이르렀다.

 

1960년에 시작된 번역은 7년만인 1967년 12월에 <신약전서 새번역>이 대한성서공회에서 초판으로 나왔다.

그러나 이 성경은 표현이 너무 현대적이라 옛 것에 익숙했던 많은 보수교단에서 거부감을 느껴 환영받지 못했다.

새번역은 성서공회에서 나온 성경 중 유일하게 구약이 없다.

이는 교계에서 새번역 자체를 반대한 점도 있지만, <공동번역 성경> 번역 작업이 바로 이어지는 바람에

새번역 구약은 나중으로 밀리게 되었다.

 

1993년 1월 드디어 <성경전서 표준 새번역>이 출판되었다.

구약은 새롭게 번역되고 신약도 기존의 <신약전서 새번역>이 아니라

새롭게 번역하여 개정판으로 구약과 합본하여 출판하였다.

이 성경은 문자적, 형식 일치의 번역보다는 쉬운 현대어로 이해하기 쉽게 풀어서 번역되어

한글만 알면 누구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하였다.

그러나 이 성경도 일부교단의 극심한 반대에 부딪혔으며,

이를 계기로 예수교장로회 합동 교단을 중심으로 <한국성경공회>를 만들어 <하나님의 말씀 성경>을 번역출판하기도 하였다.

 

2001년 <표준 새번역 개정판>으로 개정 출판된 이 성경은 새신자, 교회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개역개정 성경>의 부족한 빈자리를 나름대로 메우며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공동 번역 성경     『세계 최초의 신구교 합동 성경』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경전으로 가진 천주교와 기독교는 이 땅에 들어온 이후 서로 달리 번역된 성경을 사용하여왔다.

천주교에서 번역된 성경은 천주교에서만 사용하고 개신교에서 발행된 성경은 개신교에서만 읽혀왔다.

 

그러던 중, 1968년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부터 천주교와 개신교 사이의 교회 연합 운동의 일환으로

전세계적으로 성경의 공동번역 기운이 일기 시작했다.

이에 우리나라에서도 1968년 신구교 학자들로 공동번역위원회를 구성하여

2년만인 1971.4.10. 부활절에 <공동번역 신약성서>를 먼저 발행하였다.

이는 공동 번역으로는 세계 최초로, 프랑스판 신약성경이 1972년에 두 번째로 발간되었다.

이후 구약성경도 번역을 완성하여 1977.4.11. 부활절에 <공동번역 성서>를 발간하게 되었다.

 

공인역 성서가 발행된 이후 천주교와 성공회에서는 공인성경으로 채택하여 사용하였으나,

대부분의 개신교에서는 채택을 거부하였다.

개신교의 채택의 거부 이유는 첫째, 하나님의 명칭이 하느님으로 되었다는 것이고

둘째, 문장이 너무 쉬워 권위가 없다는 것이고

셋째는 천주교와 함께 번역해 곳곳에 개신교와 다른 천주교 교리가 스며있다는 것이다.

 

비록 개신교 교회에서는 공식사용을 하고 있지 않지만 쉬운 현대어로 번역되어

현재도 천주교 뿐 아니라 많은 개신교 신자들도 애용하고 있다.

1999년에 일부 오류를 교정하고 한글맞춤법에 맞춰 새롭게 <공동번역 성서 개정판>이 발행되었다.

출처 : 에덴나무 (Tree of Eden)
글쓴이 : 홍사성장로 원글보기
메모 :